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수비를 상대하는 잉글스의 패스들
오늘 경기 전까지 ‘디펜시브 레이팅 수치상으로’ 5위였던 시카고 수비를 맞이한 유타는 3쿼터 들어 득점을 몰아넣으며 승리를 따냈습니다. 오늘 경기 양상 자체가 어째서 시카고 수비가 심각한 결함을 가지고 있는지를 잘 조명해주었다고 생각하기에 이를 잘 공략한 유타의 잉글스의 패스를 중심으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시카고 수비의 기조를 간단히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시카고는 상대 픽앤롤을 맞이할 때 상대 핸들러에 대한 압박을 세게 하면서 상대편에서 스크린을 거는 선수의 마크맨이 더블팀까지 가는 블리츠 를 다른 팀들보다 압도적으로 많이 쓰고 있습니다. 공을 들고 있는 핸들러를 괴롭히면서 패스 각도를 어렵게 하고 어설픈 패스가 나오면 스틸한 결과 현재 상대 턴오버 비율은 리그에서 1등이고요.
스틸은 많이 뽑아낼지 모르지만 이 수비법은 큰 페널티가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상대팀 1명에게 우리팀 2명이 붙는 거기에 어디선가는 아웃넘버가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에, 더블팀을 가하는데도 처음 패스가 잘 빠져나오면 일반적으로 가장 효율이 높다고 간주되는 림어택과 코너 3점을 허용할 가능성 이 상당히 높아지는 겁니다.
오늘 유타는 전반에도 이런 아웃넘버 상황을 유리하게 가져가며 여러 3점 찬스를 만들어냈으나 슛이 잘 들어가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후반을 맞이하여 유타가 선택한 공략법은 윙핸들러가 림러너에게 곧바로 패스를 전달하는 패스들 이었는데요. 슬립도 섞어가면서 스크린 후에 잘 빠져나가고 공 캐치와 마무리까지 완벽했던 고베어 등의 림러너들도 대단했지만, 이를 위해 패스를 잘 빼준 잉글스의 플레이 몇 가지를 중심으로 진행해보겠습니다.
아까 블리츠가 잘 먹힌다고 했던 작은 핸들러들에 비해 잉글스는 기본적으로 키가 훨씬 클뿐더러 BQ와 패스 감각 또한 상당히 좋기에 좀만 틈이 나면 상대 수비를 역이용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닌 선수입니다. 유타는 잉글스를 패서로 전면으로 내세워 후반에 상당한 재미를 봤는데요.
▲ 롤하는 고베어한테 탑에서 잉글스가 정확하게 패스를 꽂아주는 장면입니다. 시카고는 코너쪽의 마카넨이 골밑으로 헬프 가는 게 너무 늦기도 했습니다만, 이 장면을 떠나서 과연 골밑이 뚤렸을 때 이를 마카넨이 막게 하는 게 맞는 건인지 진지하게 고민을 해야 되요. 덴버가 요키치를 앞선에 내세울 때는 골밑 보호를 위해 밀샙 같이 인지력/반응 속도 둘 다 좋은 수비수를 배치하는 조정을 괜히 하는 게 아닙니다.
▼ 다음은 고베어가 픽앤슬립해서 자유투를 얻는 장면입니다. 고베어의 한손 캐치도 좋았고 잡기 적당한 세기/높이의 잉글스 패스도 좋았고요.
▼ 이번엔 림러닝하는 빅맨한테로 간 패스가 아니라, 잉글스가 더블팀을 당하니 비어서 돌파 경로가 열린 동료에게 옆으로 패스를 해줍니다.
▲ 마크맨인 테디어스 영이 코너 슈터까지 신경 쓰다가 비틀거렸고, 이걸 놓치지 않고 들어가서 플로터를 성공시킵니다.
▼ 다음은 고베어 대신에 브래들리가 픽앤슬립으로 마크맨을 완전히 속이는 동시에 패스도 잘 들어간 장면입니다. 후반 내내 끌려 다니는 것도 문제가 크지만, 더 큰 문제는 이 공격 장면 바로 직전 장면에서 똑같이 픽앤슬립으로 득점을 헌납했다는 점입니다.
▼ 이때는 핸들러가 미첼이고 하이픽앤롤이었는데, 슬립 당하고 나서 타임아웃 썼는데도 또 위 장면처럼 똑같이 당했다는 소리입니다.
▼ 이번엔 다시 고베어의 득점인데 애초에 웬카쥬가 너무 높이 딸려와 있었고, 뒤에서 따라가기 시작한 상태에서 가속 붙은 고베어를 막을 방법은 없습니다.
