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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레이커스 프랜차이즈 포지션별 랭킹 Top 28 - PG편 (ver.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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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01-04 01:35:22

Prologue

 

안녕하세요, 2017년까지 NBA 각 프랜차이즈의 포지션별 선수 랭킹 시리즈를 연재했던 허슬 플레이어입니다. 2017년에 달라스 매버릭스 편을 연재하고 나서 다음번에는 L.A 레이커스 편으로 찾아오겠다고 약속드린 후, 벌써 3년의 시간이 지나고 말았네요. 기다리신 분들은 그리 많지 않을 줄로 알지만, 아마도 관심 가지셨던 몇몇 분들은 연재가 이렇게 중단되는 줄로만 생각하셨을 것 같습니다. 그만큼 연재의 공백이 너무 길어지고 말았는데, 이 자리를 빌어 송구스럽다는 말씀부터 드립니다.

 

사실 레이커스 프랜차이즈가 워낙 역사도 길고 다뤄야 할 선수들도 많은지라 이번에는 매년 연재하는 게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진작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애초에 2018년이 아닌 2019년 오프시즌에 연재가 가능할 것 같다고 예상을 했고, 1년의 공백을 가지는 김에 맨 처음 연재했던 보스턴 프랜차이즈 편의 리뉴얼까지 함께 진행해보려고 야심 찬 계획을 세웠습니다. 근데 개인 사정으로 좀처럼 말미가 안 나면서 준비는 하염없이 더뎌만 갔고, 약속한 2년이 다가왔으나 보스턴 편 리뉴얼은 제대로 손조차 못 대고 말았네요. 또한 본편 역시 초벌 작업만 어느 정도 마쳤을 뿐, 제대로 된 마무리를 하지 못한 채 그만 2019년에 연재할 시기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1년이란 시간을 더 보내게 되었고, 여전히 지지부진한 마무리 끝에 이번에는 그나마 간신히 다음 시즌 개막을 앞두고 겨우 타이밍을 맞출 수 있게 되었네요. 이것도 어쩌면 뜻하지 않은 코로나 사태로 19-20시즌이 중단되고 버블에서 플레이오프를 치르며 시즌 개막이 덩달아 늦어진 탓에, 그나마 시간을 벌어주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말이 거창하게 3년이지, 제대로 시간을 할애하지 못하고 찔끔찔끔 부실하게 준비한 터라 내놓은 결과물은 그다지 별 건 없습니다. 사실 포지션 규정 자체에 대한 논란이 많은 요즈음에 전통식의 5개 포지션을 내세우는 방식도 조금 구닥다리가 아닌가, 다수의 공감을 못 사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듭니다.

 

하지만 본 연재는 어디까지나 선수들의 포지션을 기계적으로 배치하고 누가 더 잘했느니 줄 세우는 데에 목적을 둔 것이 아닙니다. 기본 구색은 그렇게 갖추어져 있지만, 랭킹 매기기나 포지션 구분에 관심이 없는 분들이라도 각 프랜차이즈의 역사와 그간 활약한 선수들에 대한 정보를 부담없이 접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더 큰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이 점 염두에 두시고, 지루한 오프시즌에 심심풀이 읽을거리 정도로 보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서설이 너무 길었던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찾아뵙다 보니 주저리 할 말만 늘은 것 같네요. 그럼 레이커스 프랜차이즈의 포지션별 선수 랭킹 시리즈를, PG편부터 소개드리고자 합니다.

 

(아울러 다른 편들도 아래 링크해드립니다.)

 

SG편 :  | L.A 레이커스 프랜차이즈 포지션별 랭킹 Top 28 - SG편 (ver.2020.)  |  NBA Maniazine

 

SF편 :  | L.A 레이커스 프랜차이즈 포지션별 랭킹 Top 28 - SF편 (ver.2020.)  |  NBA Maniazine

 

PF편 :  | L.A 레이커스 프랜차이즈 포지션별 랭킹 Top 28 - PF편 (ver.2020.)  |  NBA-Talk

 

C편 :  | L.A 레이커스 프랜차이즈 포지션별 랭킹 Top 28 - C편 (ver.2020.)  |  NBA-Talk

 

전편들과 마찬가지로 5개 포지션 별로 나누어 연재가 진행되며, (PG > SG > SF > PF > C 순) 아래 랭킹부터 선수들을 죽 소개하는 방식입니다. “각 프랜차이즈의 총 연차 / 5”까지의 선수들을 “메이저 랭킹”이란 명목으로 소개하고, 메이저 랭킹과 동수(同數)만큼 그 아래 순위의 선수들을 “마이너 랭킹”이란 명목으로 소개하게 됩니다. 말이 메이저, 마이너지 두 랭킹 간에 스탯 정보의 편집방식 외에 별다른 차이는 없습니다. 그리고 본 랭킹 밖의 선수들을 일부 소개하는 “Honorable Mention”이 본 랭킹에 앞서 등장합니다.

 

포지션의 구분은 해당 선수가 그 프랜차이즈에서 어느 포지션으로 가장 많은 시간을 뛰었느냐를 기준으로 하였습니다. 따라서 두 개 이상의 포지션을 넘나드는 선수의 경우, 결국 어느 한 포지션을 지정해 배치해야 하는 난점이 있죠. 그래서 간혹 이 선수는 왜 이 포지션 랭킹에 없지? 라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는데, 나름대로 포지션의 명확한 구분을 위해 여러 자료와 정보들을 참고해 분석한 결과이니, 아무쪼록 양해 부탁드립니다. (포지션 구분이 모호한 케이스들은 각 편의 에필로그에 간단하게 설명을 덧붙이도록 하겠습니다.)

 

L.A 레이커스 프랜차이즈는 맨 처음에 NBA가 아닌 NBL이라는 리그에서 1947년에 처음 탄생된 구단입니다. NBL에선 1년만 머물고 바로 BAA(NBA의 전신)에 합류해 지금까지 존속해오고 있죠. 그래서 47-48시즌부터 19-20시즌까지 총 73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셈입니다. 따라서 73 나누기 5를 해서 1위부터 14위까지는 “메이저 랭킹”으로, 15위부터 28위까지는 “마이너 랭킹”으로 구분해 선수를 소개하겠습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본 시리즈의 간단한 범례 및 레이커스 프랜차이즈의 간략한 역사 소개를 통해 글을 처음 보시는 분들의 이해를 돕고자 합니다.


 

범례 

 

- 이 글의 랭킹은 기본적으로 아래 순위부터 역순으로 소개됩니다. 먼저 기본 랭킹 외의 선수들을 5명씩 소개하는 “Honorable Mention”이 등장하며, 이후 28위부터 역순으로 15위까지 “마이너 랭킹”(14명), 이어서 14위부터 역순으로 1위까지 “메이저 랭킹”(14명)의 순으로 소개가 진행됩니다.

 

- 위 글 내의 전반적인 스탯 정보(기본적인 신체 사이즈 포함) 등은 바스켓볼 레퍼런스(www.basketball-reference.com) 사이트가 제공하는 데이터를 준용하여 제시하였습니다. 다만 부정확하다고 판단되는 신체 정보 등은 적절히 수정하였습니다.

 

- 메이저 랭킹 선수들의 경우, 주요 1차 스탯과 일부 2차 스탯의 정보를 표를 통해 제시하였습니다. 1차 스탯은 득점(PT), 리바운드(RB), 어시스트(AS), 블록슛(BK), 스틸(ST), 출장시간(MIN)의 총계 및 평균치, 그리고 야투 성공률(FG%), 3점슛 성공률(3PT%), 자유투 성공률(FT%), 3점슛 성공개수(3PTM)까지 수록하였습니다. 턴오버, 개인파울, 오펜/디펜리바 등의 정보는 생략하였으니 이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2차 스탯은 PER와 윈쉐어(WS)만 수록하였습니다. 또한 47-48시즌에 레이커스가 NBL 소속일 때 남긴 1년간의 스탯 정보도 NBA의 스탯 정보에 합산하여 반영하였습니다.

 

- 주요 스탯 외에 해당 선수의 신체 사이즈(키와 체중), 포지션, 연차(Yrs), 출장 경기 수(Games), 활동한 시즌 기간(Season) 정보도 스탯 표에 수록하였습니다. 포지션별 랭킹인데 포지션에 대한 정보가 중복해 들어간 이유는 두 포지션을 넘나드는 경우를 표시하기 위함입니다. (즉 경우에 따라 세컨드 포지션까지 표기하였다고 보시면 됩니다.) 시즌의 표기는 파이널이 열린 해를 기준으로 하였습니다. (예: 99-00시즌은 “00”으로 표기함) 선수들의 주요 수상경력도 기재하였습니다. 단, 올스타 MVP 등과 같이 선수 평가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수상 실적은 제외했습니다. 이밖에 올스타 선정 횟수, 우승 횟수도 병기하였습니다.

 

- 각 스탯의 해당 프랜차이즈 내 랭킹도 첨부하였습니다. 스탯 랭킹의 범위는 팀의 역사가 길수록 넓어지며, 해당 스탯이 언제부터 집계되었느냐도 감안하여 그 범위를 정했습니다.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출장시간, 야투율, 자유투율, PER, 윈쉐어 등 리그 초창기부터 집계된 스탯은 Top 20까지 랭킹을 표시했으며, 73-74시즌부터 집계된 블록슛, 스틸은 Top 15까지, 79-80시즌부터 집계된 3점슛 성공률 및 3점슛 성공개수는 Top 12까지 표시하였습니다.

 

- 스탯 랭킹 내에 드는 평균 및 비율 스탯의 유효 기준은, 레퍼런스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프랜차이즈 커리어 최소 요구 수치를 준용하였습니다. 따라서 평균 득점 등 여러 스탯은 100경기 이상 출전을, FG%는 500개 이상 필드골 성공을, FT%는 200개 이상 자유투 성공을 기준으로 하였습니다. 다만 3PT%의 경우에는 현 레퍼런스 사이트의 기준이 50개 이상 3점슛 성공인데, 3점슛을 많이 쏘는 현재의 트렌드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기준입니다. 그래서 얼마 뛰지도 않은 전문 3점 슈터들이 상위 랭킹에 대거 포진하는 등의 기현상이 있어서 필자의 임의에 따라 94-95시즌 이전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기존대로 50개, 94-95시즌부터 11-12시즌까지는 100개, 12-13시즌 이후로는 150개를 랭크 기준으로 하였습니다.

 

(이는 리그의 3점슛 시도가 크게 늘어난 시점을 각각 지표로 삼았습니다. 94-95시즌에는 리그에서 3점슛 거리를 전체 22피트로 조정함에 따라 한 팀의 평균 3점슛 시도 횟수가 급증하였고, 처음으로 경기당 10개를 돌파했습니다. 이 거리 단축 조치는 3시즌 동안만 유지되었으나, 이후 3점슛의 비중이 커지고 선수들이 3점을 더 많이 던지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였습니다. 12-13시즌에는 한 팀의 평균 3점슛 시도 횟수가 처음으로 경기당 20개를 돌파하였으며, 또한 이 시즌에 스테판 커리가 레이 알렌이 가지고 있던 시즌 최고 3점슛 기록(269개)를 간만에 경신하기도 했으므로 그 상징성을 살려서 기준을 변동 적용하였습니다.)

 

- 마이너 랭킹 선수들의 경우, 해당 선수의 신체 사이즈, 포지션, 연차, 출장 경기 수, 활동한 시즌 기간 정보는 기본적으로 제시하되, 스탯 정보는 평균 득점/리바운드/어시스트만 기본적으로 제시하고 그 나머지 스탯 중에서는 주목할 만한 것만 1가지 이상씩 제시하였습니다.

 

- 선수에 대한 소개는 해당 프랜차이즈 내에서의 활약상을 위주로 기술하였으며, 따라서 다른 팀에서의 활약상 등은 가급적 생략하거나 짧게 요약하였습니다. 또한 기본적으로 랭킹이 올라갈수록 선수 소개의 분량이 많고 자세한 편입니다. 해당 프랜차이즈에 드래프트 된 경우에는 드래프트된 연도와 그 순위까지 언급하였으며, 고인이 된 선수는 몰년과 향년을 기재하였습니다. 이밖에 명예의 전당 입성 및 해당 프랜차이즈 영구결번 여부 등도 밝혔습니다. (영구결번은 저지 넘버에 파란색으로, 아너드 넘버(Honored Nember)는 초록색으로 표시하였습니다.)


 

L.A 레이커스 프랜차이즈의 간단 역사

 

레이커스 프랜차이즈는 1947년에 NBL 리그에서 첫 출범했습니다. 당시 미네아폴리스 지역의 사업가인 벤 버거와 모리스 챌펜이 디트로이트 젬스(Detroit Gems)라는 구단을 인수해 미네아폴리스로 연고지를 옮겨서 새롭게 구단을 재창단했죠. 구단 이름은 “1,000개의 호수가 있는 땅”이라는 미네소타 주의 별명에서 따온 “레이커스”로 지었고요.

 

(※디트로이트 젬스는 46-47시즌에 NBL에서 한 시즌을 지내며 4승 40패의 초라한 성적만 남기고 단명한 팀인데, 연고지를 미네아폴리스로 옮기면서 선수단을 완전히 물갈이하여 재창단한 케이스이므로 레이커스 프랜차이즈의 역사에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미네아폴리스 레이커스는 세인트 토마스 대학의 존 쿤들라 감독을 영입한 데 이어 미네소타 지역 출신 선수들을 여럿 스카웃하며 팀의 구색을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전년도 NBL 우승팀인 시카고 어메리칸 기어스의 해체로 당대 최강 센터 조지 마이칸을 제비뽑기로 뽑은 것은 엄청난 행운이었죠. 마이칸에 이어 짐 폴라드까지 스카웃에 성공한 레이커스는 47-48시즌에 신생팀이면서 NBL 리그를 제패하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마침 당시에는 NBL의 경쟁 리그인 BAA(NBA의 전신, 49-50시즌부터 NBA로 개명)가 NBL의 주요 팀들을 포섭하며 리그 확장에 힘쓰고 있었는데, 레이커스 역시 이에 편승해 이듬해에는 새로이 BAA에 합류했죠. 마이칸의 가공할 골밑 장악력을 앞세운 레이커스는 새 리그에서도 연달아 우승을 거머쥐면서 미네아폴리스 왕조 탄생의 전초를 열었습니다.

