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벌리의 리어뷰 컨테스트와 유타 전으로 보는 클리퍼스의 수비
클리퍼스-유타 전은 이번 시즌 두 팀의 수비기조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경기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제가 보기에 클리퍼스의 수비 시 주목할 유타 공격의 핵심 기록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어시스트 | 3점슛 빈도 | 캐치앤3/풀업3 | 코너3 | 빅맨 총득점 | 오펜리바 | |
시즌 평균 | 23개 | 48% | 26개/15개 | 17개 | 20점 | 29.8% |
클리퍼스 전 | 13개 | 39% | 15개/19개 | 11개 | 14점 | 21.3% |
정리하면, 유타의 3점은 풀업 터프샷 비중이 크게 높아졌고, 픽앤롤 시 빅맨들의 득점기회가 창출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어시스트 총량의 감소로 나타났고요. 유타의 오펜리바운드 빈도가 크게 줄었는데, 이는 역으로 클리퍼스의 빅맨 수비수가 가드의 림어택보다 빅맨 공격수들의 움직임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었다는 것 -- 즉 샷블락을 적극적으로 뜨지 않은 채 박스아웃을 할 수 있었다는 것 -- 을 말해줍니다(빅맨이 샷블락을 뜨면 박스아웃이 무너지며 오펜리바운드를 털리게 됩니다).
물론 같은 것이 클리퍼스에게도 거의 그대로 적용되는데, 왜냐하면 두 팀이 상당히 비슷한 수비 컨셉으로 경기에 임했기 때문입니다. 클리퍼스가 빅맨을 제외한 선수들 사이에서 프리하게 스위치를 했다는 점, 클러치타임에 스몰라인업을 가동했다는 점 정도가 차이점이겠죠.
유타의 수비방식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거칠게 요약하면, 고베어는 쳐져서 페인트존을 사수하고(‘드랍’이라고 부름), 나머지 수비수들은 자기 마크맨에 붙어서 3점 와이드오픈을 내주지 않도록 합니다(‘홈스테이’라고 함). 3점을 적게 맞고, 골밑 수비도 월등한 림프로텍터를 통해 통제하는 컨셉으로 3점 스페이싱 시대에 들어 분석가들 사이에서 효용성이 크게 회자된 바 있습니다.
3점을 맞지 않는 것에 기조를 두기 때문에 핸들러 수비수들은 스크린을 탈 때, 거의 대부분 ‘고-오버’(go-over), 즉 스크린을 바깥으로 돌아나오며 핸들러의 뒤를 쫓아가는 수비를 합니다. 이를 뒤에서 보며 수비한다는 의미로 ‘리어 뷰’(rear view) 컨테스트라고 하고요. 리어 뷰 컨테스트를 통해 가드 수비수는 상대 핸들러가 스크린을 탄 후 3점 라인 안쪽으로 들어가도록 강제하고, 빅맨은 림을 지키며 핸들러를 앞뒤로 압박해 롱2를 강제하는 농구를 합니다. 코너 수비수들은 림의 수비결손이 발생하지 않는 한은 도움수비를 최소화하며 볼이 코너로 와이드오픈 상태로 빠져나오지 않도록 하는 게 기본 기조입니다.
이러한 수비 기조하에 유타는 지난 몇 년간 롱2를 가장 잘 강제하는 팀이었고, 3점은 가장 적게 맞는 팀 중 하나였습니다. 수비수들이 복잡하게 이동하지 않고 (자기 마크맨에 집중하며 박스아웃을 하고) 빅맨이 림을 사수하기에 수비리바운드가 항상 강했고 슈팅파울은 적게 내줄 수 있었습니다. 모리볼 시대의 계산법에서 가장 효율적인 수비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기조에 새로운 수정을 가한 것이 역시 많이 회자된 밀워키 벅스의 농구였고, 많이 알려졋듯 빅맨은 깊게 드랍을 하면서 윙/가드들의 페인트존 도움수비 압박을 높여 림을 먼저 사수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3점은 많이 내줬지만 그 반대급부로 유타보다 림수호나 슈팅파울 억제효과는 좋았고, 최종적으로 지난 2년간 최강의 수비팀이 될 수 있었죠.
