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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시절 양동근의 말 말 말 (스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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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4-03 16:13:29

저는 모비스 팬입니다.

당연히 양동근 선수를 너무 좋아하구요, 다른 모든 스포츠 팬들이 그렇듯이 좋아하는 선수의 인터뷰기사 읽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 선수에 대해 좀더 알게 되고, 좀더 가까워지는 기분이 들어서입니다.


그래서 전 관심있는 선수의 인터뷰 기사가 뜨면 꼭 읽어보고 바로 읽기가 어려우면 즐겨찾기 해놓고 나중에라도 읽어보곤 하는데, 그동안 즐겨찾기 해놓은 양동근 선수 기사가 엄청 많더라구요. 


선수시절 내내 저와 모비스 팬들에게 큰 즐거움을 줬던 양선수를 위해 즐겨찾기 되어있는 인터뷰들 중에서 의미있다 싶은 것들, 재미있다 싶은 것들, 다른분들께도 알리고 싶다 싶은 것들을 순전히 제 기준으로 발췌해서 올려봅니다. 


<인터뷰 기사는 모두 원문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일부만을 발췌했으며, 원문 출처를 기재하였습니다.>


○2004년 드래프트 1순위 지명 후 KBS 인터뷰

-어떤 가드가 되고 싶나.

▲나만의 농구를 하고 싶다. 속공 위주의 경기를 해왔는데 개성을 살려 수비에서 만큼은 절대 지지 않는 선수가 되겠다. 또 어시스트를 많이해야 좋은 가드가 될 수 있는 만큼 경기 조율에도 신경을 많을 쓸 생각이다.


2005년 3월 신인왕 수상 후 점프볼 인터뷰 

-평생 한 번 뿐인 상인데.

▲ 대단히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뽑아주셔서 너무나 감사하다. 유재학 감독님, 임근배 코치님, 여러 선배님들이 도와주시고 단장님과 프런트들이 힘써주신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항상 힘이 돼주시는 아버님, 어머님께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호명되는 순간 누구를 떠올렸나.

▲ 당연히 부모님이다. 여자친구의 얼굴도 함께 떠올랐다.

-배우 양동근보다 잘생겼다는 말을 인정하던데. (양동근은 신인왕 발표 직전 실시된 후보 인터뷰에서 '배우 양동근보다 잘생겼다'는 리포터 배칠수의 말에 인정한다고 응수했다)

▲ (얼굴을 들이밀며) 그럼 인정 안 하십니까?


2006년 3월 첫 MVP수상 후 점프볼 인터뷰

▲ 누가 가장 먼저 생각 나고 느낌이 어땠나?

- 항상 묵묵히 응원해 주시는 부모님, 누나, 조카, 여자친구가 가장 먼저 생각났다. 이런 상을 받게 될 수 있었던 것은 많이 부족하지만 항상 믿어주시는 유재학 감독님, 임근배 코치님, 많은 가르침을 주는 창수형 지원이 형을 비롯, 우리 팀 선수들이 있었던 덕분이다. 우리 팀이 잘 되게끔 뒤에서 받쳐주시는 단장님과 프런트들도 안 보이게 애써줬기 때문에 우리가 우승할 수 있었고 내가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영광을 우리 팀과 함께 나누고 싶다.


2007년 3월 두 번째 MVP 수상 후 점프볼 인터뷰

Q : 수상소감을 말하던 중 목이 메던데?

A : 부모님 생각에… 원래 평상시엔 안 그런데 눈물이 날 뻔 했다. 그래서 소감이 짧아졌다.

Q : 상금은 어떻게 쓸 생각인가?

A : 작년에도 불우이웃돕기에 다 썼는데 올해도 그렇게 할 계획이다. 아버님이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시기도 했고. 이건 나 혼자 받은 게 아니라 선수들 다 같이 해서 탄 상이니까 사비로 쓸 생각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Q : 군입대를 앞두고 있는데?

A :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선수다보니까 그 2년이 짧은 시간이 아닌데, 어차피 가게 된 거 가야겠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군대라는 것을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곳에서 더 큰 목표를 위해 다시 한 번 충전하고 생각해서 또 다른 농구 할 수 있는 계기 될 것 같다. 많이 배우고 오겠습니다. 

Q : 결혼식 일주일 뒤에 입대인데?

A : 어떻게 미룰 수도 없고… 신혼여행 갔다 와서 푹 쉬다가 입대할 예정이다. 거기서 눌러서 살 생각은 없고, 꼭 와서 군대를 가겠습니다. (웃음)


2007년 5월 챔프전 우승 후 점프볼 인터뷰

Q : 양동근 선수는 유재학 감독님을 평가한다면?

