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예산(body budgeting)의 관점으로 바라본 요즘 사람들이 긴 글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
나는 글을 다소 길고 장황하게 쓰는 편인데
- 심지어는 댓글을 쓸 때도 그렇다. -
언젠가부터 글을 쓰면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댓글을 다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들 중 일부는 글을 아예 읽을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또 일부는 글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음에도
글에 대해 몹시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했다.
나는 그런 모습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한동안 내 신체예산이 거의 파산 수준이어서
글을 쓰려는 엄두가 나질 않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내 신체예산이 비록 소액이나마
다소 입금되기 시작하면서
늘어난 신체예산을 기반으로 얻어진
전전두엽의 미약한 활성화를 통해
사람들의 이런 행동에 대해
한 번 길고 장황하게 글을 써보려 한다.
내 글이 대개 그렇듯이
아마 이 글도 직관적으로 이해하기에 다소 길고 장황할 거다.
또 배럿의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읽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용어들이 등장할 것이고
배럿 뿐 아니라 다른 학자들이 등장할 수도 있다.
따라서 자신을 비교적 긴 글을 잘 이해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사람의 경우에도
이 글을 한 번에 이해하고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다.
그건 읽고있는 이의 문제가 아니라
쓰는 내가 그렇게 밖에 글을 쓰지 못하는 탓이다.
그러니 부디 이 글을 읽기 전에
가장 직접적인 물리적 신체예산의 소액 입금 차원에서
물 한잔을 마시고,
입으로 긴 한숨을 내뱉고,
견과류 한 봉을 먹으며 읽기 바란다.
시간이 남는다면 자연으로 가벼운 산책을 떠나거나
가장 친한 친구나 어머니에게 카톡을 하나 보내는 것도 좋겠다.
그래도 읽다가 못견딜 때에는
잽싸게 마지막으로 스크롤을 내리길 바란다.
과도한 단순화의 오류를 무릅쓰고
몇 줄로 요약된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요약조차 누군가에게는
길고 장황한 글일지도 모른다.
그럼 요즘 세태와 전혀 맞지 않는,
시작부터 이렇게나 장황한 이 글을 시작해 본다.
내가 제목을 신체예산(body budgeting)으로 잡은 만큼
기본적으로 리사 펠드먼 배럿의 관점에서
요즘 사람들이 긴 글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하려 하지만
우선은 칼 프리스턴과 피터 스털링을 먼저 등장시키려 한다.
프리스턴의 자유에너지 원칙(Free Energy Principle)과
피터 스털링의 알로스테시스(Allostasis)를 어느 정도 이해해야
그에 기반한 신체예산을 이해하기가 쉬울 것이라는 게
내 얄팍한 생각이다.
우선 프리스턴은 열역학 제2법칙을 거슬러
일정한 형태와 질서를 유지하려 애쓰는 '생명체'는
마코프 블랭킷(Markov Blanket)을 통해 내부와 외부를 구분하여
내적모델에 따른 외부 세계의 차이인 예측 오류에 집중해
'자유에너지(예측오류)를 최소화'하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관점하에서 프리스턴은 뇌를
감각기관으로부터 받아들인 불완전한 정보를
신뢰도에 따른 정밀도 가중치(Precision Weighting)를 통해 조합하고
통계적 확률론에 입각한 베이지안 추론을 바탕으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가장 그럴듯한 가설을 제안하는
찰스 퍼스의 가설적 추론(abdunction)을 수행하여
'능동적 추론(Active Inference)'을 통해 예측 오류를 최소화하는 기관으로 보았다.
즉, 프리스턴은 뇌를
외부 세계의 불확실성(자유에너지)을 최소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예측 모델을 수정해가며
수학적 최적화를 추구하는 기관으로 보았다.
다음으로 피터 스털링은 보일러의 온도조절장치와 같이
외부자극에 따라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피드백을 의미하는
항상성(Homeostasis)은
생명체의 신체조절작용을 설명하기 어렵다고 주장하면서
생명현상에 관한 모든 것을 관장하여 끊임없이 성장하고 변화하며
새로운 균형을 만들어가는 포괄적이고도 역동적인 예측적 조절 과정을 의미하는
'알로스테시스(Allostasis)'라는 개념을 주장하였다.
