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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국민당 vs 공산당 지도를 보고 궁금한 점

Palos Verdes
  1755
2022-03-26 08:35:15

보니까 1947년까지도 국민당이 많이 우세했는데 

 

미국이 국민당을 지원해서 중국 공산당을 몰아내거나

 

아니면 적어도 적당한 시기에 개입하여 분단시킬 생각을 왜 안했을까요? 



8
댓글
케빈 듀란트
2022-03-26 08:38:36

자세히는 모르지만, 미국이 지원 많이 해줬는데 국민당의 부정부패가 심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알고있네요.

갓미첼
2022-03-26 08:53:06

국공내전 시기 미국의 동맹전략에 관한 논문의 초록을 보면 항일전쟁부터 내전종반까지 미국이 많은 군사 및 경제 지원을 해줬으나 여러 요인으로 패배했다고 나옵니다.

국공내전 당시 미국은 직접 참전할 의지가 없었기에 국민정부와 공산당 양측을 중재하거나 내전의 중지를 국민정부에게 수차례 요구했습니다. 세계대전 종료 후 중국 대륙 전쟁에 참전함으로서 발생되는 피해에 대한 두려움이 컸고, 중국 공산화에 대해 미국이 체감하는 위협의 강도를 낮은 수준으로 보았으며, 자국의 국익에 마이너스 작용이 되진 않을 거라고 판단했는데 국민정부는 미국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한 채 원조만 요구했죠.

1948년 이후 국민정부의 패색이 짙어지고, 미국이 요구한 사회개혁을 이루지 못했고, 내전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으로 경제적으로 불안한 상황에서 미국은 국민정부를 포기하고 다른 대안을 선택했고, 그것이 중국 공산당에게 유화정책을 사용해 소련의 속국이 되는 걸 방지하는 것과 아시아 정책의 중심을 중국이 아닌 일본으로 전환하는 것이었죠. 

즉 미국과 국민당 둘의 동맹이 그렇게 공고하지 못했고, 국민당 정부는 자국의 자율성과 안보를 교환하는데 적극적이지 않았다고 평가하네요. 

WR
Palos Verdes
2022-03-26 08:57:30

중국 공산화에 대한 미국의 위협이 작다고 판단한 것은 상당한 실책인 것 같네요.

갓미첼
2022-03-26 09:06:35

미래를 예상해서 국제 전략을 모색하는 일이 참 쉽지 않은 작업 같습니다. 사후적으로 보면 큰 실책인데 2차세계대전의 종전과 맞물려 도래한 냉전 체제에서 국민당 정부의 정치적 경제적 무능함을 깨닫고, 즉 대세를 꺾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공산당 정부를 최대한 회유하는 것, 즉 소련과 너무 긴밀해지지 않는 것을 미국의 전략으로 봐야하는데 여기까지는 저는 동의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다만 그 목표를 현실화하는 방식에서 문제가 있지 않았을까 추측해봅니다. 중소분쟁 등 소련과 중공이 그렇게 긴밀해지지 않았고 소련의 해체로 냉전이 종식됐다는 걸 생각하면 90년대까지만 해도 중국 공산당 정부에 대한 미국의 대외전략이 크게 잘못된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미국이 이를 의도했다기 보다 제3세계 국가들의 독립과 공산화로 인해 중공과 소련의 패권 경쟁으로 봐야겠지만요. 

주말엔
2022-03-27 01:06:25

무조건 실책이라 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마오쩌둥이 그 삽질을 하고, 여태 병크를 그렇게 많이 했어도 2022년엔 미국 다음가는 경제 대국이 되었죠. 민주주의로 중국이 통일 됐으면.. 이미 미국이랑 1:1을 하거나 오히려 앞설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미국이 만약에 여기까지 봤다면.. 되게 놀라울거 같애요

[SAC/Eagles]곤잘레스
Updated at 2022-03-26 09:44:45

저 영토들이 일사불란한 군대나 나라가 아니라 대부분은 이익에 따라 왔다갔다하는 군벌들이었어요. 군벌들이 국민당을 지지하다가 공산당을 지지하는 쪽으로 돌아선거죠. 대륙의 붉은별 이라는 책이 대 히트하고 당시의 마오는 1세계에선 아이돌이었다고 해요. 서구권에서 인기가 좋았죠. 마치 우리나라에서 컬트적 인기를 누린 체게바라처럼요. 마오는 이 프로파간다를 선전영화를 통해 중국인민에게도 성공적으로 수행해서 정치적 실각이후 문화대혁명을 일으켜 권좌와 1인 독재체제를 확립하죠.

Classic Bandwagoner
1
Updated at 2022-03-26 17:48:32

이때까지만 해도 미국이 반공 진영의 수장으로서 적극적인 개입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회의가 미국 내에 있었습니다. 특히나 그 대상이 바다나 국제 통상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이 강조하는 "항행의 자유"를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문제가 아니라) 육지에서의 주권 다툼 문제일 경우에는 더더욱 그랬구요. 이는 먼로 독트린 이래 주욱 이어져온 미국의 불개입 원칙과도 맞닿아있습니다. 당시에 미국은 오히려 국민당과 공산당 사이를 중재하는 입장에 가까웠고 오히려 국민당에게 휴전을 권고하기도 했습니다. 이때문에 공산당이 세력을 회복해 내전에서 승리할 기회를 주었다는 비판도 있구요. 그렇게까지 했던 것은 미국이 소련/공산권과의 또다른 분쟁에 말려드는 걸 경계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전에 한국전쟁을 앞두고 미국이 (남침의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주한미군 철수 등 소극적인 대처를 취했는지에 대해 토론한 적이 있는데 이 역시 마찬가지 맥락에서 봐야한다고 생각하구요. 당시 미국의 결정이 오늘날 쉽게 이해되지 않고 "남침 유도설" 같은 음모론으로까지 번지는 이유는 한국전을 기점으로 소련과 공산권에 대한 미국의 시각이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변화를 무시하고 3-40년대의 미국도 지금과 같은 기저로 정책을 짰을 거라 생각하기에 아귀가 안맞는 부분이 생기죠. 루스벨트의 전 부통령이었고 진보당 대통령 후보로도 출마했던 헨리 월레스는 소련에 굉장히 우호적인 사람이었는데, 그조차도 한국 전쟁 이후에는 자신이 소련의 욕망을 과소평가했다고 인정합니다. 마치 지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나토의 동진 등을 비판하는 수장주의적 관점이 영향을 잃은 것처럼, 우리가 양보한다고 소련이 선을 지킬 것도 아니니 우리가 선제 타격을 해야한다는 매 파의 시각이 힘을 얻는 것이죠.

WR
Palos Verdes
2022-03-27 08:01:30

오~~ 친절하고 현명한 식견을 갖춘 답변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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