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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L 프랜차이즈 & 비즈니스(트레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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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4 13:49:15

 

별 의미없는 생각이 들어 글을 씁니다. 큰 의미는 없어요

프랜차이즈&비즈니스인데 기억에 남는 것들만 그냥 쭉... 써봅니다.

 

<김병철 - 1997년 원년부터 은퇴까지 원 클럽맨>

동양제과농구단은 프로출범인 1997년 대구 동양 오리온스란 이름으로 KBL 역사를 시작합니다.

김병철-전희철 듀오를 필두로 시작한 이 팀에서 김병철은 은퇴하는 시기까지 팀을 지킨

프랜차이즈스타로 은퇴 후 코치생활도 쭉 함께 하는 중 입니다.

몇 가지 이색적인 기록도 있습니다.

 

김병철 FA되던 해, KBL은 다년계약 제도가 도입되었고 김병철은 5년 다년계약을 맺음

대구에서 평생을 뛰었지만 연고지 이전으로 은퇴식은 일산.

감독대행으로 승격한 첫 감독 데뷔전에서 무관중. 

한 경기만에 다시 코치 복귀.

구단에서 배출한 MVP였고, 챔프전 우승도 이끌었습니다.

 

<허재 - 트레이드를 원하다>

허재하면 기아가 자동으로 연상되고, 특히 준우승 팀 챔프전 MVP라는 이색적인 기록을 소유할 만큼

그 때 그 투혼은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랬던 기아와 결별을 선언하는 30대 중반의 노장 허재였습니다.

허재는 농구실력은 좋았으나 잡음이 아예 없던 선수는 아니었고, 강동희-김영만 등 좋은 후배들이

중심이 되는 와중에 새로운 도전을 이유로 트레이드를 원했고 당시 사랑의 3점슛터 정인교와 트레이드

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기아에서 당연히 선수생활을 마무리 할 것으로 생각했던 허재가 원한 트레이드 였습니다.

 

신인 김주성과 함께 TG삼보를 우승으로 이끔.

 

허재는 우승 DNA가 넘치는 선수였습니다.

 

 

<이상민 - FA 비즈니스와 제도의 피해자>

대전현대, KCC 이상민은 한국농구의 상징/팀의 상징 그 자체 였습니다. 지금도 가장 많은 환호를 받는

인기 감독이기도 한 이상민이 어쩔 수 없이 삼성유니폼을 입게 됩니다.

FA로 서장훈과 임재현을 영입한 KCC, 당시 FA제도는 보상선수로 3인의 보호선수 외 1명을 선택하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었고, 안타깝게도 FA로 영입한 선수들은 자동보호가 되지 못하던 제도적 문제가 있었습니다.

KCC는 FA로 영입하고 그대로 삼성에 내줄수는 없으니 서장훈,임재현을 보호했고 남은 한 자리를 소리없이

강한 추승균을 묶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KCC는 삼성이 후폭풍이 두려워 이상민을 지명하지 않길

바랄 수 밖에 없었죠. 그렇지만 삼성이 그런 사정을 바줄 필요는 없었고 이상민을 보상선수로 데려갑니다.

상민이형과 연세대시절의 즐거운 농구를 하고 싶다던 서장훈은 어리둥절.

FA로 팀을 옮겨온 임재현은 이상민을 쫓아낸 역적으로 불리며 맹비난을 받고 말았습니다.

그런 이상민이 삼성에서 은퇴 후 감독까지 하고 있는걸 보면 앞길은 예측하기 어렵네요

 

<서장훈 - 하승진과 상생 불가 트레이드>

국보급 센터 서장훈은 이상민과 뛰지 못했고 KCC와 동행도 시작과 다르게 짧았습니다.

드래프트 1순위가 되자 환하게 웃던 허재감독은 당연히 하승진을 픽 하게 됩니다.

서장훈-하승진 이라는 최장신 듀오는 탄생했지만 경기에 같이 뛰는 것은 고통에 가까웠고

누구 하나는 나가야 하는 필연적인 상황. KCC는 미래이자 NBA리거 하승진을 선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구단이나 선수간의 불화는 실제로 없었으나, 외부에서 많은 잡음이 일었고 루머도 많았음.

