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리 어빙은 왜 경기장에서 나뭇잎을 태우고 지팡이를 들고 다니는 걸까?
카이리 어빙은 왜!
경기장에서 나뭇잎을 태우고 지팡이를 들고 다니는 걸까?
- [KAI Story: 카이리 어빙 이야기] 1부
(본 글은 카이리 어빙의 독특한 행보에 관한 많은 뉴스들, 인터뷰들을 그의 인생사와 연결하여 구성한 글입니다. 최대한 루머 등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제외하였으나 자료조사 방법이었던 인터넷의 특성상 정확하지 않은 사실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으며 작성자의 주관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잘못된 부분이나 지적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카이리 어빙. (Kyrie Irving)
현 브루클린 네츠 소속, 등번호 11번, “슈팅가드” 포지션.
고등학교 시절부터 뛰어난 실력으로 이름을 널리 알리고 농구 명문 대학교 ‘듀크 대학교’에 입학하였지만 고작 11경기밖에 뛰지 못하고 부상을 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보여준 엄청난 실력과 기대감으로 2011년 NBA 신인 드래프트에서 1픽으로 뽑히며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 입단했다.
그리고 그는 그해 신인들 중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11-12시즌 신인왕을 받았으며 바로 다음해 12-13시즌 올스타에 선정되었고 다음해 올스타전 mvp까지 따낸다. 나아가 2014 FIBA 농구월드컵에서까지 mvp를 따내며 많은 농구팬들의 이목을 끌었다.
어빙은 화려하고 경이로운 수준의 드리블로 많은 하이라이트를 생성했고 뛰어난 슈팅 능력까지 갖춰 완성형이라 평가 받았으며 최고 수준의 클러치 능력까지 보여줬다.
르브론 제임스의 클리블랜드 복귀로 강력해진 팀은 계속해서 파이널에 진출했고 정규시즌 역대 최다승인 73승을 달성해낸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를 상대로 역대 최초로 3-1 시리즈를 역전해내며 역사에 남을 대역전 우승을 달성했다.
당시 7차전 서로의 강력한 수비에 약 4분간 좀처럼 득점이 나질 못하고 동점으로 유지되던 중, 경기 종료 1분여를 남기고 어빙이 상대팀 에이스 스테판 커리를 상대로 클러치 스텝백 3점을 꽂아넣으며 균형을 깨고 리드를 가져오는 장면은 가히 역대 탑10에 들만한 장면이었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https://youtu.be/wgVOgGLtPtc
(4:40에 언급된 장면이 나온다.)
이후 보스턴으로 이적을 했지만 여러 잡음을 일으키며 우승에 실패하고 현재 브루클린에서 듀란트-하든과 뭉쳐 강력한 빅3를 구성하여 다시 우승에 도전하고 있다.
별개로 현역 선수 중 5명만이 가지고 있는 개인 나이키 시그니처 농구화를 가지고 있고 펩시콜라 광고 엉클드류가 대히트를 치며 영화 촬영까지 이루어진 바 있다.
https://youtu.be/2CXtbafZT0c
그런데 이토록 대단한 농구선수인 어빙은 특이하게도 농구 외의 분야에서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기도 하는데..
그는 지구가 둥근지 평평한지 의심해봐야한다고 주장한 바가 있으며,
경기 전에 경기장에서 ‘세이지 잎’을 태우는 의식을 치루기도 하고,
출퇴근길에 종종 본인만큼 커다란 나무 지팡이를 들고 다니기도 한다.
게다가 이번 시즌 개인적인 사정이라며 몇 주간 돌연 자취를 감추기도 하고,
가족 사정이라며 또 결장을 3경기 정도 했는데 하필 본인 생일과 겹치는 일정 탓에 생일파티를 하려고 결장하는 것이 아니냐며 사람들에게 질타를 받기도 했다.
(뒤늦게 아이의 출산 때문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다른 사람들과 유독 다른 캐릭터를 보여주며 본인의 드리블처럼 엄청난 독창성을 자랑하는 어빙, 그는 왜 이렇게 남들과 다른 것일까?
1. 어빙의 유년기, 어머니의 죽음과 그 영향
어빙의 독특하고도 복잡한 성격은 아마 힘든 유년기, 특히 이른 나이 경험한 어머니의 죽음 때문이 아닐까 사람들은 예상한다.
