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판타지가 결합된 추리소설은?
추리소설에 판타지를 섞다니.
너무한 것 아니야? 판타지를 섞으면 추리 할 수 없잖아.
틀렸어 유게이쿤.
판타지를 섞었다고 해서 추리를 못하는게 아니야.
애시당초 추리는 꼭 현실에만 귀속된게 아닌걸.
초능력이나 마법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논리적 추리가 가능하다고?
애시당초 추리의 정의는 [이미 알려진 판단에서 새로운 판단을 도출하는 것]이거든.
공정한 정보가 주어진다면 판타지가 섞여도 추리소설로썬 문제 없어.
간단한 예시를 한번 볼까?
전제1. 피해자는 "파이어 볼" 스킬에 맞아 죽었다.
전제 2. "파이어 볼" 스킬은 MP를 20포인트 소모한다.
전제3. 용의자 중 MP가 최대치보다 20이상 부족한 사람은 B군 밖에 없다.
결론: 범인은 B군이다.
판타지라도 룰이 명확하니까 추리가 성립하지?
와 그러네!
그나저나 세피짱, 추리 문학계에 이런 시도가 시작된 이유는 뭐야?
이유는 간단해!
[후기 퀸 문제]라는 본격 추리 소설의 한계 때문이야.
간단히 말하자면, 독자가 주어진 단서로 책이 제시하는 추리와 다른새로운 추리를 도출 했을 때, 소설은 그것을 부정할 수 없다는 한계야.
홈즈로 예를 들어줄게.
"그리스어 통역관"에선 그림책과 딸랑이를 들고 가는 사람을 보고 자식이 둘 있을거라고 추리하는 부분이 있어.
근데 사실 손에 그림책과 딸랑이를 들고 있다고 해서 꼭 자식이 있으란 법은 없잖아, 안그래?
다른 사람 심부름일 수도 있지.
독자가 이런식으로 홈즈의 추리에 태클을 걸어도, 이미 출판된 소설로썬 그 태클을 부정할 수가 없어.
소설에서 아무리 홈즈의 말이 맞았던 걸로 나와도 독자는 쉽게 납득을 못해. (이럴 때 독자는 "작위적이다"라고 느끼게 돼)
아하 알겠다.
극도로 현실적이고 하나의 해답을 추구한다고 생각했던 본격 추리가, 실은 그저 여러 가능성 중 하나를 제시하는 것일 뿐이었다는거지?
그래 맞아.
오직 하나의 답을 내놓도록 하려면 극도로 제한된 조건이 필요해.
하지만 제한 조건을 그렇게까지 극한으로 만들면 현실성이 떨어져.
독자와 공정한 대결을 표방하는 본격 추리는 딜레마에 빠졌지.
"작가가 의도한 답 오직 하나만을 남기고 다른 답을 전부 쳐내기 위해서 극도로 비현실적인 설정을 택할 것인가"
VS
"본격 추리의 본질을 포기하고 복수의 답을 허용할 것인가"
아하, 그래서 전자를 택한 작가들이 판타지와 추리를 결합했구나!
판타지라면 온갖 말도 안되는 설정으로 제한을 걸어도 되니까.
예를들어 밀실에 갖혔다는 내용을 쓸 때,
현실에 귀속된 소설이라면 독자들이 "창문 깨고 못 나가요?" "소리 안질러요?" "사제 폭탄 만들어서 터뜨리고 나가면 안돼요?" "어쩌고저쩌고 과학 기술 어쩌고로 탈출 시도하면 안돼요?"
라며 온갖 트집을 잡고 공격할 수 있지.
하지만 판타지 세계관의 소설이면 [어떤 방법으로도 절대 깨지지 않는 마법의 벽으로 된 밀실에 갖혔습니다.]라고 하면 한방에 정리가 되는거지.
뭐야 너 유게이쿤 주제에 이해가 빠르잖아!
그런 김에 판타지와 추리가 섞인 작품 중 명작 좀 알려줘
단, 추리 과정은 논리적이고 납득할 수 있어야 해.
마법으로 자백시켰습니다, 이런 건 안 돼
하야사카 야부사카 작가의 "RPG 스쿨"이 이 분야의 정석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작품이야.
용사와 마왕이 존재하는 판타지 세계.
하지만 범인을 찾아내는 과정은 굉장히 논리정연해.
스킬을 사용하는데 필요한 마나,
스킬을 발동하는데 걸리는 발동 시간,
반복해서 스킬을 사용하는데 걸리는 쿨 타임,
종족간 상성,
직업간 상성
이 모든 것들을 단서로 범인을 추리 해.
중반까지는 그냥 평범한 이세계 라노벨 같은 느낌이었다가, 용사가 추리 해설을 시작하면 그때부터 입이 떡 벌어질걸?
아사쿠라 아키나리 작가의 "교실이, 혼자가 될 때까지" 라는 소설도 있어.
본격 미스터리 대상 후보에 올랐던 소설이야.
초능력으로 살인을 하는 범인과, 두뇌로 맞서는 주인공의 이야기지.
주인공은 이전 살인 현장을 분석해서 범인의 능력과 그 한계를 추리해내. 그리고 반격을 준비하지.
이마무라 마사히로 작가의 "마안 상자의 살인"도 있네!
2020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 2위에 올랐던 소설이야.
미래를 예지하는 초능력자가 능장하는데, 역시나 그 초능력자의 능력을 기반으로 철저하게 논리적인 추리가 펼쳐져.
아니 전부다 정발 안 됐잖아...
정발 된걸로 좀 추천해줘
그렇다면 "시인장의 살인", "부러진 용골" 두 권을 추천해줄게.
소개 안해줘?
자세히 소개하면 스포일러가 된단 말야!
그냥 판타지와 추리가 섞인 소설이라는 것 정도만 알면 돼!
2차 출처는 https://bbs.ruliweb.com/best/board/300143/read/48855838
요 근래에 루리웹쪽에서는 저렇게 지식인?글을 애니 캐릭터를 빌어 전개하는 게 유행하고 있습니다. 2D 캐릭터들을 좋아하는 입장에서는 훨씬 더 재미가 있긴 한데... 매니아 쪽으로 퍼오기는 그랬었지요. 그런데 그 중 흥미로운 추리소설을 소개하는 글이 있어서 결국 퍼왔습니다. 추리소설을 좋아하기도 하고... 새로운 소재에 목말랐었거든요.
덧, 출처의 댓글에서 추리 소설의 기원을 오이디푸스 신화로 보는 학자들이 있다는 말에.. '말 되네~'라는 생각이 들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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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장의 살인 강추합니다.
저는 무조건 현실적인 추리소설 매니아인데 이 책을 읽고 오호 비현실적 미스터리도 재미있다는 걸 느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