 

마이칸과 폴라드 뿐만 아니라 번 미켈슨, 슬레이터 마틴 등 우수한 선수들이 잇달아 합류한 레이커스는 NBA에 합류한 뒤 6년간 5번의 우승을 차지하며(50-51시즌에는 파이널 진출 실패) 당대 독보적인 최강 팀으로 군림했죠. 하지만 마이칸이 53-54시즌을 끝으로 은퇴하자 팀 성적은 거침없이 추락했습니다. 급기야 마이칸이 2년 만에 은퇴를 번복하고 돌아왔음에도 가라앉은 팀 성적을 끌어올리는 데는 실패했죠.

 

그런데 레이커스는 성적이 추락한 덕분에 58 드래프트에서 전체 1픽을 얻어 엘진 베일러라는 특급 유망주를 손에 넣기도 했습니다. 베일러는 루키 시즌에 언더독이던 레이커스를 깜짝 파이널까지 진출시키기도 했죠. 이어 60 드래프트에서는 제리 웨스트라는 또 다른 특급 재능을 드래프트로 보강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구단주 밥 쇼트는 60년에 연고지를 미네아폴리스에서 서부 해안의 L.A로 옮겼는데, 이 과정에서 미네아폴리스 왕조 시절 레전드들과 큰 갈등을 빚기도 했죠. 베일러와 웨스트를 앞세워 서부의 신흥 강호로 떠오른 레이커스는 62년에는 당대 최고 팀인 보스턴 셀틱스와 7차전까지 치열하게 맞붙은 끝에 아쉽게 우승을 놓쳤습니다. 이후 레이커스는 63년과 65년, 66년, 68년에도 잇달아 파이널에 진출했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보스턴을 만나 연달아 무릎을 꿇고 말았죠.

 

이에 레이커스는 빈약한 센터진을 확실히 보강하기 위해 68-69시즌에 당대 최고의 스타 윌트 체임벌린을 트레이드로 영입했습니다. 베일러, 웨스트, 체임벌린 3인방을 내세운 레이커스는 69 파이널에서 다시 보스턴을 만났는데, 그동안은 늘 도전자 입장의 언더독이었으나 이때만큼은 레이커스의 객관적 전력이 처음으로 보스턴을 앞선다는 평이었죠. 하지만 레이커스는 이번에도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끝내 우승의 문턱 앞에서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시리즈 내내 투혼을 불사르며 팀을 하드캐리한 제리 웨스트가 우승하지 못했음에도 신설된 “파이널 MVP”라는 상의 첫 주인공이 되었죠.

 

빌 러셀의 은퇴로 보스턴 왕조가 자연스레 막을 내리자 레이커스는 다시 야심차게 우승에 도전했으나, 70년 파이널에서 새로운 호적수인 뉴욕 닉스에게 무릎 꿇고 말았죠. 한편 71-72시즌에 명장 빌 샤먼 감독이 부임하면서 레이커스는 다시금 전환의 계기를 맞았습니다. 마침 시즌 초에 베일러가 끝내 우승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은퇴해 버리자, 남은 레이커스 동료들은 그가 못다 이룬 꿈을 향해 질주라도 하듯 정규 시즌에 33연승을 비롯해 최종 69승이라는 대기록을 수립했죠. 그리고 파이널에서는 체임벌린의 부상 투혼에 힘입어 숙적 뉴욕을 꺾고 L.A로 연고지를 옮긴 후 첫 우승을 일궈냈습니다.

 

하지만 이후 체임벌린과 웨스트가 잇달아 은퇴하면서 팀은 다시 리빌딩의 기로에 서게 되었죠. 그런데 마침 최고의 스타였던 밀워키 벅스의 카림 압둘-자바가 전격적으로 트레이드를 요구하며 나섰고, 결국 레이커스가 75-76시즌을 앞두고 그를 영입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자바를 앞세운 레이커스는 나름대로의 전력을 갖추었지만, 우승까지 도달하는 데는 뭔가 2%가 부족해 보였죠. 하지만 79 드래프트에서 행운의 1픽으로 매직 존슨이라는 천재 가드를 드래프트하면서, 레이커스의 역사는 또 다른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레이커스는 80 파이널에서 필라델피아 76ers와 일전을 벌였는데, 자바가 5차전에 부상으로 6차전에 결장하는 위기를 맞았음에도 슈퍼 루키 매직 존슨의 기적 같은 활약으로 끝내 우승을 차지했죠. 이후 레이커스는 매직을 앞세워 빠른 템포의 농구를 펼치면서 80년대 쇼-타임 레이커스 신화를 개막했습니다. 81-82시즌에는 중도에 감독이 교체되는 내홍을 겪었음에도 신임 감독 팻 라일리가 팀을 잘 추스르며 리그를 제패하기도 했죠.

 

한편 레이커스는 80년대 초에는 파이널에서 세 차례나 필라델피아 76ers와 맞붙으며(80년, 82년, 83년) 치열한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다가, 84 파이널에서는 과거의 숙적인 보스턴 셀틱스와 오래간만에 격돌하게 되었습니다. 레이커스는 84년의 첫 대결에서는 아쉽게 무릎을 꿇었지만, 이듬해에는 리벤지에 성공하며 레이커스 VS 보스턴이라는 희대의 라이벌리가 탄생하게 되었죠. 그리고 당시 두 팀의 에이스인 매직과 래리 버드 역시 최고의 선수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했습니다.

 

레이커스는 87년과 88년에 연속으로 우승을 차지하며 보스턴과의 라이벌리에서 한 발짝 앞서나갔죠. 이후 또 배드 보이즈의 디트로이트, 마이클 조던의 시카고와도 파이널에서 잇달아 맞붙었습니다. 그런데 91-92시즌을 앞두고 매직 존슨이 HIV 바이러스에 양성 판정을 받았음을 밝히며 갑작스런 은퇴를 선언하면서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충격을 겪고 말았죠.

 

이후 그런대로 세대교체를 성공해 다시 젊은 선수들 위주로 팀을 개편한 레이커스는 96-97시즌을 앞두고 샤킬 오닐이라는 대형 스타를 FA로 영입하는 데 성공했스니다. 아울러 그해 드래프트에서는 트레이드를 통해 고졸 루키 코비 브라이언트까지 손에 넣었고요. 오닐의 골밑 장악력과 코비의 급성장을 바탕으로 다시금 컨텐더급 전력으로 올라선 레이커스는 99-00시즌에는 시카고 불스를 6번 우승으로 이끈 명장 필 잭슨까지 영입하며 화룡점정의 방점을 찍었습니다. 잭슨 특유의 트라이앵글 오펜스를 앞세운 레이커스는 리그를 3연패하며 밀레니엄 시대에 최고의 팀으로 우뚝 섰죠.

 

03-04시즌에 레이커스는 기존의 오닐, 코비에다가 칼 말론, 게리 페이튼까지 추가로 영입하며 이른바 “전당포 라인업”을 구축했으나, 파이널에선 언더독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에게 패하고 말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간 갈등이 심했던 오닐과 코비의 대립이 본격화되며 결국은 오닐을 마이애미로 팔아야 했죠. 이후 코비가 한동안 외로운 에이스로 팀을 이끌다가, 07-08시즌에 파우 가솔 트레이드 영입으로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레이커스는 08년에는 숙명의 라이벌인 보스턴 셀틱스에게 패했으나, 이듬해인 09년에 우승을 탈환하고 그 이듬해에는 보스턴을 상대로 리벤지를 해내며 백-투-백 우승의 위업을 세웠죠.

 

하지만 이후 레이커스는 필 잭슨 감독의 하차에 이어 코비의 심각한 부상까지 겹치며 가파르게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당시 레이커스는 창단 이래로 3년 연속 플레이오프 탈락한 적은 없을 만큼 꾸준한 강자였으나, 13-14시즌부터는 6년 연속으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며 끝모를 암흑기에 허덕였죠. 그 기간 동안 레이커스는 드래프트에서 상위픽을 행사하며 좋은 루키들을 연달아 뽑았으나, 이들만으로는 기나긴 부진의 터널을 벗어나기란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런데 18-19시즌에 슈퍼스타 르브론 제임스가 FA로 합류하고, 이듬해 트레이드로 앤써니 데이비스까지 영입하면서 레이커스는 단박에 암흑기를 마감하고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죠. 마침내 19-20시즌에 7년 만에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레이커스는 파죽지세로 우승까지 차지하였습니다. 현재 레이커스는 제임스와 데이비스, 두 스타를 중심으로 연속 우승을 노리며 새로운 왕조 건설을 위한 청사진을 그리고 있는 중입니다.

 

그럼 이상으로 서설을 마치구요, 본격적인 랭킹 소개에 앞서 28위 밖 선수들 중에서 나름대로 소개해줄 만한 선수들을 5명을 추려서 "Honorable Mention"이란 타이틀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28위 밖 선수들에게도 각각 잠정적인 랭킹은 있지만 여기에서 소개하는 순서는 그 순위와는 무관하며, 그냥 시대순으로 정렬했습니다.)


 

Honorable Mention

 

Chuck Mencel

 

                

미네소타 대학 출신으로 55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전체 12번으로 지명을 받은 척 멘셀은 56-57시즌에 종종 주전으로도 기용되며 평균 9.2득점, 2.8어시스트를 올려주었습니다.

 

Stu Lantz

 

 

70년대 중반에 두 시즌 동안 백업 가드로 활약했던 스튜 랜츠는 은퇴 후 방송 해설가로 변신하여 현재 30년 넘게 레이커스 경기 해설을 맡고 있습니다.

 

Eddie Jordan

 

 

80년대 초반에 네 시즌 동안 백업 1번으로 활약한 스틸의 귀재 에디 조던은 81-82시즌에 팀의 우승으로 반지를 획득하기도 했습니다.

 

Wes Matthews

 

 

80년대 후반에 두 시즌 간(87년, 88년) 매직 존슨의 백업으로 활약한 웨스 매튜스는 덕분에 연속으로 우승 반지를 끼는 행운을 안았습니다.

 

Jeremy Lin

 

 

리그에 한때 “린새니티” 열풍을 불러오기도 했던 동양계 민완 가드 제레미 린은 14-15시즌에 주전과 벤치를 오가며 평균 11.2득점, 4.6어시스트를 기록했습니다.


 

Minor Ranking

 

 

PG 28th : #_10  Steve Nash

 

                

6-3, 195lbs PG / 2시즌(13-14), 65경기

 

11.4득점, 2.6리바운드, 6.4어시스트, 0.6스틸, 42.2% 3점슛률, 92.1% 자유투율

 

2000년대 중반에 2년 연속 시즌 MVP에 오르며 당대 최고의 포인트가드로 군림했던 피닉스 선즈의 스티브 내쉬는 11-12시즌을 마치고 FA가 되었습니다. 그는 이미 전성기가 지난 데다가 소속팀 피닉스도 리빌딩에 들어간 시점이었기에 새로운 팀을 물색해야 했죠. 그는 고민 끝에 L.A 레이커스 행을 택했고, 레이커스가 피닉스에 1라운드 픽과 2라운드 픽을 각각 2장씩 내주는 사인 & 트레이드의 형식을 통해 3년 28mil에 계약했습니다. 이윽고 레이커스가 대형 딜을 통해 드와잇 하워드까지 영입하면서 기존의 코비 브라이언트, 파우 가솔에 더해 내쉬, 하워드로 이어지는 초호화 라인업이 탄생했죠. 사람들은 이를 두고 03-04시즌의 전당포 라인업의 재림이라며 기대를 모았고, 레이커스는 최고의 우승 후보로 꼽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2기 전당포 라인업은 서로 손발이 잘 맞지 않으며 실망스러운 경기력을 보여주었고, 이미 고질적인 허리 통증에 시달리던 내쉬는 잔 부상까지 겹치며 32경기나 결장했죠. 또한 그는 본래 패스를 받아 슛을 쏘는 것 보다는 스스로 슛 찬스를 만들어 내는 데 더 능숙했지만, 노쇠화와 롤 감소로 인해 단순한 스팟-업 슈터 역할만 맡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7번 시드를 받아 플레이오프에 겨우 진출한 레이커스는 1라운드에서 샌안토니오 스퍼스에게 스윕 패를 당했는데, 내쉬는 그나마 2경기만 뛴 채 햄스트링 통증이 도지며 시리즈-아웃되고 말았죠. 이듬해인 13-14시즌에 그는 또다시 허리 통증이 도지는 바람에 시즌 대부분을 날렸는데, (15경기 출전) 그나마 나온 경기에서도 평균 6.8득점에 38%대의 야투율로 최악의 부진을 보였습니다. 호전되지 않는 허리 통증 속에 그는 14-15시즌에도 계속 코트를 밟지 못하다가 결국 2015년에 공식 은퇴를 선언했죠. 이후 그는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서 선수 육성 고문(顧問)으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2018년에는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습니다. 그는 이번 시즌을 앞두고 브루클린 네츠의 감독으로 전격 임명되어 코치로서 첫 발걸음을 떼게 되었습니다.


