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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의 이순신..보급차단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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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13 19:19:07


일본사극 군사칸베에를 보면 임진왜란이 나오는데 한양까지 진군한 병사들이 왜 식량이 안오냐며 굶주림을 호소하는데 조선수군에 막혀 보급이 안되고 있다고 대답하는 장면을 시작으로 그 이후 조선수군으로 인한 보급 문제를 얘기하는 부분이 꽤 나옵니다..물론 이순신의 이름은 나오지 않습니다
일본 방송에서의 금기어같은 거겠지요
그 외에 읿본만화책,애니,도서
학생들 수업장면은 드라마는 아닙니다..알려드리기가 좀 므훗하네요
가끔 이순신이 바다에서 승전한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 뻘소리하는 네티즌들이 있는데 보급을 차단한 이순신의 역할이 얼마나 큰지 모르는것 같아 아쉬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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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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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13 19:22:35

보급을 끊고...전라도 황금 벌판을 지켰다...이렇게 가장 큰 군사적 의의를 말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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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13 19:23:59

이순신 장군에 대해 조금이라도 공부 했으면 사기케릭도 이런 사기케릭이 없다는 걸 알텐데...

진짜 이순신 장군 까는 부류는 사람 취급 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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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2-02-13 19:44:39

그런데 그런건 좀 있습니다. 바다에서 싸우는 병사는 둘이죠. 해군(Navy)와 해병대(Marine). 해군은 배를 몰고 배끼리 싸우는 병사이고 해병대는 배를 타고 육지에 상륙하는 병사입니다.

일본군은 대부분 해병대(Marine)에 가까웠죠. 일본 수군은 해병대를 나르는 수송선이 주류였구요. 그에 비해 조선수군은 전원 해군(Navy) 이 차이는 사극에서도 잘 묘사되는 편입니다. 조선수군은 갑옷은 안 입고 있는데 일본군들은 갑옷을 입고 나오죠.

그러다 보니 기본적으로 배들끼리의 대결은 해군인 조선수군이 유리했습니다.(조선수군배가 높이가 더 높았죠) 문제는 조선수군은 해병대가 아닌지라 백병전에 취약하다는거. 실제로 이순신의 군대는 7년 동안 단 한번도 상륙전이나 백병전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영화 "명량"의 백병전 씬이 비판거리가 된거죠)

물론 이순신이 훌륭한 장군인건 맞지만 그건 자신에게 유리한 전장에서 확실하게 승리하고 할수 없는 일은 아예 안 한 선택과 집중이 큽니다. 그 덕에 서해안으로 돌아오는 일본수군의 보급은 철저하게 막을수 있었지만 역으로 이순신이 아무리 훌륭해도 그의 수군으로는 임진왜란에 치명적인 결정타를 날릴수가 없었죠. 당장 일본군이 해안가에 있어도 공격을 못하니까요. 하카타(일본항구)에서 부산으로 왔다갔다하는 일본군을 막는 역할도 전혀 하지 못했구요.

자신이 할수 있는 영역에서 최선을 다해 승리한 건 칭찬거리인데 임진왜란의 결정적 종결자 이런 것과는 좀 거리가 있는 분이었죠.(이쪽은 명군의 참전이 큰 역할을 한게 맞구요)

WR
Updated at 2022-02-13 19:51:39

할수없는일은 아예 안했다고 하셨는데 명량해전이나 노량해전은 이순신의 그전 전투와 다르지 않습니까?
명량은 압도적으로 불리한 싸움이었고..노량 역시 전면전이었으니..
마치 쉬운싸움만 했다는 의미로 읽히는데요?
또한 일본이 왜성을 쌓고 버티기에 들어간 이상 이순신이 일본에서 부산으로 오는 병력을 차단할수없죠..언제 올지 모르고 부산쪽은 배를 정박해서 대기할곳조차 없지 않습니까..

Updated at 2022-02-13 19:52:33

이순신의 입장에서 명량해전은 해볼만 하다고 느꼈을 겁니다. 300척이라고 해도 그건 대부분 수송선이고 좁은 길목을 박고 정규해군으로 승부하는 거니까요.

