에인지의 사퇴와 스티븐스 사장: 보스턴에는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최근 보스턴에 파격적인 인사이동이 있었죠. 왜 이런 일이 있었는지를 둘러싼 여러 의혹과 그에 대한 반박이 뒤섞인 워낙 혼란한 상황이라, 정확한 인과관계를 밝혀내는 것은 아마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도 보스턴 팬 입장에서 나름대로 알고 있던 이야기들과 최근 나오는 이야기들을 종합하면 적어도 다양한 맥락에 대한 정보 정도는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되어 한번 글을 써보게 되었습니다. 어디까지나 참조용으로 받아들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직접 에인지 사장과 스티븐스 감독의 마지막 인터뷰를 듣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 영상을 참조해 주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i_SF9-E7dAg
에인지의 사퇴
대니 에인지에 대한 내용부터 얘기하자면, 사실 이는 보스턴 팬들이라면 어느 정도 예견하고 있었던 일일 겁니다.
https://twitter.com/ByJayKing/status/1400125104173035531
https://twitter.com/JaredWeissNBA/status/1400125230278844417
https://twitter.com/ByJayKing/status/1400124346459475976
에인지 본인이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은퇴를 고려하게 된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건강입니다. 2년 전 에인지는 심장마비로 인해 병원에 입원했었죠. 얘기하는 늬양스로 보면 아마 이 사고의 원인을 일로 인한 스트레스로 보는 듯 합니다. 에인지 본인의 이야기에 의하면 눈을 떴을때 자신을 둘러싸고 서있는 가족이 보였고, 그들이 모두 "이 일은 당신에게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준다. 그만두면 안되겠나"하고 요청했다고 합니다. 또 본인의 사퇴 결정은 이번 시즌의 결과와 무관하며, 2년 전부터 계획하고 있던 일이라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에인지는 2003에 부임하며 성공적으로 빅3 시대를 만들어냈고, 또 스티븐스 감독 선임과 브라운 테이텀 드래프트로 리빌딩까지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그러나 헤이워드의 부상, 어빙의 이탈, 앤서니 데이비스 트레이드 실패 등으로 인해 원래 그리고 있던 청사진은 틀어지게 되었죠. 이런 복합적인 상황 속에서 스트레스로 인한 건강 문제까지 터졌으니, 이 시점부터 아마 에인지는 쭉 은퇴를 염두에 두고 물러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즉 에인지가 물러나는 것까지는 구단 내부적으로도 잘 알려져 있었고, 팬들도 어느 정도 예견하고 있던 일인 것이죠.
뜻밖의 대체자
그런데 모두를 놀라게 했던 것은, 에인지의 후임입니다. 브래드 스티븐스의 새 직책은 President of Basketball Operations, 즉 쉽게 말하자면 원래 에인지가 가지고 있던 직책을 그대로 물려받은 겁니다. 현재 보스턴 구단 운영의 최고 결정권자가 된 것이죠.
(그동안 보스턴 셀틱스 프런트의 의사결정과정이 어떻게 이뤄졌는지가 궁금하시다면:
https://mania.kr/g2/bbs/board.php?bo_table=maniazine&wr_id=212326&sca=&sfl=mb_id%2C1&stx=ink2
이 글을 참조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보통 에인지의 후임으로는 외부 인사를 선임하거나, 만약 내부 승격이라면 마이크 자렌같은 인물일 것이라 흔히들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보스턴의 선택은 뜻밖에도 2013부터 감독으로 부임해 온 브래드 스티븐스였습니다.
대체 감독직을 왜 그만둔 것인가
이쯤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질문이 있죠: 스티븐스 감독은 애초에 왜 감독직을 그만둔 것일까요? 아마 이 점을 가장 많이 궁금해 할 것이고, 또 애석하게도 이 점이 이번 사건에서 가장 모호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나오는 정보를 토대로 몇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 보겠습니다.
1. 스티븐스 감독은 감독을 하는 것에 지쳤다?
https://twitter.com/wojespn/status/1400097447121199104
이 결정이 발표된 당일 워즈는 "스티븐스는 버블 이후로 감독을 하는 것에 지쳤다"라고 보도했습니다.
스티븐스 감독은 평소 인터뷰에서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진 않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이번시즌은 이례적으로 답답함을 많이 드러낸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몇가지 예시를 들자면:
“The No. 1 thing in my eyes is we’re not holding down the fort,” said Stevens, who added that the Celtics did guard the perimeter well, limiting the Spurs to an 8-for-28 showing from beyond the arc. “We’re not guarding the lane. We’re not protecting the rim. We’re not at the basket. I’m not talking about our bigs. I’m talking about everybody.”