 

 

PG 27th : #_2  Lonzo Ball

 

 

6-6, 190lbs PG / 2시즌(18-19), 99경기

 

10.0득점, 6.2리바운드, 6.4어시스트, 1.6스틸, 32.4분 출전

 

UCLA 대학 신입생 시절부터 전미 최고의 플레이메이커라는 평가를 받은 론조 볼은 1학년만 마치고 17 드래프트에 참가, 전체 2번으로 L.A 레이커스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라스베가스 서머 리그에서 MVP를 차지하며 한껏 기대치를 높인 그는 루키 시즌부터 레이커스의 붙박이 주전 포인트가드 자리를 꿰찼죠. 그는 시즌 초에 리그 최연소 트리플-더블 기록을 세우는 등 다방면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지만, 반면에 슈팅에서는 다소 고전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6-6의 장신 포인트가드인 그는 발 빠른 가드들은 잘 막지 못하나, 2-3번을 막을 때에는 사이즈를 바탕으로 제법 좋은 수비를 선보이죠. 또한 코트 비전이 뛰어나 창의적인 패스를 뿌려줄 수 있으며, 가드치고 리바운드 가담과 블락슛 능력이 탁월합니다. 다만 좌측으로 약간 치우치는 괴상한 슛 폼 때문인지 슈팅력에 있어서 다소 한계를 보이는데, 대학 시절엔 그런 폼으로도 40% 이상의 3점 성공률을 자랑했지만 프로에서는 2년차 때까지 30%를 웃도는 정도에 그쳤죠. 외곽슛보다 더 심각한 게 바로 자유투 문제인데, 성공률이 50%도 채 되지 않습니다. (통산 43.7%)

 

그는 무릎 부상 등으로 데뷔 시즌에 52경기에 출장하는 데 그쳤으나, 평균 10.2득점, 6.9리바운드, 7.2어시스트의 성적을 거두며 올-루키 세컨드 팀에 선발되었죠. 그는 이듬해인 18-19시즌에는 별다른 성장세를 보이지 못했으며, 발목 부상으로 47경기에 출전하는 데 그쳤습니다. 그리고는 결국 오프시즌에 앤써니 데이비스를 데려오는 삼각 딜에 끼어 뉴올리언즈 펠리컨즈로 트레이드 되었는데, 19-20시즌에는 펠리컨즈의 주전 가드로서 향상된 기량을 보여주었죠. 한편 전직 풋볼 선수 출신인 그의 부친 라바 볼은 아들을 앞세워 신발 사업(빅 볼러 브랜드)을 벌이는 중인데, 언론에 잇따른 돌출 발언을 하는 바람에 자주 구설수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동생 라멜로 볼이 이번 20 드래프트에서 전체 3번으로 샬럿 호네츠에 지명됨에 따라, 역대 형제 중에서 가장 높은 픽으로 드래프트에 지명된 사례가 되기도 했습니다. (기존 기록은 진 쇼트(9픽)-퍼비스 쇼트(5픽)의 도합 14픽)


 

PG 26th : #_9  Chucky Atkins

 

 

5-11, 160lbs PG / 1시즌(05), 82경기

 

13.6득점, 2.4리바운드, 4.4어시스트, 0.9스틸, 38.7% 3점슛률(통산 4위), 80.3% 자유투율

 

언드래프티 출신의 베테랑 포인트가드인 쳐키 앳킨스는 보스턴 셀틱스 소속으로 있다가 04-05시즌을 앞두고 게리 페이튼 트레이드에 끼어서 L.A 레이커스로 이적했습니다. (앳킨스+쥬메인 존스+크리스 밈 ⇔ 페이튼+릭 팍스+미래의 1라운드 픽) 그런데 마침 페이튼에 이어 데릭 피셔마저 FA로 팀을 떠나자, 그는 무주공산이 되어 버린 주전 포인트가드 자리에 무혈입성하였죠. 04-05시즌에 레이커스는 전년도 준우승팀 답지 않게 성적이 급추락하며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는데, (56승에 파이널 진출 ⇒ 34승에 플레이오프 탈락) 그나마 앳킨스는 전 경기에 선발 출장해 커리어-하이 급의 활약으로 분전했습니다.

 

그는 정교한 중장거리 슈팅 능력을 자랑했으며, 좀처럼 모험을 하지 않는 안정적인 플레이메이커였죠. 다만 사이즈가 빈약해 수비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이렇듯 현저한 수비적 약점 때문에 레이커스 팬들로부터 곱지 못한 시선을 받곤 했습니다. 결국 그는 오프시즌에 콰미 브라운을 영입하기 위한 카드로 쓰이며 레이커스를 떠났죠. (앳킨스+커런 버틀러 ⇔ 브라운+라론 프로핏) 이후 그는 여러 팀을 전전하는 저니맨의 커리어를 걸으며 09-10시즌까지 현역으로 뛰었고, 은퇴 후에는 고등학교 농구 코치를 지냈습니다.


 

 

PG 25th : #_9  Rajon Rondo

 

 

6-1, 180lbs PG / 2시즌(19-20), 94경기

 

8.1득점, 4.1리바운드, 6.5어시스트, 1.0스틸

 

왕년에 보스턴 셀틱스에서 올스타로 이름을 날렸던 라존 론도는 18-19시즌을 앞두고 르브론 제임스가 합류한 L.A 레이커스와 1년 9mil의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과거 보스턴 시절에 그는 플레이오프에서 르브론의 팀과 라이벌로 자주 혈전을 벌였기에, 그가 르브론과 함께 뛴다는 것 자체가 팬들에겐 놀라운 볼거리였죠. 그는 비록 전성기는 한참 지났으나 아직까지 주전급 1번으로 경쟁력은 있었는데, 팀에서 이미 드래프트 전체 2번으로 슈퍼 루키 1번 론조 볼을 뽑은 상태였기에 볼을 보좌하며 벤치에서 출격하는 롤을 맡았습니다. 그는 개막 후 두 번째 경기인 대 휴스턴 로케츠 전에서는 크리스 폴과 시비를 벌이다가 싸우는 바람에 3경기 출장 정지 처분을 받기도 했죠. 시즌 초반에는 이런저런 잔 부상으로 여러 경기 결장했던 그는 (손 부상: 17경기 / 손가락 부상: 14경기 결장) 볼이 발목 부상으로 시즌을 조기 마감한 뒤로는 주전 1번으로 올라섰습니다. 그는 46경기에서 9.2득점, 8어시스트를 기록했으며, 친정팀이었던 대 보스턴 전에서는 짜릿한 역전 버저비터 슛을 터뜨리기도 했죠.

 

그는 전성기 시절에 비해 기량이 많이 내려왔고 예의 탄탄한 수비력은 많이 상실했지만, 여전히 관록 넘치는 플레이메이킹 능력을 자랑합니다. 다만 고질적인 슈팅 문제 때문에 스페이싱에서 답답함을 초래하며 자유투도 가드치고 불안하죠. (통산 자유투 성공률 60.6%) 오프시즌에 레이커스와 2년 5.2mil에 재계약을 체결한 그는 19-20시즌에는 주로 벤치 요원으로 활약하며 입지와 활약이 다소 줄어들었습니다. 그는 엄지손가락 부상으로 시즌 말미와 플레이오프 1라운드를 내리 결장했지만, 2라운드에 돌아와 베테랑다운 면모를 한껏 보여주며 우승에도 혁혁히 공헌했죠. 그는 이번 우승으로 클라이드 로벨렛에 이어 레이커스와 보스턴 소속으로 모두 우승을 맛본 유이한 케이스가 되었습니다. 한편 그는 오프시즌에 애틀란타 호크스와 2년 15mil에 계약하며 레이커스를 떠나 새 출발에 나섰습니다.


 

 

PG 24th : #_21  Flynn Robinson

 

 

6-1, 185lbs PG / 2시즌(72-73), 70경기

 

9.6득점, 1.7리바운드, 2.1어시스트, 49.0% 야투율, 85.4% 자유투율, 17.8 PER

 

밀워키 벅스 시절 올스타에도 뽑힌 바 있는 플린 로빈슨은 신시내티 로얄즈에서 뛰다가 70-71시즌을 마치고 2라운드 픽과 맞트레이드 되어 L.A 레이커스로 이적했습니다. 71-72시즌에 제리 웨스트의 백업으로 활약한 그는 평균 출장시간이 16분이 채 안 되었음에도 9.9득점을 올려주었는데, 이는 36분으로 환산 시 평균 22.7득점에 달하는 훌륭한 수치였죠. 그는 탁월한 중장거리 슈팅력을 자랑했고 1 : 1 능력도 뛰어났기에 짧은 시간에도 이처럼 소나기 득점을 올려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레이커스의 전설적인 앵커 칙 헌은 그에게 “즉석 득점기계”라는 뜻의 “Mr. Instant Point”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죠.

 

한편 그해 레이커스가 파이널에서 뉴욕 닉스를 꺾고 우승을 차지함에 따라 그는 생애 첫 반지를 손에 넣게 되었습니다. 이듬해인 72-73시즌에 그는 루키 짐 프라이스 등에게 밀리며 평균 출전시간이 8분 정도로 급감했고, 아예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졌죠. 이에 불만을 품은 그는 팀에 트레이드를 요청했고, 결국 시즌 초반에 2라운드 픽과 맞트레이드 되어 볼티모어 불레츠로 이적했습니다. 그는 ABA의 샌디에이고 콘키스터도어스(San Diego Conquistadors)에서 한 시즌을 더 뛴 뒤 은퇴했으며, 2013년에 다발성 골수종으로 7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PG 23th : #_5  Steve Blake

 

 

6-3, 172lbs PG / 4시즌(11-14), 204경기

 

5.8득점, 2.3리바운드, 3.5어시스트(통산 19위), 0.7스틸, 38.3% 3점슛률(통산 5위)

 

워싱턴, 포틀랜드 등지에서 뛴 베테랑 포인트가드 스티브 블레이크는 09-10시즌을 마치고 FA가 되자 L.A 레이커스와 4년 16mil의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그는 이타적이고 실수가 적은 침착한 플레이메이커이며, 제법 준수한 3점슛 능력을 지니고 있었죠. 다만 운동능력과 피지컬에 다소 한계가 있어 종종 수비에서 고전하곤 했습니다. 레이커스에서 첫 두 시즌은 백업 포인트가드로 범범한 활약에 그친 그는 12-13시즌부터는 좀 더 나은 경기력을 보여주었으나 부상 때문에 적잖은 경기를 결장해야 했죠. (12-13시즌 : 복부 근육 부상, 37경기 결장 / 13-14시즌 : 팔꿈치 부상, 26경기 결장)

 

그는 13-14시즌에 부상으로 쓰러진 주전 가드 코비 브라이언트(아킬레스 건 파열)와 스티브 내쉬(허리 통증)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27경기에 스타팅으로 출전, 평균 9.5득점, 7.6어시스트를 올려주다가 시즌 도중 켄트 베이즈모어+마션 브룩스와 맞트레이드 되어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로 이적했습니다. 그는 15-16시즌까지 리그에서 활약하다가 이후 호주 리그에서 1년 더 뛴 뒤 은퇴했죠. 이후 지도자의 길을 걸은 그는 현재 피닉스 선즈에서 어시스턴트 코치로 재임 중입니다.


 

 

PG 22th : #_21  Jim King

 

 

6-2, 175lbs PG/SG / 3시즌(64-66), 213경기

 

6.1득점, 2.5리바운드, 2.4어시스트, 75.7% 자유투율

 

털사 대학 출신의 짐 킹은 63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전체 13번으로 L.A 레이커스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그를 지명한 픽은 바로 레이커스가 전 시즌에 톰 호킨스를 신시내티 로얄즈로 넘기고 받은 것이었죠. 타고난 팀 플레이어인 그는 안정적인 볼 핸들링 능력을 바탕으로 레이커스에서 세 시즌 동안 백업 포인트가드 역할을 충실히 해냈습니다. 그는 신체 능력은 평범했지만 지칠 줄 모르는 끈기와 정신력을 지닌 악착같은 수비수였으며, 별명이 “Mr. Hustle”일 정도로 허슬 플레이가 돋보였죠.

 

그는 65년과 66년에 잇달아 파이널 무대를 맛보기도 하였지만, 아쉽게도 레이커스는 보스턴 왕조에 밀려 번번이 우승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는 65-66시즌을 마치고 신생팀인 시카고 불스의 확장 드래프트에 뽑혔으며, 이후 곧바로 샌프란시스코 워리어스로 다시 트레이드되었죠. 그는 워리어스에서 한 차례 올스타에 뽑히기도 했으며, 72-73시즌까지 현역으로 뛰었습니다. 은퇴 후 지도자의 길을 걸은 그는 모교인 털사 대학에서 감독직을 역임하기도 했으며, 이후 부동산 중개업자 등으로 활동했습니다.


 

 

PG 21th : #_21  Johnny Egan

 

 

5-11, 180lbs PG / 2시즌(69-70), 154경기

 

8.0득점, 1.6리바운드, 2.8어시스트, 83.9% 자유투율(통산 11위)

 

볼티모어 불리츠에서 뛰던 단신 가드 조니 이건은 68-69시즌을 앞두고 신생팀 밀워키 벅스의 확장 드래프트에 뽑혔다가 다시 미래의 픽과 맞트레이드 되어 L.A 레이커스로 이적했습니다. 68-69시즌에 그는 정규 시즌에는 평균 22분 출장에 8.5득점, 2.6어시스트의 평범한 활약에 그쳤으나, 플레이오프에서는 일약 중용되며 평균 31.7분 출장에 13.9득점, 3.9어시스트를 올려주었죠. 특히 그는 보스턴 셀틱스와 맞붙은 파이널 시리즈에서는 3차례나 20득점 이상 경기를 하며 분전했으나, (2차전 26점, 3차전 22점, 5차전 23점) 아쉽게도 레이커스는 7차전까지 가는 대접전 끝에 보스턴에게 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6피트도 채 되지 않는 단신이었지만 빠른 스피드와 저돌적인 근성으로 더 큰 상대들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코트를 누볐죠. 그의 과감한 플레이는 언제나 팀 공격의 활력소가 되었으며, 팬들은 그에게 아낌없는 환호성을 보내주곤 했습니다. 레이커스에서 한 시즌을 더 보낸 그는 1970년에 3개 구단의 창설로 열린 확장 드래프트 때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의 지명을 받으며 레이커스를 떠났죠. 현역에서 은퇴한 후 곧바로 지도자로 진출한 그는 휴스턴 로케츠에서 4시즌 동안 감독으로 재임했으며, 코칭을 그만둔 후에는 보험업에 종사했습니다.


