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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하는 것조차 버겁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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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3-05-31 14:40:39

지난 한 달간 글을 거의 안 썼네요. 지금은 나름 심각한 고민도 있어서 시험기간인데도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고요.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냥 좀 찡찡대겠습니다. 

 

1) 이별

매니아에 그렇게 설레발 쳐놓고 이제와서 말하긴 좀 그렇지만, 헤어졌습니다. 언어장벽이 생각보다 크게 느껴지기도 했고, 갈 수록 연애 초기 어색함이 줄어들기는커녕 더 심해지길래 상호 동의 하에 헤어졌습니다. 앞으로 서로 좋은 일들이 있기를 바라면서요. 뭐 오래 사귀지도 않았으니 별로 슬프지도 않았네요.

 

2) 동아리

좀 있으면 가입한지 1년이 되는 한인 동아리를 탈퇴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동아리 부장을 맡고 있는 형한테도 말해놨고요. 이건 이야기가 길어서 나중에 따로 다뤄야 할 것 같네요.

 

3) 회의감(?)

이게 제일 큰 일이자 지금 고민 중인 이유입니다.

고민의 발단은 대학생들이 늘 그렇듯 '아... 수업 듣기 싫다...'라는 막연한 생각이었습니다. 제가 속한 학과는 일종의 자율전공이라 필수적으로 들어야 하는 수업은 있지만, 자기가 원하는 분야의 수업을 들으면 됩니다. 문제는 제가 듣고 싶은 분야의 수업이 학과에서 제공이 안된다는 것이죠. 마케팅/경영 쪽을 듣고 싶은데, 저희 학과에서는 둘 다 관련 수업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됩니다. 결국 듣기 싫은 수업만 잔뜩 있는 시간표를 보다가, 수업까지 째버렸습니다. 초중고, 그리고 지난학기까지 듣기 싫다고 수업 빠진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너무 스트레스 받아서 그냥 자체 휴강도 몇번 했어요. 자체 휴강한김에 마음편히 놀기라도 하면 좋을텐데, 출석 점수 놓친거랑, 수업을 빠졌다는 죄책감 때문에 제대로 쉬지도 못했네요. 

 

듣고 싶은 수업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데, 비싼 학비 내면서 원하지 않는 수업 들으면서 스트레스 받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당연히 이게 전세계에서 저만 하는 고민은 아닐겁니다. 솔직히 대학생들 중에 공부를 계속 하고 싶어서 하는 학생은 적을 것이라고 봐요. 다들 가니까, 취업해야 하니까 가는거죠. 그래도 학교 네임밸류랑 학과 특성상 취업은 잘되니까 졸업 후에 취업하는 상상을 했습니다. 

꿈에 그리던 직장생활. 사람이랑 얘기하는걸 좋아하니까, 그리고 마케팅과 홍보에 관심이 있으니까 마케팅팀, 아니면 영업부 혹은 인사과. 출근해서 직장동료들이랑 영어로 대화를 하면서 드립도 치고, 서류작성하고, 다양한 사람들이랑 미팅 및 대화를 하는 그런 문화의 직장생활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이런 문화는 기본적으로 외국계 회사에서나 가능하다고 생각되는데, 문제는 아무리 외국계 회사라도 일본에서 일하는 이상 일본인들이랑 일하게 된다는거죠.

 

여기서 문제는, 일본인과의 대화에서 제가 제 자신을 100% 들어낼 수 없다는 겁니다. 자기들끼리도 뻔히 가면 쓰고 있는게 보이는데, 아예 다른 문화권에서 온 제 경우에는 더 조심스럽게 대화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결국 포장 안 하면서 마음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건 한국 친구들 아니면 영어권 국가에서 온 친구들 뿐인데, 이런 문화에서 일을 한다는 생각을 하니까 갑자기 숨이 턱 막히더라고요.

솔직히 일본이라는 나라는 굉장히 마음에 듭니다. 어딜 가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풍경에, 음식도 입에 굉장히 잘 맞고요. 사람들도 친해지긴 힘들어도 친철하니까요. 굉장히 평화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여기서 정착해서 일하고 싶냐고 했을 때, 더 이상 확신에 가득찬 목소리로 그렇다고 대답하긴 힘들 것 같네요.

 

"전공도 싫어, 취직도 못하겠어, 그럼 어떡할건데?"

처음엔, 그냥 졸업하고 미국 가서 취업하던지, 아니면 대학원 과정을 미국으로 가는건 어떨지 생각했습니다. 근데 또 생각해보니까, 그럴거면 처음부터 학사과정을 미국으로 가는게 나았겠다고 생각이 들더라고요. 미국은 절대 안 간다고 엄마한테 말해놓은 주제에, 이제와서 그쪽으로 가고 싶다는게 참 웃기기도 하고요. 이럴거면 군대는 왜 갔고 일본은 왜 왔는지. 아니면 이런 경험을 하고 나서야 깨달은건지. 한국에서 살고 싶다고 군대는 다녀와놓고 전역하니까 또 일본에서 취직하고 살거라고 했던 과거의 제가 생각나네요.