예를 들면, 밥을 먹기 시작하면 뇌가 미리 인슐린 분비를 준비한다거나
달리기 전에 미리 뇌가 수분섭취를 하게 하는 것과 같이
미래를 예측하여 몸을 미리 조절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즉, 피터 스털링은 뇌를
신체 전반의 작용은 물론 의식과 행동의 변화까지 고려하는
역동적인 과정에서 균형(알로스테시스)을 이루기 위한
통합적인 기능을 가진 기관으로 보았다.
프리스턴과 스털링이 말하는 뇌의 기능을 종합하여
이를 이해하기 쉽게 경제학 용어를 통해 설명한 것이
이 글에서 내가 주로 다루게 될 '신체 예산(body budgeting)'이다.
즉, 배럿은 뇌를
이성적 사고를 수행하는 역할이 아니라
'신체자원의 효율적 관리'를 수행하는 기관으로 보았다.
다시말해, 배럿이 말하는 뇌는
단순히 자극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능동적 추론을 통해
미래에 필요한 자원(신체예산)을 미리 예측하여 분배하는
'재무책임자'와 같은 역할을 하는 기관이다.
배럿은 이렇게 신체자원을 분배하여 관리하기 위해
외부자극을 기반으로 한 내수용감각을 종합하여
쾌락(Valence, 유쾌와 불쾌로 나누며 신체예산이 흑자인지 적자인지를 판단)과
각성(Arousal, 고각성과 저각성으로 나누며 신체예산을 집행할지 보결할지를 판단)이라는
두 축을 통해 핵심 정동(core affect)으로 요약함으로써
신체예산에 대한 중간보고서를 작성하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정동을 기반으로 하여
다시 외부자극과 내수용감각을 탐색하여
베이지안 추론과 가설적 추론을 거쳐 감정을 생성하고
이를 다시 감정 해상도(granularity, 입자도를 최효석 교수님이 우리말에 맞춰 다시 번역한 것)에 맞춰
감정을 들려다본 후에야 비로소 감정이 탄생한다고 보았다.
이것이 배럿의 구성된 감정 이론이다.
여기서는 주로 신체예산에 대해서 얘기하려 하므로
구성된 감정 이론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넘어가도록 하자.
- 개인적으로 구성된 감정 이론보다 신체예산이란 개념이 더 의미있다고 보는 편이다.
프리스턴과 배럿의 관점을 종합하여 설명하자면
우리의 뇌는 신체 예산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마코프 블랭킷을 통해 구분된
외부(외부감각과 내수용감각, 이를 기반으로 한 핵심 정동)의 자극을
신경을 통해 들어오는 전기적 신호를 통해 구분하여
신체 예산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베이지안 추론과 가설적 추론을 통해
미래를 능동적으로 예측하고
이러한 내부모델에 따라 행동이나 환경을 미리 조절하여
불확실성(자유 에너지)을 감소시킴으로써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을 창조하는 기관이다.
'신체 예산'을 통해 이를 비유적으로 설명하자면
뇌는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비하여
한정된 자원인 신체 예산의 입출금을
가장 효율적으로 관리하고자 하는 '재무책임자'다.
그럼 여기서 신체예산의 입출금에 관해 간단하게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신체예산의 입금에 대해 살펴보자.
우선 신체예산에서 신체 내부 상태를 즉각적으로 조절하는
가장 확실한 입금인 '생물학적(물리적) 입금'으로
수면, 휴식, 질좋은 영양분, 수분, 운동(단기적으로는 지출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입금) 등을 들 수 있다.
두번째로는 신체예산의 공동 관리자로서의 '사회적 입금'으로
공감과 이해, 사회적 지지, 신체적 접촉, 포옹, 눈맞춤, 소속감, 신경계의 동기화를 통한 공동 신체예산 관리 등을 들 수 있다.
다음은 뇌가 현실을 예상가능하고 안전한 곳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환경적이고 감각적인 입금으로
규칙적인 생활 습관, 자연경관, 좋아하는 음악, 익숙한 공간, 명상, 마음챙김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는 결국 아무것도하지 않는 상태인 디폴트모드네트워크(DMN)의 안정화를 유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신체예산의 지출에 대해 살펴보자.
우선 가장 필수적인 지출인 '생리적 고정 지출'에는
심장박동, 호흡, 체온유지, 세포재생, 소화 등과 같은 기초 대사와
외부의 바이러스나 박테리아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감시하고 활동하는 면역활동과
신체내부의 감각들을 모니터링하고 조절하는 내수용감각 활동으로 나눌 수 있다.