 

 PG 20th : #_1  William "Smush" Parker

 

 

6-4, 190lbs PG / 2시즌(06-07), 164경기

 

11.3득점, 2.9리바운드, 3.2어시스트, 1.6스틸(통산 5위), 36.6% 3점슛률

 

여러 NBA 팀과 해외 리그, 하부리그를 전전하던 언드래프티 출신의 스머쉬 파커는 05-06시즌을 앞두고 L.A 레이커스와 미니멈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레이커스의 1번 포지션은 무주공산이나 다름없었기에 무명인 그에게 개막전 선발 출장이라는 행운이 주어졌죠. 개막전에서 20득점을 넣으며 필 잭슨 감독의 눈에 들게 된 그는 이후 붙박이 주전으로 전 경기 출장하며 평균 11.5득점에 3.7어시스트를 올려주었습니다. 그는 폭발적인 탄력을 바탕으로 동 포지션에서는 최고의 덩크 실력을 뽐냈죠. 그는 1번으로서 리딩 능력은 낙제점에 가까웠고 스틸만 노리는 허술한 수비수였지만, 1번 포지션의 비중이 크지 않은 트라이-앵글 오펜스 하에서는 스팟-업 슈터 등의 제한적인 역할은 어느 정도 수행해 줄 수 있었습니다. 그는 리그에서 주전감의 기량은 아니었지만 당시 레이커스는 샐러리 부담에 시달리고 있었기에 몸값이 싼 그를 앞세워 1번 포지션을 그럭저럭 땜빵한 것이었죠.

 

그는 06-07시즌에도 변함없이 주전 1번으로 기용되었지만, 시즌 후반에는 코칭 스태프 및 동료들과 대립하며 트러블을 일으켰습니다. 특히 팀의 에이스인 코비 브라이언트와 불화가 심각하여 나중에는 코비에게 패스조차 하지 않는 지경까지 이르렀죠. 결국 잭슨 감독은 시즌 말미에 그 대신 루키인 조던 파마를 주전으로 내세웠으며, 플레이오프 기간에도 그를 내내 벤치에 앉혔습니다. 결국 그는 오프시즌에 레이커스와 결별하고 마이애미 히트와 계약했지만, 시즌 도중 방출되는 등 방황을 겪었죠. 레이커스 외의 다른 팀에서는 그만한 기회를 얻지 못한 그는 마침내 NBA를 떠나 중국, 러시아, 그리스 등 해외의 여러 리그를 전전하며 커리어를 보냈습니다.


 

 

PG 19th : #_4  Ron Harper

 

 

6-6, 185lbs PG/SG / 2시즌(00-01), 127경기

 

6.8득점, 4.0리바운드, 3.0어시스트, 1.0스틸

 

90년대에 필 잭슨 감독 밑에서 시카고 불스의 2차 3연패 멤버로 활약한 바 있는 노장 론 하퍼는 98-99시즌을 마치고 시카고와 결별하며 FA의 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L.A 레이커스의 감독으로 부임하게 된 잭슨이 러브콜을 보냄에 따라, 그는 레이커스와 2년 4.2mil의 계약을 체결했죠. 99-00시즌에 그는 익숙한 트라이-앵글 오펜스 하에서 주전 1번으로서 시카고 시절과 거의 같은 롤을 수행했는데, 주로 보조 리딩과 수비 등 팀을 위해 헌신하는 궂은일들이었습니다. 플레이오프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 그는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와 맞붙은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 3차전에서는 경기 막판 결승 점퍼를 넣으며 관록을 보여주기도 했죠. 결국 그해 레이커스가 파이널에서 인디애나 페이서스를 꺾고 우승을 차지함에 따라, 그는 생애 네 번째 반지를 손에 넣었습니다.

 

그는 이듬해인 00-01시즌에도 주전 1번으로 활약했으나, 시즌 후반에는 무릎 부상으로 계속 결장해야 했죠. 그는 플레이오프에서도 정상적인 몸 상태가 아니어서 여러 경기 나오지는 못했지만, 대신 데릭 피셔가 그의 공백을 훌륭히 메워주었습니다. 레이커스의 백-투-백 우승으로 다섯 번째 반지를 얻게 된 그는 시즌을 마치고 미련 없이 코트를 떠났죠. 그는 은퇴 후 잠시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에서 어시스턴트 코치를 지냈으며, 현재는 리그 홍보를 위해 여러 나라를 돌며 농구 클리닉 등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심한 말더듬증을 앓고 있는데, 자신과 같은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돕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PG 18th : #_20  Gary Payton

           

 

6-4, 180lbs PG / 1시즌(04), 82경기

 

14.6득점, 4.2리바운드, 5.5어시스트, 1.2스틸, 17.3 PER

 

90년대 최고의 수비력을 지닌 포인트가드로 이름을 날린 게리 페이튼은 9차례의 올스타와 올-NBA 팀, 올-디펜시브 팀 선발이라는 화려한 경력을 자랑했습니다. 02-03시즌을 마치고 FA가 된 그는 아직 맛보지 못한 우승의 꿈을 이루기 위해 당시 최강팀 중 하나였던 L.A 레이커스와 헐값이나 다름없는 2년 10.3mil에 계약했죠. 이미 2000년대 초에 3연패를 이룩한 바 있는 레이커스는 샤킬 오닐, 코비 브라이언트라는 당대 최고의 원-투 펀치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여기에 우승을 노리는 두 명의 대형 스타인 페이튼과 칼 말론까지 합류하며 초호화 군단을 완성하였습니다. 국내 팬들은 명예의 전당을 이미 예약한 스타 넷이 뭉쳤다며 이들을 “전당포” 라인업이라 부르기도 했죠.

 

하지만 워낙 쟁쟁한 스타들이 모이다 보니 개개인의 스탯과 영향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는데, 특히 페이튼의 낙폭이 제일 심했습니다. 그는 지난 5년간 꾸준히 평균 20득점을 넘겼지만 레이커스에서는 공격 롤의 감소로 인해 평균 득점이 15점 대 미만으로 떨어졌으며, 트라이앵글-오펜스 하에서 1번의 리딩 역할이 제한됨에 따라 평균 어시스트도 전년 대비 하락했죠. (8.3개 → 5.5개) 또한 이미 35살의 나이로 전성기가 좀 지나다보니 특유의 수비력도 예년만은 못했습니다. 레이커스는 그해 파이널까지 진출은 했지만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에게 무릎을 꿇으며 우승을 놓쳤는데, 페이튼은 플레이오프에서 평균 7.8득점에 그치는 극심한 부진을 보이며 팬들을 실망시켰죠. 결국 레이커스 구단은 그가 팀과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오프시즌에 그를 보스턴 셀틱스로 트레이드 해버렸습니다. (페이튼+릭 팍스+1라운드 픽 ⇔ 쳐키 앳킨스+크리스 밈+쥬메인 존스) 그는 이후로도 계속 하향세를 보였으나 06년에는 마이애미 히트 소속으로 염원하던 우승 반지를 손에 넣기도 했죠. 그는 은퇴 후 방송 해설가로 활동했으며, 2013년에는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습니다. 한편 그의 아들인 게리 페이튼 주니어도 리그에서 수비형 가드로 활약 중이며, 지난 시즌에는 워싱턴 위저즈에서 뛰었습니다.


 

 

PG 17th : #_1  D'Angelo Russell

 

 

6-4, 193lbs PG/SG / 2시즌(16-17), 143경기

 

14.3득점, 3.5리바운드, 4.0어시스트(통산 15위), 1.3스틸(통산 13위), 35.1% 3점슛률

 

15 드래프트에서 최고의 가드 자원으로 기대를 모은 오하이오 주립대의 디안젤로 러셀은 절친인 칼-앤써니 타운스에 이어 전체 2픽으로 L.A 레이커스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데뷔하자마자 팀의 주전 1번이라는 중책을 맡은 그는 시즌 중반에 잠시 베테랑 루 윌리엄스에게 스타팅 자리를 내주며 벤치로 물러나기도 했죠. 하지만 시즌 후반에 다시 주전으로 복귀한 그는 대 브루클린 네츠 전에서 39득점(3점슛 8-12)을 넣는 등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시즌 평균 13.2득점, 3.3어시스트를 올리며 올-루키 세컨드 팀에도 뽑혔습니다.

 

1-2번을 두루 볼 수 있는 듀얼가드인 그는 폭발적인 중장거리 슛 능력을 지녔는데, 특히 미드-레인지 풀-업 점퍼가 일품이죠. 또한 빅맨을 활용해 픽-앤-롤을 전개하는 능력도 뛰어난 편입니다. 다만 리딩보다는 득점에 더 특화된 공격형 가드이며, 수비력은 다소 아쉽죠. 그는 또한 팀 동료 닉 영의 외도 사실을 SNS에 폭로했다가 물의를 일으키는 등 코트 밖에서 트러블을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2년차 때인 16-17시즌에 그는 풀-타임 주전 1번으로 기용되었지만 루키 시즌에 비해 괄목할만한 성장세는 보여주지 못했죠. (평균 15.6득점, 4.8어시스트) 드래프트 2픽 출신이지만 기대에 다소 부응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던 그는 오프시즌에 브루클린 네츠로 트레이드되었는데, 이는 티모페이 모즈코프와 맺은 악성계약(4년 64mil)을 처리하려는 목적이 강했습니다. (러셀+모즈코프 ⇔ 브룩 로페즈+27픽인 카일 쿠즈마의 지명권) 그런데 네츠에서는 괄목상대한 성장을 보여준 그는 18-19시즌에 팀의 에이스로 자리매김하고 올스타도 선발되었죠. 그는 19-20시즌에 맥시멈 계약을 맺고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 합류했다가 시즌 도중에 미네소타 팀버울브스로 트레이드되어 타운스와 함께 팀의 간판 스타로 활약 중입니다.


 

PG 16th : #_20  Brian Shaw

 

                

6-6, 190lbs PG/SG / 4시즌(00-03), 284경기

 

4.0득점, 2.6리바운드, 2.3어시스트, 0.5스틸, 32.6% 3점슛률

 

보스턴, 올란도 등지에서 활약한 바 있는 10년차 베테랑 가드 브라이언 쇼는 99-00시즌을 앞두고 스카티 피펜 딜에 끼어 포틀랜드에서 휴스턴으로 트레이드되었다가 이내 방출되었습니다. 이윽고 그는 L.A 레이커스와 베테랑 미니멈으로 계약하여 벤치에서 1-2번 포지션을 두루 백업해 주었죠. 그는 1번으로서 좋은 체격조건을 지니고 있었고 리바운드 가담이 좋았으며 영리한 플레이메이커였습니다. 또한 그리 뛰어난 외곽슈터는 아니었지만 중요한 순간에는 종종 빅 샷을 터뜨려주곤 했죠. 레이커스는 00년 플레이오프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강호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와 맞붙었는데, 승부의 고비처였던 7차전 4쿼터에서 쇼가 결정적인 3점슛 2방을 터뜨려준 덕에 대역전극을 펼칠 수 있었습니다. 결국 파이널까지 진출한 레이커스가 인디애나 페이서스를 꺾고 우승을 차지함에 따라 그는 데뷔 11년 만에 첫 반지를 얻게 되었죠.

 

00-01시즌에 그는 데릭 피셔, 론 하퍼 등 주전 가드들이 부상으로 결장할 때 마다 땜빵 주전 역할을 충실히 해냈습니다. (80경기 중 28경기 선발 출전) 레이커스의 3년 연속 우승에 일익을 담당한 후 02-03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그는 레이커스에서 여러 해 동안 어시스턴트 코치로 활동했으며, 두 시즌 동안 덴버 너게츠의 감독을 지내기도 했죠. 그는 2016년에 다시 친정팀 레이커스에 복귀해 세 시즌 동안 수석 어시스턴트 코치를 지냈으며, 현재는 G-리그의 이그나이트(Ignite) 팀(대학으로 가지 않고 바로 G-리그로 직행한 고교 졸업생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팀)의 감독으로 재임 중입니다.


 

 

PG 15th : #_5 / #_1  Jordan Farmar

           

 

6-2, 180lbs PG / 5시즌(07-10, 14), 342경기

 

7.3득점, 1.9리바운드, 2.5어시스트, 0.8스틸, 37.2% 3점슛률, 364개 3점슛(통산 12위)

 

L.A 토박이인 조던 파마는 UCLA 대학을 2학년만 마치고 06 드래프트에 참가해 전체 26번으로 L.A 레이커스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루키 시즌에 그는 스머쉬 파커의 백업으로 뛰었는데, 시즌 말미에 파커가 팀의 눈 밖에 나자 플레이오프 때에는 그를 대신해 스타팅으로 기용되기도 했죠. 그는 2년차 때인 07-08시즌에 데릭 피셔의 백업으로 벤치에서 20분 남짓 출장하며 평균 9.1득점, 2.7어시스트를 기록했고, 이후로도 꾸준히 팀의 붙박이 백업 1번 노릇을 해주었습니다. 그는 09년과 10년에 걸쳐 레이커스가 백-투-백 우승을 할 때 멤버로서 활약하며 두 개의 반지를 손에 넣었죠.