그런데 여기에 일정한 변수가 생겼습니다. 지난해 버블 때부터 생긴 것으로, 핵심은 점퍼의 정확도가 갑자기 높아진 것이죠. 현지에서는 무관중 효과로 추정하고 있는데, 3점은 1% 이상 성공률이 상승했고, 미드레인지는 숏미들, 롱미들 모두 유의미한 성공률 상승을 기록하게 됩니다. 요컨대, 골밑슛만 빼고 모두 효율 상승을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3점이 35%대 중반일 때에는 유의미했던 벅스의 딥드랍 수비가 37%에 육박하게 되면서는 훨씬 큰 리스크를 불러왔다고 볼 수 있죠. 벅스의 상승세를 따라하며 림사수 기조의 딥드랍 수비를 한 팀들이 상당한 데미지를 받았습니다.
https://twitter.com/kpelton/status/1356724401736085504
위 트윗이 말하는 바는, 그래프가 세로축으로 올라갈수록 림수비가 3점 수비에 비해 중요해진다는 것입니다. 지난 시즌까지는 이 경향이 매우 뚜렷했는데, 반대로 올해는 상황이 역전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클리퍼스 역시 림 사수 기조의 수비를 일정하게 관철해 왔고, 시즌 첫 10경기 정도까지의 디테일들을 보면 이 경향은 명확했습니다. 반대로 그 이후에 일정한 변화가 관찰되고 있습니다. 아래는 첫 10경기의 수비 시 상대야투분포와 그 이후의 상대야투분포를 정렬한 것입니다(괄호 속 숫자는 리그 30개 팀 내 순위로, 숫자가 작을수록 적게 던지게 한 것).
림 | 숏미들 | 롱미들 | 전체 미들 | 코너3 | 논코너3 | 전체 3점 | |
첫 10경기 | 30.3%(8) | 16.6%(7) | 11.8%(22) | 28.4%(9) | 9.5%(20) | 31.9%(29) | 41.3%(29) |
그 이후 | 32%(12) | 24.1%(28) | 9.9%(9) | 34%(25) | 6.7%(2) | 27.3%(17) | 34%(9) |
위 표에서 나타난 10경기 전후의 특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10번째 경기까지는 3점, 특히 코너 3점을 많이 내줬다. 즉 코너 수비수들이 페인트존으로 도움수비를 크게 왔을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그 이후부터는 코너 수비수들이 홈스테이하며 코너 3점 헌납을 억제했을 가능성이 있다.
- 10번째 경기 이후로 림 야투를 조금 더 허용했지만, 대신 림 바깥의 2점슛, 즉 넓은 의미의 미드레인지 야투를 많이 던지도록 했다.
11번째 경기가 1월 10일 시카고 불스 전이었습니다. 이 경기에서 마커스 모리스가 복귀했는데, 기존 벤치 3가드 라인업에서 사이즈가 보강되며 수비에 안정감을 불러왔죠. 그리고, 루 감독이 이 경기 후 인터뷰에서 루윌과 케너드가 공존하는 시간을 줄이겠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제 느낌상 이 경기를 즈음해, 전체적인 수비기조의 변화가 시작된 게 아닐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1. 리어뷰(rear view) 컨테스트가 중요하다
수비 기조는 림을 에워싸던 방식에서 밀워키 식 수비에서, 코너 도움수비를 최소화하는 유타 식 수비로 변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럴 때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가 상대 가드들의 야투몰이가 나타난다는 점이죠. 돌파 과정에서 외곽 와이드오픈 찬스가 만들어지지 않는 대신 더블팀 형태의 도움수비 압박이 적기 때문에 자연스레 핸들러의 풀업샷 빈도가 높아지게 됩니다. 아래 이미지처럼 실제로 최근 경기들을 보면 이러한 현상들이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최근 몇 경기 클리퍼스를 상대로 한 상대 가드들의 득점 볼륨)
위 이미지에 도노반 미첼, 잭 라빈, 그리고 드리블 풀업 농구 비중이 매우 높은 테이텀 역시 포함시키는 게 적절합니다. (다만 어빙의 사례처럼 터프샷을 다 넣어버리는 경우, 테이텀의 경우처럼 스크린을 멀리서 걸어 드리블 풀업이 롱2가 아니라 3점으로 귀결되는 경우는 별도의 수비조정이 필요합니다.) 이 반대급부는 킥아웃 패스를 기반으로 한 외곽 캐치앤슛 허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점이겠죠.
