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귀의 목숨과 욕망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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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22 18:58:09
https://youtu.be/Edqokl0HC5g
예전에 들었던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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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Edqokl0HC5g
예전에 들었던것 같은데...
인간도 다르지 않습니다만 강호의 의리로 구원 받는 이들이 있지요!
애초에 수컷 사마귀의 번식을 '성욕'과 연관짓는 것 자체가 억지입니다. 번식기가 되면 암컷이 먼저 페로몬을 뿜어서 수컷을 유혹하는데, 곤충은 페로몬의 작용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위험을 감수하고 타고난 본능에 따라 암컷 사마귀와 교미를 합니다.
사실 번식기 철이 되면 수컷이 오히려 귀해지는데, 기본적으로 암수가 태어나는 비율은 1:1로 같지만 성장해가면서 사마귀는 수컷의 비율이 암컷보다 점점 줄어듭니다. 그 이유는 수컷 사마귀가 상대적으로 체구는 작지만 그만큼 날렵해서 활동성이 높고, 그러다보니 오히려 천적인 새들의 눈에 더 잘 띄어서 잡아먹히는 확률이 더 높아서 그런 걸로 보고 있습니다.
또한 같은 작은 세계의 곤충들 사이에서도 느리지만 덩치 크고 힘이 센 암컷 사마귀는 부담스런 상대이고, 반면에 수컷은 좀 만만하죠. 사마귀를 역으로 사냥하는 장수말벌이나 육식성 여치들이 노리는 대상은 아무래도 더 작고 자주 눈에 띄는 수컷일 수 밖에 없습니다. 거기다가 번식기가 아니더라도 만약 수컷 사마귀가 암컷 사마귀를 우연히 만나면 마찬가지로 잡아먹힐 수 있는 거고요.
이러다보니 여름이 지나 번식기 철이 되면 암수 비율이 좀 차이가 나서 수컷이 귀해집니다. 이런 여초 현상 속에서 암컷 사마귀들은 더 경쟁적으로 수컷들을 차지하기 위해 페로몬을 뿜어댑니다.
암컷 사마귀가 수컷을 잡아먹으려 하는 이유는, 수컷을 먹어서 영양을 잘 보충해야 더 튼튼한 자손들을 낳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암컷 사마귀는 보통 수컷의 머리부터 먹는데, 수컷의 머리에는 행동을 억제하는 중추신경이 몰려 있습니다. 그런데 머리가 없어지면 그야말로 자신의 행동을 억제할 수단이 없어져서 수컷의 교미 행위가 더 격렬해지고 그래서 그만큼 교미도 더 효과적으로 마무리됩니다.
다만 수컷 사마귀도 비록 본능에 의해 통제를 받아 목숨 걸고 교미를 하지만, 암컷에게 잡아먹히는 것 자체는 또 본능적으로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교미가 끝날 때 까지 다행히 암컷의 공격을 받지 않아 목숨을 보전하면 후다닥 달아나버리죠.
암컷이 수컷을 잡아먹는 행위가 사마귀의 성숙도와도 관련 있다는 흥미로운 실험 결과가 있습니다. 암컷 사마귀도 어렸을 때 먹이 활동을 잘 해서 빨리 성장하는 애들이 있고, 잘 못 먹어서 늦게 성장하는 애들이 있습니다. 빨리 성장한 애들은 그만큼 번식도 일찍 시도하는데, 이 조숙한 암컷 사마귀들은 첫 교미 때 수컷을 잡아먹을 확률이 매우 높다고 합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여러 모로 수컷을 먹을 수 있다면 먹는 것이 암컷에게 더 나은 자손의 보존과 교미의 성공, 본인의 몸조리(?)에 이래저래 좋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조숙한 암컷들은 두 번째 교미부터는 되도록 수컷 잡아먹는 걸 자제한다고 합니다. 왜냐면 첫 교미가 끝나고 한창 번식기가 무르익을 무렵에는 그만큼 많은 수컷들이 암컷에게 잡아먹혀서 수컷이 귀해지거든요. 그러니 또 다음 번 교미 때 수컷 만나기가 더욱 힘들어지니까 이때부터는 되도록 먹는 걸 자제하는 겁니다. (보통 암컷 사마귀는 교미와 산란을 2~3차례 정도 하는데, 가능만 하다면 더 하려고도 합니다. 따라서 훗날의 교미를 위해 수컷 잡아먹기를 자제하는 행동을 보이는 거죠.)