양 : 감독님은 굉장히 완벽하신 분이다. 감독님이 요구하신 것을 반도 못 따라 가고 있다. 1, 2, 3년차를 지나면서 덜 어긋나게 되고 있지만 기술적인 면은 아직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Q : 올 시즌은 야단이나 꾸중이 있었나?

양 : 시즌이 경과할 수록 갈 수록 많이 줄었다.(웃음) 하지만, 6라운드에 삼성에게 지면서 고비가 있었다. 코치님께 혼도 나고 머리도 깎고 했다. 집중력에 대해서 많은 말씀을 하시는데, 큰 경기에서는 긴장을 하고 그런다. 농구가 굉장히 어려운데, 배울 것이 많은 것 같다.

Q : 챔프전 사상 최초 만장일치 MVP를 받았는데?

양 : 이 것도 기록이라면 기록 아닌가?(웃음) 상금은 생각해보고 좋은 데 쓰고 싶다. 나 혼자 잘해서 받은 상이 아니니만큼 좋은 데 쓰도록 하겠다.


2007년 5월 챔프전 우승 후 일요신문 인터뷰

―소속팀뿐만 아니라 다른 팀 선수들의 칭찬이 자자해요. 포인트가드로서 실력이 너무 빼어나다는 거죠.

▲운동은 자신감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왜 ‘운칠기삼’이란 말 있잖아요. 전 운이 90% 이상은 된다고 생각해요. (너무 겸손한 멘트라는 지적에) 절대 가식 아니에요. 운때가 잘 맞았어요. 게다가 주변 환경과 동료 선수들과의 호흡이 절묘했죠. 물론 프로 초반에 개인 훈련을 통해 슈팅가드에서 포인트가드로의 보직 변경에 적응하려 노력했지만 제 노력은 지금 이룬 것에 비하면 10%도 채 안 될 거예요.

 ―팀 동료인 크리스 윌리엄스와의 절묘한 호흡이 진짜 많은 볼거리를 제공했어요. 실제로 두 사람의 친분은 어땠어요?

▲아주 아주 멋진 친구예요. 전 패스를 못하고 시야가 좁은 단점이 있어요. 하지만 윌리엄스는 그 반대거든요. 제가 윌리엄스의 발에 패스를 해도 그걸 받아서 슛으로 성공시키는 스타일이에요. 사석에서 자주 같이 밥을 먹었는데 그때마다 윌리엄스는 절 추켜세우느라 정신이 없어요. 넌 최고의 친구고 널 만난 게 나한테는 최고의 행운이고 이번 우승은 너로 인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주옥같은 레퍼토리를 들려줬어요. 파트너를 최고의 선수로 만들어주고 인정하면서 자신을 한껏 낮추는 선수죠. 용병 중에 그런 마인드를 가진 선수 없을 걸요? 제 결혼식 전에 출국할 예정이던 윌리엄스에게 졸랐어요. 파트너의 결혼식은 보고 가야 한다구. 

―몸매 얘길 안 할 수가 없어요. 선수들 사이에선 ‘양동근의 몸=이기적인 몸매’라고 하던데 자신도 그렇게 생각해요?

▲제가 봐도 좋은 것 같아요. (기자가 눈을 흘기자) 하하 근데 팔뚝은 얇은 편이에요. 옷 입고 있으면 잘 몰라요. 벗으면 제 진가가 나타나죠. 지난해 말, 어떤 계기가 돼서 선수들과 함께 화보 촬영을 하게 됐어요. 그때 사진을 일본 작가가 찍었는데 ‘쫄티’를 입은 선수들을 쭉 훑어보다가 절 지목하고선 옷을 벗어보라고 하시더라구요. 몸매가 예술이라면서요. 그때 저만 상반신 누드를 찍었어요. 

―여자 친구, 아니 예비 신부가 좋아했겠어요.

▲전혀 반응 없던데요? 하긴 그 친구는 대학 1학년 때부터 제 몸을 봤으니까요. (갑자기 정색하며) 아니 수영장에서요. 오해하실까봐… 하하. 제 여자친구는 남자들 배 나오는 걸 이해 못하는 사람이에요. 저 때문에 눈이 높아져서…. 죄송합니다^^:;

 ―인터뷰를 하다보니까 나름 ‘왕자병’ 증세가 있네요^^. 보긴 좋습니다. 어떤 농구인은 양동근 선수를 축구의 박지성 선수와 비교하더라구요. ‘산소 탱크’ ‘두 개의 심장을 달린 사나이’ 등….