스타크래프트로 치면 발키리 레이스 드랍쉽 300개가 날라오는데 커세어 12기로 좁은 길목을 방어하는 것 정도.

어려운 일이지만 배들끼리의 수군에 어느정도 승산은 볼수 있죠. 컨트롤 잘하면요. 그에 비해 커세어로는 질럿이동을 못시키잖아요. 그러니 상륙전이나 백병전은 아예 포기하는 거죠.

WR
Updated at 2022-02-13 19:53:35

명량해전시 왜군 300척이 대부분 수송선이었다는 근거가 있으십니까? 처음 듣는 얘기인데요?

Updated at 2022-02-13 20:03:52

보급차단이라면서요. 그럼 보급선이어야 맞죠. 위에도 썼지만 일본군은 대부분 해병대형태인지라(배는 군인을 실고 이동하고 군인들이 배에서 내려 돌격하는) 전투선이라는 것도 일단 군인 수송선이 기본입니다. 레이스가 아니라 드랍쉽이라는 말. 이때문에 조선수군과의 배vs배 대결에서는 지는 경우가 많았구요.

전투도 배위에서 칼들고 군인들끼리 하는데 특화되어 있는데 조선수군은 당최 근접자체를 허용하지 않으니(백병전 절대기피) 할수 있는게 없었구요.

Updated at 2022-02-13 19:59:12

일본은 안택선 자체가 판옥선만큼 화포를 실어나르기에 어울리는 배가 아닙니다. 더욱이 주력은 세키부네 였나? 고속선으로 상대 배위에 올라타서 백병전 용도라서요. 판옥선에 비할바가 못됩니다.

WR
2022-02-13 20:13:42

이순신은 승전후 천운이었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그만큼 이기기 어려운 전투였다는 뜻 아니었을까요?
원균이 칠천량에서 대패한거보면 왜군이 마냥 수송선가지고 이순신과 붙진 않았을텐데요

2022-02-13 20:18:25

  명량해전은 어려운 전투 맞습니다. 저도 그래서 "컨트롤 잘하면 가능할지도"라고 쓴거구요. 해군(Navy)으로써 이순신의 수군은 무패가 맞습니다. 그런데 수군이라는 한계때문에 육지에 일본군이 있어도 상륙을 전혀 못하고(안하고) 군인들끼리의 백병전도 아예 안했다는 거죠. 그때문에 이순신의 활약만으로 임진왜란의 일본군을 무찌르는데는 한계가 있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명의 참전이 우리의 생각 이상으로 중요합니다)

 

 물론 수군을 가지고 하카타에서 부산을 오가는 일본군 자체를 끊어버리면 전쟁도 끝나는 거지만 이건 좀 중과부적이었는지 아예 시도도 못했구요. 7년 내내 일본열도에서 조선으로의 보급은 계속 이어졌죠. 서해안 루트를 타고 올라가지 못했을 뿐. 

2022-02-13 20:31:44

칠천량은 제대로 싸워서 대패한게 아니구요. 탐망선도 없이 칠천량에서 정박햇다가 기습받고 도망가다 다 잃은거라 보시는게 맞습니다. 원균이 진짜 노답이였죠.

그러니 이순신장군이 없었음 조선수군도 털렸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이 계시게 만든건 고려말부터 만들고 그걸 받아서 발전시켰던 조선의 노력의 결과물이 판옥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죠

WR
Updated at 2022-02-13 20:25:50

세키부네 자체가 일본의 전투함 아닙니까? 단순 수송선이라고 할수없는게 세키부네 자체가 일본의 군함인데요
크기가 판옥선에 비해 작지만 그만큼 빠르구요

2022-02-13 20:27:17

 그 전투함이 싸우는 기본방식이 배끼리 근접시킨다음 전투원이 올라가서 백병전을 하는 형태입니다. 병력 수송용이자 그 병력으로 싸우는 거죠. 조선수군의 전투방식은 철저하게 거리를 두고 화포로 침몰시키는 방식을 취하고 있었구요. 자신이 할수 있는 최선의 방식을 취한거죠. 