이게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경기 중 하나가 위 이미지에서 섹스턴이 고득점을 한 클리블랜드 경기였습니다. 섹스턴과 갈랜드 듀오가 플로터를 연속으로 꽂아넣으며 폭격했는데, 흥미로운 부분은 두 가드들의 도합 50점 폭격에도 클리블랜드의 공격효율이 매우 좋지 않았다는 점이었습니다. 아래 트윗이 말해주는 바와 같이 클리블랜드의 3점 시도 자체가 원천봉쇄되었기 때문이죠.
https://twitter.com/AndrewGreif/status/1357199928527757312
이 경기에서 클블은 올시즌 최저 기록인 3점 시도 10개를 기록하게 됩니다. 비슷한 내용의 코멘트를 센터 주바치가 경기 후 인터뷰에서 밝힌 적이 있습니다.
https://twitter.com/YoungNBA/status/1357176593857273859
(드랍 수비로 미드레인지를 허용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코치진이 저희들에게 그 샷들을 그냥 허용하라고 주문했습니다. 가드 수비수들이 뒤에서 컨테스트를 해줘야죠."
같은 맥락의 수비가 지난 유타 전 수비의 핵심을 형성하고 있기도 합니다. 드리블 풀업을 강제하고 캐치앤 3점을 억제한다는 것은 무관중 3점 인플레 시대에 맞는 조정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수비기조가 유지되기 위한 중요한 선결 조건들이 있습니다.
첫째, 주바치의 말처럼 림프로텍팅을 위해 핸들러 수비수의 리어뷰 컨테스트 능력이 매우 중요해집니다. 고베어가 있는 유타와는 달리, 클리퍼스에는 압도적 림프로텍터가 없습니다. 드랍을 하는 빅맨들은 핸들러의 림어택도 견제해야 하지만, 림으로 대쉬하는 빅맨을 동시에 견제해야 할 부담을 안게 되죠.
이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식 중 하나가 코너 수비수가 페인트존으로 도움수비를 오는 것인데, 이러면 코너에 와이드오픈 찬스가 나며 수비 기조가 깨지게 됩니다. 해법은 핸들러 수비수의 강한 수비압박인데, 이 디테일을 보기 위해 어제 경기 루윌이 핸들러 수비를 먼저 보겠습니다.
코너 수비수들이 적극적인 도움수비 없이 다 홈스페이를 하고 있습니다. 유타는 루윌을 스위칭시켜서 픽앤롤 게임을 전개했고, 루윌의 수비 리스크가 폭발하는 지점이 바로 이 리어뷰 컨테스트 동작입니다. 루윌의 수비 텐션은 현격히 떨어졌고, 도움수비가 부재한 상황에서 주바치 혼자 공격수 둘을 커버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고 볼 수 있죠.
주바치가 샷블락을 뜨면서 페이버스에게 찬스가 생겼는데, 핸들러 공격수가 패스가 아니라 레이업을 올렸더라도 빅맨 수비수의 샷블락으로 박스아웃이 깨지면 상대 빅맨에게 오펜 리바운드를 헌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풋백 득점). 결과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수비는 빅맨이 샷블락을 뜨지 않아도 되도록 하는 것이죠.
아래는 같은 팀 베벌리의 리어뷰 컨테스트 장면들인데, 핵심은 모두 빅맨의 샷컨테스트를 불필요하게 했다는 점입니다.
https://twitter.com/Clippers24seven/status/1362239997319860226
(베벌리의 3일 전 리어뷰 컨테스트)
맨 위의 표에서 봤듯, 어제 유타와 클리퍼스 전에서 유타 빅맨들의 득점은 매우 저조했고, 오펜리바운드와 코너 3점은 유의미하게 줄어들었습니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코너 홈스테이 상태를 유지하되, 빅맨 수비수가 고베어나 페이버스를 견제하면서 핸들러 공격수에게 최소한의 압박만을 가할 수 있어야 했죠(샷블락을 최소한도로만 떠야 함).
최종적으로는 핸들러 수비수가 뒤에서 수비압박을 얼마나 높일 수 있는지, 혹은 얼마나 빠르게 공격수 앞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는지가 관건이 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림프로텍팅과 더불어 수비리바운드 사수에서 핸들러 수비가 핵심 관건이 되는 지점입니다.