▲체력이 좋다는 얘기죠? 어렸을 때부터 키가 작아서 뛰는 것만큼은 남에게 지지 말자고 생각했어요. 중학교 1학년 때 키가 138cm였어요. 동료 선수들이 170cm를 넘어섰을 때 전 ‘난장이’나 마찬가지였죠. 키가 작아서 그런지 농구를 포기하라는 얘기 정말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제가 한 오기 하거든요. 작은 키를 커버하려면 스피드와 체력이 절대적이더라구요. 그때부터 집중적으로 그 부분에 투자를 하게 됐죠.

―대학 입학 전에 불러주는 대학이 없었다면서요? 한양대에 막차 탔다는 것도 사실인가요?

▲네. 진짜 그래요. 설령 대학에 못 들어갔다고 해도 크게 낙담하지 않았을 거예요. 어떤 형식으로든 농구를 했을 테니까요. 한양대에 어렵게 들어가긴 했지만 생활이 힘들지는 않았어요. 워낙 좋은 스승을 만났고 그 테두리 안에서 양동근이 새롭게 성장할 수 있었죠. 전 위기를 위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제 삶을 통해 체험해 왔으니까요.

―여자친구, 아니 이 신문이 나올 때 쯤이면 아내가 돼 있을 김정미 씨 얘기를 해볼 게요. 언론에 김정미 씨가 자주 노출됐어요. 그러다보면 이런저런 소문들에 휩싸일 법도 한데 어땠나요?

▲전 숨기는 연애가 싫었어요. 대학 1학년 때 만나 7년째 사귀고 있는데 그리고 그 사람이랑 결혼할 건데 굳이 숨길 이유가 없잖아요. 소문이요? 전 신경 안 써요. 인터넷 악플도 읽어보고 잊어 버려요. 힘들었다면 여자친구가 더 힘들었겠죠. 그래도 저보다 더 강단이 있는 친구라 저한테 내색한 적 없었어요. 저희가 호텔에서 결혼하거든요. 남들이 욕할지 몰라요. 호화 결혼이라면서. 솔직히 진짜 무리해서 하는 거예요. 그런데 신부를 위해 그것만큼은 해주고 싶었어요. 2년 동안 남편 없이 혼자 지내야 하니까 신부에게 선물로 대신한 거예요. 너무 뭐라고 하지 않으셨음 좋겠어요.

―부모님이 힘들게 뒷바라지 하셨다면서요?

▲저 이 얘기하면 눈물나는데…. 대학 1학년 때 집안끼리 안 좋은 일이 생겨서 부모님이 참 힘든 생활을 하셨어요. 제가 좀 더 크고 어른이었다면 부모님을 도와드렸을 텐데 그저 지켜만 보고 있었거든요. 어찌나 가슴이 아프던지. 그래도 대학 1학년 때 신인상 받고 그 상처를 조금이나마 치유하게 됐습니다.


2009년 6월 군 제대 기념 점프볼 인터뷰

양동근이 없는 사이 KBL의 대세는 서울 SK로 이적한 주희정이었다. 양동근은 주희정과 황금세대 신인들을 라이벌이 아닌 배워야 할 상대로 표현했다. “희정이 형은 저보다 잘 하잖아요? 저는 부담이 없죠. 그냥 따라가는 입장이니까요. 문제는 희정이 형이 너무 열심히 한다는 거죠. 따라가려면 제가 더 열심히 해야 하는데…. 신인급 선수들도 다 제가 따라가야 할 선수밖에 없는 것 같더라고요.” 그의 겸손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누구보다 낫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 제가 다른 팀 가드보다 드리블이 좋은 것도 아니잖아요.”

양동근은 함지훈과도 남다른 인연을 갖고 있다. 2007년 한일 챔프전 당시 함께 뛰어 본 경험도 있고, 삼선중 선후배 사이기도 하다. 후배 함지훈에 대한 돈독한 친분도 과시했다. “제가 중학생 때 지훈이가 초등학생이었는데, 완전 똥돼지였어요. 게임도 못 뛰어서 농구 그만 둘 줄 알았는데, 즐기면서 했던 게 지금 잘 하게 된 것 같아요. 저도 그랬거든요. 지훈이가 이런 얘기하면 저한테 ‘형도 완전 작았잖아요’라고 맞받아치니까요.” 함지훈 역시 양동근과 함께 뛸 생각에 “동근이 형이 워낙 게임을 재밌게 하기 때문에 다음 시즌이 벌써부터 기다려져요”라며 기대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2009년 12월 엑스포츠뉴스

 "지훈이와 가끔 같은 팀에서 뛰고 있어 고맙다는 농담을 주고받는다"


2010년 2월 뉴스포스트

-김효범 선수에게도 들은 것도 있고 농구계에서 유 감독은 무서운 감독으로 정평이 나있다. 양동근 선수가 볼 때 어떤 느낌인가.

