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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치는 내가 매긴다' (반말체, 장문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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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01 02:02:54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틀린 말이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나는 어휘의 선택이 그 어휘의 사전적 정의에 부합해야 한다고 굳게 믿어왔기 때문이다. ‘가치라는 단어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1 사물이 지니고 있는 쓸모.

2 대상이 인간과의 관계에 의하여 지니게 되는 중요성.

3 인간의 욕구나 관심의 대상 또는 목표가 되는 진, , 미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1번 정의에 따르면 가치가 있으려면 쓸모가 있어야 한다. 2번 정의에 따르면 가치란 인간과의 관계에 의해 형성된다. 3번 정의에 따르면 가치란 인간 욕구나 관심의 대상이 돼야 한다. 세 가지 정의 중 어느 쪽을 보나, 단 한명의 타인도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인간을 가치있는 인간이라 보긴 어려워 보인다. 이러한 이유로 한때 나는 사람의 가치란 타인에 의해 입증되는 것이라 믿었다.

  그렇지만 사실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맞는 말이 될 수도 있고 틀린 말이 될 수도 있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보면 명백히 틀린 말이다. 상품의 시장 가치는 수요곡선과 공급곡선이 만나는 지점에서 결정된다. 그러므로 수많은 공급 중 하나에 속하는 사람이 본인의 상품 가치를 정할 순 없다. 왜 사람을 상품 취급하냐고? 어떤 사람들은 명백히 상품이다. 프로스포츠 선수가 대표적이다. 그들은 어마어마한 시장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팀을 옮길때 구단 간 이적료, 구단과 개인 간 계약금을 받고 이적한다. 그리고 본인의 시장가치에 비례해서 연봉을 받는다. (사실 사전적 정의를 봤을 때는 사람이 아닌 재화만을 상품으로 정의하는 것 같긴 하다. 그러나 프로스포츠 선수들은 명백히 경제적 관점에서 상품으로서의 충분조건을 만족시킨다 생각한다.)

만약 프로스포츠 선수가 내 연봉과 이적료는 내가 매기겠다라고 한다면, 그 선수가 해당 종목 역대 최고의 선수가 아닌 이상 모든 팬과 구단의 비웃음을 살 게 뻔하다. 시장에서 상품의 가치는 아주 냉정하게 정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가치는 내가 매긴다라고 하는 말을 경제학적 관점에서만 해석하는 건 핀트가 단단히 엇나간 말임에 틀림이 없다. 여기서 말하는 내가 매기는 나의 가치는 물질적인 가치보단 정신적인 가치에 가깝다. 다른 사람들이 내 가치를 어떻게 매기든, 나 자신은 본인의 정신적 가치를 지켜내야 한다. 스스로 지나치게 깎아내려서도 안 되고, 지나치게 치켜세워서도 안된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가치를 함부로 평가하는데 거기에 영향을 받지 않기란 정말 힘들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역시 그걸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정신적 가치는 내가 지켜야 한다. 타인의 폄하와 조롱에 끄떡하지도 말란 이야기가 아니다. 다른 이익을 모두 포기하더라도 무엇보다 처절하게, 그러면서도 귀중하게 지켜야 하는 게 나의 정신적 가치라는 의미다.

원래 사람들은 남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걸 좋아한다. 사람들이 본래 악한 존재라는 주장을 펼치는 건 아니다. 내 생각에 사람들이 남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걸 좋아하는 이유는, 타인과 비교했을 때 우위를 점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타인에 대한 우위는 곧 본인의 가치상승으로 이어진다고 믿는 사람들이 아마 그럴 것이다.

