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커스vs휴스턴 1차전 감상평
15점차. 털렸습니다. 탐색전? 당연히 그런 거 전혀 아니고요. 7차전까지 갔다온 상대가 하루 쉬고 왔는데 거진 일주일 쉰 선수들은 병든 닭 마냥 에너지 없이 플레이하다 오히려 따인 경기입니다. 정신적으로 실력적으로 완전히 패배한 경기지요.
보겔과 르브론, 데이비스의 인터뷰를 보니 필름 세션을 통해 공수에서 휴스턴의 속도가 빠른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로 빠를 줄은 몰랐다며 보는 것과 직접 느끼는 것은 다르다는 이야기와 너무 많은 턴오버로 점수를 내줬다는 (Points off turnover - 12대27) 이야기를 했습니다. 연구를 통해 2차전은 더 제대로 준비하겠다는 이야기도 했고요.
오늘 경기는 고민거리가 참 많은 경기였다고 생각하는데요. 일단 하든에 대한 수비부터 이야기를 하자면, 보겔 감독은 시즌 내내 모리볼류 선수들에게 Weak 디펜스를 사용하며 공격수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유도하며 3점은 억제하는 방식을 선호해 왔는데요, 대표적으로 릴라드(오), 돈치치(오), 그리고 오늘 하든도 오른쪽이었습니다. 낮에 매냐 여론을 보니 가드들이 하든 수비를 못해서 돌파 다 내주고 탈탈 털렸다는 글이 많았는데 사실은 그것과 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오클라호마와 비교하면, 오클은 돌트를 위시로 하든에게 정면각을 유지하며 우직한 1:1을 유도했다면(스텝백을 쏘든 돌파를 하든 뭘 하든 할 수 있음 해봐라), 레이커스는 반대로 오른쪽 길을 다소 열어두며 당신이 좋아하는 3점은 쏘지 마시고 안으로 들어가서 플로터를 쏴주세요 식으로 나간 겁니다. 그래서 가드들이 하든한테 돌파길 내주며 탈탈 털린 것처럼 보인 것인데 사실 진짜 문제는 가드들이 아니라 안에서 헬프 들어가야 하는 선수들이 자신이 들어가야 하는지 멍 때리거나 한발짝씩 늦어서 이지 레이업을 내주거나 파울을 많이 준 것입니다. 보겔 감독은 경기 전에 하든이 자유투 라인에 자주 서는 일이 없도록 수비해야 한다고 밝혔는데, 그것이 전혀 지켜지지 않은 것이죠. 하든은 전반에만 11개의 자유투를 쏴 9개를 넣고, 11개의 야투를 던져 7개를 넣어 25득점을 올리며 자신과 돌트의 이름을 드높혔습니다.
하도 털리니까 후반에 레이커스는 하든에 대한 수비를 조정해서 트랩을 써서 하든이 공을 갖지 못하게 하는 방식으로 바꿨는데요. 이때부터 하든이 포함된 휴스턴 라인업에 대한 수비는 나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든 후반 11점) 보겔 감독도 인터뷰에서 후반의 수비력은 괜찮았으나 공격에서 리듬을 찾지 못했다고 했으며 특히 4쿼터 공격이 문제라고 했고요. 하든은 전반에 118의 공격 레이팅을 기록했으나 후반에는 70.6 의 공격 레이팅을 기록했으니, 후반에 하든이 포함된 라인업을 상대로 레이커스의 수비는 매우 성공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반에 하든한테 그렇게 점수를 많이 내줬음에도 점수차는 얼마 나지 않았고 후반에는 하든을 잘 막아냈는데, 그럼 도대체 왜 후반에 탈탈 털렸는가?
바로 오스틴 리버스와 에릭 고든, 제프 그린, 터커, 웨스트브룩이 이끄는 세컨 유닛 싸움에서 압도당해서 그렇습니다. 레이커스는 이들이 펼치는 스피드한 농구를 전혀 감당해내지 못했고, 휴스턴 선수들은 트랜지션과 연속된 드라이브 앤 킥으로 좋은 찬스를 만들며 레이커스를 유린했습니다. (르브론의 속도전에서 패배했다는 인터뷰도 아마 이 시점을 염두에 두고 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레이커스는 카루소의 파울 트러블로 백코트 수비력이 약해지기도 했고 또 그 시점에 나온 쿠즈마, 론도, 마키프, 하워드 등이 그들의 속도를 전혀 제어하지 못했습니다. 레이커스는 하든이 없던 그 시점에 -12점의 마진을 기록하며 15점차로 끌려가게 됩니다. 그 후 대략 6분 정도의 공방을 벌이지만 점수차는 좁혀지지 않았고 그대로 경기는 끝났습니다.