▼ 4쿼터 1분 남짓 남은 클러치에도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똑같은 수비법을 고집하기에 웬카쥬는 높은 곳까지 끌려와있으며, 슬립으로 빠져나간 고베어는 곧바로 덩크를 찍습니다. 수비 머리 위로 휙휙 패스를 넘기며 사이즈를 잘 이용하는 잉글스나 고베어의 캐치 및 피니쉬도 완벽한 장면이었습니다.
▲ 시카고 해설인 스테이시 킹이 코너쪽의 던이 빨리 골밑 커버를 왔어야 한다는 코멘트를 했는데요. 더블팀이 뚫리고 골밑 득점 먹히면 예전부터 계속 똑같은 소리를 하는데, 이건 말도 안 되는 게 6’4”의 사이즈를 가진 던이 골밑에 대놓고 있어도 고베어는 못 막습니다. 이미 패스가 빠져서 고베어한테 전달되었을 때 시카고 수비가 완벽하게 당한 셈인데 이걸 두고 수비를 설계한 감독이 아니라 선수탓을 하는 건 어이가 없습니다.
▼ 아래 패스는 더블팀을 직접적으로 공략한 패스는 아닙니다만, 안쪽으로 진입해서 상대 빅맨을 센스있게 슛페이크로 속이고 곧바로 좋은 위치의 동료에게 킬패스를 줍니다.
▲ 웬카쥬가 좀 쉽게 낚인 감이 있는데, 저렇게 공을 잡고 한타이밍 죽이면서도 패스를 만들어 내는 잉글스의 플레이는 언제 봐도 영리해보입니다.
유타가 잉글스를 패서로 쓰면서 저리 이득을 보는데도 3쿼터랑 4쿼터 초반은 물론 클러치 막판까지도 조정이 없었던 건 역시나 보일런스럽다 싶었네요. 굳이 블리츠를 고집하고 싶었다면 웬카쥬한테 슬립도 조심하라고 분명하게 전달되고 실제로 그런 조언이 경기 내에서 발현되어야 하는 건데 그런 모습도 전무했고요. 시카고 수비가 괜히 전반 2위였다가 후반되면 16위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상대 팀이 익숙해지면 거기에 맞추어 대응을 하는데, 보일런은 아무런 조정 없이 카운터를 맞고만 있으니 후반 퍼포먼스가 좋을리가 없겠죠.
장면별로 보면 너무나도 쉽게 유타의 득점을 허용하고 있는 걸 알 수 있는데, 애초에 수비의 큰 틀에서 지고 들어가니 시카고가 질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고베어의 슬립성 스크린과 마무리 모두 너무 좋았고, 이에 맞추어 패스를 전달하는 잉글스의 실행력도 훌륭했습니다. 잉글스가 일반적인 핸들러 에이스들처럼 골밑을 돌파로 찢으면서 드라이브앤킥/디쉬 스타일은 아니지만, 장신을 살려서 안에서 밖으로 주는 패스들과 직접 페인트존 진입해서 한타이밍 죽이고 패스 빼주면서 유타 공격에 활기를 불어넣어줬다고 생각합니다.
Positive님이 잉글스의 영리한 패스들에 대해서도 써주신 글들이 있으니 읽어보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글을 마무리하며
이번 시즌 시작하고 제가 불스에 대해 가장 많이 비판한 지점이 저 블리츠에 대한 집착인데, 더블팀 쓰는 거 자체를 싫어하는 건 아닙니다. 크리스 던이 선발로 나서면서 상대 핸들러에 대한 압박을 잘 해주고 있는 가운데 키가 작은 메인핸들러에 대한 비중이 큰 팀들(가령 올 시즌의 애틀랜타) 상대로는 블리츠 효과가 상당하기도 했어요. 문제가 되는 지점은 이 블리츠를 상대팀 프로필 분석 하나 없이 무조건적으로 쓰고, 전반 지나고 후반에 공략당하는 가운데서도 무조건적으로 우선시 한다는 점입니다. 그나마 기껏 들고 오는 대체법이 스위치인건 참 할 말이 없습니다. 티보도 있을 때는 드랍백부터 해서 아이스까지 잘 쓰면서 재미를 봤던 팀이 티보도 한명 나갔다고 거의 쓰질 않으면서 지금 선수들의 성장 기회도 날려먹고 있으니 황당할 따름입니다.
이렇게 한결같은 시카고 수비를 맞이하여 잘 요리한 유타의 영리함이 돋보이는 오늘 경기였습니다. 사이즈가 되면서도 패스 감각이 좋은 스타일의 선수들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데, 뜬금없지만 1년 반정도 남은 2021 드래프트에는 그런 성향의 최상위권 선수들이 많이 나온다고 하여 벌써부터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두서없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와... 답답할 정도로 비슷한 장면에서 하염없이 점수 내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