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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 유로마이단 사건까지의 타임라인(1)

Ly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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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04 04:13:40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를 되짚어보면
 
 2014년에 일어났던 유로마이단 시위까지 되돌려야 합니다. 
 
 우크라이나는 서쪽(친EU)과 동(친러)쪽의 정치지형이 극단적으로 다른 나라입니다. 
 
 아래 보시면 과거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 당시 각 후보간 지지율 입니다. 
 
 서쪽의 유센코와 동부의 야누코비치의 대결이었죠. 
 
 서쪽 끝으로 갈수록, 동쪽 끝으로 갈수록 극단적입니다. 
 
우크라이나 - 유로마이단 사건까지의 타임라인(1)

이런 정치지형이 된 이유는 우크라이나 역사정 영토 변화 때문이라 보시면 됩니다. 

 

우크라이나 - 유로마이단 사건까지의 타임라인(1)

 현 우크라이나의 영토가 완성된 것은 1954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1922년과 1954년에 더해진 우크라이나 영토는 러시아 제국의 영토였던 곳입니다. 

 

 따라서 러시아계 인구가 많은 곳이고, 친 러시아 계통 인구가 많은 것이 당연합니다. 

 

 이때 우크라이나 영토가 커진 이유는 소련의 구성 과정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소련은 각 지역을 관구로 편성합니다. (러시아관구, 우크라이나관구, 시베리아 관구 등등)  

 

 이 과정에서 우크라이나 관구 지역의 크기가 매우 커진 것이죠. 

 

 그런데 여기서 크림반도나 오데사에 해당하는 현 우크라이나 서쪽지역은

 

 러시아제국이 과거 전쟁을 통해 획득한 영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러시아인들은 우크라이나 동쪽 지역을 원래 자기들 영토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출신 서기장 흐루쇼프가 크림반도를 우크라이나 관구에 넣어버리는데 아마 그때는 갈라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했을겁니다. 

 

아마 러시아 제국과 소련을 계승했다고 생각하는 현 러시아는 이 상황이 꽤나 어이없었겠죠

(옐친!!!!!) 

 

그래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친하게 지냈기 때문에 그런대로 무탈하게 지내왔'었'습니다. 

 

우크라이나 또한 러시아에서 서유럽으로 이어지는 가스 파이프라인 통행세를 받았죠.  

 

그런데 여기서 2014년 유로마이단 사태가 터집니다. 

 

이 사건이 일어진 이유는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이렇습니다.

 

 

아래는 타임라인입니다.  

 

2008년 리만 사태가 터진 후 전세계에 경제 위기가 닥치는 데 우크라이나는 이를 극복하지 못해 파산 위기에 처한다. 우크라이나가 SOS를 치는데, 이에 러시아와 EU 측으로 부터 각각 경제 지원 제안을 받는다. 러시아는 150억 달러를 빌려주겠다고 했고, EU는 200억 유로를 빌려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EU의 제안에는 연금 삭감, 우크라 기업의 천연가스 사용료 대폭 인상, 대대적인 경제 개혁 등의 전제조건이 붙어있었다. 러시아측 제안에는 전제조건 없이 가스 공급가 33% 인하가 붙어있었고, 나중에 러시아와 경제 동맹을 맺으면 아예 탕감시켜 줄 수도 있다고 말을 흘렸다.

(푸틴, 우크라 끌어안기‘통큰’지원, 2013년 12월 18일, ksmnews)

당시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계인 야누코비치였는데, 친러 여론이 강한 동부지역은 야누코비치를 지지하였고, 친서방 성향이 강한 서부지역은 이에 반대합니다. 결국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러시아쪽 제안을 택합니다. 우크라이나가 정부의 부패는 유명했고, 이런저런 개혁하기에는 걸리는게 많았겠죠. 

이는 동 서부를 가리지 않는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서부지역에서 상경한 사람들과 수도의 키예프 시민들이 모여 너무 후한 러시아의 제안을 받으면 경제가 러시아에 종속된다는 주장을 하며 EU 의 제안을 받고, 러시아 제안을 거부하라는 시위를 벌이기 시작한다.

 

시위가 점차 격화되던 어느날 시위대 18명과 경찰 16명이 같은 날 저격당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총격 사건이 벌어지자 시위대는 방패와 투석기, 철봉 등을 사용하여 경찰을 공격하고 경찰들도 본격적으로 시위대에 총격을 가하기 시작한다. 2월 18-19일 이틀동안 75명이 사망하고, 1100명이 다치는 유혈사태가 벌어졌다.

(우크라이나 역사⑥…유로마이단과 크림 사태, 2022.02.18, atlasnews)

추후에 우크라이나 정보국이 유투브를 통해 고발한 우르마스 파엣 에스토니아 외교장관과 캐서린 애슈턴 EU 고위 외교안보 대표의 녹취록에 따르면 시위대와 경찰이 동일범에게 살해 당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파엣 외교장관은 저격수 배후가 야누코비치가 아니라 신정부의 누군가일 것이라고 의심했다.