두번째로 외부 환경 변화에 대응하거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적응적 활동 지출'에는
걷고 달리는 등의 이동과 물건을 드는 등의 근육활동을 포함하는 물리적 활동과
복잡한 문제를 풀거나 새로운 기술을 배우거나 집중력을 유지하는 인지적 활동,
갑작스런 사건을 맞이하여 분노나 슬픔 등을 억누르는 정서 조절 활동으로 나눌 수 있다.
다음으로는 사회적 관계로부터 비롯되는
'사회적 지출(세금)'로
사회적 관계에서 야기되는 무시, 거절, 비난과 같은 사회적 갈등이나 직장상사의 눈치, 악플 등을 들 수 있다.
간단하게 살펴보면서 대충 이해했겠지만
현대문명 하에서 현대인의 신체예산은
입금보다 지출이 훨씬 많을 수 밖에 없는
만성적인 적자 상태에 놓여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또 다른 문제가 들어가게 되는데
그건 현대문명에 적응하지 못한
뇌의 알로스테시스 시스템이다.
인간의 뇌는 호랑이나 맷돼지 등이 등장하는
물리적이고 단기적인 위협에 맞춰
대응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냈는데
이는 추상적이고 장기적인 위협으로 가득찬
현대사회와는 전혀 동떨어진 시스템임에도 불구하고
뇌의 알로스테시스 시스템은
현대의 추상적이고 장기적인 위협을
호랑이나 맷돼지와 같은 위협으로 간주하고 움직인다는 거다.
우리의 뇌는 현대사회의 추상적이고 장기적인 위협에도
마치 근육의 힘을 통해 물리적이고 단기적인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싸우거나 도망치기에 적합한
편도체를 중심으로 한 신경망을 활성화시켜
심박수를 올려 근육에 더 많은 에너지와 산소를 공급하고
어깨, 목, 안면, 턱과 같은 근육들까지 단번에 수축시킨다.
그리고 소화, 면역, 인지에 사용할 신체예산까지 모두 가져와 근육으로 이동시키게 된다.
이 과정에서 핵심 정동(core affect)은 두려움이 되고
이러한 두려움이 단기간에 해소되지 않을 때 분노의 형태로 표현되게 되어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이 결국
현대인이 마주한 추상적이고 장기적인 위협을 해결하는데
정작 필요한 디폴트모드활성화나 인지적 활동, 정서 조절, 물리적 행동 조절을 포함하는
전전두피질을 중심으로 한 신경망의 활성화를 가로막음으로써
장기적으로 입금을 감소시키고 지출을 가속화시킨다는데 있다.
이러한 뇌의 알로스테시스 시스템의 업데이트가 이뤄지지않는데 더해
현대사회는 예측이 불가능한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그에 따른 정보는 과부화될 정도로 쏟아지고 있어
예측오류를 수정하는 것에 과도할 정도의 신체예산이 소비될 수 밖에 없다.
또한 카페인 등을 통해 뇌를 속여 지속적으로 인출을 시도하고
스마트폰 등을 통한 단기적인 도파민 분비를 통한
외부감각에의 몰두와 감각과부하가 일으키는
내수용감각과의 사실상 단절로 인해
정동에 의지하여 현실을 파악하게 되는
'정동 실재론(affect realism)'이 발생하여
정동이라는 안경을 쓰고 세상과 타인을 인식하게 된다.
이때의 정동은 사실상 두려움이 지배하게 되므로
세상은 더욱 무서워지고 타인에게는 부정적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 초가공식품의 섭취를 통한 신체 데이터의 혼란이 야기되어
대사 데이터가 왜곡되고
만성염증으로 인해 추가적인 지출이 발생하게 된다.
또한 과거와 달리 파편화된 사회 구조로 인해
사회적 고립이 야기되어
사회적 입금이나 사회적 공동 신체예산 관리도 불가능해져
결국 현대인은 만성적인 신체예산 적자 상태를 벗어나기 어렵게 되었다.
이러한 현대인의 만성적인 신체예산 적자 상태를
뇌의 알로스테시스 시스템은 비상상태로 인식하게 되고
이로 인해 대대적인 신체예산 긴축 재정에 들어가게 된다.