물론 진실은 알 수 없지만, 트레이드 당사자인 서장훈도 맘고생이 심했고 하승진 역시 신인이 대선배를

밀어냈다는 맘고생이 심했습니다.

 

그렇게 전자랜드로 이적한 서장훈. 전자랜드에서 이적해온 강병현. 

강병현이 합류한 KCC는 우승을 이뤘지만 서태힐 콤비 전자랜드는 강력했지만 우승기록은 없다.

 

 

<전태풍 - 혼혈? 난 한국사람>

토니 앳킨스라 불리던 이 남자는 2009년 어머니의 나라에서 뛰고 싶었고 이렇게 혼혈 선수들만으로

드래프트를 진행하게 됩니다. 신인선수를 지명하지 못하는 조건으로 말이죠

화려한 경력의 전태풍은 KCC유니폼을 입게 되었고 KCC에서 팀 농구/ 수비좀 해 라는 지적과

꼰대들 사이에서 우승의 영광을 함께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혼혈 선수를 한 팀이 독점? 할 수 없게 만드려는 의도인지 3년이 지나면 팀을 옮겨야 했고

왜 차별하냐는 전태풍의 읍소에도 오리온스 유니폼을 입게 됩니다.

전태풍은 이 시기를 가장 힘들었고 최악의 시기로 이야기할만큼 오리온스에서 전태풍은 연봉은 많지만

역할은 작아진 이상한 대우와 함께 다대다 트레이드로 KT로 이적

(전창진 : 태풍아 다른거 하지마 성민이 줘 / 전태풍 : 네~~) 

그렇게 3년을 보낸 후 또 다시 팀을 옮기게 된 전태풍은 작아진 연봉에도 내가 뛰던 KCC에 다시 

합류하게 됩니다. 그렇게 KCC를 좋아했던 전태풍이지만 이별 과정은 석연치 않았습니다.

구단에서 은퇴를 종용했고 그것이 언론에 퍼지는 과정에서 부풀려진 연봉 등 온갖 맘고생과 상처를 받고

KCC와 동행이 끝나버리게 됩니다.

 

< 김시래 - 어제 우승 오늘 트레이드>

모비스에 1순위로 지명된 김시래. 양동근에 후계자로 너무너무 훌륭한 재능이었고 양동근과 함께 뛰어도

시너지가 나는 재기넘치는 가드였습니다.(물론 지금도)

모비스에 벤슨이 합류했을 때 누가봐도 모비스에 기우는 트레이드를 한 LG에 의아함이 상당했습니다.

3시즌 중 1라운드 지명 1회정도로 벤슨을 준다는 것은 납득이 안되었죠

양동근-함지훈-문태영-김시래-라틀리프-벤슨 이런 라인업을 완성한 모비스는 우승은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우승에 기쁨을 누린 바로 다음 날 LG로 트레이드가 발표된 김시래.

트레이드 조건 중 알려지지 않은 선택지가 바로 김시래.

3시즌 중 1라운드 지명 1회 or 김시래. 이 조건 중 전자만 알려지며 너무 LG가 손해 아니냐는 이야기가

돌 수 밖에 없었죠

 

이미 당시 LG 김진 감독은 김시래를 맘에 두고 있었으며, 그 김시래는 지금도 LG의 돌격대장으로

활약 중입니다.

 

 

생각나는대로 썻는데 너무 기네요... 또 생각나며 다음에 이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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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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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4 13:55:07

저 규정은 다시 봐도 참 어이가 없어요. FA 영입한 선수도 묶어두지 않으면 다른 팀이 지명할 수 있다니..

2020-11-24 13:55:57

양캡틴도 프렌차이즈에 넣어주세요

2020-11-24 14:05:47

전태풍...한심한장판...응원팀이지만 전태풍과 하승진은 영결감인데 은퇴식도 안해주고
조성원감독도 영결감인데 영결안해주고...진짜 화나네요

2020-11-24 14:11:04

전하콤비 은퇴식도 안치뤄준거는
응원팀이지만 참 할말이 없네요

kcc
kt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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