(키예프 저격수 배후 미스터리, 2014-03-06, heraldcorp)

야누코비치 이후 집권한 친서방 신정부는 첫째날에 경찰과 시위대에 동시에 발생한 총격 사건은 덮어버렸고, 둘째날 이후에 발생한 총격 동영상만이 유포되며 경찰이 누구에게 총격을 당했는지는 미궁에 빠진 채 경찰이 시위대를 총살한 사건으로만 정리되게 된다.

유혈 사태에 놀란 정부와 야당, 시위대는 다음날 휴전에 합의한다. 정부의 유혈진압을 비난하던 서방세계가 중재에 나선다.

미국의 조 바이든 부통령이 진압경찰을 철수시키라고 요구하고 독일, 프랑스, 폴란드 정부의 외무장관들이 중재한 결과, 국민들의 신임을 묻기 위해 조기 총선을 치르기로 하고, 더 이상의 유혈충돌을 막기 위해 우크라이나 정부는 경찰 병력을 수도바깥으로 빼내겠다고 약속한다.

(바이든 "우크라이나 진압 경찰 철수해야", 2014.01.28, sbs)

그런데 정부가 경찰 병력을 빼내자, 유로마이단 시위대는 전격적으로 총기를 들고 정부 관공서를 점령한다. 키예프 시청과 정부 청사들이 속속 점령당하고 정부가 전복되자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러시아로 도망친다.

우크라이나 서부에서는 지방 관공서들도 친서방 시위대가 속속 점거하기 시작하였고, 이에 대항하여 우크라이나 동부에서는 친러시아 시위대가 관공서를 점거하기 시작한다.

(스필나_스프라바, wikipedia) (Groups at the sharp end of Ukraine unrest, 1 February 2014, bbc)

 

 

 결국 경제문제로 우크라이나 정부가 외부 지원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데 

 

 까다로운 조건을 내세운 EU에 비해 비교적 관대한 조건을 내세운 러시아의 안을 받습니다. 

 

 그러나 친 서유럽의 서부 세력은 이럴 경우 러시아에 더욱 종속될 것이라며 반발하죠.

 

 그렇게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는데 이게 유로마이단 광장에서 일어납니다. 

 

 여기서 유혈사태가 발생했는데 이건 굉장히 많은 뒷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것이 진실인지는 저도 정황으로만 볼 수 밖에 없는 일이구요. 

 

 그런데 서유럽과 미국이 서부 우크라이나 세력을 정치적으로 지지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아무리 시위가 크게 일어나고 유혈사태가 일어났다지만 

 

 정부가 일단 시위대와 합의하고 경찰을 철수시킨 시점에서 

 

 시위대가 갑자기 돌변하여, 정부 관공서를 점령하고

 

 대통령이 러시아로 망명하는 사태가 일어났거든요. 

 

 그리고 미국과 유럽은 이를 인정합니다. 

 

2013년 12월 14일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키예프에 방문해서 유로마이단 시위를 지지한다고 연설한다. 이 때 네오나치 정당인 Svoboda 당수와 바로 옆에서 사진을 찍는다.

(John McCain backs opposition leaders telling Ukraine protesters: 'America stands with you - Ukraine will make Europe better', 2013년 12월 15일, dailymail)

2013년 12월 11일 Victoria Nuland 미 국무부 차관보가 키예프를 방문해서 시위대를 격려한다.

(Top U.S. official visits protesters in Kiev as Obama admin. ups pressure on Ukraine president Yanukovich, DECEMBER 11, 2013, cbsnews)

2014년 2월 4일 Victoria Nuland 미 국무부 차관보와 제프리 파야트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대사의 녹취록이 유투브에 공개되는데, 아직 정권이 전복되지도 않은 시점에서 우크라이나 차기 정부 내각에 누구를 임명할지 논의하는 내용이었다. 여기서 논의된 사람들이 나중에 실제로 우크라이나 내각에 임명된다. 미국 국무부도 녹취 내용이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우크라이나 시위 뒤에 ‘미국의 공작’ 있었나?, 2014.02.07, 경향신문)

 

2014년 2월 6일 Victoria Nuland 미 국무부 차관보가 키예프를 재방문해서 네오나치 정당인 Svoboda 당수와 회담을 한다. 유로마이단 시위대가 격렬하게 시가전을 하고 있을 때였다.

(US diplomat refuses to comment on EU leak, says conversation 'private', 07 Feb 2014, malaymail)

2014년 2월 Victoria Nuland 차관보는 자기 입으로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러시아로부터 분리시켜 미국 밑으로 데려오기 위해 수십년간 50억달러를 썼다고 강연하기도 한다.