 

그는 42인치에 달하는 서전트 점프를 지녔으나 덩크할 적 외에는 그리 운동능력이 돋보이지는 않았고 골밑 마무리도 불안한 편이었습니다. 대신에 제법 괜찮은 중장거리 슈팅력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밖에 리딩, 패스, 수비 등 여러 영역에서 백업 1번으로는 무난한 편이었죠. 그는 09-10시즌을 마치고 FA가 되자 뉴저지 네츠와 3년 12mil에 계약하며 레이커스를 떠났고, 이후 터키 리그에도 잠시 몸을 담았습니다. 그러던 중 친정팀 레이커스의 러브콜을 받아 13-14시즌에 다시 NBA로 복귀한 그는 햄스트링 부상으로 41경기 출전에 그쳤으나 평균 10.1득점, 4.9어시스트를 올려 주었으며 대 새크라멘토 킹스 전에서는 커리어-하이인 30득점(3점슛 8-10)을 넣기도 했죠. 오프시즌에 L.A 클리퍼스와 계약하며 다시 레이커스를 떠난 그는 이후 리그 여러 팀과 유럽 리그 등지를 전전하며 2016년까지 현역으로 뛰었고, 현재는 헬스 케어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Major Ranking


 

PG 14th : #_42  Walt Hazzard

 

 

 

UCLA 대학의 월트 해저드는 1964년에 팀을 우승으로 이끌고 파이널 4 MOP에 뽑히며 최고의 지역 스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당시 우승은 UCLA 대학의 사상 첫 토너먼트 우승이자, 존 우든 감독의 무적 UCLA 전설이 열리는 서막이었죠. 그는 64 드래프트에서 지역 연고픽(1라운드 픽을 사용해 해당 지역이나 대학 출신 선수를 미리 선점하는 지명권)을 통해 L.A 레이커스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그는 루키 시즌에는 백업 가드로 평범한 활약(평균 4.2득점, 2.1어시스트)에 그쳤으나, 2년차 때인 65-66시즌에는 주전 1번으로서 제리 웨스트와 함께 호흡을 맞추며 눈부신 향상을 보여주었죠. (평균 13.7득점, 4.9어시스트) 그는 탁월한 볼-핸들링 스킬과 코트 비전을 자랑한 재간 넘치는 플레이메이커였습니다. 또한 뛰어난 돌파력으로 종종 득점도 올려 주었으며, 업-템포 농구에 강했죠.

 

그는 66-67시즌 초반에는 스타팅으로 기용되다가 이후 떠오르는 신인 아치 클락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고 벤치로 물러났습니다. 한편 1967년에 2개 팀(시애틀 슈퍼소닉스, 샌디에이고 로케츠)이 신설됨에 따라 확장 드래프트가 열렸는데, 이때 해저드는 시애틀의 지명을 받으며 레이커스를 떠나야만 했죠. 그는 67-68시즌에 신생팀 시애틀에서 평균 24득점을 올리고 올스타에 뽑히며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냈고, 이후 애틀란타, 버팔로 등지에서 활약했습니다. 이슬람교로 개종한 뒤에는 이름을 마디 압둘-라만(Mahdi Abdul-Rahman)으로 개명한 그는 은퇴 후 모교인 UCLA의 감독을 지냈으며, 이후 레이커스 구단에서 스카우터, 컨설턴트 등 프런트의 일원으로 활동했죠. 그는 1996년에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병상을 전전하다가 2011년에 6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PG 13th : #_15 / #_5  Jim Price

 

 

 

※ 블락슛과 스틸은 73-74시즌부터 집계되어 총 166경기로 그 값을 산출함

 

루이빌 대학 출신의 짐 프라이스는 72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전체 16번으로 L.A 레이커스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루키 시즌에 제리 웨스트의 백업으로 뛴 그는 평균 6.4득점, 1.6어시스트의 범범한 활약을 펼쳤으나 올-루키 퍼스트 팀에 뽑히는 행운을 얻었죠. 이듬해인 73-74시즌에 주전 1번인 웨스트가 햄스트링 부상으로 31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하자 2년차인 그에게 많은 기회가 돌아갔습니다. 그는 평균 15.4득점, 4.5어시스트, 1.9스틸을 기록하였고, 인상적인 수비력을 보여주며 올-디펜시브 세컨드 팀에도 이름을 올렸죠. 1번치고 탄탄한 체격을 지닌 그는 에너지 넘치는 터프한 수비수였고 빠른 손을 바탕으로 전방 압박에도 능했습니다. 또한 저돌적인 돌파와 준수한 슈팅 능력으로 득점에서도 기여해 줄 수 있는 공수겸장이었으며, 볼-핸들링도 뛰어났죠.

 

웨스트의 은퇴로 74-75시즌에 붙박이 1번으로 자리 잡게 된 그는 시즌 개막 후 9경기에서 평균 21.2득점, 7어시스트를 올리며 놀라운 기세를 보여주었지만, 갑작스런 트레이드로 레이커스를 떠나야만 했습니다. 팀의 공격 템포를 좀 더 높이기 원했던 레이커스 구단이 속공의 달인인 밀워키 벅스의 루셔스 알렌을 영입하기 위해 한창 주가가 물이 오른 그를 내준 것이었죠. 그는 그해 밀워키 소속으로 올스타에 뽑히기도 했지만 무릎 부상으로 상승세가 꺾였고, 이후로는 기량이 완연한 하락세를 보이며 이 팀 저 팀 떠도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78-79시즌을 앞두고 FA가 되자 레이커스의 오퍼를 받고 간만에 친정팀에 복귀했죠. (당시는 FA 보상 제도가 있어서 레이커스는 그의 전 소속팀 디트로이트에 2라운드 픽 하나를 내주었습니다.) 그는 그해 백업 가드로 활약하며 평균 5.3득점을 올렸고, 시즌을 마치고 방출되자 미련 없이 현역 생활을 마감했죠. 은퇴 후에는 곧바로 지도자의 길을 걸은 그는 여러 대학과 하부 리그 팀에서 어시스턴트 코치, 감독직을 역임했습니다.


 

 

PG 12th : #_21  Bobby "Slick" Leonard

 

        

                

1953년에 인디애나 대학을 우승으로 이끈 바 있는 슬릭 레너드는 대학 졸업 후 곧바로 군에 입대했는데, 군복무 중 치러진 54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전체 10번으로 볼티모어 불리츠(Baltimore Bullets, 현 워싱턴 위저즈의 전신인 볼티모어 불리츠와는 다른 팀)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볼티모어 구단이 이윽고 파산하는 바람에 그의 지명권은 파산 드래프트를 통해 미네아폴리스 레이커스로 넘어갔죠. 군 복무를 마치고 56-57시즌부터 팀에 합류한 그는 루키 시즌에 주전과 후보를 오가며 평균 두 자릿수 득점(11득점)을 올려주었습니다. 그는 그해 플레이오프에서는 평균 21.4득점, 7.6어시스트의 깜짝 활약을 펼쳤으며, 세인트루이스 호크스와 맞붙은 서부 디비전 파이널 3차전에서는 무려 42득점을 퍼붓기도 했죠. 1-2번을 두루 볼 수 있는 듀얼가드인 그는 터프함이 철철 넘치는 열혈남아였으며, 카리스마 있는 리더쉽으로 팀원들을 잘 이끌었습니다. 또한 그는 뛰어난 볼-핸들링 능력을 자랑했으며, 중장거리 슈팅력도 준수했죠.

 

50년대 후반에 레이커스에서 핵심 가드 요원으로 꾸준한 활약을 펼친 그는 59 파이널에서는 평균 14.3득점, 9어시스트로 분전하기도 했습니다. (팀은 보스턴 셀틱스에게 0-4로 스윕 패배) 한편 59-60시즌부터 핫 로드 헌들리가 팀의 주전 1번으로 자리 잡고 이듬해인 60-61시즌에는 슈퍼 루키 제리 웨스트까지 가담함에 따라 그의 팀 내 입지는 점점 줄어들었죠. 결국 그는 1961년에 시카고 패커스(Chicago Packers, 현 워싱턴 위저즈의 전신)가 창단할 적에 확장 드래프트에 뽑히며 레이커스를 떠났습니다. 62-63시즌 도중 소속팀 시카고 제퍼스(Chicago Zephyrs)의 선수 겸 감독직을 맡으며 코칭 커리어를 시작한 그는 인디애나 페이서스를 3차례나 ABA 우승으로 이끌며 명장 반열에 올랐죠. 그는 코치직을 은퇴한 후에는 인디애나 지역 방송에서 해설자로 활동했으며, 2014년에는 코치 자격으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습니다.


 

 

PG 11th : #_10 / #_24  Herm Schaefer

 

 

 

※ NBL 시절(54경기)의 어시스트, 야투 성공/시도 개수, 윈쉐어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관련 값은 NBA에서 뛴 123경기만으로 산출함

 

NBL에서 베테랑 가드로 여러 시즌 활약한 험 쉐이퍼는 47-48시즌 초반에 3경기만 뛰고 소속팀인 인디애나폴리스 카우츠키즈(Indianapolis Kautskys)에서 방출되었습니다. 당시 29살이었던 그는 그때 기준으로는 노장에 속했기에 팀에서 자리를 잃은 것이었죠. 하지만 그의 경험을 높이 산 미네아폴리스 레이커스가 곧바로 그를 영입했고, 그는 팀 내 최고참으로서 주장 자리를 맡아 리더쉽을 한껏 발휘했습니다. 레이커스는 당대 최고의 센터인 조지 마이칸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코트 위에서 그의 주요 임무는 안정적으로 볼을 키핑하며 골밑의 마이칸에게 꾸준히 볼을 투입하는 것이었죠.

 

마이칸의 골밑 장악력을 앞세워 47-48시즌에 NBL 리그를 제패한 레이커스는 이듬해 동부 지역에 기반을 둔 NBL의 경쟁 리그인 BAA(NBA의 전신)로 소속을 옮겼는데, 여전히 막강 전력을 과시하며 BAA마저 접수해 버렸습니다. 쉐이퍼는 플레이메이커 역할뿐만 아니라 득점원으로서도 쏠쏠히 기여하며(평균 10.4득점, 팀 내 3위) 우승에 일익을 담당했죠. 이듬해인 49-50시즌, 31살의 노장인 그는 슬레이터 마틴 등 팀 내 젊은 가드들에게 출장시간을 많이 내주었지만, 여전히 주장 노릇을 잘 해내며 레이커스를 연속 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시즌을 마치고 은퇴한 후 지도자로 변신한 그는 인디애나폴리스 올림피언스(Indianapolis Olympians)에서 감독으로 재임하며 팀을 2년 연속 플레이오프로 이끌었지만, 안타깝게도 올림피언스는 52-53시즌을 끝으로 재정난 때문에 해체되고 말았죠. 그는 1980년에 6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PG 10th : #_21  Archie Clark

 

 

 

미네소타 대학 출신의 아치 클락은 66 드래프트에서 4라운드 전체 37번으로 L.A 레이커스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그는 비록 지명 순위는 높지 않았지만 1~3라운드에 먼저 뽑힌 다른 동기들보다 한 발 앞서 두각을 나타냈죠. 루키 시즌에 그는 12월 말부터 월트 해저드를 제치고 스타팅 포인트가드로 출전하였고, 특히 3월 한 달 동안에는 평균 18.3득점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는 2년차 때인 67-68시즌에는 한층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었고(루키 평균 10.5득점→2년차 평균 19.9득점), 올스타에도 선발되는 영광을 안았죠.

 

당대 최고의 볼-핸들러였던 그는 이른바 크로스오버 드리블의 원조로 일컬어지는데, 그의 크로스오버 드리블을 두고 당시 사람들은 “쉐이크-앤-베이크(Shake and Bake)”라 불렀습니다. 지금은 그 명칭이 자말 크로포드의 시그내쳐 무브인 비하인드-백 크로스오버 드리블을 지칭하지만, 본래는 그의 원조 크로스오버 드리블을 지칭하는 말이었죠. 그는 크로스오버 드리블로 상대 수비수를 농락한 뒤, 유유히 점퍼를 꽂아 넣으며 득점을 올리곤 했습니다. 또한 그는 공수에서 기민한 움직임을 자랑했으며, 압박에 능한 강력한 수비수였죠. 다만 그는 그리 뛰어난 리딩 가드는 아니었는데, 마침 슈팅가드 중 최고의 플레이메이커인 제리 웨스트와 함께 뛰었기에 이런 단점을 상쇄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 68-69시즌을 앞두고 레이커스는 필라델피아 76ers로부터 당대 최고의 센터인 윌트 체임벌린을 영입했는데, 대신 그 대가로 클락과 대럴 임호프, 제리 챔버스를 내놓아야 했죠. 그는 레이커스를 떠난 후 필라델피아, 볼티모어 등지에서 스코어러로 이름을 날렸으며, 75-76시즌을 끝으로 코트를 떠났습니다. 그는 은퇴 후에도 정치가, 사업가로 활발하게 활동했으며, “NBA 은퇴선수협회(NBRPA)” 창립에도 일익을 담당했습니다.


 

 

PG 9th : #_42 / #_40  Lucius Allen

 

 

 

밀워키 벅스가 70-71시즌에 우승할 적에 멤버였던 루셔스 알렌은 74-75시즌 초반에 짐 프라이스와 맞트레이드 되어 L.A 레이커스로 이적했습니다. 두 팀은 서로 주전 포인트가드를 맞바꾼 셈이었는데, 당시 레이커스는 빠른 템포의 공격을 선호했기에 스피드와 속공 전개 능력이 뛰어난 알렌을 영입한 것이었죠. 그는 게일 굿리치와 함께 팀 공격을 이끌며 남은 56경기에서 평균 19.5득점, 5.7어시스트, 2.2스틸을 올려주었습니다. 1-2번을 두루 볼 수 있는 듀얼 가드였던 그는 “수토끼(Jackrabbit)”라는 별명답게 빠른 스피드를 바탕으로 한 돌파가 주특기였죠. 또한 그는 빠른 릴리즈의 정확한 중장거리 점프슛을 갖추고 있었으며, 탁월한 볼-핸들링과 영리한 플레이메이킹 능력도 겸비한 전천후 가드였습니다.