“사실 효범이 혼난 것은 혼난 것도 아니다. 그런 것은 그저 선수들이 감독님 말씀을 못 따라간 것. 조금 강하게 말씀하셔서 선수들이 상처를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감독님을 무섭게 생각한다. 혼나서 무섭다는 것이 아니다. 경기 중 벌어지는 무수한 상황에 대한 판단 능력이 정말 뛰어나다. 농구에 대해 너무 많이 안다. 어떤 지시를 내려서 그대로 플레이를 하면 정말 좋은 장면이 만들어진다. 농구에 답을 알고 있는 분 같다. 귀신같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래서 무섭다.”

- 어떤 농구선수로 기억되고 싶나.

“양동근처럼 훈련하고 양동근 같은 선수가 되라는 말을 듣는 선수가 되고 싶다. 티를 내지 않으면서 묵묵히 열심히 운동했던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

- 양동근에게 농구란.

“인생, 전부, 삶이란 진부한 말들이 많은데 난 현실적으로 ‘줄’이라고 하고 싶다. 줄에 내포되어 있는 내용은 태아가 엄마 배속에서 탯줄을 통해 영양분을 공급받듯이 나도 농구를 통해 인생의 영양분을 받는다. 또 하나는 농구로 인해 우리 가족이 의식주를 해결하니 밥줄이라고 할 수 있고. 농구 없이는 내가 살수 없으니 생명줄이라고 할 수도 있다. 농구는 내게 있어 ‘줄’이다.” 

그는 “나이가 어릴 때 프로에서 너무 큰 상을 받았다. 다 선배님들이 잘 이끌어주셨기 때문이다. 이제 선배가 된 입장에서 나도 후배들을 이끌어 통합 우승을 이뤄 후배들에게 내가 느꼈던 행복한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싶다. 또 내가 받은 MVP상을 후배들이 받았으면 좋겠다. 개인보다는 팀이 항상 우선”이라며 끝을 맺었다


2011년 1월 올스타 팬투표 1위 기념 점프볼 인터뷰

그렇다면 과연 양동근이 최고의 인기남으로 등극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글쎄요, 저는 정말로 잘 모르겠어요. 기자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갑작스러운 역질문을 받은 필자는 그 요인에 대해 하나씩 늘어놨다. 외모? “요즘 잘 생긴 선수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저 껄껄 웃더니 가볍게 패스해달라고 한다. 실력? “팀 성적이라도 좋았으면 마음이 한결 가벼울 텐데 그렇지 않잖아요. 저는 아직 많이 부족해요.” 그렇다면 성실함? 물론 양동근은 매우 성실하고 활력 있는 모습으로 코트를 누벼왔다. 어쩌면 팬 투표 1위의 가장 큰 원동력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 “저도 물론 열심히는 하고 있지만 그건 다른 선수도 마찬가지잖아요. 열심히 안 하는 선수가 어디 있겠어요.”

그는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항상 고개 숙이지 않는 남편이자 아빠가 되겠다는 당찬 포부를 드러냈다. “탤런트 손현주 씨가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그대’라는 노래를 불렀는데, 처음에는 그 의미를 저도 몰랐어요. 그런데 이제는 잘 알 것 같아요. 정말 보고 있어도 너무나 보고 싶은 사람, 항상 나에게 힘이 돼주는 사람이 바로 가족인 것 같아요. 부모님께서 저를 처음 낳았을 때 같은 생각을 했겠죠. 제가 이해하는 것은 저희 부모님의 몇 만분의 일도 안 되겠지만 말이에요. 집에 자주는 못 가지만 조금이라도 좋은 아빠이자 남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겁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올스타전 얘기로 돌아갔다. 자신에게 뜨거운 관심과 성원을 보내준 팬들을 위해 감사의 인사를 부탁했다. “일단 1위 자체가 영광스럽고 기분이 좋지만 아직까지도 어리둥절해요. 저를 뽑아주신 팬들에게도 감사를 드리지만 투표에 응해주신 모든 분들에게도 이 자리를 통해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바로 그것이 KBL에 대한 관심이고, 저희가 존재할 수 있는 근본적 이유니까요. 시즌을 거듭하면서 조금씩 더 나아지는 모비스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고요. 모비스 선수들 스스로도 자신감이 많이 올랐으니, 더 좋은 경기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정말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시즌이 될 테니 여러분들도 함께 응원해주세요.