만약 타인이 나의 가치를 깎아서 자신의 부족한 자존감을 채우려 한다면, 상대가 빼앗아간 가치를 다시 가져오려고 하지는 말자. 타인의 가치를 훔쳐서 쌓은 자존감은 어차피 금방 무너지게 돼있다. 누가 봐도 부실공사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내 가치를 깎아내려서 너무나도 분할 때, 그 사람의 얼굴을 밟아버리고 싶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정답은 타인이 내 진짜 가치를 뺏어가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상대는 내 가치를 깎아서 본인의 가치를 올렸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내 가치는 변함이 없다. 정신적 가치란 눈에 보이는 게 아니라 각자 속으로 품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리고 만약 어떤 사람이 내 가치를 훔치려 했는데 그걸 내가 방어해낸다면, 오히려 나의 가치는 올라간다. 운동을 할 때 근육에 어느 정도의 과부하를 줌으로써 근육을 성장시키는 원리와 비슷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타인이 내 가치를 뺏어가는 걸 막을 수 있을까? 정답은 내 가치를 나만이 따질 수 있는 상태로 변환하는 것이다. 근데 말이 쉽지, 나 자신에 대한 타인의 가치평가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경지에 도달하는 건 매우 힘든 길이다. 그러나 내 가치를 나만이 접근 가능한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마음에 담아 둔다면, 조금씩은 효과를 볼 수 있는 것 같다. 나 같은 경우는 이제 타인이 내 가치를 평가하는 데 있어서 조금은 덜 예민해진 것 같기도 하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 나를 놀린 적이 있었다. 수학 문제 못 푼다고, 귀여운 척 한다고, 수업시간에 퍼질러 잔다고 욕하고 조롱했었다. 그때 나는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우울하고, 무섭고, 불안했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욕한다는 거 자체가 내가 그동안 살아왔던 방식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결국 그때 나는 정신건강의학과에서 극도의 불안증과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진단을 받고 일주일간 학교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회복하는 시간을 가졌다.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 어느 정도 심리가 안정됐던 것 같고, 다시 학교에 간 이후에는 그럭저럭 잘 지낼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일이 있고 얼마 안돼서 내 친구가 나한테 고민을 털어 놨다. 옆반 친구가 자신을 엄청 싫어하고 다른 친구들까지 자신과 떨어뜨려 놓으려 한다는 고민이었다. 나는 어떻게 조언해야 할지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었다. “너 싫어하는 친구 신경쓰지마. 너 나랑도 친하고 다른 애들이랑도 친하잖아. 그냥 걔 신경 끄고 원래 친한 친구들이랑 지내면 돼.”

  이게 정답에 가까운 조언이었다. 그러나 나는 머뭇머뭇거리면서 쉽사리 조언을 건네지 못했다. 나부터가 그 정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에 대해 엄청나게 신경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그 친구에게 위 내용과 같은 조언을 던지는 건 지나치게 속편한 소리 같았다. 그땐 그래서 그냥 그런거 너무 신경쓰지마~ 신경쓰면 너만 손해야이렇게 간단하게 말하고 넘어갔다. 원래 생각한 조언과 같은 맥락이지만, 디테일 면에서 많이 빠져있는 말이었다. 그땐 나를 싫어하는 친구들에게 신경 끄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집중하라는 말이 나 자신을 속여넘기는 말 같았다.

  지금 대학에 다니면서도 일부 동기들이 날 마음에 안들어 한다는 느낌을 간혹 받곤 한다. 서로 같이 다니면서 친하게 지내는 형들 몇 명에게서 그런 느낌을 받는다. 나와 같은 나이인 남자 동기에게서도 나를 불편해하는 느낌을 받는다. 나는 그 동기들을 모두 인간적으로 좋아하기 때문에, 그들과 아직 친하지 않은 게 아쉽고 약간은 서운하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 고등학교 때와 다른 점은, 그 동기들이 나를 싫어하든 말든 그에 대해 걱정하거나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는 어차피 허물없이 지내는 다른 친한 동기들이 있고, 그 동기들과 어울려 다닐 때 편안하고 즐겁다. 그런 상황에서 나를 잘 모르는 동기들이 나를 싫어한다고 해서 내가 스트레스를 받을 이유는 전혀 없는 것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당연한 사고과정이기도 하지만, 고등학교 때 나는 그걸 이성적으로는 알면서도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그리고 많은 다른 친구들도 나와 마찬가지였다. 사실 오늘 동기들 인스타 스토리를 봤다. 내가 야구 경기 보러 가자고 했을 때 안된다고 했던 동기가 바로 그 경기를 다른 동기들과 보러 간 걸 인스타에 올렸더라. 나 보라고 올린건지 그냥 기억도 못한 채로 올린 건진 모르겠으나,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 동기가 나랑 야구 보는걸 껄끄러워 한다고 볼 수는 있겠지만, 그게 나의 정신상태에 영향을 끼치진 않는다. 오늘 이 생각을 하면서 순간적으로 놀랐다. 고등학교 때 나라면 절대 체감하지 못했을 느낌을 아주 자연스럽게 느끼고 있었으니까.

  요즘 나는 새벽까지 피시방에서 롤이라는 게임을 하다가 늦잠을 자 1교시 수업에 결석하거나 지각할 때가 많다. 그 때문에 친한 동기들은 나를 타박하고, 몇몇 동기들은 새벽까지 게임하느라 수업 안오는 나를 불량한 학생으로 못마땅하게 여기기도 하는 것 같다. 물론 나도 안다. 대학생이 새벽까지 게임하느라 수업 결석하면 안된다는거. 그래도 지금의 내가 나 자신을 높게 평가하는 것은 타인의 기준이 아닌 내 기준에 따라 내 행동의 옳고 그름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물론 새벽까지 pc방에 있다가 알람도 못듣고 퍼질러 자느라 수업 결석하는 건 옳지 않다. 그르다. 이건 일단 확실히 하자. 예전의 나는 만약 수업에 결석하는 나를 다른 친구들이 타박하고 못마땅하게 여기면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을 거다. “아 친구들이 이거 때문에 나 싫어하려나...? 앞으론 수업 와야겠다...”