 

한편 레이커스는 75-76시즌을 앞두고 밀워키 벅스로부터 당대 최고의 센터인 카림 압둘-자바를 영입했는데, 그와 알렌은 UCLA 대학 및 밀워키 시절부터 한솥밥을 먹은 절친 사이기도 했죠. 그는 압둘-자바의 가세로 인해 공격 롤이 줄어들며 평균 득점은 다소 하락했지만, 그래도 두 시즌 동안 평균 15득점, 5어시스트에 육박하는 꾸준한 활약을 이어갔습니다. 그는 77-78시즌을 앞두고 캔자스-시티 킹스로 트레이드 되었는데, 킹스는 캔자스-시티 출신의 지역 스타인 그를 영입하고자 올리 존슨과 78 드래프트 1라운드 픽+2라운드 픽을 내놓았죠. 그는 말년에는 발 부상으로 고생하다가 78-79시즌을 마친 뒤 킹스에서 방출되며 커리어를 마감했습니다. 그는 은퇴 후 L.A에서 지역 청소년 및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농구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PG 8th : #_33  Rodney "Hot Rod" Hundley

 

 

 

웨스트 버지니아 대학 시절 최고의 선수로 이름을 날린 핫 로드 헌들리는 57 드래프트에서 전체 1번으로 신시내티 로얄즈의 지명을 받았으나, 드래프트 데이 때 곧바로 미네아폴리스 레이커스로 트레이드 되었습니다. 당시 레이커스는 헌들리를 얻기 위해 올스타 센터인 클라이드 로벨렛까지 내놓았고, 결국 7명의 선수가 오가는 대형 딜이 일어났죠. (로벨렛+짐 팩슨 ⇔ 1픽(헌들리)+밥 버로우+에드 플레밍+몽크 마이니키+아트 스포엘스트라) 그는 첫 두 시즌은 벤치에서 나오며 평범한 활약에 그쳤으나, 3년차 때인 59-60시즌부터 붙박이 주전 포인트가드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해 평균 12.8득점, 5.3리바운드, 4.6어시스트를 올린 그는 올스타에도 선발되었으며, 이듬해인 60-61시즌에도 평균 11득점, 4.4어시스트를 기록하며 2년 연속 올스타에 뽑혔죠.

 

그는 비하인드-백-드리블 등 당시 보기 드문 현란한 드리블 스킬을 자랑했으며, 각종 기상천외한 플레이로 팬들의 이목을 많이 끌었습니다. 이를테면 경기 도중에 공을 손가락 위에 올리고 빙빙 돌리기도 했고, 공을 옆구리에 끼거나 등 뒤로 빼고는 상대에게 뺏어보라며 도발하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자유투를 훅 슛으로 던지기도 했죠. 또한 그는 포지션 대비 뛰어난 리바운더였으며, “경주용 자동차(Hot Rod)”라는 별명답게 저돌적으로 코트를 누볐습니다. 이러한 독특한 개성 덕분에 그는 실력 이상으로 팬들에게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는 선수가 되었죠.

 

그는 61-62시즌부터는 프랭크 셀비에게 주전 1번 자리를 내주고 벤치로 돌아갔으며, 스탯과 팀 내 입지도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게다가 고질적인 무릎 부상까지 덩달아 그를 괴롭히자, 그는 62-63시즌을 마치고 28살의 이른 나이에 미련 없이 은퇴를 택했죠. 이후 그는 특유의 엔터테인먼트 기질을 살려 방송 해설로 진출했으며, 1974년부터는 뉴올리언즈 재즈 팀의 해설을 맡았습니다. 그는 36년간 재즈 프랜차이즈의 대표 해설가로 활동했으며, 덕분에 재즈 프랜차이즈에서 영구결번되기도 하였죠. (따로 등번호는 없이 “Mic”로 결번됨) 그는 2015년에 8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PG 7th : #_11 / #_70  Frank Selvy

 

        

                

먼 대학 시절 한 경기 100득점의 신화를 남긴 프랭크 셀비는 루키 시즌에 밀워키 호크스에서 올스타에 뽑히며 주목받았으나, 2년의 군복무를 마치고 온 뒤에는 벤치를 전전해야 했습니다. 그는 세인트루이스 호크스 소속이던 57-58시즌 후반에는 잠시 미네아폴리스 레이커스로 임대되어 12경기에서 평균 6.3득점을 올렸죠. 이후 그는 뉴욕 닉스를 거쳐 시라큐즈 내셔널즈에서 뛰다가 59-60시즌 도중 다시 레이커스에 합류했습니다. 그는 시즌 후반에 주전 2번인 딕 가메이커가 트레이드되자 스타팅으로 뛰는 기회를 얻었고, 플레이오프에서는 평균 15.7득점을 올려주었죠. 60-61시즌에는 1-2번을 두루 오가며 벤치에서 식스맨으로 활약한 그는 이듬해인 61-62시즌에는 핫 로드 헌들리를 밀어내고 주전 1번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그는 정통 포인트가드와는 거리가 있는 스타일이었지만, 이미 팀에는 다재다능한 제리 웨스트가 있었기에 그와 볼 소유를 나누며 무난히 1번 포지션을 소화해 주었죠. 그는 발군의 슈팅 능력을 지녔고 볼-핸들링도 준수했으며, 수비력도 뛰어난 편이었습니다. 그해 평균 14.7득점, 5.2리바운드, 4.8어시스트를 기록한 그는 올스타에도 뽑히며 제2의 전성기를 누렸죠.

 

한편 레이커스는 62 파이널에서 4년 연속 우승에 도전하는 절대 강자 보스턴 셀틱스를 만나 7차전까지 가는 혈전을 벌였습니다. 7차전 막판에 100-96으로 4점을 뒤지고 있던 레이커스는 셀비의 연속 득점으로 가까스로 동점을 만들었고, 경기 종료 5초를 남긴 채 마지막 공격권을 얻었죠.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보스턴의 수비가 웨스트에게 쏠린 틈을 타 베이스라인에서 셀비가 오픈 찬스를 얻었고, 헌들리의 패스를 받은 그는 우승을 결정지을 수 있는 결정적인 클러치 샷을 날렸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슛은 림을 외면했고, 연장전 끝에 레이커스는 보스턴에게 패하며 우승을 놓치고 말았죠. 훗날 셀비는 자신이 평생 넣은 모든 슛을 그 슛 하나와 바꾸고 싶었다며 못내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이후 그는 레이커스에서 두 시즌 간 평범한 활약을 펼치다가 63-64시즌을 끝으로 현역 생활을 마쳤죠. 은퇴 후 모교인 퍼먼 대학의 지휘봉을 잡기도 한 그는 코치 커리어를 마친 후에는 제지 공장에서 근무했습니다. 한편 그가 대학 시절 기록한 한 경기 100득점은 여전히 NCAA 1부 리그 최고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PG 6th : #_3  Sedale Threatt

           

        

 

리그 8년차 베테랑 포인트가드였던 시애틀 슈퍼소닉스의 시데일 쓰리트는 91-92시즌을 앞두고 3장의 2라운드 픽과 맞교환되어 L.A 레이커스로 이적했습니다. 경험 많고 검증된 그의 영입은 그간 신통치 않았던 매직 존슨의 백업 문제를 해결할 좋은 카드로 보였죠. 그런데 시즌이 개막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레이커스를 뒤흔들었습니다. 바로 매직 존슨이 HIV 바이러스에 양성반응임을 밝히며 갑작스런 은퇴를 선언했기 때문이죠. 그 바람에 매직의 백업으로 영입했던 쓰리트는 졸지에 주전 1번 자리를 맡게 되었습니다.

 

매직의 은퇴로 인한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어수선한 상황에서 커리어 첫 풀-타임 포인트가드 롤을 수행한 그는 평균 15.1득점, 7.2어시스트, 2스틸을 올리며 제법 선전해 주었죠. 이듬해인 92-93시즌에도 그는 평균 15.1득점을 올렸는데, 매직 은퇴 후 팀 전력이 침체기를 걷던 때라 이 기록이 팀 내 최고 평균 득점이었습니다. 그해 레이커스는 5할 이하의 성적에 그치며(39승 43패) 8번 시드로 겨우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1라운드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인 찰스 바클리의 피닉스 선즈와 맞붙었는데, 1차전에서 35득점을 올린 쓰리트의 활약 등에 힘입어 5차전 시리즈에서 먼저 2승을 따내며 업셋 직전까지 갔죠. 안타깝게도 이후 내리 3패를 하며 업셋에는 실패했지만, 우승 후보를 1라운드 탈락 직전까지 몰고 간 인상적인 선전이었습니다.

 

그는 1-2번을 두루 막을 수 있는 유용한 수비수였으며, “도둑(The Thief)”이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로 앞선에서 스틸에 능했죠. 또한 실수가 적은 안정적인 플레이메이커였고, 깔끔한 중거리 슛으로 득점에서도 기여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93-94시즌에는 루키인 닉 밴 엑셀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고 백업 1-2번으로 두루 활약했으며, 시즌 후반에는 밴 엑셀과 나란히 스타팅으로 출전하기도 했죠. 이후 그는 밴 엑셀, 에디 존스 등 젊은 가드들에게 점점 자리를 내주며 팀 내 입지가 줄어들었고, 급기야 95-96시즌을 마치고는 재계약 오퍼를 받지 못한 채 FA가 되어 레이커스를 떠났습니다. 96-97시즌에는 잠시 휴스턴 로케츠에 몸담기도 했던 그는 이후 유럽 리그를 전전하며 커리어를 마쳤죠. 현재 그는 호주에 정착해 유소년 농구 교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PG 5th : #_9  Nick Van Exel

 

 

 

신시내티 대학 출신의 닉 밴 엑셀은 기량은 훌륭했으나 멘탈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으며 93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로 밀려나 전체 37번으로 L.A 레이커스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루키 시즌부터 그 실력을 인정받아 베테랑 포인트가드 시데일 쓰리트를 백업으로 밀어내고 붙박이 1번으로 자리 잡았으며, 평균 13.6득점, 5.8어시스트의 성적으로 올-루키 세컨드 팀에도 선발되었죠. 그는 2년차 때인 94-95시즌에 한층 더 물오른 기량을 선보이며 평균 16.9득점, 8.3어시스트를 기록했고, 플레이오프에서는 평균 20득점, 7.3어시스트로 팀 공격을 주도하며 레이커스를 2라운드까지 이끌었습니다.

 

그는 “닉 더 퀵”이라는 별명답게 전광석화 같은 스피드로 코트를 누볐으며, 뛰어난 패싱 감각을 지닌 영리한 플레이메이커였죠. 또한 한 번 터지면 못 말리는 폭발적인 외곽 슈터였으며, 클러치 상황에서도 전혀 동요하지 않는 강심장이었습니다. 다만 순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성격은 몹시 다혈질이었는데, 한번은 흥분해서 심판을 작정하고 밀어버리는 바람에 7경기 출장 정지를 당하기도 했죠. 성격이 그렇다 보니 감정 컨트롤이 잘 안 되어 종종 플레이에 기복을 보이기도 했고, 수비력도 썩 좋지 못했습니다.

 

90년대 중반에 레이커스는 그와 에디 존스, 세드릭 세발로스 등을 앞세워 화려한 공격 농구를 펼쳤는데, 레이커스 팬들에겐 80년대 리그를 주름잡던 “쇼-타임 레이커스”의 향수를 잠시 불러일으키기도 하였죠. 한편 에이즈로 은퇴했던 레전드 포인트가드 매직 존슨이 95-96시즌 도중에 깜짝 현역 복귀를 했는데, 당시 1번 스팟에는 밴 엑셀이 떡하니 버티고 있었기에 천하의 매직도 파워포워드를 보아야 했습니다. 그는 97-98시즌에는 생애 첫 올스타에 뽑히는 영광을 안았는데, 그해 레이커스에선 무려 4명의 올스타를 배출하였죠. (그와 샤킬 오닐, 코비 브라이언트, 에디 존스) 한편 그는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 무릎 부상을 당하며 잠시 결장했는데, 복귀 후에는 2년차 신예 데릭 피셔에게 스타팅 자리를 내주고 벤치로 내려가고 말았습니다. 이에 불만을 품은 그는 돌출 행동을 보이며 팀과 갈등을 일으켰고, 결국 오프시즌에 토니 바티+터란 루와 트레이드되어 덴버 너게츠로 이적했죠. 이후 그는 덴버, 달라스 등지를 전전하며 05-06시즌까지 현역으로 뛰었습니다. 은퇴 후에 지도자의 길을 밟은 그는 애틀란타, 밀워키 등 여러 팀의 어시스턴트 코치를 지냈으며, 가장 최근인 18-19시즌까지는 멤피스 그리즐리스에서 어시스턴트 코치로 재임했습니다.


 

 

PG 4th : #_2  Derek Fisher

 

 

 

아칸소 리틀 락 대학 출신의 데릭 피셔는 96 드래프트에서 전체 24번으로 L.A 레이커스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그는 커리어 초창기에는 주로 백업 1번으로 뛰었으나, 98년과 99년 플레이오프에서는 스타팅으로 활약하기도 했죠. 98-99시즌을 마치고 레이커스와 7년 25mil 가량의 장기계약을 체결한 그는 99-00시즌에 첫 우승을 맛보았습니다. 그는 이듬해 발 부상으로 정규 시즌에는 20경기를 뛰는 데 그쳤으나, 플레이오프에서는 평균 13.4득점에 51.5%의 고감도 3점슛을 터뜨리며 팀의 백-투-백 우승에 톡톡히 기여했죠. 01-02시즌에 그는 린지 헌터와 번갈아 가며 스타팅을 맡았다가 플레이오프에서는 붙박이 주전으로 올라서며 3연속 우승을 경험했습니다.