2012년 6월 현대모비스 사내 인터뷰 (with 김시래)

Q. 양동근 선수와 김시래 선수는 대기만성형이다. 김시래 선수가 중, 고교에서 시절의 부진을 딛고 대학시절 맹활약해서 모비스에 입단 한 것처럼 양동근 선수도 대학시절에는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않았던 부분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모비스에서 1인자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양 = (운이 좋게도)내게 잘 맞는 선수들을 잘 만났다. 외국인 선수도 그렇고.. 감독님이 팀플레이를 상당히 강조하신다. 감독님께서는 지금껏 내가 모르는 부분들을 많이 가르쳐주셨다. 하지만 지금도 나는 감독님의 말씀을 잘 따라가지 못한다. 1인자라고 하기엔 부족한 점이 많다. 아직 갈 길이 멀다.

Q. 양동근 선수가 봤을 때 김시래 선수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양 = 드리블을 잘하고 패스도 잘하고.. 못하는게 없다. 난 시래에 비하면 부족한게 많다. 시래는 다재다능한 플레이어다. 난 지는 별이고 시래는 이제 한창 떠오를 선수다. 시래는 지금 언론이 하는 이야기 보다 더 크게 성장할거다. 

Q. 김시래 선수는 양동근 선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김 = 팀에 입단해서 좋은 점 하나가 양동근 선배와 유재학 감독님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같은 포지션에 뛰고 있거나 혹은 뛰었던 선배들이 약점들을 지적해줄 수 있어서 좋다. 많은 조언과 지적을 받을 수 있는 팀에 와서 좋다. 이런 점들을 잘 흡수해서 성장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양 = 가르쳐 줄게 뭐가 있는지 모르겠다. 잘 하는데..

Q. 앞으로 김시래 선수가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까?

양 = 아직 선수생활을 하고 있는 중이고 성공을 했다고 말 할만 한 위치에 서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질문에 대해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근데 무궁무진하다는 것 만큼은 확언할 수 있다. 감독님이 시래를 어떻게 만들어줄지 나도 정말 궁금하다.

감독님은 지능적인 플레이를 많이 강조하신다. 훈련 때도 이것저것 해보라고 많이 하는데 난 못한다. 근데 시래는 능히 그런 것들을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Q. 양동근 선수도 신인 시절을 겪었다. 신인인 김시래선수에게 해줄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면?

양 = 내가 아직 조언할 입장이 안된다고 생각한다. 선수가 성장하면서 상처를 많이 안받았으면 좋겠다. 자신감을 잃지 않는게 중요하다. 악플이나 그런 것들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 않고 계속 자신감을 갖고 플레이에 임해줬으면 좋겠다.


2013년 5월 한양대 동문인터뷰

실제로 상무로 군 복무 시절에 그는 농구공에 '초심(初心)'이란 글자를 써놓기도 했다. "매일매일 제 손에 쥐고 사는 게 농구공이니까, 그때마다 볼 수 있게 써놓은 거죠. 간절함을 생각하자는 일종의 자기암시 같은 마음으로요. '오늘만 산다'는 생각으로 머리 속으로 잡념을 떠올리기보다 몸으로 움직이는 것을 믿는 편입니다. 내일 은퇴하더라도 미련이 남지 않게요. 젊을 땐 최고가 되고 싶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음을 알았습니다.“


울산모비스피버스 웹진 2013년 6월호

ENERGY - 내 삶의 가장 큰 에너지는?

가족이죠. 틈날 때마다 부모님과 아내에게 전화를 해요. 아이들도 하루가 다르게 커서 말을 잘해요. 첫째 진서는 집에 갈 때마다 ‘강남스타일’ 틀어달라고 난리에요. 그리곤 전용골대를 가지고 와서 슛 연습을 하죠.

UNLESS - 만약 농구선수가 안 됐다면?

생각도 하기 싫어요. 학창시절에 농구를 그만두려고 고민한 적이 있긴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기 않았기 때문에 명예와 아내,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죠. 


2015년 4월 세 번째 MVP 수상 후 중앙일보 인터뷰

-스스로 부족한 부분이 있나.

"드리블도 못하고 패스도 못한다. 몸하나 있는 것이다."

-가장 잘하는 것은.

"그냥 열심히 뛰는 것. 상대보다 덜 지친다."

또 MVP에 올랐는데.

"사비를 털어서 선수들에게 15개 트로피를 주고 싶다. 안 받겠지만... 모두 잘해서 내가 받을 수 있었다. 대표로 받은 것이라 생각한다."

-체력을 유지하는 비결은 무엇이라 보는지.