 

아직 우울증은 아닌 것 같지만 최근 우울한 상태고, 몸에 힘도 없고, 듣기 싫은 수업과 과제는 있다는 생각, 그리고 여기서 취업해봤자 별다른 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지금은 태어난 주에 있는 학교로 편입하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합니다. 태어난 직후 한국으로 왔지만, 한 번쯤 거기 가보고 싶기도 했고, 부모님 친구들도 있으니 적응하는데는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아서요. 솔직히 가서 원하는 전공 찾았다고 해도, 그게 저한테 안 맞을 가능성도 있고 미국이 워낙 물가가 비싸니 리스크는 훨씬 크다는걸 아니까 부모님께 아직 말씀은 못드렸습니다. 아직까지는 몇몇 친구들한테만 털어놨고요. 

 

같은 고등학교였던 미국인 친구는 저랑 같은 주 출신인데, 대학교 1학년 거하게 망치고 지금은 잠깐 gap year 보내면서 편입 준비한다고 하더라고요. 연락 닿은게 거의 몇년 만인데, 저보고 여기 오면 잘할 것 같다고 해줘서 그건 고맙네요. 사실이 아니더라도.

 

또 나만 힘든거 아닌데 내가 유독 어리광부리는건가 싶고, 편입은 도망이 아니지만, 뭔가 내가 편입하는건 이 나라에서 적응 못해서 도망치는 것 같고, 아무것도 모르겠네요 이제 그냥. 시험 끝나고 부모님께, 그리고 누나한테 말이라도 꺼내보려고요. 세 명 다 미국에서 공부한 경험이 있으니, 응원해줄 것도 같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해봤을 때 내리기 힘든 결정이라고 저는 생각되네요. 부모님께 말씀드리기 전에 최소한 절차나 목표 학교라도 알아보고 말씀드려야 고개라도 들 수 있을 것 같아 그것도 찾아봐야겠네요. 어쩌면 그냥 당장 주어진 과제를 이겨낼 힘이 없으니까 도망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이런 부정적인 감정이 오래 지속된 적이 처음이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한 번도 겪은적 없으니 누구한테 털어놓은 적도 없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항상 긍정적이었던 나는 이런거 겪을 일 없을 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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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Updated at 2023-05-31 14:54:54

 한참 잘되시는거 같길래 질투의 글도 올리고 한 기억이 납니다만...헤어지셨다니...

어쩌면 아래에 적으신 글들도 그 헤어짐에 대한 상실감에 이래저래 고민이 생기고, 고민이 또 고민을 낳고 이제는 본인이 그 고민 자체에 잠식되어버리신듯 합니다.

인터넷 어디 다른 곳에서 인상적으로 본 글이 있어서 전해드립니다.

무언가 실패를 겪었을 때 자기에게 가장 엄격한 사람은 자기 자신이라고...

 

자기의 적성 때문에, 자기가 안좋아서, 자기가 못해서 이런 일이 생겨났다고 자학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고민과 자학이 자기를 잡아먹게 두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자기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큼 주변인들은 자기를 그렇게 보고 있지 않습니다. 화이팅입니다.

WR
2023-05-31 14:56:34

학교 문제는 헤어지기 전부터 생각했던 문제이지만, 이별이 감정적 동요를 안 불러왔다고 하기는 또 어렵겠네요
그래도 싸우고 헤어진건 아니고, 제 고민을 들어줄 친구들이 있다는게 실감이 나는걸 보니 확실히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제 많나 봅니다.

2023-05-31 14:52:55

3번 진짜 저랑 비슷한 상황이시네요.
전과마렵습니다..하
작성자님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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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31 14:58:36

작년에 수많은 남성들이 가장 사랑한 영화의 명대사죠.
나를 뒤로 후퇴시키는 일만 아니라면 하고싶은대로 하면 됩니다.

2023-05-31 15:09:31

그때 던진 책상 수거합니다.   연애사야 언제나 어떤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요. 그만큼 인생이 다 스펙타클한거 아닙니까?

 

그리고 언제나 현타가 오고 힘들 때가 있는데, 혼자 힘으로 견디기 힘들면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결정하는게 좋습니다. 그만큼 정보를 가지고 판단을 해야 하고, 충동적으로 움직이면 3대가 고생할 수도 있습니다. 신중하게 생각하고 신중하게 결정하시길 기원합니다! 

 

2023-05-31 15:17:08

일본에서 대학생활을 하고 계신가 보군요?

취미로 일본어를 공부하고 있어서 뭔가
반갑네요.

본문에 대해서 답변드리자면, 역시 사람은 나고자란곳에서 사는것이 가장 편하다.. 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소한 부분이라도 문화와 성장환경에서 온 차이는 느껴지기 마련이고, 그런 부분이 쌓이고 쌓여서 점점 장벽을 형성하게 되죠.

특히나 일본은 직접 거주하고 계셔서 더 잘 아시겠지만, 자국민에 대한 프라이드가 강하기로 소문난 나라죠, 외국인(백인을 제외)에게 관대하지 않고 알게모르게 차별이 있는..

선택은 본인의 몫이고, 내가 여기서 앞으로 살아갈 자신이 없다라고 판단이 되시면 빠르게 포기하는 것도 하나의 용기입니다.

아직은 나이도 어리실 테고,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많으십니다. 어려움은 항상 있기 마련이고, 어려움에 좌절하고 충격받기보다는, 어떻게 해결해나갈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지금의 어려움을 미래의 나에게로의 성장의 원동력으로 삼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장의 실패를 두려워 하지 마세요.

2023-05-31 15:24:15

늦어버리기 전에 다른 생각이 드신 게
오히려 잘 된 일일 수도 있습니다.
심사숙고하셔서 맞는 방향을 찾아가실
또 한번의 기회라 생각하셔도 좋겠군요.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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