WR
2022-02-13 20:31:31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세끼부네가 넘 많아서 적은 함대로 백병전을 못하게 막는것 자체가 쉽지 않았을것 같습니다..물론 안위의 배는 올라타서 백병전이 일어났다고 하지만요
판옥선이 적은데다 초기엔 대장선 한기로 대적했다하니 어떻게 버텼을까 싶기도 하구요
포위해서 올라타기라도 했다면 끝이었을테니까요

2022-02-13 20:31:47

 이순신이 훌륭한 장군임을 부정하는건 아닙니다. 서해안을 장악해서 보급을 차단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건 맞구요. 하지만 어찌되었건 하카타와 부산사이의 항로 그리고 부산에 상륙한 일본군 저지에는 보급차단외에 큰 역할을 못했던지라 임진왜란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결정적인 역할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는 이야기죠.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명의 참전이 중요했던 이유이기도 하구요. 어찌되었건 일본군은 명의 참전에 놀라서 휴전 협정에 임하게 되니까요. (그러다가 히데요시의 죽음을 계기로 퇴각)


Updated at 2022-02-13 20:36:40

일단 일본 조선기술이 그리 좋지 않습니다. 세키부네든 안택선이든 내구성이 약해서. 판옥선이랑 접함하면 부서집니다. 그리고 걔들 세키부네 돛대를 부러뜨려서 그거 타고 백병전 하는건데 그 거리를 보통은 안주죠. 그 전에 화포로 날리니까요. 명량에서야 그럴 상황도 아니였지만요

1
2022-02-14 00:40:01

'유리한 전장에서 싸움을 해서 지지 않았다'가
이순신의 폄훼로 이어지면 안됩니다.

이순신장군은 당연히 남해의 속속을 다 알고 있었고, 전장을 고를 수 있는 위치에 있었죠.
외국에서 이순신을 그토록 찬양하는 전쟁사가들도 그 부분 인정하고 들어갑니다.

근데 그걸 완벽히 해 내는 것.
그리고 본인이 그린 그림대로 승리를 이끌어내는 것. 그게 대단한겁니다.

애초에 전력에서 완벽히 밀리는데
판이라도 좋게 짜는게 당연한거죠.

쉬운 싸움을 승리로 아끌지 못한 장수는
인류 역사에서 수두룩 빽빽입니다.

2
2022-02-13 20:17:37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 여럿 있습니다. 

 

1. 언급하신 해병대(Marine)은 현대전에서나 본격적으로 해군(Navy)에서 상륙전을 전담으로 하는 전투 병력으로 구분되기 시작한 개념입니다. 고대에는 보병과 수병 정도로 구분되었지 전쟁에서 상륙 전투가 활발하게 일어날 여건이 갖춰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해병대의 필요성 자체가 적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해병대는 미국 해병대 정도가 말씀하시는 군대에 해당하고, 생각보다 많은 국가가 해병대의 고유 영역일 거 같은 상륙전조차 육군에게 수행하도록 합니다. 

 현대조차 그러한데 당시에 있지도 않았을 법한, 해병과 해병대의 구분은 설득력이 너무 떨어집니다. 혹시 제가 아직까지 접한 문헌이 없어서 그런데,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해병대처럼 운용되었단 근거 자료가 있으시면 가르쳐 주시길 부탁 드리겠습니다.

 

2. 엄격하게 따지자면 조선 수군조차 보병과 수병으로 엄격하게 처음부터 너는 보병이니까 육전만 수행하고, 너는 수병이니까 배만 타라고 구분할만한 병력의 여유가 있었던 게 아닙니다. 이순신조차 수군만 한 게 아니라 무과 급제 직후 첫 부임지는 오히려 가장 북쪽 전방인 함경도였고, 최초 수군 근무는 임관 후 4년이 지나서, 수군 절도사가 된 건 47세나 되어서의 일입니다. 