(Victoria Nuland's Admits Washington Has Spent $5 Billion to "Subvert Ukraine", 2014. 2. 9, youtube)

몇달 뒤 총선이 치뤄지고 우크라이나 신 정부가 들어서자, 현직 미 국무부 관리가 우크라이나 정부의 재무부 장관으로 취임한다. 우크라이나 주재 미 대사관의 경제참사관으로 일했었던 Natalie Jaresko 인데, 미국인이었다. 추후 이중 국적자가 된다.

(Natalie Jaresko, wikipedia)

독일 언론 '빌트'지는 CIA 브레넌 국장이 가명으로 우크라이나에 들어와 우크라이나 내전에 개입하고 있었다고 보도하였다.

("美 CIA·FBI 요원들 우크라 정부 지원", 2014.05.05, sbs)

 

 

 그리고 유로마이단 시위대가 정부를 몰아낸 후

 

 정권을 잡은 서부 친서방 세력은 집권당을 공중분해시켰으며 

 

 이전 정부에서 일한 관료나 정치인이 10년간 피선거권을 박탈하고,

 

 그 당의 국회의원 수십명을 국가보안법으로 걸어서 잡아넣게 됩니다. 

 

 그 결과 이후 선거에서 제 1당과 2당을 모두 유로마이단 세력이 차지합니다. 

 

 동부지역 사람들은 선거에서 기권이나 불참, 무효표를 내는 식으로 사실상 보이콧을 하구요. 

 

 이 사건을 두고 서쪽 지방 국민들은 혁명이라고 불렀지만,

 

 친러세력이 크던 동쪽 지역의 국민들은 불법적인 쿠데타라고 강력하게 비난합니다.

 

 러시아는 미국이 대놓고 친러 정권 전복을 공작하여 형제 국가를 돌아서게 만들었다고 비난합니다.

 

 

  2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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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joon01
2025-03-04 04:29:03

유로마이단에 대해 러시아쪽 입장 위주로 설명하셨네요. 사실 제대로 파악하려면 오렌지 혁명까지 거슬러 올라가야됩니다.

WR
Lylla
Updated at 2025-03-04 04:33:36

전체적으로 우크라이나 문제는 동-서부의 대립의 연장선이니까요. 오렌지혁명때부터 끊임없이 이어지죠. 미국과 유럽의 동진, 러시아의 반발 등이 어우러진 현상이니까요. 

 

사실 동부 출신 대통령 야누코비치의 정치력이 좋았다면 쫓겨나지도 않았겠죠. 

joon01
Updated at 2025-03-04 04:55:39

야누코비치가 시위대를 향해 그렇게 심하게 무력진압만 안했더라면 이 지경까지 안왔다고 생각합니다. 시민들에게 총기 집단 발포, 특수부대와 저격수 투입, 고문으로 사망, 가로수에 목매달기 등등 도가 지나쳤죠. 이렇게 대응하니 안쫓겨날수가 있나요.

WR
Lylla
2025-03-04 04:45:07

한번 유혈사태가 나면 걷잡을 수 없어지니까요. 첫 희생자가 나왔을 때 과정이 좀 석연찮은 장면이 있어 저는 과연 처음부터 강경하게 나왔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 말을 아끼겠습니다. 

rafale
Updated at 2025-03-04 07:48:34

한국인들이 참고하기엔 유로마이단을 중심으로 설명해도 문제가 전 적다고 봐요.  
더 설명하면 국제정세의 변화도 적어야 해서.  

이게 04 오렌지혁명 전의 맥락은  같이 경제가 헤롱되던 러시아 푸틴이 나토에 대한 유화 메세지를 던졌는데....  그걸 무시하고 계속 동진해서 14 유로마이단쯤 되면  푸틴이 경고를 날리고 우크라이나입지에 대해 민감해 할 때라.    러시아 자원수출이 유가 상승 덕을 보면서 푸틴은 갈등 일으켜도 손해 아닌거 같은데?  이런 판단으로 전환 중이라.   

우크라 친러파의 입지를 위해  당근패키지를 제시한 시기기도 해서.  유로마이단 이후로 우크라가 소수파를 탄압하면   푸틴이 미친개처럼 물거라고 생각을 안 한 건지.  오히려 그 반대인데 안타까웠습니다.   08년 조지아 침공이란 사례가 있는데.  

rafale
2025-03-04 06:46:42

러시아쪽 입장에서 설명했다, 더 위로 가서 설명해야 한다는 의견도 계시니  우크라쪽 관점에서 넣어야할만한 사건은 대개 넣은 기사 시리즈 보고 가시는 것도 괜찮아 링크합니다.  아무래도 전쟁 초기에 쓰여진 기사니 서술을 조심해야 했을거라.

우크라이나 역사①…러시아의 영토인가
http://www.atla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727
~

우크라이나 역사⑥…유로마이단과 크림 사태
http://www.atla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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