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 안개 낀 세계 속, 직업으로서의 '스파이'론
실은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원작 소설을 읽어봤습니다만, 뭐 기억이 안나고 또 기록한 데도 (그 당시에는) 없었으니 걍 처음 본 척하고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싶습니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존 르카레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에스피오나지 장르입니다. 아마 모티브가 된 실제 사건을 알고 계시는 분도 있을 것 같네요. ('케임브릿지 사건'!)
영화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건 역시 화면의 질감입니다. 그러니까, 매캐하게 안개끼고 흐리고, 회색의 화면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이 이야기를 요약하기 위한 '카피 문구'가 참 애매합니다.
누군가 존 르카레의 소설 주인공은 '저항하기엔 나이가 들었지만, 그렇다고 순응하기엔 아직 젊은' 어정쩡한 중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고 하던데, 어찌보면 이 영화도 그렇습니다. 어떤 점에서는 참 '프로페셔널'한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영화의 큰 줄기는 첩보부 내에 숨어있는 고위 첩자, '두더지'를 잡아내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기교를 들이거나 혹은 서술 트릭을 이용하거나 혹은 액션의 물량공세로 그려내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오히려, 영화는 꽤 혼란스럽습니다. 집에 있는 소설책 두께와 두 시간 조금 넘는 영화의 러닝타임을 생각해보면, 영화는 꽤 많은 부분에서 잘라내고 또 생략한 부분이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동시에, 영화의 이야기도 약간은 산만해요. 몇몇 장면들이 시간 순서가 아니라 오히려 주인공 '조지 스마일리'의 생각 순서대로 구성된 느낌이거든요.
영화는 결국 회색 지대의 어딘가를 조준하는 영화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멋들어진 스파이는 당연히 아니고, 그렇다고 혼란스러운 '슈퍼 스파이'도 아니고. 오히려 영화의 조준지점은 담배 연기마냥 희뿌연 세계 속에서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직업인으로서의 스파이, 혹은 하나의 장기말로서 기능하는 스파이의 이야기는 아닐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다만, 보면서 원래는 <타인의 삶>과 비슷한 무엇인가를 느꼈는데, 막상 쓰면서 정리하니 결이 좀 다르다는 느낌이 드네요. '사무적인 스릴러'라는 측면에서는 유사성을 느끼지만, 타인의 영향으로 부조리를 깨닫는 <타인의 삶>과 흑과 백 속에서 결국은 어떠한 방향성을 강요받아야했던 이 영화의 차이 때문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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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예전에 DVD방 알바를 잠깐 했는데... 영화보다가 손님이 가장 많이 중간에 나온 영화가 바로 이 영화였습니다. 영화 표지만 보면 엄청 재미있는 스파이 스릴러 같거든요. 출연 배우들도 엄청 화려하고... 그런데 내용은 3팀이 "도저히 못보겠다"고 하면서 중간에 나오더군요. 뭔 말인지를 모르겠다고.
이게 원래 박찬욱 감독에게 제의가 왔었다고 하죠. 박찬욱감독은 "이 소설을 어떻게 영화화해야할지 모르겠어서" 거절했다고 하구요. 완성된 작품을 보고, 이렇게 불친절하게(?) 만들어도 되는건지 알았다면 자기가 할걸 그랬다고. 나중에 존 르카레 소설 원작의 작품을 만들게 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