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SL에서의 지역방어에 대해

요즘 KBL에서는 생각보다 지역방어가 자주 활용되진 않는데, 희한하게 EASL에서는 SK가 세 경기 120분 중 거의 30분동안 지역방어를 섰습니다. (2차전 약 25분 & 결승전 약 5분. 하나 재밌는 점은 이 시간동안 오재현은 항상 벤치에 있었습니다)
SK는 역사적으로(?) 지역방어를 무기로 갖는 팀입니다. KBL 보시는 분들이라면 들어보셨을 3-2 드랍존이라 불리는 그 수비죠
간단하게 말해 3-2 드랍존은 앞선 셋 중 가운데 서는 선수가 위아래로 넓은 활동반경을 가져가며 수비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3-2 존이랑 차이가 있습니다. 특히 코너쪽에 볼이 들어갔을 때 그 선수가 확실히 내려가 포스트 수비에 가담하려하는지가 드랍존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대표적인 포인트입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영상에서 초반 최준용의 움직임을 보시면 될 듯 하구요
https://www.youtube.com/watch?v=JGe4Y11OlgY
이번 EASL에서 SK는 줄곧 3-2 형태의 지역방어를 섰지만 그 수비는 드랍존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최준용이 없는 상황에서 용병 두 명이 골밑을 온전히 책임질 수 있는 이번 대회였기 때문에, 굳이 국내 포워드가 활동폭을 크게 가져가며 팀디펜스의 중심이 되는 수비법을 쓸 이유가 없었죠
드랍존 가운데에 세울만한 허일영과 송창용이 수비기동력 측면에서 강점이 크지 않은 선수들이기도 하고요
아래 장면을 보면 코너를 거쳐 로우포스트로 볼이 들어가자 허일영이 리온에게 뒷선을 맡기고 위크사이드로 사라지는걸 볼 수 있습니다. 확실히 드랍존이라 부르긴 힘듭니다
아래 장면도 마찬가지인데요. 이 두 장면을 통해 하나 더 알 수 있는게 로우 포스트로 공이 들어가면 이 수비는 대개 맨투맨으로 바뀝니다. 탑을 맡던 허일영이 약속처럼 갑자기 스위치하듯 사라지죠
워니와 윌리엄스에게 포스트 수비를 맡기고 외곽에서 나머지 선수들이 매치를 정해서 수비하는겁니다.
이번 대회에서 SK가 보여준 수비가 일종의 변형 3-2라고 할 수 있는게, 이렇게 특정 조건 하에서 존이 맨투맨으로 바뀝니다.
그리고 또 신기한게 이 전환 타이밍을 보통 벤치에서 콜해줘요. 두 장면 모두 김기만 코치를 보면 특정 상황이 됐을 때 콜을 합니다. 중계를 들어보니 D라고 외치는 것 같더라고요. 이 소리가 들리면 선수들이 맨투맨으로 바꿉니다
하이포스트에 공이 들어갈 때에도 이 수비는 맨투맨으로 바뀝니다.
아래 장면에서도 볼이 하이로 들어가는 순간 중계방송에서 D라는 단어가 반복되어 들리는데요. 볼이 들어가는 순간 뒷선에서 튀어나와 매치업을 하고, 빈 쪽 코너를 앞선에서 내려가 채웁니다(최원혁) 그리고 순식간에 수비가 맨투맨으로 바뀌죠.
크게 지역방어는 1) 빈 공간과 2) 수비자가 겹치는 공간 이 두 군데가 약점입니다. 3-2 지역방어 기준으로 빈 공간은 양 코너이고 겹치는 공간은 하이포스트죠.
그래서 지역방어가 무너질만한 상황이 연출되면 굳이 끝까지 존을 고집하지 않고, 빠르게 맨투맨으로 바꿔내서 실점 확률을 줄이려는겁니다. 어차피 상대는 대부분 그 전환의 타이밍을 잘 몰라요. 이 밖에도 대형이 찌그러질만한 상황이 나오면 벤치에서 바로 콜을 불러 대인방어로 전환시킵니다
SK는 2차전 TNT와의 경기에서 이 컨셉으로 거의 40포제션을 버텼습니다. 결과적으로 첫 열번의 포제션이 넘도록 공격을 다 틀어막았고, 전체적으로 봤을 땐 30번이 넘는 횟수로 수비성공을 해냈습니다. 엄청나게 성공적이었다고 말해야합니다.
상대가 조직적인 움직임이 결여되어있다보니 아무래도 무리한 샷들을 많이 쐈습니다. 타임아웃에서 감독이 쉬운 존 오펜스를 짜줘도 위치 잡는 것부터 선수들이 못하더라고요. 게다가 용병 둘이 골밑에서 버티고 있으니 앞선에서 뚫려도 아래 장면처럼 뒤에서의 도움수비가 잘 통했습니다
나머지는 다 서있고 일대일 식 공격을 많이 하게되면 결국 박스를 지키는 선수가 없게 됩니다. 반면 SK는 워니랑 윌리엄스가 서로 도움수비와 박스아웃을 서로 주고받으면서 림프로텍팅을 완벽하게 해냈죠. 놀라운게 이 40번 정도의 수비횟수동안 SK가 공격 리바운드를 허용한 포제션이 세 번정도밖에 안 됩니다.