카이리 어빙은 누나인 ‘아시아 어빙’을 이어 아버지 ‘드레데릭 어빙’과 어머니 ‘엘리자베스 어빙’ 사이에서 태어난 둘째이자 아들이었다.
하지만 어빙은 어머니 엘리자베스를 볼 기회조차 별로 없었다..
그 이유는 엘리자베스는 어빙을 낳고 얼마 되지 않아 드레데릭과 이혼을 하였고 4년 뒤 4살인 카이리와 드레데릭을 남긴 채 패혈증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Kyrie Irving Lost His Mother at a Devastatingly Young Age (sportscasting.com)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당연하게 함께했을 ‘어머니’라는 존재가 어빙에겐 없었고 이미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 대해 알아갈 기회조차 없었다.
아버지 홀로 그를 돌봐야했으나 불행 중 다행으로 이모였던 켈리 브린클리의 도움으로 조금이나마 어머니의 빈자리를 덜 수 있었다.
또한 어빙은 농구선수였던 아버지를 통해 농구를 접하게 되었고, 흥미를 가지게 된 어빙은 농구 연습을 하면서 외로움과 힘든 시기를 이겨냈다고 한다.
그럼에도 어빙은 계속해서 어머니의 사랑에 굶주렸고 어머니에 대한 궁금증을 참아낼 수 없었다.
조금이지만 이모 켈리의 도움으로 어빙은 어머니에 대해 알아갈 수 있었고 계속해서 자신의 뿌리와 어머니에 대해 자세히 알고자 하는 마음이 어빙의 유년기 내내 단단히 자리잡아가고 있었다.
이러한 유년기를 보낸 탓인지 크게 삐뚤어지거나 모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어빙은 가족을 굉장히 소중히 여겼으며 정든 이와의 이별을 무척 싫어했고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여는 것을 힘들어했다.
이러한 성격을 엿볼 수 있는 한 에피소드를 찾아보자.
다음은 클리블랜드에서 어빙의 코칭을 맡은 필 핸디가 젊은 어빙에게 가짜 전화번호를 받았던 이야기이다.
https://youtu.be/C-OyGEzuCD4
“클리블랜드에 코칭을 하러 가게 되었는데 당시 저는 카이리와 전혀 모르는 사이였죠.
그때 카이리와 매우 친한 ‘바이론 스캇’이라는 감독이 있었는데 그 감독이 잘리면서 카이리에겐 약간의 정체기(슬럼프)가 있었습니다. 선수들은 새로 오는 코치들을 몰랐고 카이리도 저에 대해 전혀 몰랐죠.
제가 클리블랜드에 오고 난 후 워크아웃을 한 번 했고 그 후 카이리는 바로 마이애미로 갔었죠.
제가 카이리한테 관계를 발전시켜가면서 연락 계속 주고받고 같이 잘 해보자고 했는데 그 녀석이 제게 이상한 전화번호를 준 것인지 연락을 받지 않았어요.. 폰을 차 트렁크에 보관하고 있었는지 어쨌는지 모르고 뭐 2-3주에 한 번씩만 체크를 했을 수도 있죠.
어쨌거나 전 문자를 했었는데 며칠 동안 그저 침묵 뿐이었어요. 저는 어느 정도 예상은 했기에 딱히 놀라지는 않았고 스스로 괜찮다고 했죠. 다시 문자를 했고 한 10일 정도 뒤에 답장이 드디어 왔는데 카이리가 하는 말이 “못 봐서 미안하다 내 잘못이다”라고 하더군요.
저는 이건 아니다 라고 생각했고 바로 마이애미로 가기로 결정했죠. 마이애미행 비행기에서 이렇게 문자를 보냈어요. ‘이 번호가 진짜 번호인지 가짜 번호인지 뭔들 난 신경 안 써. 다만 내가 지금 마이애미로 가고 있으니 어디서 만날지 정해’라고요. 그랬더니 카이리는 자기 숙소로 오라고 했죠. 그러고 우리는 베란다에 앉아서 2시간 동안 얘기했어요.
