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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문학 수업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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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3-03-24 00:14:41

초중등 친구들과
독서나 글쓰기를 함께하고 있습니다

질문으로 풀어가는 수업인데요
이 교수법을 택한 지 몇 년 지나 보니
종종 의구심이 찾아오기도 했지만
어떤 지점에 골인했을 때 성취감이 더 컸어요

저 스스로 생각해도 좋았던 질문들이 있습니다

이청준 작가 <심청이는 빽이 든든하다> 에서
주제 질문은
심청이가 왜 공양미 대신 내주겠다는 승상 부인 제안을 거절했느냐 이건데요

딸 희생 후 심 봉사가 왜 눈뜨지 못했냐를 먼저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전매특허로 삼은 질문이
ㆍ심 봉사는 그동안 무엇에 '눈뜨지' 못한 거야?
(왜 딸을 만나서야 눈뜬 거지?) 몽은사 주지 스님의 기만이었다면, 그럼에도 덜컥 공양미 약속을 해버렸다면, 심 봉사는 대체 어디서부터 눈멀어 있었던 거야?
ㆍ잔칫날 뺑덕과 손잡고 도망치려던 황 봉사 눈은 왜 사냥꾼 총질하기 좋을 만큼 반만 떠지고 말았을까? 우리는 "무엇에 눈떴다" 는 표현을 언제 쓰지?

결국 자신의 희생으로만 쌀을 얻으려 한 심청의 행동은
뱃사람과의 약속, 신세 지기 싫은 수양딸의 마음, 왕비가 되고 나서도 아버지뿐 아니라 앞 못 보는 어르신 모두를 잔치에 초대했던...
옛 사회가 요구했던 넓은 의미의 효에
말도 안 되게 일찍 눈뜬 탓이기도 합니다.


프랑켄슈타인 수업 때도

빅터는 (결과물이 나오기 전인데) 왜 사람들을 피하거나 떨어지는 낙엽에도 놀라곤 했을까?
빅터는 왜 미세한 부분들은 실험에 장애물이 될 거라 판단했을까? ('크기' 를 지향하는 건 오늘날 우리의 어떤 모습과 닮았을까?)
빅터는 무엇으로부터 달아난 거야? 괴물의 흉측함? 아니면 '실패' 로부터? 빅터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과학자, 아버지, 창조주, 예술가...
괴물은 경찰들도 상대가 안 되는 힘과 능력을 가졌는데 왜 알리바이를 만들고 홀연히 사라졌을까?
빅터는 저스틴이 동생의 살해범이 아님을 확신하면서 왜 재판장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까? (면회 때 '도련님은 제 결백함을 믿으시죠?' 라는 눈물 앞에서도)

이렇게 꼬리를 물고 질문을 던지는데요

내일도 <비밀의 화원> 명작 수업이 있어
긴장하고 또 기대하고 있습니다
콜린을 일으켜 세운 원동력
콜린의 혹처럼 실재하지 않는 우리 삶의 장애물
벤 할아버지를 향한 외침처럼 우리 각자가 세상에 외치고 싶은 말 등등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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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23-03-24 00:51:39

내용만 들어도 멋진 수업 같네요.

참여하고 싶을 정도로..

(저도 분명 프랑켄슈타인을 읽었는데 답변은 전혀 못 하겠는.. )

WR
2023-03-24 01:09:11

사실 3분의 1 정도는 저런 장면과 대사들이 있었는지 잘 모르기도...

2023-03-24 08:03:15

 질문이 심오한데...초등학생들이 수업 내용을 잘 따라오나요?

제자들도 문학적 소양이 상당하네요

2023-03-25 00:51:26

던지시는 질문을 보니까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빛도 같이 떠오르는데, 기분 탓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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