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딩 시절 재밌는 문화 썰 2가지 풀어 봅니다
고딩 시절 재밌는 문화 썰들이 갑자기 🐶뜬금없이 생각나서 2가지를 좀 풀어 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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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는 중앙 계단입니다. 이건 다들 비슷한 것 같더라고요. 저는 남고를 나왔는데 점심 시간마다 반 대항 축구 대회를 했었어요. '국대는 져도 우리 반은 지면 안 된다'는 결기와 투쟁심이 넘쳤더랬습니다.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반 대항전이 있는 날은 최대한 밥을 빨리 먹어야 했습니다. 그래야만 체육실에서 가장 좋은 공을 선점해 일명 '원바'를 즐기고 몸을 풀거나 치열한 관중석 경쟁에서 이길 수 있었죠. 중앙 계단이 학생 식당으로 가는 최단 경로였으니, 장판파의 장비처럼 중앙 계단을 미리 점거하고 있는 학생부장을 뚫어내는 건 혈기왕성한 우리 대한건아 사나이들로서는 포기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과제였습니다. 장팔사모처럼 크고 우람한 골프채로 무장한 그는 학생부장도, 중앙정보부장도 아닌, 가히 중앙계단부장이라 할 만했죠.

번번이 중앙계단부장에 붙잡혀 체벌을 받거나 먼 계단을 다시 돌아가고 경기에서도 지기를 반복했던 우리는 이내 작전을 짜기에 이릅니다. 점심 시작 종이 울리기 5분 전 우리는 반에 몇 명씩 있는, 보기만 해도 배부른 소위 덩치 친구들을 단잠에서 깨웁니다. 그들은 느릿느릿 잠에서 깨어 빗자루와 쓰레받기로 주섬주섬 무장합니다. 선수들은 유니폼과 축구화로 환복을 하고 선크림을 쳐발쳐발합니다. 과연 전운이 감도는 5분입니다.
만반의 준비를 마친 우리는 종이 울리자마자 힘껏 소리를 지르며 중앙 계단을 향해 발업 저글링처럼 미친듯이 진격하기 시작합니다. 무장한 덩치들이 당차게 선봉에 설지니 그 무엇이 두려우랴. 중앙계단부장은 우리의 기세에 밀려 어쩔 줄 몰라합니다. 잠시 이어지는 대치 도중 그는 당황한 나머지 한 덩치의 빗자루를 잡아당깁니다. 결국 균형을 잃고 넘어진 덩치는 다리가 부러지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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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이후 중앙 계단 통행은 전면 허용됐습니다. 중앙 계단을 선생들만의 소유물이 아닌 우리 모두의 것으로 쟁취한 것입니다! 그 날은 '중앙 계단 대첩의 날'로 기억됐고, 덩치는 전교에서 열사로 불리며 칭송받았죠. 우리는 덩치의 깁스를 형형색색의 매직으로 뒤덮어 무한한 감사를 표했습니다. 아아 그의 희생은 우리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남아 길이길이김기리 기억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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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제 모교, 특히 2학년 5반에서만 있었다고 감히 자부할 수 있는 은어입니다. '스...'입니다. 단어로 표현하니 좀 그렇긴 한데, 모음 ㅡ를 발음할 때 입모양을 한 채 이빨 사이로 공기만 새어나오게 하는 겁니다. 뱀이 기어가는 소리를 흉내내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게 뭐냐면 야자 시간 때 감독으로부터 딴짓하는 친구들을 보호하기 위한 사인이었습니다. 우리는 공기계나 갤플로 영화와 애니를 보고 게임도 하고 음악도 듣고 여친과 카톡도 하고 만화책도 읽고, 밤에 혼자만의 거사를 치를 체력을 위해 엎드려 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아 물론,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들도 많았답니다.
한 학년에 총 10개 반이 있었고 학년 당 야자 감독은 겨우 두세 명이었으니, 상상 속 메딕을 한없이 욕망하는 마린 25부대(300명)를 겨우 두세 기의 패트롤 닼템들이 통제하기란 불가능이었습니다. '스...'는 그런 의미에서 닼템의 일방적 마린 학살을 방지할 수 있는 스캔과도 같았죠.

故 함석헌 선생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닼템은 도둑 같이 뜻밖에 찾아왔다"고. 복도를 어슬렁거리던 닼템이 뒷문을 확 열어제끼려 하는 위기의 순간, 그를 알아챈 임의의 선각자가 '스...'로 모두의 주의를 환기시킵니다. 닼템이 뒷문을 열어 교실을 스윽 둘러 보지만 이미 한 발 늦은 뒤입니다. 죽은(공부하는) 마린 시체들 뿐임을 확인하고는 이내 다음 먹잇감을 찾아 나섭니다. 감사할 줄 아는 마린 한 무리는 쉬는 시간이 되면 매점에서 브이콘, 피크닉, 누네띠네 등을 공수해 와 선각자에게 바칩니다.
그러나 가히 아름답다 할 만한 이 선순환은 언제부터인가 단순한 장난으로 변질돼 버리고 맙니다. 딴짓하거나 자는 친구들을 낚으려고 '스...'를 남발하는 것이죠. 이를 테면, 딴짓을 하던 녀석들이 별안간 들려 온 '스...'에 놀라 황급히 공부하는 척을 하지만 주변에 닼템의 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여기저기서 통탄스러운 규탄이 들려오자 거짓된 선각자는 뻔뻔하게도 "아니 섹s 섹s", "ㅋㅋ 쥬스 쥬스", "(하찮은 손가락 V와 함께)Peace...!!" 등 여러 바리에이션으로 능구렁이처럼 빠져나갑니다. 이렇듯 스캔을 남발해 버리면 마나가 바닥나기 마련입니다. 마린들도 '저 망할 컴샛 스테이션 또 고장이네'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죠. 진정한 위험을 감지할 수 없게 되는 겁니다.
WR
Fckcptlsm
0
2025-02-24 05:19:20
그러게요 ㅎㅎ '쌤 왜 안 돼요?' 물어봐도 '하지 말라면 하지 마라'가 답이었죠. 다시 생각해 봐도 이렇다 할 게 잘 안 떠올라요. 보통 선생들 본인이나 내빈들이 다니는 길이니 안전 때문에 그런 것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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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계단을 왜 못쓰게했을까요? 저도 기억납니다 중앙계단 쓰다가 엉덩이 얻어맞는 선배들 보곤 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