카이리는 점차 마음을 열었고 이렇게 말했어요. “코치님, 저는 코치님을 잘 몰라요. 저는 그렇게 제 자신을 쉽게 여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우린 남자 대 남자로 계속 대화를 나누었고 서로 지난 것들을 잊고 마음을 다 잡았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시작했고 지금 우리는 가족과 같은 사이입니다.”
2. 성인이 된 어빙, 어머니의 뿌리를 찾다.
아버지와 이모의 힘겨운 지지에 보답하여 NBA에 성공적으로 입성하고 농구선수로 크게 성공하여 여유가 생겼지만 한편으로 공허함을 느낀 것이었을까...
그동안 치열한 경쟁 탓에 꾹꾹 눌러두던 어머니에 대한 궁금증이 어느날 불쑥 튀어나오게 되었다.
이때 이모를 통해 알게된 어머니의 출신.
어빙의 어머니는 Half-black, Half-native American이었다.
그녀는 수우 족, 그 중에서도 라코타어를 쓰는 라코타 수우 족이었다고 한다.
어빙은 오래 지나지 않아 수우 족에 대해 본격적으로 조사하기 시작했는데 결국 현재 수우 족 보호구역에서 거주중인 Standing Rock 부족과 접촉을 할 수 있었다.
2017년에는 10만 달러를 부족에게 기부하기도 했으며, 다음해인 2018년에는 수우 족 보호구역에 방문해서 어빙과 어빙의 누나 모두 부족의 유산을 이어갈 것을 약속하며 부족의 일원으로 인정을 받았다.
이때 작은 산(Little Mountain)이라는 뜻을 가진 헤일라(Ȟéla)라는 수우 족 이름도 받았다고 한다.
Kyrie Irving, sister officially welcomed into mother's Sioux tribe | NBA.com
어빙 본인은 스스로가 라코타 수우 족임을 기억하고 이를 진지하게 어머니의 유산으로 생각해 본인의 뿌리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믿었다.
다음은 어빙의 인터뷰다.
“인생의 갈림길에 거의 다다랐던 순간이 있었는데, 그때 전 가족 의식을 잃어버렸습니다. 비록 어머니께서는 돌아가셨지만 Standing Rock만큼 크고 강력한 가족을 제게 남겨주셨습니다. 이제 저는 그 일원이 되었고 그것은 제 자신을 변화시켰습니다. 이 가족은 평생 제 가족입니다.”
Why does Kyrie Irving use a walking stick? (nssmag.com)
어빙은 라코타 수우족의 일원으로 그들의 문화를 이어가야한다는 믿음과 관심을 계속해서 가졌고 관련해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한 것들 중 종종 현대 사회와 어울리지 않는 옛것들이 많았지만 어머니의 뿌리를 자랑스럽고 소중하게 생각한 어빙은 당당히 이를 드러내보이기 일쑤였고 이는 어빙을 돋보이고 독특하게 만들었다.
그 중 대표적인 것들이 바로 세이지 잎 태우기와 지팡이였다.
세이지 잎을 태우는 것은 많은 부족들의 의식 중 하나로 지혜를 심어주고, 나쁜 기운을 쫓아내 에너지를 정화하며, 완전한 균형을 보장해줄 것으로 믿어진다고 한다.
또한 출근길에 가지고 있던 지팡이는 기도의 지팡이, 또는 영혼의 지팡이나 치료의 지팡이로도 불리는 것으로 부족들의 종교적 의식을 행하기 위한 전형적인 도구라고 한다.
한편 어빙은 딸에게도 어머니의 이름을 미들네임에 넣은 Azurie “Elizabeth” Irving 이라는 이름을 주어 어머니를 기억하고 기리고자 하는 등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꾸준히 표현했다.
기행으로 보이던 카이리 어빙의 행동들이 이제 조금은 이해가 되시나요?
단순히 튀어보이려고 한 행동이 아닌 어머니에 대한 사랑, 그리움 등이 투영된 행동들이라 보여집니다.
이상 카이리에 대해 조금이라도 이해해보고자 제작한 시리즈,
[KAI Story : 카이리 어빙 이야기] 1부 였습니다.
조만간 다음편 [카이리 어빙은 농구가 하기 싫은 걸까?] 로 돌아오겠습니다.
재미있네요
어빙은 보라색 같아요 안 좋은면도 많지만 매력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