  지금은 그런 건 상관없다. 실제로 친한 동기가 나에게 너는 롤을 잘하지도 않으면서 뭘 새벽까지 열중해서 하냐고 비꼬면서 말한적이 있었다. 나는 그 동기에게 말했다. “게임 열심히 하는데 티어(게임 실력을 보여주는 계급)가 무슨 상관이야~” 그러자 그 동기가 말했다. “왜 상관이 없냐? 상관이 있지.” 그래서 내가 대답했다. “상관 없지! 나 재밌자고 하는건데.”

  롤이라는 게임은 승리를 목적으로 하기도 하지만 일단 최우선적으로 재밌어야 한다. 재밌지 않으면 게임을 할 이유가 없으니까. 그래서 게임 잘하지도 못하면서 왜 그리 열심히 하냐는 동기의 조롱은 나에게 타격이 없었다. 애초에 두 부분이 서로 직결되지 않으니까. 다른 동기들도 내 게임 티어가 게임을 열심히 할수록 떨어지는 걸 보고 나를 엄청나게 놀린다. 그래도 나는 계속 열심히 한다. 내가 재밌으면 그만이지 그 사람들한테 멋있게 보이려고 게임하는 게 아니니까.

  오늘은 1교시 수업에 늦지 않고 제시간에 도착했다. 어떻게 제시간에 올 수 있었냐면, 학교 근처 피시방에서 밤을 새고 수업 시간 맞춰서 강의실로 들어갔다. 밤새서 게임하고 아침 수업을 들으러 온 나는 배가 아프기도 했고, 매우 피곤하기도 했다. 그래서 수업이 시작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핸드폰을 가지고 화장실 변기에서 큰일을 봤다. 큰일을 다 본 후에도 변기에 앉아 핸드폰을 보면서 강의실에 돌아가지 않고 있을 때, 친한 동기에게 문자가 왔다.

교수님이 네 이름 부르셨어, 언제 들어오는지 두고보겠대.”

당황한 나는 곧바로 강의실로 돌아갔고, 동기들의 시선이 나에게 쏠리는 게 느껴졌다. 내가 자리에 앉자 교수님은 나에게 물으셨다.

학생 이름이 민지호 맞나요?”

, 맞습니다.”

앞으론 출석 제대로 하세요.”

, 죄송합니다.”

결석이 너무 많습니다.”

, 죄송합니다.”

  순간적으로 내 낯이 뜨거워졌다. 내가 이 글에서 내 가치는 내가 매긴다고 신나게 떠들어 놨지만, 동기들 앞에서 교수님이 나를 특정적으로 지적하시니 부끄러운 건 어쩔 수 없더라.

지적당하고 나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수업에 결석했을 때 발생하는 불이익은 모두 학생인 내가 감당하는 부분인데, 그 불이익을 안 줄 것도 아니면서 동기들 앞에서 무안 주는건 좀 아니지 않나.”

  그 생각이 오래가진 않았다. 그냥 1교시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이 졸렸다. 내가 고개를 꾸벅대자 내 뒤에 앉은 동기 형이 나보고 졸지 말라 했고, 나는 강의실 뒤에 서 있기도 하고 볼펜으로 손등을 찌르기도 하면서 1교시 내내 잠과의 사투를 벌였다.

  그리고 수업이 끝날 때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오늘 수업 시작 전에 결석생 지각생 관해서 얘기를 좀 했죠? 수업 한번 집중해서 들으려고 해보세요. ‘저 교수 영어 발음도 되게 어눌하고 그런데... 그래도 저 나이에 땀 뻘뻘 흘리면서 열심히 하네? 저렇게 하는데 한번 들어나 봐줄까?’ 이런 마인드로 들어주시면 전 오케이입니다. 아까 늦게 들어온 학생한테 뭐라고 하고 그랬는데, 마음의 상처가 될 수 있겠지만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고...... ”

