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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이별이 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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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04 12:02:41

0.
아버지는 훌륭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저의 호적은 아버지 어머니 덕에 엉망이고 그로인해 원망과 외로움만 남는 20대, 30대를 보냈습니다
세상 결국 혼자라는 진리를 그렇게 깨달으니 다 싫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거짓말쟁이 아버지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고 저는 이 악물고 살았습니다
아니 살아냈습니다

1.
그런 아버지가 급성백혈병 판정을 받았습니다
서울에 계시다가 급하게 저의 이복형제가 있는 부산으로 내려가셨습니다
예후는 무척이나 불량하며 거기에 카테터 감염까지 겹쳤다고 하더군요
저번주만 해도 거동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움직이지도 못하는 상황
이 와중에 평생 처음으로 이복형제의 형과 통화를 했습니다
묘했습니다
뭔가 반가우면서도 어색하고 불편한데 또 괜찮은 거 같은 게..
왜 이런자리를 이런 상황에서 이런 식으로 맞이해야 하는지 갑갑했네요
이복형과의 통화 후 오늘
부산 형제들끼리 결정을 저에게 알려주셨습니다
항암치료, 연명치료 다 그만하겠다고
제 의견은 어떤지 의사를 물어주시기에 동의 한다 했습니다

2.
그래서 이번주 부산에 내려갑니다
미워하지도 원망하지도 여튼 그런 감정들도 사라진 아버지의 아마도 맨정신이신 상태의 마지막이 아닐까 싶은 모습을 뵈려고 말입니다
이복형님 전화번호를 알려주시며 평생 하지 않으셨던
아들아 미안하다 라고
울먹이던 말씀이 생각나서 일까요
제 맘은 슬픔 보단 서글프다고 라고 하겠습니다

제가 용서하고 할 게 뭐 있을까요
삶의 마지막에 선 어느 남자의 회한섞인 말에..

아버지를 사랑한 적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렇기에 또 그만큼 아버지가 간절했기도 했나 봅니다

아버지와의 마지막을 준비해봅니다
서글픈 맘으로. 덤덤한 척.
아버지와의 몇안되는 추억을 잠시 떠올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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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3
2022-10-04 12:07:58

저도 비슷한 관계의
아버지가 있기에
님이 쓰신글에 많이 공감가네요.
마음 잘추스리시고
마지막까지 잘마무리 하고 오세요.
힘내세요.

1
2022-10-04 13:10:33

 혹시라도 님을 후회없이, 아버님과 작별하시길 빕니다. 

5
Updated at 2022-11-22 10:28:13

.

2
2022-10-04 13:35:12

사진 많이 찍어두세요. 저는 아버지랑 같이 찍은 사진이 몇장 없던게 그렇게 후회되더라구요

1
2022-10-04 13:43:14

위로의 추천드리고 갑니다.
몇 달전 아버지를 보내드린 자식으로서 맘이 많이 아프네요..

1
2022-10-04 14:19:44

위추 드립니다...

1
2022-10-04 14:49:25

아버님이 사과 해주셔서 너무 다행이네요

1
2022-10-04 21:36:31

보내드리고 난 후 떠난자는 잊혀지지만
남는자는 후회만 남습니다.
용서하고 싶어도 그 용서할 대상이 없습니다. 용서를 아버지를 위해 하지 말고,
자신을 위해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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