먼저 수비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는 답답함을 시즌 내내 토로했습니다. 거의 매 경기 이후 이런 내용을 언급했죠. 이번 시즌 보스턴은 이상할 정도로 근 몇년 최대 장점이던 유기적인 로테이션이 실종되었고, 그 결과 동부 7위라는 성적으로 시즌을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https://twitter.com/ByJayKing/status/1352334015169105922
스티븐스 감독이 시즌 초 가장 많은 비판을 받던 부분은 아마 문제의 투빅 라인업일 겁니다. 이에 대해 스티븐스 감독은 마침내 본인도 답답하다는듯 "나도 투빅 라인업이 못한다는거 잘 알고 있다. 근데 로버트 윌리엄스의 출전시간을 보장해주려면 어쩔 수가 없었다"라고 토로했습니다. 실제로 만일 로윌이 경기에 나오지 못했다면 또 그 점을 가지고 비판을 받았겠죠. 이 인터뷰는 주요 로테이션에서 윙핸들러 헤이워드가 나간 자리를 트리스탄 탐슨으로 일시적으로 대체할 수 밖에 없던 상황에 대한 답답함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트레이드 데드라인에 보스턴이 사치세 라인 밑으로 가기 위해 샐러리 덤프로 타이스를 보낸 이후에는 드디어 포니에 영입으로 원빅 라인업을 세웠지만, 계속되는 부상과 경기력 난조로 인해 로테이션 실험은 시즌 끝까지 이어졌습니다. 랍 받아먹기/숏롤/팝 전부 적당히 되던 타이스가 빠져 버렸으니 자연히 가져갈 수 있는 선택지가 많이 줄어들었죠. 이런 상황에 대해서도 스티븐스 감독은 당시 '주어진 환경 내에서 최선을 다해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는 취지의 인터뷰를 남겼습니다. 즉 현재 선수단으로는 최적의 라인업을 찾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암시하죠. 사람에 따라서는 이런 인터뷰들을 통해 스티븐스 감독이 지쳤다고도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다.
https://twitter.com/JaredWeissNBA/status/1400129442710581248
https://twitter.com/ByJayKing/status/1400125893859758080
https://twitter.com/JaredWeissNBA/status/1400129916792803329
그러나 뭐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공식 인터뷰에서 스티븐스 감독은 이를 당연히 부인했습니다. 정확히는 '버블에서 농구에 지쳤다'는 부분부터 부인했죠. 스티븐스 감독은 '자신은 감독일을 좋아하고, 지쳐서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그저 팀을 위해 최선의 결정을 하는 것 뿐이다'라는 공식 의견을 밝혔습니다.
2. 내부 문제 때문에 경질된 것인가?
보스턴의 부진과 더불어 시즌 도중 보스턴 내부에서 스티븐스 감독을 경질하려 했다는 보도 또한 있었습니다.
그러나 며칠 이후 대니 에인지는 이런 의혹 또한 팟캐스트에 나와서 전면 부인했습니다. "당신 같으면 내부에서 경질시킨 사람을 사장 자리에 앉히겠는가?"라고 비꼬듯이 이야기했죠. 일리 있는 반박으로 보입니다.
3. 선수단 통제 실패?
어빙 사태 이후로 가장 꾸준히 나오던 의혹입니다. '스티븐스 감독은 선수단 통제에 실패하고 있다'.
뭐 무작정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또 완전히 일리가 없는 말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작년 플레이오프 막판부터 올해 시즌까지 보스턴은 연소된듯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똑같은 경쟁력을 4쿼터 내내 가져가지 못하고 중간중간 에너지가 부족한 모습이었죠. 또 작년에 컨파 패배 이후 팀원들 사이에서 작은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었고요.
https://twitter.com/ByJayKing/status/1400126320630284289
https://twitter.com/KeithSmithNBA/status/1400126221606920192
스티븐스 사장은 (생각없이 스티븐스 감독으로 쓸 뻔 했네요... 아직도 어색합니다;;) 이번 변화에 대해 "새로운 목소리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어쨌든 오랜 기간 이러져 오던 현 체재를 뒤엎으며 변화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고, 선수들 입장에서도 새로운 자극이 될 만한 계기가 필요했던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감독 교체 또한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죠.
4. 새로운 시스템?
이건 순전히 제 생각인데, 차기 감독에 따라서는 새로운 보스턴 농구 시스템의 등장 또한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스티븐스 감독이 추구하던 농구는 명백했죠: 수비에서는 유기적 스위치로 위치 가리지 않고 모두 압박, 공격에서는 핸들러의 드라이브로 시작. (아톰 -> 어빙 -> 멀티 핸들러)
그러나 위에서 살펴 보았듯이 청사진이 틀어지고 또 부상으로 인한 로스터의 한계에 부딪히며, 어찌 보면 이번 시즌 보스턴은 본인의 정체성을 상실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음 감독 선임에 따라 지금까지와는 다른 색깔의 보스턴 농구를 볼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현재의 선수단에는 새로운 전술이 필요할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스티븐스 감독이 그만둔 것이 먼저인지, 사장이 되면서 감독과 사장을 겸직할 생각은 없었기에 자연스럽게 그만두게 된 것인지, 그리고 애초에 그만뒀다면 왜 그만뒀는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정확히 알 길이 없습니다. 어쩌면 모두다일수도 있죠. 하지만 어쨌든 이것 하나만은 확실해 보입니다: 보스턴은 이 무브를 팀 전체을 위한 최선의 선택으로 보고 있고, 현재 변화의 필요성을 꾸준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스티븐스 사장 본인의 인터뷰를 인용하며 이 부분을 마치겠습니다.
