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관련한 현직 교사의 한마디
최근에 매니아에서도 학폭 관련한 이야기가 있어서 관심있게 읽었습니다.
저는 덩치 큰 남자 교사라서 경력 초반부터 학폭 업무를 자주 했습니다.
힘이 쭉 빠지는 적도 있었고 오히려 힘이 붙어서 뿌듯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이 글의 결론은
1. 케바케, 사바사, 학바학(학부모 by 학부모 학생by학생)이라는 것
2. 학폭 업무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가해자 엄벌이 아닌 학생들이 갈등을 해결하는 힘을 길러주는 것
3. 자극적인 케이스가 언론에 자주 소개되어서 그렇지 성공적인 해결의 케이스가 더 많다
입니다.
기억에 남는 대표 케이스들을 간단히 소개할까 합니다.
1. 학생과 학부모들이 모두 협조해서 잘 끝남.
선후배 여학생 두 무리가 싸움이 붙어서 카톡에서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여학생 학폭 케이스가 저는 가장 힘듭니다. 하지만 수많은 물밑 작업을 거친 뒤 15명 가량을 학교 끝나고 한 교실에 모아서 서로 대화하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어떤 학생이 용기있게 먼저 손을 들어서 용서를 구했고, 어떤 학생은 미리 준비한 편지를 낭독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학부모님이 보내주신 문자(우리는 다 같은 소중한 딸들이다!라는 주제)를 읽어주기도 했습니다.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애들은 싸우면서 큰다는 말이 실감났던 경험입니다.
2. 학생들은 협조 안하는데 학부모들이 협조해서 잘 끝남.
또 다른 케이스로는, 1년이 넘는 지속적인 괴롭힘(언어, 신체적)을 겪은 다수의 피해 학생들이 분이 안풀려서 문제 해결에 난항을 겪고 있었습니다. 강제 전학도 예상되던 가운데, 가해 학생의 부모님이 진심을 다해 일일이 피해 학생들에게 사과하시고, 또 가해 학생이 그동안의 죄를 뉘우치는 편지(학부모님이 시키심)를 돌렸습니다. 어떤 피해 학생이 '나는 너보다 강하니까 널 용서해주겠다'라고 말합니다. 어디서 주워들은지는 모르지만 그 근사한 말이 심금을 울렸는지 다른 피해학생들도 모두 용서 레이스에 가담했습니다. 가해 학생은 폭풍 오열을 하며 진심으로 고마움+미안해했고 다행히 징계 처분이 조금 낮아졌습니다. 한참 뒤에 지들끼리 모여서 축구하는 걸 보고 뿌듯했던 경험이었습니다. 용서를 한 학생, 용서를 받은 학생들 모두 성장하지 않았을까요?
3. 학부모들은 협조 안하는데 학생들끼리는 화해함.
이게 가장 골치아픈데, 학부모들끼리 감정적인 대결구도로 번져버리는 경우가 생깁니다. 직접 대면을 하시지는 않지만 학교를 가운데에 두고 언성을 높이기도 하고 그 과정에 교사들의 잘못도 들추어내서 굉장히 상황이 힘들어집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학생들끼리는 이미 화해를 끝냈습니다. 불러다가 이야기를 해보니 진심으로 사과와 용서가 이루어진 것이 느껴졌습니다. 집에 가서 제발 그만좀 하라고 부모님들을 말리기도 했답니다. 결국 학부모들끼리 합의가 안되어서 한 학생이 꽤 큰 징계를 받았습니다. 학폭 신고를 했던 학생이 굉장히 미안해하면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아마도 이 일을 통해 두 학생 모두 성장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4. 끝까지 가자 모드
가장 흔한 케이스입니다. 갈등이 이제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골이 깊습니다. 여기서 잘못 손을 대면 돌이킬수가 없습니다. 절차대로 학폭 처리를 진행시키고 처분도 내립니다. 그리고 결과에 불복하면 또 절차대로 진행합니다. 가끔은 소송까지 진행된 적도 있었습니다. 보통 가해학생 측에서 소송을 거는 경우인데 이때가 되면 '결국 이 과정에서 교육이 있는가?'하는 회한이 많이 들기도 합니다.
이외에도 학폭에 불만을 품고 새벽에 전화해서 쌍욕을 날리는 학부모도 겪어보았고, 교무실로 의자를 던져서 위해를 가하는 학생, 문동은 만큼은 아니지만 말도 안되게 큰 가혹행위를 당한 학생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교사로서 무력감을 느끼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하지만 결국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정말 상황이 좋지 않은 일부 학폭들을 제외하면, 우리들은 어른으로서 학생들의 성장을 가장 큰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 과정에 교사들이 갈려 나가는 상황이 있기도 합니다만.. 이 과정을 통해 내가 의미있는 교육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면 힘이 납니다. 그리고 그때 힘을 보태주는 또 다른 어른(학부모)이 있다면 교사들은 우리 학생들에게 더 좋은 경험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이상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이상을 바라보고 그 이상을 가르쳐줘야 하지 않을까요. 정리가 잘 안되네요.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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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