  아까 교수님의 지적에 불만을 가진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나는 대학 교수님들이 대부분 굉장히 권위적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시키는 것이라면 학부생들과 대학원생들은 모두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런 분들이시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그 교수님의 마인드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 정반대였다. 나는 게임에 중독되고 수업 들을 시간에 곯아 떨어져 3주 동안 수업에 세 번 결석하고 교수님의 지적 한마디에 속으로 씩씩대는 소인배였다. 반면 교수님은 수십년간 대학에서 한 분야를 연구하고 가르쳐오신 최고의 전문가시면서도 겸허한 태도를 가지고 계셨고, 본인의 말에 상처받았을 학생들을 걱정까지 하고 계셨다. 그릇의 크기가 나 따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셨다. 오늘 아침 수업을 듣고 결심했다. 오늘 느낀 이 감정을 잊지 말자고. 엄청나게 불성실한 태도를 보여 놓고 교수님 지적 한마디를 빌미로 잡는 소인배가 되지 말자고 결심했다. 나 자신과의 최소한의 약속, 나의 최소한의 가치를 지켜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께는 길거리에서 마주친 여성분에게서 먼저 연락이 왔다. 그저께 나한테 길을 물어보셨고, 핸드폰 데이터가 없으니 지도상 화면을 문자메시지로 보내달라고 하셨다. 나는 문자메시지로 지도상 화면을 전송해 드렸고, 다음날 그 여성분이 카톡으로 감사인사를 하셨다. 나와 대화를 계속 주도적으로 이어가셨고 다음주에 만나서 같이 카페랑 PC방 가기로 했다.

  나는 그저께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그 여성분에 대한 온갖 의심을 다 하고 있다. 종교 전도가 목적인가, 만나자마자 종교 얘기 안한거 보면 다단계인가, 아니면 가진 게 없어서 남자 한명 뜯어먹으려는 사람인가. 이렇게까지 의심을 하는 이유는, 지금까지 여자한테 번호를 따인 적이 단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내가 내 외모를 객관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 내 외모가 못생겼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 여성분은 내 얼굴을 보자마자 나한테 다가오셔서 길을 물으셨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1초만에 여자를 꼬실 수 있는 얼굴은 아니다. 그렇다면 길을 알려줄때 나의 친절함에 감동을 받은건가? 그 누나는 26살이신데 26살에 친절함 하나로 이성적 호감을 가지는 여성도 많지는 않다.

  그래서 그냥 그 누나가 정말 나한테 관심이 있는건지, 아니면 다른 불순한 목적이 있는건지 너무 궁금했다. 근데 연락을 해보니 종교 얘기도 일절 안하고, 물건 팔자는 얘기 같은건 꺼내지도 않는다. 그냥 내 관심사랑 전공이랑 이런것만 엄청 물어본다... 나보고 나중에 임플란트 할인 해달란다. 임플란트가 뭔지 아냐고 물어보려다가 그냥 알겠다고 했다.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접근하는 사기꾼 치고는 너무 자연스럽고 순진하다. 지금까지 만났던 전도사들은 대부분 내 얼굴을 보자마자 내 가족의 운명에 대해 5분 이상 설명을 했는데, 이번엔 경우가 많이 다르다. 만약 사기꾼이라면 정말 치밀하고 계획적인 사기꾼인거다. 사기꾼이 아니고 정말 나한테 이성적 호감이 있으신 분인 경우가 가장 좋은 경우다. 나는 그분을 잘 모르기에 내가 그분한테 호감이 생길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최소한 사기꾼한테 걸린것보단 순진하고 적극적인 누나한테 번호따이는 게 나은 거 아니겠는가.

  이 상황에 대해 생각하면서 또 하나 마음먹은 게 있다. 그 누나가 사기꾼일 수도 있고, 사랑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경우든 내 가치를 의심하지 말자는 것. 그 누나가 나를 좋아한다 해서 내가 잘난 사람인 것도 아니고, 나를 호구 잡으려 한다 해서 내가 만만한 사람인 것도 아니다. 그렇게 정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PC방에 와서 새벽까지 게임을 했다. 지금 시간은 새벽 5시가 넘었다. 아 내일은 공강이다. 절대 수업 결석할 각오로 PC방 온거 아니다. 이 글도 PC방 컴퓨터로 쓰고 있다. PC방 와서 게임 안하고 이런 글을 쓰냐고?

컴퓨터를 키기 전에 모니터 검은 화면 속에 비친 나의 얼굴을 봤다. 머리는 한 달 넘게 자르지 않아 더부룩했고, 며칠 동안 면도를 하지 않아 인중과 턱에 수염이 거뭇거뭇하게 나와 있었다. 그러나 그런 건 그닥 신경쓰지 않았다. 내 눈동자 안엔 자신감이 차 있었고, 나는 내 얼굴과 마주하고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그게 참 뿌듯했다. 드디어 내 가치를 스스로 인정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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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2022-10-01 08:42:52

멋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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