터프샷 유도해서 수비 리바운드를 따낸다->속공 몰아쳐서 순식간에 흐름 가져온다
= SK의 승리공식입니다
암튼 흔들릴 뻔한 2차전 경기를 지역방어로 잘 잡아냈고, 아래는 2차전 이후 전희철 감독의 인터뷰입니다. 확실히 이 팀은 경기마다 감독이 들고나오는 컨셉이 분명하고 이기든 지든 그걸 실행시켜서 끝장을 볼 줄 압니다. 보통 후회없는 경기를 하는거죠
우리가 오늘 지역방어를 많이 사용했는데, 그 부분은 국제 경기에서 특히 필리핀 팀이 지역방어에 약점을 보여서 많이 활용하는 전술이다. 경기력이 좋지는 않았음에도 승리를 가져간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결승전을 보면, SK가 9점차로 뒤진 상황에서 4쿼터 마지막 5분을 다시한번 이 지역방어로 버텼습니다. 승부수를 한 번 던진겁니다. 이대로 가느니 한 번 변화를 줘서 흐름을 가져와보겠단 의도로요.
아래는 수비 바꾼 뒤 첫 번째 장면입니다. 문성곤이 대형 확인하더니 "존이야 존 존" 하면서 소리치죠.
먼로는 바로 코너에 스펠맨 박아서 공간 벌리고(뒷선 둘이 양코너로 조금씩 멀어지게끔) 하이포스트에서 볼 받고 미들슛을 던집니다. 안 들어갔지만 볼이 들어가자마자 매치가 바로 안 되고 슛 기회를 빠르게 내줬다는거부터가 아무래도 SK 입장에선 찜찜했을겁니다. 아래는 두 번째 공격장면입니다.
아래처럼 뒷선에서 튀어나와 맡고(윌리엄스), 앞선에서 코너 빨리 채우면서(김선형) 맨투맨 전환하는게 맞습니다.
여기까지 보면 지역방어 승부수는 망했습니다. 안 그래도 9점 지고 있는 상황에서 분위기 반전해보고자 변화를 가져간건데 처음 세 번에서 이렇게 망쳐놓으면 우승은 거의 날아갔다 봐야됩니다. 근데 신기한게 SK가 공격을 계속 성공해요(?) 지역방어를 서는 동안 SK는 단 한 번의 기회빼고는 공격을 다 성공시켰고 투샷에 테크니컬 파울에 뜯어낼 수 있는 것도 다 뜯어냈죠. 그 과정에서 갑자기 지역방어가 두번정도 성공하면서(아반도 코너 3점 블락 문성곤 코너 3점 림 구석에 낌) 점수차가 확 줄어버립니다.
그리고 KGC의 마지막 두 번의 공격인데요
볼스크린 리젝트->먼로 픽앤팝->미스매치 활용해서 밀고간 뒤에 미드레인지 공략입니다. 괜찮았지만 못 넣었어요. 위에도 말했지만 밖에서 쏜 슛이 안 들어가면 SK는 워니, 윌리엄스가 밑에서 박스아웃해서 거의 다 리바운드를 채갑니다. 근데 문성곤이 들어가서 따내고 팁인을 이끌어냅니다. 이런거보면 문성곤의 가치는 정말 어마어마해요
그리고 아래는 마지막 장면인데요, 볼스크린 받고 원카운트 최원혁의 도움수비가 들어가는 순간 이건 이미 오픈 찬스입니다. 스펠맨이 던지든 코너에서 던지든 어차피 맞아야할 슛이었죠. 먼로가 다 조정해주고 있습니다.
결승전에선 지역방어가 크게 성공적이진 않았지만 막판 공격력이 괜찮았어서 SK 입장에서 아쉬움이 남았을 것 같습니다. 자유투 흘린 것도 그렇고.. 아무튼 이번 대회 통해 확실히 팀 오펜스/팀 디펜스의 정교함은 KBL이 동아시아 클럽 사이에선 월등하단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KGC는 말할 것도 없고 SK도 어려운 상황에서 그럴싸한 계획을 잘 보여줬던 대회였습니다. 특히 김선형은 정말 대단하네요.. 해외해설에서도 He is clearly the best Korean player on the floor라고 하더군요,, 오늘도 그 템포 똑같이 경기해내는걸 보면 이 사람은 진짜 미친 것 같습니다
글쓰기 |
오재현이 지역방어 설 때 코트 위에 없었다는 건 오재현의 지역방어 이해도가 떨어져서 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