"노하우는 없다. 솔직히. 부모님이 좋은 몸을 물려주신 것이다.“

-배고픔을 유지하는 비결은.

"절박한 심경인 것 같다. 부유하게 자라지도 않았다. 어렸을 때 경기도 많이 뛰지 못했다. 농구를 관둘뻔한 일도 많았다. 그때 심정을 돌이켜 본다면 난 행복한 것이다. 재능은 뛰어나지만 일찍 은퇴한 선수도 많다. 부모님께서 믿고 기다려 주신 것이 가장 큰 원동력이라 본다."

-KBL에서 역대 최고의 경력을 쌓았다. 노력 하지 않는 유망주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스스로 알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해줄 말이 없다. 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거기까지라서다. 먼저 뛰고 한 발 더 뛰면 선수들이 따라온다고 본다. 이를 따라오지 못하면 거기까지인 것이다."

-센스보다는 노력으로 올라왔다.

"잘하는 선수를 보며 독기를 품었다. 그를 따라가려고 했다. 상대보다 내가 더 잘해야 우리팀이 이길 수 있다. 절박한 마음이 강하다 본다. 욕심 없는 선수는 없다. 그것을 표현을 하지 않을 뿐이다.“

-선수로써 장기 목표와 단기 목표가 있을텐데.

"난 항상 단기적으로 생각한다. 팀 우승이 목표였고 부상 없이 끝까지 뛰는 것이 목표였다. 예를 들어 오늘 다쳐서 내일 은퇴해야 한다면. 오늘까지 너무 열심히 해서 미련 없이 은퇴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오늘 뛰는 것이다."


2015년 4월 일요신문 인터뷰

―개인 최다 5회 우승과 화려한 팀 성적에 비해 스타플레이어로서의 지명도가 다소 떨어진다는 평가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나도 인정한다. 이상민, 김승현 선배들처럼 많은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나도 문제지만 농구 인기가 예전만 못해서가 아닐까 싶다. 내가 어렸을 때는 농구대잔치가 전부인 줄 알았다. 지금은 농구 말고 볼거리가 너무 많다. <응답하라 1994>라는 드라마를 봐도 그 시절 농구는 대단했다. 만약 ‘응답하라 2015’라는 드라마를 만든다면? 별로 나올 게 없을 것만 같다(웃음).”

―이번 챔피언결정전은 경기 외적인 문제들이 부각된 해프닝의 연속이었다. 챔프전을 이끌어가는 ‘선수’는 없고 ‘KBL 관계자’만 존재한 듯한 느낌이었다. 

“상당히 아쉬웠다. 선수나 감독님 기사보다는 다른 분들 얘기가 더 많이 거론되는 상황이. 내 꿈이 지도자인데, 이번에 새로운 꿈을 하나 더 갖게 됐다. 앞으로 우리를 보고 농구하는 후배들, 농구선수를 꿈꾸는 어린아이들에게 지금보다는 더 나은 환경에서 농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점이다. 후배들한테는 이런 환경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 그러기 위해선 다른 팀 선수들과 많은 대화를 나눠야 할 것이다. 선배들도 책임 의식을 갖고 농구 발전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2015년 4월 YTN 인터뷰

[앵커]

가서 아빠의 경기를 보고 나서 뭐라고 하나요?

[인터뷰]

지면 아빠 왜 졌냐고 물어보고요. 이기면 좋아하기는 하는데요. 일단 체육관 들어오자마자 둘이서 아빠를 엄청 크게 불러요. 안 쳐다 볼 수가 없죠.

[인터뷰]

어차피 관중석이 가까워서 아이들이 보여요.

[앵커]

가족들을 보면서 좀더 잘해야겠구나 하는 생각도 합니까?

[인터뷰]

어깨가 엄청 무겁죠, 아버지들의 마음이 다 그러지 않나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앵커]

그렇군요. 우리 양진서 어린이. 7살이라서 아직 화면에요. 양진서 군 한 마디 들어보고 싶었는데...

[인터뷰]

너무 창피해해서요. 쑥스러합니다. 아빠가 방송출연한다고 기분 좋게 따라왔을 텐데요. 여태 까불다가 지금 딱 깔아놓으니까 그러네요.

[앵커]

조금 긴장이 풀리면 다시 와서 한마디 좀.

[인터뷰]

교육을 시키겠습니다.

[앵커]

아시안게임에서는 태극마크를 달고 뛰셨죠? 그때는... 양진서 군이 또 다시 들어왔네요.

[인터뷰]

죄송합니다.

[앵커]

아빠를 정말 잘 따르는군요.

[인터뷰]

네. 집에 자주 못 가서요. 갈 때마다 거의 껌딱지처럼 붙어 있어요.

