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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원 선수 전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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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9-17 14:44:11

그 동안 1984년이 커리어 정점 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인지하고 있었는데, 돌아 가셨던 이후 올라온 각종 유튜브 영상들과 제 기억들과 자료들을 보니 커리어 피크가 1981년 실업 롯데 1년차 때이고, 1981년에 토론토 블루제이스와계약 체결하고 정부 불허로 므르브 못 가면서 커리어가 꺽였네요. 1982년에 한국에서 개최된 세계야구선수권에서 부진했고 결승전 선발도 고려대 2학년 선동렬에 밀렸고, 1983년 프로 데뷔 때는 기대에 못 미치는 활약으로 평가 받고, 1985년은 당시 신인이던 이순철의 증언에 의하면 최동원과 경기 당시 선배들이 최동원 전성기 구위가 사라졌다고 하고, 1986년은 전기리그, 후기리그 나뉘어 치뤄진 시즌인데 후기 리그 에서만 16승 을 한 오비 베어스 최일언에게도 밀리고,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19승을 올린 상태에서 오비 베어스에 역전패 해 20승 실패하고, 1987년에는 방어율 10 위 밖으로 밀려납니다.

1981년 므르브 진출 실패 상황은 1996년에
임선동이 엘지와 법정 투쟁하며 야구에 집중 못하던 상황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스카우트 파동 겪은 선수들 김종부, 강혁, 임선동 사례를 보면 1981년 최동원이 얼마나 안 좋은 상황이었는지 유추할 수 있고, 재판 해 본 사람은 다 알 수 있죠. 재판하면 생업이고 뭐고 다 뒷 전으로 밀리고 재판에 매달리게 됩니다.

관계자들 증언보면 최동원 실업 롯데 시절 라이벌 한국화장품의 간판타자이자 해태 레전드 김봉연, 최동원 동년배 군상상고 출신 해태 레전드 김성한, 동년배 고려대 출신 오비 베어스 김광수, 연세대 선배 박철순, 1981년 대륙간컵 출전한 쿠바 선수, 1981년 대륙간컵 므르브 스카우터 등이 최동원의 엄청난 기량을 증언하고 있고, 그 엄청난 기량의 시기는
고교 2학년 이던 1974년 부터 실업 롯데 2년차 1981년 까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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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20-09-17 14:53:34

그런 말이 있었죠
선동열이 선발로 나오면 걱정이 없다
단 상대투수가 최동원이라면 모른다

선동열과 유일무이 대등했던 투수
바로 최동원이었습니다

WR
Updated at 2020-09-17 15:03:35

말씀 하신건 프로에서 얘기고 1981년 이전 최동원은 한국에서 독보적이라고들 하네요.

2020-09-17 15:06:05

최동원 선동열 박찬호 류현진
한국최고투수 계보죠

WR
2020-09-17 15:09:43

역지사지로 므르브 가면 수입이 0 이 하나 더 붙는걸 못가게 했는데 1982년 부터 동기
부여가 됐을 까요

2020-09-17 15:13:20

그건 모르겠네요
하지만 확실한 건 최동원은 팀을 위해서라면
최선을 다해 공을 던졌다는 것입니다
덕분에 우승은 했지만 혹사는 견딜 수 없었죠
뭐 그당시에는 그런일이 허다했지만요

WR
2020-09-17 15:22:26

1986, 1987 시즌에 최동원 던지는거 봤습니다. 당시는 선동열의 확실한 우위입니다. 기록으로도 확연하고 당시 MBC 청룡 팬 입장에서 선동렬은 점수는 커녕 안타 치기도 힘들었지만, 최동원은 최일언, 장호연 보다 쉬웠습니다.
그런데 경남고, 연세대, 실업롯데 때 최동원 본 분들 말은 다르더군요. 1984 최동원도 전성기가 아니라고 합니다.

2020-09-17 17:52:52

최동원 전성기는 고교부터~실업팀 시절이죠. 대학시절 모선배에게 폭행당해서 부상도 겪었고 아마시절부터 혹사를 어마하게 겪은 분이라 84년이 결코 전성기일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상태에서 84년의 그런 대단한 활약을 한거고요. 이미 혹사로 지친 선수에게 84년의 혹사가 가해졌으니 내리막이 심하게 시작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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