생명체를 보호하기 위해 가동된 안전모드 상황에서
뇌는 예산이 부족하므로 장기적인 투자인 오류수정, 학습이나 기억 등에 예산을 투자하지 않아
과거의 예측모델과 정동에 의지하게 되므로
상황을 살피지 않고 전형적인 반응을 보이고
새로운 정보를 무시하면서 정동에 따라 감정적으로 현실을 왜곡해 반응하게 된다.
사실상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지만
가장 신체예산이 많이드는 전전두엽의 기능을 셧다운시키는 것이다.
현대인들이 숏폼에 중독되는 것도 이를 바탕으로 설명할 수 있다.
만성적인 신체예산 적자 상태에서
뇌는 불확실성에 투자할 예산이 부족하므로
두려움이란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정보를 수집하는 활동에 집중하게 되고
- 한문철이 주목받는 것 -
예측비용이 낮은 것에 끌리게 되며
수없이 작은 예측오류를 통해 발생하는 도파민에
- 이에 대해서는 도파민 시스템에 관한 이전 글 참조 -
중독되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 것이다.
이와 반대되는 과정이 나타나는 대표적인 것이
이 글에서 애기하려는 긴 글을 접하게 되는 때다.
만성적인 신체예산 적자 상태에서
글을 읽는다 하더라도 이해에 투자할 예산이 부족하므로
글을 바르게 이해하고 요약하는 것이 어려워지며
일부 경우는 뇌가 예산을 아끼기 위해
아예 이해 자체를 포기(거부)하도록 하여 이해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이러한 긴 글을 이해하기 위한 과도한 예측 오류 처리비용의 지출은
그 자체로 생명체에 위협이 되는 신호(불확실성)나
나의 신체예산을 파산시킬 수 있는 공격으로 여겨질 수 있어
긴 글 자체가 부정적인 감정을 유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또한 이미 만성적인 신체예산 적자로 인해
불쾌한 정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경우에는
정동 실재론으로 인해 정동의 이유를 긴 글에서 찾아 현실을 왜곡하게 되므로
긴 글 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표출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신체예산이 흑자인 경우라면
긴 글을 읽고 새로운 정보를 바탕으로 지각적 추론을 가동시켜
예측오류를 수정하고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가는
정서적 유연성이 발휘될 수 있으나
대개의 현대인들이 그러한 것처럼
신체예산이 적자이거나 심지어 파산된 경우라면
긴 글 자체가 위협이나 공격으로 인식되어
글을 무시하거나 거부하면서 고정관념을 통해 단편적으로 해석하고
분노를 표출하기도 하는 것이다.
결국 긴 글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지적 능력 부족이거나 인격적인 결함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만성적인 신체예산 적자로 인해
뇌가 비상모드로 작동 중일 가능성이 높다.
그들에게 긴 글은 새로운 정보를 바탕으로 한 지적인 유희라기보다
자신의 신체예산을 탈취하여 생존을 위협하는 두려운 호랑이로 인식될 것이다.
이 글은 호랑이가 아니었으면 좋겠지만
아마도 누군가에게는 그럴 것이다.
나도 한동안 그랬었다.
새로운 음악을 듣거나 새로운 드라마를 보기도 두려웠다.
나피디의 예능을 주로 보았는데
생각해보면 예측오류의 가능성을 낮추는 익숙한 포맷과
핵심 정동을 거스르지 않는 낯익은 유쾌함이 좋았던 것 같다.
맨날 똑같다고 욕을 먹어도 나피디가 먹히는 건
현대인들이 만성적인 신체예산 적자에 시달리기 때문이라고 나름대로 해석해본다.
이 글이 호랑이처럼 느껴지는
만성적인 신체예산 적자에 시달리는 이들을 위해
단순화의 오류를 무릅쓰고
이 길을 3줄로 요약해보면
1. 인간의 뇌는 한정적인 신체예산을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비해 효율적으로 분배하는 재무책임자다.
2. 현대인들의 뇌는 입금은 적고 지출은 많은 만성적인 신체예산 적자에 시달려 지출을 줄이는 긴축모드로 작동한다.
3. 긴축모드에서는 긴 글과 같은 과도한 신체예산 지출은 생존에의 위협이므로 이를 무시하여 지출을 줄이거나 분노를 통해 위협에 저항하게 된다.
이렇게 간단할 수 있는데
너무 먼 길을 돌아서 온 것 같다.
아마도 지금의 내 신체예산이 조금은 넉넉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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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 많아도 관심 없는 사람들은 호랑이고 나발이고 안 읽지 아늘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