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드림팀 멤버에게 우승을 가져다 준 진짜 플루게임
1994~95 시즌이 시작되었을 때 포틀랜드의 클라이드 드렉슬러는 팀에게 자신의 트레이드를 요청했습니다. 32살의 드렉슬러는 포틀랜드에서만 12년째 시즌 맞는 프랜차이즈 스타플레이어로, 90년과 92년 팀을 NBA 파이널에 진출시켰고 91년에는 팀을 정규리그 1위의 성적으로 이끈 바 있었습니다. 자타공인 프랜차이즈 스타였지만 드렉슬러가 12년 동안 포틀랜드에서 받은 연봉은 평균 1백만 달러도 안됐습니다.
1990년 10월에 구단주 폴 앨런은 보상 차원에서 드렉슬러의 계약을 1년 연장하면서 95~96 시즌에 9백만 달러의 연봉을 책정한 바 있었습니다. 당시 기준으로 9백만 달러는 모두가 경악할 만한 액수였습니다. 그런데 포틀랜드가 94~95 시즌에 드렉슬러를 트레이드하면 다음 시즌에 9백만 달러를 그에게 줘야 할 의무가 상대팀으로 넘어갑니다. 그런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드렉슬러가 스스로 트레이드를 자청한 것은 기량이 더 이상 쇠퇴하기 전에 우승을 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92년 파이널 이후 그렉슬러는 내리막을 걷고 있었고 팀은 더 이상 우승 컨텐더가 아니었습니다.
드렉슬러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그 모든 시절을 휴스턴에서 보냈습니다. 드렉슬러의 후배이자 절친인 휴스턴 로켓츠의 아킴 올라주원은 드렉슬러가 휴스턴에 오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휴스턴의 팬들도 드렉슬러가 온다면 크게 반길 것입니다. 올라주원은 전년도 MVP이고 휴스턴은 전년도 우승 팀입니다. 그런 이유들로 드렉슬러는 휴스턴으로 옮기고 싶다는 뜻을 밥 윗시트 단장에게 전했습니다. 1995년 트레이드 마감일 직전에 극적으로 트레이드가 성사되어 휴스턴은 지난 시즌 우승의 주역이자 팀에서 가장 공격 효율이 좋은 파워포워드 오티스 쏘프를 포틀랜드의 클라이드 드렉슬러와 트레이드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헐값으로 12년 동안 구단에게 엄청난 수익을 올려준 프랜차이즈 스타플레이어는 포틀랜드를 떠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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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렉슬러가 휴스턴에 도착하자 로켓츠 팬들과 올라주원은 드렉슬러를 가슴 깊이 환영했습니다. 하지만 올라주원을 제외한 대부분의 선수들은 그 트레이드에 큰 불만을 보였습니다. 쏘프는 몇 년동안 휴스턴에서 충실히 제 역할을 담당했던 지난해 우승의 주역이었고, 팀메이트와 사이도 좋았습니다. 그리고 쏘프는 로켓츠의 부동의 파워포워드였습니다. 휴스턴은 버논 맥스웰, 케니 스미스, 샘 카셀 그리고 마리오 엘리 등이 포진한 가드진은 부족함이 없던 팀이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팀의 기둥인 파워포워드를 트레이드하고 또 다른 가드를 영입하는 트레이드에 거의 모든 팀원이 반발했습니다. 그중에서도 버논 맥스웰, 케니 스미스, 샘 카셀 등 가드진의 반발은 더욱 심했습니다.
드렉슬러 영입 이후 휴스턴의 팀 케미스트리는 더욱 엉망이 되었습니다. 트레이드 전까지 휴스턴의 성적은 29승 17패였지만, 드렉슬러의 영입 후 휴스턴은 18승 18패의 실망스러운 성적을 거뒀습니다. 결국 휴스턴은 시즌성적 47승 35패로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시즌 60승을 거둔 강팀 유타 재즈와 맞붙게 되었습니다.
유타 원정경기로 치러진 1차전에서 종료 직전 버논 맥스웰의 3점슛이 빗나가면서 휴스턴은 유타에 2점차로 패했습니다. 그 직후 그 동안 불만에 가득했던 팀 분위기가 폭발했고, 드렉슬러 영입의 가장 큰 피해자인 버논 맥스웰은 무단으로 팀을 떠나서 끝까지 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맥스웰 없이 유타에서 치러진 2차전에서는 케니 스미스와 드렉슬러 두 가드의 슛이 폭발해 승리했습니다. 휴스턴의 홈 코트로 돌아와서 치러진 3차전에서 로켓츠는 최고 약점인 포워드진이 극도로 부진함으로 인해 유타에게 패해 탈락 위기에 놓였습니다.