 

3. 백병전에 대한 부분도 제가 알고 있는 것과는 너무 다릅니다. 조선 수군의 주축인 판옥선은 일본 수군의 주축인 세키부네에 비해 높이도 엄청나게 높고 내구성이 뛰어났습니다. 그리고 화포를 주 공격 전력으로 활용했기 때문에 판옥선을 주축으로 쓴다는 거 자체가 백병전을 할 생각이 없다는 겁니다. 일본 수군이 백병전을 하고 싶어도 양쪽으로 화포 공격이 가능한 판옥선이 가까이 오기도 전에 세키부네는 전부 작살이 날테고 100에 1, 2척 기적적으로 판옥선에 근접한다고 해도 높이가 높아서 마치 공성전을 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파도가 치는 바다 위에서 아무리 갈코리를 던져댄들, 배에 올라타는 거 자체가 힘듭니다. 그동안 조선 수군은 가만히 서있나요? 백병전이 취약하다는 얘기보다는 애초에 이순신의 수군은 백병전을 할 필요도 없었고 따라서 백병전에 최적화된 병사보다는 화포 공격과 화살 공격을 지원할 수 있는 병력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쉽게 말해 판옥선은 굳이 보병을 태울 필요 없이 궁병으로 구성해야 비로소 제대로 돌아가는 함선이었다는 거죠.  

Updated at 2022-02-13 20:24:36

 해병대 이야기는 일종의 비유입니다. 육군이라고 해도 딱히 문제는 없습니다. 육군(전투병) 수송선이 대부분이었다 정도로 해두죠. 

 

 제가 말하고 싶은건 조선수군이 할수 있는건 큰 판옥선을 바탕으로 수군vs수군의 전투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에 한정되었다는 겁니다. (그것도 하카타와 부산사이의 항로 차단까지는 못한걸 보면 좀 한계가 있었던거 같습니다) 대포가 현대만큼 발달하지 못한 전근대상황에서 상륙전 없이 수군만으로 전쟁의 향방을 바꾸건 어렵죠. 아니 불가능하죠. 

 

 말씀하신 부분에서 딱히 제 주장과 그렇게 상반되는 부분은 없어보입니다. 

1
Updated at 2022-02-13 20:31:15

육군 수송선이 대부분이었단 것도 근거가 부족한 거 같습니다. 일본 수군의 주력이었던 세키부네는 구조 자체가 수송선이 아닙니다. 빠른 기동력을 바탕으로 상대 군선에 접근해 근접전이나 백병전을 하는, 왜구들도 주로 사용한 군선입니다.

 

함대의 목표가 보급이라고 해도 수송선만 달랑 보내는 멍청이는 없습니다. 당연히 수송선을 호위하도록 해군의 상당 전력을 사용합니다. 그 자체가 해군의 편성 목적인 경우도 많고요. 

Updated at 2022-02-13 20:41:51

 당연히 육군 수송선이어야죠. 그래야 조선에 상륙해서 조선을 점령하죠. 실제로 일본군 8만명은 부산에 상륙한 이후 동래성을 차지한 다음 육로를 통해 한양까지 진격하잖아요. 평양까지 진격하는데 그 루트는 당연히 육로였습니다. 수군으로 조선을 점령하지 않았습니다. 수군은 부산까지 병력이동 수단이었죠. 

 

 본문에서 강조하듯이 서해안루트도 그쪽으로 주력군이동보다는 조선에 상륙한 병사들에 대한 보급때문에 강조되었던 거구요.

 

 당연히 수송선만 달랑보내는 멍청이는 없습니다. 그래서 드랍쉽, 레이스, 발키리 혼합 300기라는 표현을 썼구요. (커세어 12기로 좁은 길목에서 컨트롤 잘하면 이거 잡을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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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2-02-13 20:49:51

당연히 병력 수송은 수송선을 활용했겠죠. 많은 병력을 빨리 날라야 하는데 왜 굳이 군함인 세키부네를 쓰겠습니까? 실을 수 있는 병력도 적은데? 부산에 상륙할 때는 아타케부네 또는 아타케부네급 수송선을 활용했을 겁니다. 