2. 사이즈와 스위치의 중요성
유타 식으로 변형된 이 드랍 수비가 성공하기 위한 두 번째 요소는 수비수들의 박스아웃 능력입니다. 여기서 레너드/조지뿐 아니라 바툼/모리스의 존재가 큰 역할을 하게 되죠.
리어뷰 컨테스트와 더불어 중요하게 회자되는 것이 비어 백(veer back) 스위치입니다. 명칭의 기원은 모르겠으나 맥락상 핸들러 수비수가 핸들러의 돌파를 따라가다가 몸의 방향을 뒤로 돌려(veer back) 스위치한다는 의미일 것 같네요. 핸들러의 뒤를 쫓으며 압박해 가다가 적정한 순간에 노마크 상태의 상대 공격수(스크리너) 쪽으로 방향을 돌려 매치업을 체인지하는 동작을 말합니다.
이 동작의 중요성은 빅맨 스크리너의 림대쉬(혹은 픽앤팝)를 억제하는 효과도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박스아웃을 완성하는 효과를 갖기도 합니다. 이 스위치가 잘 이루어지면 빅맨 수비수가 빅맨 공격수 견제를 의식하지 않은 채 프리하게 블락을 뜰 수 있고 림프로텍팅이 완성될 수 있습니다. 아래 영상은 모리스의 비어백 스위치 장면으로, 스위치의 완성이 사이즈를 통한 박스아웃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스크린을 피하며 핸들러를 따라가는 동작에서 빅맨 쪽으로 스위치하며 박스아웃을 하는 장면입니다. 이게 잘 수행되었기 때문에 주바치의 샷블락이 어떤 리스크도 남기지 않게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윙 수비수들의 사이즈가 중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킹스 전 베벌리의 박스아웃 장면도 더 보겠습니다.
핸들러의 수비 기여는 단순 락다운을 넘어 림프로텍팅 및 수비리바운드 사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베벌리는 RAPM상에서 팀내 수비리바운드 마진이 2위인데, 위 수비 장면들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죠. 1위가 빅맨이 아닌 윙 수비수 카와이인 것 역시 일정하게 짐작이 가는 요소입니다.
클리퍼스의 수비 변화를 설명하는 키워드를 두 가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상대팀의 캐치앤 3점 빈도 억제, 미드레인지 풀업슛 강제, 공격리바운드 억제. 공격리바운드 억제가 최종 귀결하는 지점 중 하나가 풋백 실점 억제겠죠. 클리퍼스의 풋백 실점을 선수별 온오프 마진으로 분류하면 다음과 같습니다.(출처는 클리닝 더 글래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입니다)
(클리퍼스 풋백실점 온오프 마진: 마이너스일수록 실점이 적다는 뜻)
빨간 박스로 표시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듯, 베벌리의 마진이 압도적으로 좋고, 루윌이 가장 안 좋습니다. 온오프 마진은 대체선수 대비효과라는 측면이 있고(베벌리의 수비기여가 베벌리를 대체하며 코트로 나오는 가드들과 대비된다는 뜻), 여타의 변수들이 더 감안되어야겠지만, 아무튼 확실한 것은 픽앤롤 수비에서 수비압박력의 차이가 림사수와 리바운드 장악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입니다.
좋은글 감사함니다. 최근 경기를 보면, 베벌리 폴조지 카와이 로 이어지는 최상급 윙디펜더라인에따라 외곽봉쇄수준의 수비를 보일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인게임에서 상대 백코트들이 상당히 고득점하게되는 일이 많았다고 생각했는디 이런 이유가 있었군요. 또한 주바치가 상대 투맨게임에서 드랍백 을 하며 핸들러를 배제하고 풀업이나 플로터에 대한 견제를 아예 시도조차 하지않는것도 투맨수비에 약해서가 아니라 팀차원에서 주문한것이란것도 오늘 알았네요.
결국 최근 강팀들의 수비트렌드는 3점,골밑을 최대한 봉쇄하고 기대값이 적은 롱2를 강제하는것이군요. 특히 베벌리의 리어뷰 컨테스트는 파울을 받기 쉬운 수비임에도 압박감만 적절히 넣어주는거같습니다. 베벌리의 유무는 경기를보다보면 정말 확연히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