[앵커]

아빠한테 양진서 군 평소에 뭐라고 응원하는지 한마디만 해 볼래?

[인터뷰]

진서야, 아빠한테 뭐라고 응원해?

[앵커]

집에서 응원하는 소리 질러보세요.

[인터뷰]

이렇습니다.

[앵커]

아이들이 그렇죠. 부끄러워서요.

[앵커]

할 것 같은데요?

[인터뷰]

안 한다고 하네요.

[앵커]

그러면 아버님이 대신 아들한테 한마디 해 주시죠. 자주 못 보는데.

[인터뷰]

진서야, 조금 크면 쑥스러움 그만 타야 되는데 오늘부터 교육하자.


2016년 2월 4번째 MVP 수상후 JTBC 인터뷰

양동근/프로농구 정규리그 MVP : (인터뷰 잘하는 비결은?) 수상 소감도 항상 기도문처럼 외우는 말들이기 때문에 실수만 안 하면 끝까지 백 마디라도 할 수 있습니다.


2016년 2월 4번째 MVP 수상후 스포츠 동아 기사

“MVP에 대한 기대는 하지 못했다. 받게 돼서 얼떨떨하다. 나는 운이 좋은 선수다. 좋은 팀에서 좋은 지도자, 좋은 동료들을 만나 이렇게 영광스러운 자리에 서게 됐다. MVP를 받을 기회가 자주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또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2016년 2월 스포츠타임스 인터뷰

함지훈 “팀에는 중심을 잡아줄 수 있는 믿을 만한 선수가 필요하다. 우리 팀에는 (양)동근이 형이 있어서 의지할 수 있다. 해결해 줄 것이라는 생각도 있다.”

양동근 “그런 생각을 버렸으면 좋겠다. (함)지훈이는 농구를 참 잘하는데, 슛은 그렇게 아낀다. 슛을 쏘지 말래도 던지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지훈이는 쏘라고 해도 던지지 않는다.”

함지훈 “그건 동근이 형이 어시스트 순위에서 내 밑에 있어서다. 하하. 이건 농담이다.”

양동근 “아, 너 이제 (인터뷰 기사 나가면) 큰일 났다.”

함지훈 “이제 형의 눈빛만 봐도 다 알 수 있다.”

양동근 “거짓말 하지마. 뭘 알 수 있는데?”

함지훈 “(환하게 웃으며) 형과 눈을 마주치는 순간 ‘아, 이제 2초가 지나면 슛을 던지라고 소리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하하하. 형, 그러니까 아프지 마.”


2016년 5월 OSEN 이슈 인터뷰

OSEN: 신인시절 유재학 감독에게 ‘가드도 아니다’라는 꾸중도 많이 들었다. 실제로 본인 스타일이 천부적인 패서는 아니다. 지난 시즌 어시스트 1위에 오른 것이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신인 이후에도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내가 잘했다기보다 선수들이 잘 넣어줬다. 내가 (패스를) 잘 못 넣어줘도 골을 넣으면 어시스트가 되지 않나. 내가 1등할 줄 몰랐다. 어떻게 그렇게 됐다. 예전 형들에 비하면 개수가 적다. 패스를 잘하는 가드도 아니다. 타이틀에 대해 신경써본 적이 없다. 

OSEN: 오랫동안 큰 부상 없이 최고의 기량을 펼치며 선수생활을 하고 있다. 비결은?

부상이 없지는 않았다. 다만 시즌아웃급 부상은 없었다. 건강한 몸을 물려주셔서 항상 부모님께 감사하다. 부상에 대한 부분도 행운이 많이 따랐다. 

OSEN: 최근에 휴가 나온 이대성을 만났다. 상무에서 개인훈련을 많이 하더라. 모비스의 후계자감이라는 소리가 많다. 본인이 보기에는 어떤지?

내가 뭐라고 누구를 후계자라고 하겠나. 이대성은 개인기술훈련을 열심히 하는 친구다. 열심히 한다고 대견하지는 않다. 선수는 당연히 열심히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지 못한 선수는 꽃을 피우지 못한다. 