쟁점 몇가지
1. 론도 기용이 답인가?
일단 오늘 패배가 론도 때문만은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하겠습니다. 론도뿐만 아니라 팀 전체의 패배입니다. 다만 론도가 아무리 비큐가 뛰어난 왕년의 명포인트가드라고 해도 현재는 3월부터 지금까지 쉬다 온 경기감각이 떨어져 있는 노장입니다. 오늘 같이 중요한 경기에서 레이커스 선수들 중 6번째로 많은 출장시간을 부여 받는 것이 팀에게 그리고 론도에게 좋은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카루소가 파울트러블에 걸려서 기존 플랜보다 더 많이 나온 것이 아닌가 추측되긴 합니다만)
특히 론도가 코트 위에 있을 때 레이커스는 스몰볼, 빅볼 할 거 없이 스페이싱에 제약을 받는 모습이 나왔는데요, 이 부분은 코칭스텝들이 반드시 고민을 해야 되는 지점입니다. 기껏 스몰볼 돌린다고 데이비스를 5번으로 세웠는데 휴스턴이 페인트존 패킹하고 르브론과 데이비스만 기다리고 있는 그림은 절대 달가운 그림은 아닙니다. 론도가 3점을 몇개 넣었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플로어에서 스페이싱을 잡아 먹는다는 것, 그리고 그게 르브론과 데이비스에게 족쇄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겁니다. 보겔 감독은 베테랑의 경험과 론도의 BQ를 매우 신뢰하는 모양인데 - 패배 후 인터뷰에서도 결국 론도는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코멘트 - 물론 저도 그러길 바라지만 현실적으로 시즌 내내 르브론, AD 와 코트 위에 있을 때 마이너스 마진을 기록했다는 점이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원래 러스가 론도 마크였는데 그냥 버리고 데이비스 쪽으로 붙어버리는 장면)
2. 원빅인가 투빅인가?
레이커스 팬들 사이에서 자주 나오는 이슈인데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도 원빅을 매우 선호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휴스턴 시리즈에선 좀 다를 수 있다는 주장이 (정확하게는 맥기 투빅의 시간을 대폭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현지 팬들 사이에서 만만치 않게 나오고 있고 저도 논지에 동의하는 편입니다. 일단 오늘 경기 넷레이팅을 살펴보면 유일하게 유의미한 플러스 넷 레이팅을 기록한 선수가 놀랍게도!!! 자베일 '마보이' 맥기입니다. 맥기는 전반과 후반 각각 모두 플러스 마진을 기록했습니다. 재밌는 건 휴스턴과의 시즌 3게임에서도 자베일 맥기는 넷 레이팅 +50.9 라는 매우 뛰어난 수치를 기록했다는 건데요. 휴스턴에게 1승 2패를 당한 레이커스 선수의 넷 레이팅이 온코트는 +23.5 면서 넷레이팅은 +50.9 라는 게 이례적이죠. 휴스턴에게는 맥기가 잘 통하는 카드일 수 있다는 힌트일 수 있습니다.
휴스턴 상대로 맥기의 출장시간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의 논거는, 첫째 휴스턴 선수들의 드라이브인 위협을 억제할 수 있는 뛰어난 샷 블락커, 둘째 하워드보다 (하워드는 휴스턴전 넷 레이팅이 안 좋습니다) 뛰어난 기동력으로 트랜지션 싸움에서 딱히 밀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휴스턴은 드라이브가 무서운 팀이기 때문에 투빅으로 드라이브를 억제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인데 이 때 중요한 점은 트랜지션에서 밀려버리면 오늘 경기 후반처럼 스몰볼의 스피드를 감당하지 못하고 털려버리니 센터 중 속도는 최상위권에 속하는 맥기가 통할 수 있다는 겁니다.