"제가 감독일을 하고, 또 위대한 감독들을 상대하며 배운 점은, 성공적인 감독이 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는 겁니다. 제가 에인지와 그동안 많은 대화를 나누며 느낀 건데, 지난 8년간 저희는 만약 에인지 본인이 감독이었다면 하지 않았을 시도들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고 지지하면, 그것은 결국 팀 전체를 위해 옳은 선택이 됩니다. (중략) 다음 감독에게 다행인 점은, 그는 제가 그랬던 것 같이 닥 리버스의 빈자리를 대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겁니다. 겨우 전임자인 부족한 저보다 더 잘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까요."
결국 보스턴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현재 정신없이 다음 감독에 대한 수많은 루머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루머를 부인하는 쪽도, 스스로 만들어내는(응?) 쪽도 있죠.
https://twitter.com/jaytatum0/status/1400125828051111938
에반 터너(전 보스턴 선수, 현 보스턴 어시스턴트 코치): "제가 보스턴 셀틱스의 차기 감독이라는 소문과 의혹들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
제이슨 테이텀: "아 사실이었으면 했는데"
케빈 가넷(전 보스턴 선수): "미이이이이이이이이친 아니야. 절대 아니지!!! 내가 감독이 되면 일주일만에 잘릴걸
난 절대 감독 못해. 난 내 장점을 잘 알고 있어. 난 똑똑하고, 열정 있고, 능력도 있지!! 근데 감독을 하려면 인내심이 아주 많이 필요해. 그렇게 X같은 일들을 그렇게 많이 견디는 모든 감독들에게 박수!! 근데 어쨌든 난 아니야.. #그만 좀 물어봐"
메타 월드 피스(전 레이커스 선수, 전 론 아테스트, 전 관중 폭행범, 전 팬더 프렌드 개명 시도자): '기회가 주어진다면 보스턴 감독을 할 의향이 있어'
다시 진지한 논점으로 돌아와서, 아마 새 감독을 선임한다면 내부 승격 보다는 외부 선임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인터뷰 내내 스티븐스 사장과 에인지 전 사장이 "변화와 새로움"을 그렇게 강조한 만큼 말이죠. 도박사 배당으로는 샘 카셀이 가장 높은 상태이긴 한데, 결국 NBA에서 검증된 감독을 데려올지, 다른 팀의 어시스턴트 코치를 데려올지, 아니면 에인지가 그랫듯 대학 감독을 선임하는 파격적 행보를 보일지 아무도 아직은 알 수 없죠.
솔직히 보스턴 팬으로서 당분간은 새 감독 선임을 알아볼 일이 없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일이 이렇게 되니 새삼 당황스럽기도 하군요.
프런트 구성이 어찌 될지 또한 앞으로 지켜봐야 할 지점입니다. 에인지 체재 아래 보스턴 프런트의 주요 멤버들은
대니 에인지 사장, 마이크 자렌 부사장(주로 실무 담당), 오스틴 에인지 어시트턴트 GM (주로 스카우팅 담당) 3명 정도로 요약 가능합니다. 인터뷰에서는 에인지와 스티븐스가 자렌과 오스틴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며 이 체재를 그대로 이어가기를 원하는 듯 보였으나, 또 일이 어찌 흘러갈지는 더 지켜보아야 알 수 있겠죠.
또한 스티븐스 사장 아래에서는 과연 팀의 코어를 누구로 볼지, 또 새로운 감독의 시스템에 꼭 필요한 선수들은 누가 될지의 문제 또한 아주 흥미롭습니다. 여러모로 간만에 정신없는 오프시즌이 될 것 같군요.
결국 보스턴에게 일어난 상황은 대충 이 정도로 요약 가능할 것 같습니다. 에인지의 사임은 오래 전부터 결정된 일이었고, 후임을 모색하던 도중 올해 스티븐스 전 감독이 적임자로 결정되었다. 보스턴은 이를 팀 전체를 위한 최선의 결정으로 보고 있고, 또 이러한 일련의 무브들의 목적은 보스턴 셀틱스에 변화를 가져오기 위한 시도로 보인다.
댓글로도 많은 고견 나눠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지금까지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가넷 웃기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