한 경기만 패하면 지난해 챔피언이 1회전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치러진 4차전에서 드렉슬러는 41득점으로 최고의 활약을 펼치며 자신이 왜 슈퍼스타인지 모두에게 증명했습니다. 유타에서 치러진 마지막 5차전에서 올라주원-드렉슬러 콤비는 무려 64점에 20리바운드를 합작해서 휴스턴은 홈팀 유타에게 95-91로 승리를 거두고 플옵 2회전에 진출했습니다.
휴스턴의 2회전 상대는 정규리그에서 59승을 올린 피닉스 선스였습니다. 피닉스의 스타 바클리는 전년도의 패배를 복수하고자 와신상담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고, 시리즈가 시작되자 피닉스는 휴스턴을 압도했습니다. 휴스턴은 시리즈 전적 1승 3패로 절대 열세에 놓인 상태에서 5차전을 피닉스 홈구장에서 치러야 했습니다. 이틀 전 피닉스는 케빈 존슨의 미친듯한 활약으로 휴스턴에서 홈팀 로켓츠에게 4점차의 승리를 거둔 바 있습니다. 그 경기 후 드렉슬러는 심한 감기몸살을 앓았습니다. 진짜 Flu에 감염된 것입니다.
드렉슬러는 5차전이 열린 날 아침에 침대에서 움직이기도 힘든 상태였지만 기를 쓰고 일어나서 게임시작 20분 전에 경기장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시즌 마지막 경기가 될 수 있는만큼 무리를 해서라도 주전으로 뛰고 싶다고 톰자노비치 감독에게 요청했습니다. 그렉슬러는 코트에 들어섰지만 다리가 풀려 있었고, 평범한 미드레인지 슛이 에어볼이 나올 정도로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습니다. 드렉슬러는 그 경기에서 그야말로 초인적인 의지로 사투를 벌였습니다. 32분 동안 뛰면서 그가 던진 6개의 야투는 모두 빗나갔고, 8개의 자유투는 4개만 성공시켰습니다.
하지만 드렉슬러는 수비에서 크게 활약했고, 결정적인 순간 AC 그린에게 가는 케빈 존슨의 패스를 가로챘습니다. 하지만 경기는 홈팀 피닉스의 페이스로 흘렀습니다. 경기종료 15초를 남기고 피닉스가 92-90으로 앞선 상황에서 찰스 바클리가 2개의 자유투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바클리는 2개의 자유투를 모두 놓쳤고, 경기종료 5초전에 올라주원의 턴어라운드 슛이 들어가서 92-92 동점이 이뤄졌습니다. 종료직전 피닉스의 마지막 공격에서 웨슬리 퍼슨이 회심의 3점슛을 날렸지만 글자 그대로 그 공은 림 안에 들어갔다 나왔습니다. In-and-out 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린 슛이었습니다. 휴스턴은 연장 끝에 피닉스에게 승리를 거두고 기사회생했습니다.
바클리는 20개의 리바운드를 잡았지만 여섯 개의 자유투 중에서 고작 1개만 성공시켰고 고비마다 턴오버를 범해서 패배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Flu로 인해 도저히 뛸 수 없는 컨디션이었지만 드렉슬러는 32분간 뛰면서 야투 0/6, 자유투 4/8, 2 리바운드, 2 어시스트, 2 스틸에 4득점을 올렸습니다. 휴스턴의 동료들은 드렉슬러의 초인적인 투혼이 승리의 가장 큰 요인이었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렉슬러의 플루 게임은 마리오 엘리의 '죽음의 키스'로 유명해진 7차전에 묻혀서 대다수의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습니다. 그 대신 약 2년 뒤에 일어난 식중독 상태의 마이클 조던 플루 게임이 스포츠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장면 중에 하나가 되었습니다. 드렉슬러의 플루 게임은 유튜브를 뒤져봐도 본 게임이나 하이라이트를 찾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경기로 인해 결국은 휴스턴이 백투백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고, 드렉슬러 자신도 꿈을 이룬 기념비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역시 글라이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