또 원빅을 썼을 때 휴스턴이 앤써니 데이비스의 마크맨을 윙이나 탑으로 끌어올려서 하든에게 가해지는 골밑 블락 위협을 줄이는 전략에도 투빅이 도움이 됩니다. 가령 밑의 장면이 만들어졌을 경우 데이비스가 네일 쪽에 위치해 있으니 골밑 헬프는 쿠즈마와 론도가 가야되는데 그렇다면 레이커스 빅맨의 수비력을 뽑아먹을 수가 없게 되는 거죠. 근데 여기에 만약 맥기가 있다면? 위크사이드 로우에 맥기가 있다가 헬프를 가서 하든에게 수비 위협을 줄 수 있게 됩니다.
사실 저도 뭐가 정답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원빅을 쓰면서 갈매기를 위크사이드 로우에 존을 형성해서 블락 위협을 계속 갖게 두고 나머지 선수가 오프볼 스위치로 막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거든요. 실제로 후반에 그런 장면이 종종 나왔습니다. 보겔 감독의 선택이 무엇일지 이틀 뒤가 정말 궁금해지고 코칭스텝들이 고민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3. 공격
아까 론도 문제와도 연관되고 또 우리 슛터들과도 연관되는 문제인데, 휴스턴은 기동력 좋은 윙사이즈 5명으로 구성된 팀이라 리커버리도 빠르고 헬프도 빠릅니다. 레이커스 같은 슛팅 고자팀 상대로는 페인트 존 당연히 패킹하고 대신 한발 더 움직여서 리커버 가겠죠. 오늘도 그랬고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이걸 파훼하려면 슛터들이 조금 더 슛을 잘 쏴주고 위크사이드에서 더 많은 움직임을 가져가야 됩니다. 오늘은 슛 성공률은 물론이거니와 위크사이드에서의 움직임도 얼어버렸더군요. 코칭스텝들이 더 신경을 써야되는 부분이라고 봅니다. AD를 보다 더 ON THE MOVE 속에서 활용하는 방법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같이 1대1 위주로만 돌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고요. 포틀랜드는 드랍백을 쓸 수 밖에 없는 팀이라 AD가 픽앤팝으로 마치 웜업샷 던지듯이 쉽게 쐈었는데 좋은 수비수들로 풀 스위치를 하는 휴스턴은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큰 걱정도 레이커스가 시즌 내내 스위치 디펜스를 잘하는 팀 상대로 고전했었다는 부분인데, 보겔 감독이 부디 잘 준비해오길 바랍니다. 저는 경험상 보겔 감독이 비디오 분석해서 준비해오는 것은 매우 신뢰할만 하다고 보는 입장이라 다음 경기를 기대해 보려고 합니다.
기록 몇가지
https://twitter.com/ESPNStatsInfo/status/1302097876437340160
르브론 제임스가 4쿼터에 0득점을 기록한 것은 세번째인데 나머지 두번은 2017 보스턴과의 컨파 3차전, 그리고 2011년 댈러스와의 4차전이었다고 합니다. 다음 경기는 캐리해주길. 3쿼터까진 좋았는데 4쿼터에 너무 소극적이었어요. 페인트 존 패킹됐다고 르브론마저 소극적으로 해주면 레이커스는 풀어나갈 방도가 없습니다.
https://twitter.com/ESPNStatsInfo/status/1302095728655896577
털보가 34분에 36점을 넣었는데 이번 시즌, 플옵 합쳐서 뛴 시간보다 득점을 더 많이 한 게 39번째이고, 이것은 샷 클락 에라 이후 윌트 채임벌린 (45회) 다음가는 기록이라고 합니다.
https://twitter.com/ESPNStatsInfo/status/1302093329686040577
하든과 러스가 60+ 득점을 합작했는데 이것은 이번 시즌 33번째라고. 그들이 60+ 득점을 할 때 27승 6패를 기록 중이라고 합니다. 상대팀이지만 둘 다 정말 멋있었어요. 다음판엔 살살 해줘요.
날카로운 리뷰글 정말 유익하게 읽었습니다.
하든이 너무 언터쳐블이라 보겔 감독이 하든에 대한 수비 방법을 뭐 하나 제대로 준비해온게 없나 라고 생각했는데, 말씀하신 수비형태였던거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