2017년 11월 마이데일리 창간 인터뷰

“제가 패스를 워낙 못하다 보니…. 통산 어시스트가 많은 건 단순히 오래 뛰어서일 뿐이에요. 평균 기록은 낮은 편이잖아요. 다른 형들에 비해 전 임팩트가 많이 부족한 선수라 생각해요.“

"최초의 3연패를 달성한 팀의 멤버라는 자부심이 있어요. LG와 붙을 때만 접전이었고, 이외의 2번은 여유 있게 우승을 했잖아요. 그 정도로 팀 전력이나 멤버 구성이 좋았죠. 양우섭(LG)이 전담 수비할 때 고전하긴 했지만, 그래도 제가 많이 넣는 것보다 중요한 건 팀이 이기는 거잖아요. 그때도 우승했기 때문에 만족합니다. 물론 제가 그 부분을 이겨냈다면, 시리즈도 더 빨리 끝낼 수 있었겠죠. 챔프전 MVP는 제가 아니라 팀이 잘해서 받았던 것이고요. (4번째 타이틀도 도전해볼만하지 않나요?)그건 바라지도 않아요. 앞으로 안 다치고 잘 뛸 수만 있었으면 좋겠어요(웃음).“

"MVP는 정규리그 우승 팀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고, 제가 동료들보다 기록이 조금 더 높아서 MVP로 선정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혼자만 잘한다고 받을 수 있는 타이틀은 아니죠. 가장 의미 있는 MVP는 2006-2007시즌이었어요. 통합우승을 처음 했던 시즌이었고, 군 입대 전 마지막 시즌이기도 해서 여러모로 기억에 남는 시즌이에요."


2018년 10월 한국일보 인터뷰

그는 마지막으로 “오지랖일수도 있지만 우리 팀은 물론 다른 팀 선수들도 전부 부상 없이 좋은 경기를 펼쳤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이번 시즌 ‘아직도 열심히 잘 뛰고 있구나’, ‘꾸준히 뛰고 있구나’라는 말을 듣고 싶다”고 소망했다. 서장훈, 김주성에 이어 차기 은퇴 투어의 주인공이 되는 것 아니냐는 말엔 “아시아 투어도 못 했는데, 무슨 은퇴 투어인가”라며 손사래를 쳤다.


 

인터뷰 내용들을 다시 보며 드는 생각은, 

‘정말 진솔하다’, ‘가족을 끔찍히도 사랑한다’, 그리고 ‘양동근 은퇴에 크리스 윌리엄스가 함께 할 수 없었던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는 것이네요.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7
Comments
2020-04-03 13:53:43

다 찾으신거예요??

 

3
2020-04-03 14:40:52

2010년 양동근 같은 선수가 되라는 말을
목표로 한다고 했는데 그 말을 그대로 이루고
은퇴하네요 수많은 가드들이 그 이름을
롤모델로 꼽고 있으니까요 어느 분야를 봐도
이렇게 완벽한 사람을 꼽기 힘든데 참
농구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훌륭한 선수입니다
존경해요

2020-04-03 18:43:57

김시래선수가 김승현선수를 롤모델로하다가 모비스 입단하고 1년만에 롤모델이 바꼈죠

2020-04-03 19:05:43

"열심히 한다고 대견하지는 않다. 선수는 당연히 열심히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마음 속 묵직하게 꽂히는 한 마디네요

Updated at 2020-04-03 20:45:29

제가 대학교때 학교 체육관서 봤던 양동근 선수는 그 때부터도 혼자 2배속으로 무지하게 뛰더군요. 대학무대때는 플레이스타일이 아이버슨 스타일이었고,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평가절하하는 의견도 있던 걸로 기억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프로 초창기에는 용병들의 높이에 대학 때 먹히던 드리블 돌파가 잘 안되더군요. 원래 패스 재능이나 사야가 출중한 선수는 아니었지만, 장기이던 폭발적인 득점력이 줄어드는 걸 보면서, 프로와 대학레벨은 다르구나 하는 걸 느꼈었습니다. 지금 와서 양선수는 운이 좋았다고 얘기하지만, 그럼에도 좌절하지 않고 좋은 지도자와 동료들 사이에서 남들이 상상할 수 없는 정도의 성실함을 바탕으로 노력을 했기에 포인트가드로 성공적으로 컨버전할 수 있었겠죠. 성실한 자기관리와 후천적 노력을 바탕으로 그 긴 시간동안 정상의 기량을 유지해 레전드가 된 양동근 선수 너무 수고 많았다고 꼭 얘기해주고 싶습니다.

2020-04-03 20:33:52

양동근 선수의 은퇴를 보면서 제가 당시에 엄청 좋아했었고 또 한편으로는 양동근 선수가 닮았다고 생각했었던 아이버슨이 좀 더 자기 ego를 내려놓고 노력해서 포인트가드로 더 긴 시간 활약했으면 어땠을까란 생각을 해봅니다.

Updated at 2020-04-03 21:40:33

말뿐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실천하신 양동근 님. 

늦게라도 더욱 알아가며 많은걸 배우고 있습니다.

20-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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