근데 늦게 성숙한 암컷들은 조숙한 암컷들이 수컷들을 많이 잡아먹은 시점에서 교미를 시작하므로, 수컷이 이미 귀해졌습니다. 그런 시기에 수컷을 첫 교미부터 잡아먹으면 그 다음 교미 때는 수컷이 그야말로 씨도 말라서 교미 1회로 끝나버릴 공산이 크죠. 그래서 만숙한 암컷들은 되려 첫 교미 때부터 수컷 잡아먹기를 자제합니다.
근데 두 번째 교미가 되면 양상이 달라집니다. 이미 만숙한 암컷이 두 번째 교미할 시기가 되면 이제 사마귀의 교미는 끝물입니다. 이미 늦게 교미를 시작했기에 조숙한 암컷과 달리 세 번 이상 교미를 할 여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만숙한 암컷들은 어차피 두 번째가 거의 마지막 교미가 될 걸 알기에, 두 번째 교미에선 거의 자비 없이 수컷을 잡아먹으려 듭니다.
이렇게 암컷들은 자신의 성숙 시기에 따라 수컷을 잡아먹는 걸 어느 정도 자제해가면서 번식기를 지냅니다. 보통 평균적으로 교미 때마다 수컷이 암컷에게 잡아먹힐 확률은 25% 정도라고 하는데, 그러다보니 운 좋은 수컷들은 두 번 이상 교미를 해가며 씨를 뿌릴 수도 있습니다.
번식기를 거치며 대다수의 수컷들이 죽는데 (잡아먹히거나, 용케 포식을 피해도 이미 교미에 많은 에너지를 쓰는 바람에 탈진해서 죽음...) 어차피 번식기에 용케 살아남아봤자 사마귀는 다가오는 겨울의 추위을 견디질 못합니다. 한 해 살이 곤충이다보니 수컷의 운명은 번식기를 용케 남겨도 시한부 인생인 거죠. 그러니 어쩌면 자손을 남기는 본능에 더 충실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시기를 무사히 넘긴다고 딱히 의미 있게 더 오래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암컷들도 알을 낳느라 기력을 많이 소모해서 겨울이 다가오는 시기에 거의 죽는데, 간혹 몇몇 암컷들이 살아남기도 하지만 결국 겨울의 추위 탓에 죄다 얼어 죽습니다. 만약 집에서 사육하는 사마귀의 경우, 따뜻한 환경을 보장하면 얼어죽지 않고 겨울을 넘길 수 있지만 그래도 결국은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암컷 사마귀는 본능적으로 번식기 이후에 계속 알을 생산해냅니다. 교미를 통해 수정이 되면 알이 생기는 게 아니라, 애초에 알을 몸에 밴 상태에서 수컷과 교미를 해서 알이 수정이 되는 겁니다.
이러다보니 수컷이 다 죽고 암컷만 살아남은 상태에서도 암컷의 몸에서는 계속 알이 생겨납니다. 하지만 수정은 하지 못하니, 무정란 상태로 낳을 수 밖에 없죠. 이미 산란 자체가 에너지를 극도로 소비하는 행동이기에, 겨울을 무사히 넘긴 암컷 사마귀는 이후 의미 없는 산란 행위를 반복하다가 결국 탈진해서 죽습니다. 겨울이 따뜻한 열대 지방의 암컷 사마귀들은 이렇게 겨울 내내 무정란만 낳다가 탈진해 죽는 사이클을 반복합니다.
그럼 수컷 사마귀를 겨우내 따뜻하게 보호하면 더 살릴 수 있을까 싶기도 한데,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이미 번식기를 맞은 수컷은 본능적으로 교미를 하기 위해 계속 암컷에게 접근을 합니다. 그러다가 잡아먹히거나 자신의 기력이 다할 때까지 계속 교미를 시도하는 행동을 반복하죠. 그런데 주변에 암컷이 없는 그런 사육 환경에 갇혀 있게 되면, 교미를 해야 하지만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 스트레스 때문에 결국 죽음을 맞이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인간 남성은 여성과 딱히 교미(?)를 하지 않아도 화려한 싱글 라이프를 즐기며 현자로서 인생을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애초에 수컷 사마귀는 그게 불가능하게 태어났습니다. 차라리 폭풍 교미라도 해서 자신의 2세라도 많이 남기는 게, 수컷 입장에선 가장 보람된 충생인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