 

02-03시즌에는 풀-타임 주전으로 활약했다가 03-04시즌에 게리 페이튼의 합류로 다시 백업으로 내려간 그는 그해 플레이오프에서 역사에 길이 남는 퍼포먼스를 남겼죠. 서부 컨퍼런스 세미-파이널에서 레이커스는 디펜딩 챔피언 샌안토니오 스퍼스를 만나 시리즈 전적 2-2로 팽팽히 맞선 채 5차전을 맞았습니다. 그런데 경기 종료 불과 0.4초를 남기고 한 점 차로 뒤지던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공을 이어받은 피셔가 던진 슛이 그대로 림에 빨려 들어가며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었고, 그 여세를 몰아 6차전까지 잡으며 시리즈를 가져갔죠. 당시 그의 클러치 슛은 지금도 “어부샷”이라 불리며 인구에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는 커리어 초반에는 여느 포인트가드와 다름없는 볼 소유 많은 1번이었으나, 이후 트라이앵글 오펜스에 스스로를 맞춰가며 스팟-업 슈터 및 수비수로서 롤을 수행했죠. 특히 그는 플레이오프 같은 큰 무대에서 수차례나 귀중한 클러치 샷을 터뜨리며 강심장의 면모를 과시했습니다. 그는 발이 느린 편이라 빠른 가드를 상대할 때에는 종종 약점을 드러내기도 했으나, 공격자 파울 유도를 영리하게 잘 했고 피지컬이 좋아 자신보다 큰 선수들도 잘 막아낼 수 있었죠. 또한 리더쉽이 뛰어나 동료들로부터 두터운 신망을 얻었으며, 선수협 회장직도 오랫동안 역임했습니다.

 

그는 03-04시즌을 마치고 FA가 되자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와 계약하며 (6년 37mil) 레이커스를 떠났다가 유타 재즈 소속이던 2007년에 남은 계약을 파기하고 방출되었는데, 당시 희귀 안질환을 앓고 있던 딸의 원활한 치료를 위해 대도시 팀에서 뛰기를 바랐기 때문이었죠. 결국 그는 07-08시즌을 앞두고 대도시 L.A에 소재한 레이커스에 다시 합류했습니다. 친정팀 복귀 후 붙박이 주전 포인트가드로 중용된 그는 09년과 10년 파이널에서 멋진 클러치 샷들을 터뜨리며 레이커스의 백-투-백 우승에 크게 기여했죠. 11-12시즌 도중에 트레이드로 다시 레이커스를 떠난 그는 이후 오클라호마, 달라스 등지에서 뛰며 13-14시즌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그는 은퇴 후 곧바로 뉴욕 닉스의 감독으로 부임했다가 15-16시즌 도중 해고되었으며, 현재는 WNBA의 L.A 스파크스(Sparks) 팀의 감독으로 재직 중이죠. 레이커스에서만 5번의 우승을 맛본 그는 플레이오프에서 총 259경기를 뛰며 르브론 제임스에 이어 역대 통산 2위에 올라 있습니다.


 

 

PG 3rd : #_22  Slater Martin

 

 

                

※ 리바운드는 50-51시즌부터 집계되어 총 417경기, 출전시간과 PER는 51-52시즌부터 집계되어 총 349경기로 그 값을 산출함

 

텍사스 대학 출신의 슬레이터 마틴은 1949년에 대학을 졸업한 뒤 프로로 진출하지 않고 석유회사인 필립스사에 취직해 아마추어 리그인 AAU에서 농구를 계속하길 바랐습니다. (당시 필립스사 산하 농구팀인 필립스 66ers는 아마추어 최강팀이었죠.) 하지만 필립스사는 그에게 사무직 근무를 명했기에 결국 그는 미네아폴리스 레이커스의 오퍼를 받아들이며 프로로 진출하게 되었죠. 그는 루키였던 49-50시즌에는 베테랑 포인트가드인 험 쉐이퍼의 백업으로 뛰며 첫 우승을 맛보았고, 2년차인 50-51시즌부터는 쉐이퍼의 은퇴로 팀의 주전 1번 자리를 맡게 되었습니다.

 

당시 레이커스에는 최강 센터 조지 마이칸을 비롯해 짐 폴라드, 번 미켈슨 등 프론트 코트가 워낙 쟁쟁했기에, 가드들의 주 역할은 이들에게 골밑으로 원활히 볼을 공급하고 상대 가드들을 잘 수비하는 것이었는데 마틴은 이에 최적화된 가드였죠. 그는 비록 신장은 5-10에 불과했지만 워낙에 스피드가 빠르고 투지가 넘쳐 매치-업 상대를 늘 끈덕지게 물고 늘어졌습니다. 그는 당대 최고의 백코트 수비수로 이름을 날렸는데, 특히 보스턴 셀틱스의 밥 쿠지와의 맞대결은 창과 방패의 대격전이었죠. 그는 자신보다 큰 선수들 앞에서도 전혀 굴하지 않는 터프가이였으며, 탁월한 라커룸 리더였습니다. 또한 그는 준수한 중장거리 슈팅력도 지니고 있었으며, 영리한 플레이메이커이기도 했죠.

 

레이커스는 50-51시즌에는 우승을 놓쳤으나 이후 내리 3연패를 하며 리그를 주름잡았습니다. 마틴도 리그 최강팀의 주전 가드답게 52-53시즌부터 꾸준히 올스타에 선발되었죠. 한편 53-54시즌을 끝으로 마이칸이 은퇴하고, 54-55시즌부터는 리그에 24초 샷클락이 도입되어 경기 템포가 한층 빨라짐에 따라, 마틴의 공격 롤도 이전보다 크게 늘어났습니다. 그는 본래 평균 9득점, 3어시스트 정도를 올려주곤 했는데, 54-55시즌에는 평균 13.6득점, 5.9어시스트(리그 5위)로 스탯이 훌쩍 뛰었죠. 이제는 전문 수비수가 아닌 공수겸장으로 인정받게 된 그는 그해 올-NBA 세컨드 팀에도 선발되었습니다. 이듬해인 55-56시즌에도 그는 평균 13.2득점, 6.2어시스트(리그 3위)를 기록했으며, 2년 연속 올-NBA 세컨드 팀에도 뽑혔죠.

 

하지만 그는 레이커스 구단이 자신에게 제대로 된 대우를 해주지 않는다며 불만을 터뜨렸고, 연봉을 원하는 만큼 올려주지 않으면 은퇴도 불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결국 레이커스는 56-57시즌을 앞두고 울며 겨자 먹기로 그를 뉴욕 닉스로 트레이드했으며, 대신 7풋 센터인 월터 듀크스를 데려왔죠. 이윽고 세인트루이스 호크스로 팀을 옮긴 그는 57-58시즌에 호크스를 우승으로 이끌기도 했습니다. 59-60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그는 ABA에서 잠깐 감독직을 맡기도 했으며, 1982년에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습니다. 한편 레이커스 구단은 2002년에 그를 비롯해 마이칸, 미켈슨, 폴라드 등 과거 미네아폴리스 시절 레전드들의 등번호를 결번보다 한 단계 낮은 아너드 넘버(Honored Numder)로 지정하기도 했죠. 그는 2012년에 86세를 일기로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PG 2nd : #_10  Norm Nixon

 

 

 

듀케인 대학을 나온 놈 닉슨은 77 드래프트에서 전체 22번으로 L.A 레이커스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루키 시즌부터 주전 포인트가드로 자리를 잡은 그는 평균 13.7득점 6.8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올-루키 퍼스트 팀에도 선발되었죠. 2년차 때인 78-79시즌에는 한층 향상된 기량을 선보이며 평균 17.1득점, 9어시스트(리그 3위), 2.5스틸(리그 2위)을 기록한 그는 이후로도 꾸준히 매 시즌 평균 17득점 8어시스트 가량을 올려주었습니다. 그는 발군의 스피드를 바탕으로 코트를 질주하곤 했으며, 영리하면서도 이타적인 플레이메이커였죠. 또한 미드-레인지에서 제법 정교한 슈팅력을 자랑했고 수비력도 탄탄한 편이었습니다. 이처럼 그는 포인트가드로서 지녀야 할 덕목을 골고루 갖추고 있는, 별다른 약점이 없는 선수였죠. 다만 3점슛이 리그에 도입되기 이전부터 뛴 지라 따로 3점슛 능력은 장착하지 않았습니다.

 

79-80시즌부터 그는 슈퍼 루키 매직 존슨과 볼 소유를 나누어가며 뛰었는데, 두 선수 모두 리그 최고의 플레이메이커로서 시너지를 내며 그해 우승을 합작했죠. 이 둘이 함께 이끄는 레이커스의 공격은 상대 팀에겐 마치 머리가 둘 달린 용을 상대로 싸우는 것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는 81-82시즌에는 평균 17.6득점, 8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올스타에 뽑혔고, 그해 플레이오프에서는 팀 내에서 가장 높은 평균 20.4득점(카림 압둘-자바와 같은 수치)을 올리며 우승에도 톡톡히 기여했죠.

 

그런데 정작 그의 파트너 매직 존슨은 그와 함께 두 번이나 우승을 일궈냈음에도 자신이 1번 포지션을 맡아 볼을 독점하고픈 욕심에 그를 트레이드하도록 구단에 영향력을 행사했죠. 결국 83-84시즌을 앞두고 레이커스 구단은 그와 에디 조던, 2장의 2라운드 픽을 샌디에이고 클리퍼스에 보내는 대신에 바이런 스캇과 스웬 네이터를 데려왔습니다. 83-84시즌에 그는 클리퍼스에서도 올스타에 뽑히고 매직에 이어 리그 어시스트 2위(평균 11.1개)에 오르는 등 여전한 활약을 이어갔지만, 안타깝게도 불의의 무릎 부상과 아킬레스 건 부상을 잇달아 당하며 두 시즌을 통째로 날리고 말았죠. 결국 운동능력을 상실한 그는 88-89시즌을 끝으로 NBA를 떠나 이탈리아 리그에서 커리어를 마쳤습니다. 그는 은퇴 후 스포츠 에이전트, 사업가, 방송인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유명 뮤지컬 배우인 데비 앨런의 남편이기도 합니다.


 

 

PG 1st : #_32  Earvin "Magic" Johnson

 

 
 

미시건 주립 대학 시절 장신 포인트가드로 이름을 날린 매직 존슨은 모교를 NCAA 우승으로 이끈 뒤 79 드래프트에서 전체 1번으로 L.A 레이커스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당시 레이커스는 플레이오프 권의 강팀이었지만, 76년에 간판스타 게일 굿리치가 FA가 되어 뉴올리언스 재즈로 이적할 때 보상으로 받은 미래의 1라운드 픽이 1픽이 되면서 운 좋게 매직을 뽑을 수 있었죠. 그런데 이미 레이커스의 주전 포인트가드 자리에는 놈 닉슨이 버티고 있었기에 그는 커리어 초반에는 자신이 원하는 1번이 아닌 2번 포지션에서 뛰어야 했습니다.

 

루키 시즌부터 화려한 플레이로 팬들의 눈을 사로잡으며 올스타 주전으로도 뽑힌 그는 평균 18득점, 7.7리바운드, 7.3어시스트의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지만, 아쉽게도 신인왕은 대학 시절부터 라이벌이었던 래리 버드에게 내주어야 했죠. 한편 그해 플레이오프에서 파이널에 오르며 필라델피아 76ers와 격돌한 레이커스는 5차전 승리로 시리즈 3-2의 리드를 잡았지만, 에이스 카림 압둘-자바가 발목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결국 자바를 대신해 루키인 매직이 6차전에 땜빵 선발 센터로 출장했는데, 42득점 15리바운드 7어시스트의 놀라운 퍼포먼스를 펼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고 파이널 MVP까지 차지했죠. 1969년에 파이널 MVP가 제정된 이후, 루키가 이 상을 받은 케이스는 매직이 유일합니다.

 

그는 이듬해인 80-81시즌에는 무릎 부상으로 시즌의 절반 이상을 날리며 (37경기 출전) 주춤했고, 81-82시즌에는 본인 스타일과 정반대인 지공 위주의 농구를 펼치려는 폴 웨스트헤드 감독과 심각한 갈등을 벌이게 되었죠. 결국 제리 버스 구단주는 웨스트헤드를 경질하고, 매직 지지파였던 어시스턴트 코치 팻 라일리를 후임으로 앉히며 그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팬과 언론으로부터 감독을 내쫓은 건방진 선수로 낙인찍혀 많은 비난에 시달려야 했죠. 이런 트러블 속에서도 그는 평균 18.6득점, 9.6리바운드, 9.5어시스트, 2.7스틸(리그 1위)로 거의 평균 트리플-더블에 육박하는 놀라운 활약을 펼쳤습니다. 또한 그해 팀을 우승으로 이끌고 재차 파이널 MVP까지 차지하며 그를 향한 비난들을 다소 꺾을 수 있었죠. 한편 82-83시즌을 마치고 레이커스가 놈 닉슨을 트레이드함에 따라 매직은 그토록 원하던 풀-타임 포인트가드 롤을 맡아볼 수 있게 되었는데, 이 트레이드의 이면에도 그의 입김이 상당히 작용했습니다. 팀의 리딩을 독점하게 된 그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농구를 선보일 수 있었고, 어시스트 수치도 이에 따라 급증했죠. (닉슨 트레이드 전(4시즌) : 평균 9어시스트 ⇒ 트레이드 후(7시즌) : 평균 12.4어시스트)

 

6-9의 신장으로 포인트가드로선 초 장신이었던 그는 신장의 우위를 잘 살려 매치-업 상대를 포스트-업으로 농락하곤 하였으며, 골밑에서 웬만한 빅맨 못지않은 훅 슛 마무리 능력을 자랑했습니다. 또한 신장 대비 최상급의 볼-핸들링과 스피드, 유연성을 바탕으로 한 날카로운 돌파로 코트를 헤집었죠. 그는 중장거리 슈팅력은 그다지 뛰어나진 않았지만 자유투는 상당히 정교했으며, 커리어 말년에는 제법 3점슛을 익혀서 공격 옵션으로 써먹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4시즌 동안 3점슛 성공률 평균 34.6%) 무엇보다도 그의 최대 장점은 놀라운 코트-비전으로, 그는 마치 사방에 눈이 달린 듯 기상천외한 노-룩 패스를 선보이며 팬들의 눈을 사로잡았죠. 또한 신장의 이점을 잘 살린 리바운드 능력도 발군이었는데, 그가 수비 리바운드를 따내면 속공을 좀 더 빨리 전개할 수 있는 장점도 있었습니다. 그는 이러한 올-라운드한 능력과 화려한 플레이스타일을 바탕으로 80년대 레이커스의 “쇼-타임” 농구를 이끌며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죠. 수비면에서 그는 패싱 루트 차단에 능해 스틸 능력만큼은 발군이었지만, 신장이 워낙 커서 상대의 발 빠른 1번을 막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상대 1번 수비는 주로 바이런 스캇이나 마이클 쿠퍼같은 다른 가드들이 전담하고, 대신 그는 주로 2, 3번 포지션을 막곤 했죠. 그는 코트 안팎에서는 늘 온화한 미소를 선보였지만 속으로는 냉철한 면모를 갖춘 승부사였으며, 역대 가장 BQ가 높았던 선수로도 손꼽히고 있습니다.

