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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 안개 낀 세계 속, 직업으로서의 '스파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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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01 22:43:36

 

실은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원작 소설을 읽어봤습니다만, 뭐 기억이 안나고 또 기록한 데도 (그 당시에는) 없었으니 걍 처음 본 척하고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싶습니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존 르카레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에스피오나지 장르입니다. 아마 모티브가 된 실제 사건을 알고 계시는 분도 있을 것 같네요. ('케임브릿지 사건'!)

 

영화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건 역시 화면의 질감입니다. 그러니까, 매캐하게 안개끼고 흐리고, 회색의 화면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이 이야기를 요약하기 위한 '카피 문구'가 참 애매합니다.

 

누군가 존 르카레의 소설 주인공은 '저항하기엔 나이가 들었지만, 그렇다고 순응하기엔 아직 젊은' 어정쩡한 중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고 하던데, 어찌보면 이 영화도 그렇습니다. 어떤 점에서는 참 '프로페셔널'한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영화의 큰 줄기는 첩보부 내에 숨어있는 고위 첩자, '두더지'를 잡아내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기교를 들이거나 혹은 서술 트릭을 이용하거나 혹은 액션의 물량공세로 그려내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오히려, 영화는 꽤 혼란스럽습니다. 집에 있는 소설책 두께와 두 시간 조금 넘는 영화의 러닝타임을 생각해보면, 영화는 꽤 많은 부분에서 잘라내고 또 생략한 부분이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동시에, 영화의 이야기도 약간은 산만해요. 몇몇 장면들이 시간 순서가 아니라 오히려 주인공 '조지 스마일리'의 생각 순서대로 구성된 느낌이거든요.

 

영화는 결국 회색 지대의 어딘가를 조준하는 영화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멋들어진 스파이는 당연히 아니고, 그렇다고 혼란스러운 '슈퍼 스파이'도 아니고. 오히려 영화의 조준지점은 담배 연기마냥 희뿌연 세계 속에서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직업인으로서의 스파이, 혹은 하나의 장기말로서 기능하는 스파이의 이야기는 아닐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다만, 보면서 원래는 <타인의 삶>과 비슷한 무엇인가를 느꼈는데, 막상 쓰면서 정리하니 결이 좀 다르다는 느낌이 드네요. '사무적인 스릴러'라는 측면에서는 유사성을 느끼지만, 타인의 영향으로 부조리를 깨닫는 <타인의 삶>과 흑과 백 속에서 결국은 어떠한 방향성을 강요받아야했던 이 영화의 차이 때문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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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23-06-01 22:50:49

  제가 예전에 DVD방 알바를 잠깐 했는데... 영화보다가 손님이 가장 많이 중간에 나온 영화가 바로 이 영화였습니다. 영화 표지만 보면 엄청 재미있는 스파이 스릴러 같거든요. 출연 배우들도 엄청 화려하고... 그런데 내용은  3팀이 "도저히 못보겠다"고 하면서 중간에 나오더군요. 뭔 말인지를 모르겠다고.

 

  

 이게 원래 박찬욱 감독에게 제의가 왔었다고 하죠. 박찬욱감독은 "이 소설을 어떻게 영화화해야할지 모르겠어서" 거절했다고 하구요. 완성된 작품을 보고, 이렇게 불친절하게(?) 만들어도 되는건지 알았다면 자기가 할걸 그랬다고. 나중에 존 르카레 소설 원작의 작품을 만들게 되죠. 

WR
2023-06-01 22:55:52

리틀 드러머 걸은 소설만 보고 아직 드라마는 못봤네요.
네 확실히 불친절하고 오묘하죠. 하지만 그걸 견뎌낼 취향이라면 그 불분명함이 매력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2023-06-01 22:54:58

책을 더 좋아하지만 영화도 정말 훌륭하죠. 워낙 쟁쟁한 배우들이 나오다보니 연기 보는 맛도 있고 말씀하신대로 색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존 르 카레의 작품 중에 추운 겨울에서 돌아온 스파이가 내용이 좀더 간결하지만 저는 더 재미있게 본 책이라 안 읽으셨다면 추천드려봅니다.

WR
2023-06-01 22:56:18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는 아직 못봤네요. 흐흐 기회가 되면 읽어보겠습니다.

2023-06-01 23:11:24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가 재미 측면에선 훨 뛰어납니다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와 팅커...와 스마일리의 사람들이 카를라 3부작인데 왜 스마일리의 사람들이 안읽히는지...

2023-06-01 23:35:49

보통 추운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를 존 르카레 최고작으로 뽑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다만 카를라 3부작은 팅커테일러솔저스파이 - 오너러블 스쿨보이 - 스마일리의 사람들까지 해서 3부작입니다. 

추운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에선 조지스마일리가 조연으로만 등장하기도 하고 카를라가 숙적으로 등장하지 않습니다. 

오너러블 스쿨보이가 작년까지 번역되지 않았어서 저도 3부인 스마일리의 사람들을 먼저 읽느라 아쉬움이 있었는데 오너러블 스쿨보이가 출간되서 미싱링크를 채운 느낌입니다. 

2023-06-01 23:42:31

아...팅커 ..가 3부작에 들어가는게 아니었군요 정보 감사합니다

2023-06-01 23:34:53

지금은 유명해진 배우들 보는 맛도 쏠쏠하죠

대표적인 스파이 영화 2편이 이것과 "모스트 원티드 맨"이라고 생각하는데 "모스트 원티드 맨"이 좀 더 미국적인 느낌이라면 이건 좀더 영국스러운 느낌이 많이 나더라구요

깔끔한 정장차림에 말씀처럼 흐릿한 질감, 그리고 전개가 극적이거나 유난스럽지 않은?

저는 개인적으로 '모스트 원티드 맨'쪽이 더 제 취향이긴 했습니다

잘봤어요 

2023-06-01 23:37:20

모스트 원티드 맨도 존르카레 원작이죠. 

존 르카레가 그리는 스파이의 세계에선 성취감보다는 항상 그 뒤에 남는 찝찝함이 더 중요하게 다뤄져서 좋아합니다. 

2023-06-01 23:53:48

스파이 전문 작가군요 

저도 그런 부분이 좋았습니다.

긴장감 후에 후련함이 아닌 안타까움과 찝찝함, 그리고 생각하게 만드는 뒷모습

2023-06-01 23:46:31

 팅커테일러 솔저스파이에 비하면 모스트 원티드맨은 아주 대중적이고 재미있는 상업영화죠. 

WR
2023-06-02 04:55:47

감사합니다.

모스트 원티드 맨도 궁금해지네요.

2023-06-02 09:03:12

불친절한 영화는 분명해서 인물과 줄거리를 헷갈리지 않고 보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만 집중해서 보고나서의 만족감은 매우 컸던 영화였습니다. 마지막 엔딩신은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WR
2023-06-02 10:02:48

인상적이면서 서늘하더라구요. 저는.

2023-06-02 09:17:07

너무 어렸을때봐서 이해도못하고 아쉬웠는데 다시한번봐야겠네요

WR
2023-06-02 10:03:08

여전히 불친절하고 냉담한 영화긴 해요.
그래도 재밌게 보시길!

2023-06-02 17:32:34

르카레의 팬으로서 팅테솔스를 정말 뛰어난 스파이 영화로 꼽는데요. 아무래도 원작을 읽지 않으면 어려운 감은 있다고 봅니다.

WR
2023-06-02 18:25:05

조금 그렇다고 생각하긴 해요. 시간 순 배열도 아니고 좀 복잡하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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