 

80년대에 그가 이끄는 레이커스와 래리 버드가 이끄는 보스턴은 최고의 라이벌리를 형성했는데, 두 팀은 84, 85 파이널에서 잇달아 만나며 서로 한 번씩 우승을 주고받았죠. (84년-보스턴, 85년-레이커스) 이후 86-87시즌에 그는 한층 향상된 득점력을 뽐내며 평균 23.9득점 6.3리바운드, 12.2어시스트(리그 1위)로 생애 첫 시즌 MVP에 등극했습니다. 그해 파이널에서 레이커스는 다시금 보스턴과 맞닥뜨렸는데, 매직은 4차전 종료 직전에 이른바 “주니어 스카이-훅 슛”이라 불리게 되는 역전 슛으로 팀의 1점차 승리를 이끄는 등 시리즈 내내 놀라운 활약을 이어갔죠. 결국 파이널에서 평균 26.2득점, 8리바운드, 13어시스트를 올린 그는 생애 네 번째 우승 및 세 번째 파이널 MVP의 영광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파이널에서는 “배드 보이즈” 디트로이트 피스톤즈를 누르고 첫 리핏도 달성했죠. 88-89시즌에 그는 평균 22.5득점 7.9리바운드, 12.8어시스트, 91.1% 자유투성공률(리그 1위)로 두 번째 시즌 MVP를 차지했지만, 아쉽게도 파이널 도중에 햄스트링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디트로이트에게 우승을 내주며 쓰리핏에는 실패했습니다. 89-90시즌에 평균 22.3득점, 6.6리바운드, 11.5어시스트를 기록하며 2년 연속 MVP에 등극한 그는 이듬해인 90-91시즌에 레이커스를 다시 파이널로 이끌었지만 마이클 조던의 시카고 불스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죠.

 

한편 시즌을 마친 후 그는 자신이 HIV 바이러스에 양성반응을 보인 사실을 공표하며 충격적인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팬 투표로 92년 올스타에 주전으로 뽑혀 올스타전을 뛰고 MVP에도 올랐으며,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는 원조 “드림팀” 멤버로도 활약했죠. 이후 다시 코트를 떠난 그는 93-94시즌 말미에 잠시 친정팀 레이커스의 감독으로 부임해 5승 11패의 성적을 낸 뒤 감독직에서 물러났습니다. 그리고 2년 뒤인 95-96시즌에는 현역 선수로 깜짝 복귀하기도 했죠. 그런데 당시 팀에는 이미 닉 밴 엑셀이란 창창한 포인트가드가 있었기에 그는 주로 4번 포지션에서 뛰어야 했습니다. 그는 종종 예의 날카로운 패싱 감각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오랜 공백과 세월의 무게는 어쩔 수 없었고, 그의 복귀를 달가워하지 않은 젊은 선수들(밴 엑셀, 세드릭 세발로스)과 갈등까지 벌어졌죠. 결국 32경기에서 평범한 활약(평균 14.6득점, 5.7리바운드, 6.9어시스트)에 그친 그는 재차 은퇴를 선언하며 현역에서 완전히 물러났습니다.

 

그는 질병으로 인한 조기 은퇴 때문에 13시즌을 뛰는 데 그쳤지만 3번의 시즌 MVP와 파이널 MVP, 5번의 우승이란 위업을 달성했으며, 무려 9번이나 팀을 파이널에 올렸습니다. 그밖에도 12번의 올스타, 10번의 올-NBA 팀(퍼스트: 9회, 세컨드: 1회)에 선발되었고, 통산 평균 어시스트 부문에서도 1위(11.2개)를 고수하며 단연 역대 최고의 포인트가드로 군림하고 있죠. 또한 최고의 올-라운드 플레이어답게 138회의 트리플-더블(오스카 로벗슨, 러셀 웨스트브룩에 이어 역대 3위)을 기록했습니다. 그의 등번호인 #32는 1992년에 레이커스에서 영구 결번되었으며, 2002년에는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되었죠. 그는 2차 은퇴 후 놀라운 사업 수완을 발휘하여 사업가로서 크게 성공했으며, 철저한 건강관리를 통해 에이즈도 상당히 극복해 낸 상태입니다. 또한 스포츠 오너쉽에도 관심이 많아 2010년까지 레이커스의 공동 구단주로 참여한 적이 있으며, 현재는 MLB의 L.A 다저스와 WNBA의 L.A 스파크스(Sparks)의 공동 구단주이기도 하죠. 2017년에는 레이커스의 농구단 사장으로 부임하여 팀 운영에 참여하다가 2년 뒤에 사임했습니다.


 

Epilogue           

 

 

레이커스 프랜차이즈의 PG 랭킹 1위는 이론의 여지 없이 모두가 예상하는 대로 바로 그 선수였습니다. 특히 레이커스의 PG는 타 포지션에 비해 1위와 그 아래의 격차가 좀 큰데요, 놈 닉슨도 훌륭한 선수였지만 앞으로 소개될 타 포지션의 2위들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무게감이 덜하죠. 또한 매직 존슨 외에 올-NBA 팀 경력이 있는 선수도 슬레이터 마틴 하나에 불과할 정도로 전반적인 뎁쓰도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데, 이는 제리 웨스트의 영향이 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웨스트는 커리어 동안 1번과 2번 포지션을 두루 오간 전형적인 듀얼가드이고 두 포지션에서 거의 비슷하게 출장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1번으로 제법 뛰었어도 결국 최종 포지션은 2번으로 정해졌기에, 그가 1번으로 뛴 여러 시즌의 활약상이 본 랭킹에서는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고, 그래서 그만큼 뎁쓰에 공백이 생기지 않았나 싶습니다. 웨스트의 포지션 논란에 대해서는 다음 SG편에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본 편에서 가장 고민했던 랭킹이 바로 3위와 4위였습니다. 슬레이터 마틴도 워낙 훌륭한 레전드지만 데릭 피셔가 레이커스에서 13년을 뛰며 남긴 누적과 5번의 우승이라는 위업도 만만치 않아서... 다만 마틴도 4번 우승을 맛보았고 비록 피셔만큼 오래 뛰지는 않았지만 선수 자체의 클래스가 올스타, 올-NBA급이라는 데에서 피셔와는 구분되는 지점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당대 최고의 퍼리미터 디펜더로서 그의 수비력은 비록 스탯, 수상경력에는 남지 않았지만 별도로 높게 평가해야 할 요소기도 하고요. 아마도 두 선수의 랭킹 우열은 여러 주관적 관점에 따라 달리 볼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

 

8위인 핫 로드 헌들리의 경우, 그 아래에 랭크된 루셔스 알렌이나 아치 클락보다 더 나은 선수인가에 대한 의문이 충분히 제기될만 합니다. 이들보다 좀 더 오래 뛰긴 했지만 내실에서 차이가 좀 나죠. 다만 워낙에 개성이 넘치던 선수라서 당대에도 실력 이상으로 화제가 되고 인기를 끈 케이스인데, 그래서 두 번의 올스타 경력이 있는 것이 평가에서 약간의 프리미엄으로 작용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또한 알렌과 클락이 너무 짧은 기간만 거쳐 가기도 했고요.

 

아래 랭킹에서 아마 이 선수는 어디쯤 있지? 하고 찾는 분들도 계실텐데, 바로 “볼드 맘바” 알렉스 카루소는 본래 레이커스에서 1번으로 활약을 시작했지만 근래에는 2번으로 나오는 시간이 크게 늘면서 현재는 SG 포지션으로 분류가 되어 있습니다. 설령 1번으로 분류가 되었어도 아직 누적이나 평균 스탯 수치가 그리 높지는 못해 랭킹에 들기는 무리기도 하고요.

 

라존 론도가 아쉽게도 팀을 떠나면서 현역 중에는 현재 랭커가 없어졌는데, 이번에 새로 합류한 데니스 슈뢰더가 오클라호마시티 시절 만큼의 활약만 보여주어도 1년 만에 20위권 내로 충분히 진입이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단 1시즌만, 그것도 조금은 아쉬운 활약을 남긴 게리 페이튼이 18위에 랭킹된 것만 보더라도요. 지난 시즌부터 1번으로 많이 나오고 있는 켄타비우스 칼드웰-포프는 그래도 여태껏 2번으로 뛴 시간이 제법 되어서 당분간은 SG 랭킹에 계속 머물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럼 이것으로 PG편은 마무리를 하고 다음에는 SG편으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가급적이면 시즌 개막 전에 C편까지 다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 앞으로 부지런히 업로드를 해야 할 것 같네요.

 

Special Thanks to...

 

아래는 본 글 작성에 많은 도움을 준 사이트 등의 정보입니다.

 

www.basketball-reference.com

 

en.wikipedia.org/wiki

 

www.prosportstransactions.com/basketball (선수 이적, 계약, 부상 관련 방대한 정보 망라)

 

82games.com (제가 애용하고 신뢰하는 play-by-play 정보 사이트)

 

《The Los Angeles Lakers Encyclopedia》 (레이커스 역사에 대한 여러 정보가 담긴 책입니다. 구글의 도서 검색을 통해 참고했습니다.)

 

lakersnation.com (레이커스 팬이시라면 한 번쯤은 방문해봤을 그곳)

 

peachbasketsociety.blogspot.com (NBA의 고대 역사에 대한 귀한 정보가 담긴 곳입니다.)

 

 | https://www.nba.com/… (공홈의 레이커스 공식 사이트)

 

www.google.com

 

그 외 일일이 열거하지 못하는 여러 사이트, 도서들...

 

 

 
이 게시물은 아스카님에 의해 2020-12-17 14:59:00'NBA-Talk' 게시판으로 부터 이동되었습니다.
22
Comments
2020-12-17 03:22:58

굉장하다는 말로도 부족한것같네요. 존경스럽습니다.

2020-12-17 04:28:49

 감사합니다!! 과거 NBA역사에 관한 허슬플레이어님의 식견에는 매번 감탄이 나옵니다. 시간 날때 종종 과거 글들도 잘 읽어보겠습니다. 구독료를 내지 못해 죄송할 따름입니다.

2020-12-17 04:34:01

새벽에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매니아진에 전에 쓰신 연재글들도 시간 날때마다 읽어봐야겠어요. 고맙습니다!

2020-12-17 06:07:11

이 정도 퀄리티의 글은 책으로 내셔도 될 것 같습니다!

Updated at 2020-12-17 06:56:32

대단하십니다. 많이 배우고 갑니다...

2020-12-17 08:39:24

닉더퀵을 여기서 보니 더 반갑네요. 부동의 1위는 역시나 또다른 그 분일테고. 

양질의 게시글 감사드립니다.

2020-12-17 08:58:43

 

이런글 너무 감사합니다. 잘봤어요~~

2020-12-17 09:22:25

 감사합니다. 잘봤습니다.

2020-12-17 10:30:37

복귀작이군요.

2020-12-17 11:13:53

왜 책을 여기다 옮겨두셨죠? 해적판인 듯.

너무너무 잘 읽고 있습니다.

2020-12-17 15:12:19

정말 이건 뭐죠? 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글이네요. 대단하십니다.

2020-12-17 16:16:15

항상 좋은 글 좋은 댓글 감사드립니다

2020-12-17 16:31:14

와... 이정도면 책으로 내야될 퀄리티 아닌가요..?! 너무 감사합니다!

2020-12-17 20:43:53

선추천 후
천천히 감상하겠습니다.

2020-12-18 09:57:59

한권의 책이네요.. 시간이 많지 않아 두고두고 읽어보려 합니다.

2020-12-18 13:59:52

기다리고있었습니다 선추천 선댓글 하고 천천히 읽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0-12-18 15:39:01

허슬님~ 이 글이 올라오길 오매불망 기다렸는데 드디어 올려주셨군여
글의 퀄리티는 여전하십니다!! 이번 레이커스 편도 빼놓지 않고 다 보겠습니다~
그리고 진짜 가능하시다면 책으로 출간해주세요
무조건 사겠습니다

2020-12-19 15:28:18

역시 박사님
감사합니다.

2020-12-22 01:28:51

매니아의 백과사전 허슬 플레이어 님. 글 너무 재밌게 잘 읽고 갑니다.

 

한가지 순서가 바뀐 게 있어서 말씀드리면, 09년은 올랜도를 상대로 우승했고, 10년에 보스턴과의 혈투 끝에 리벤지를 해냈습니다. 당연히 아시겠지만 잠깐 순서를 헷갈리신 것 같습니다.

WR
1
2020-12-22 01:35:37

앗 네 지적 감사드립니다.  정신 없다보니 깜빡 헷갈렸던 것 같네요. 덕분에 다시 수정했습니다.

2020-12-22 17:16:31

너무 재밌게 잘봤습니다!!!!!

2020-12-27 15:53:16

이 시리즈를 고3때 야자 쉬는시간에 봤었는데 어느덧 시간이 꽤나 흘렀네요 다시 볼 수 있어서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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