 

지금 말씀하시는 부분에서 무엇이 오해를 사는지를 못 집어내고 계신 거 같은데,

일본 수군의 배를 죄다 수송선으로 치부해버리는 겁니다. 조선 수군의 배가 오로지 판옥선만 있었던 게 아니었듯이 일본 수군의 배는 수송선만 있었던 게 아닙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전을 운용하는 군대도 없습니다. 엄연히 기록에 존재하는 세키부네조차 수송선으로 치부해버리면, 오히려 그건 이순신 장군의 활약을 깎아내리는 것과는 또 다른 얘기로 아예 당시 일본 수군의 수준이 처참했다는 얘기 밖에 안됩니다. 

 

또한 처음에 이순신에게 당한 일본 수군의 주력이 수송선이었을 수는 있지만, 이후에는 일본도 이순신의 존재를 분명하게 인식하면서 출병의 목적이 수송이 아니라 이순신의 조선 수군과 맞짱을 뜨자는 전투가 많이 전개됩니다. 이 때는 일본 수군의 함선 대부분이 세키부네라는 군함으로 구성됩니다. 

2022-02-14 00:43:01

세키부네는 말씀대로 백병전을 노린 배 이지만, 기본적인 해전에서의 전략 자체가
일본과 다른 나라의 접근이 완전히 다릅니다.

백병전을 유도하지 못한다면, 세키부네는 많은 병력을 싣고 있는 드랍쉽 그 이상도 아닙니다.

이순신은 그 백병전을 허용치 않았고.
그게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해군 장군중 한 명으로 남게 한 부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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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13 21:51:39

원래 자신에게 유리한 전장에서 확실하게 승리하고 할 수 없는 일은 안하는걸 잘하는게 명장입니다. 

병가에서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게 최선이고, 충돌할 경우 전쟁은 물리적 충돌 이전에 준비가 끝나고 전투는 확인할 뿐이라는 말이 원칙이죠. 

그런데 15세기말에 적의 근거지 항구를 원천적으로 봉쇄해서 출격조차 할 수 없게 만드는 해군력을 가진 나라가 어디에 있습니까?

2022-02-13 21:53:38

네 맞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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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13 23:11:17

1. 부산진 함략을 못시키고 열도와 반도산의 수송로를 차단하지 못했다... 를 이야기하기에는 이순신과 양동으로 진격할수있는 육군의 부재를 간과한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왜군은 한산도해전이후 서해보급로가 막히고 전쟁이 단기전으로 끝날 가능성이 없어지자 포구에 왜성을 쌓고 버팁니다...
육군이 가도 함락이 쉽지 않은 공성전인데 그걸 해군으로 해내라는 요구가 너무 무리한게 아닌가 싶구요...

2. 또 조선수군의 주력인 판옥선은 평저선에 돗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노선입니다... 장거리 항해를 위해서는 격군들을 위한 보급선이 필수이죠...
이순신도 부산포까지 진격을 하지않은것은 아니나 보급의 문제와 기동의 문제때문에 보급로 차단 이상은 수군의 한계임을 인지하게되고 이를 무시한 원균은 칠천량해전에서 패하게 됩니다...

3. 한번의 회전에서 대승을 거두는것만이 승리의 열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한니발이 로마에게 패배한것 역시나 보급 차단이 핵심이었지 회전의 승리가 핵심은 아니었지요...

그런 면에서 저는 이순신의 서해봉쇄정도면 충분히 왜란의 게임체인저역활을 했다고 보고있습니다...
그리고 또... 명군의 참전만큼이나 만력제의 식량보급이 승리에 큰 역활을 했다고 생각하구요...

P.S. - 조선수군과 왜 수군의 비유는 navy 와 marine의 비교보다는 navy 와 parite위 비교가 더 맞지 않은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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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13 19:28:58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냉병기와 화병기가 공존하는 시대에 보급의 중요성은 말할수가 없습니다. 더욱이 임진왜란때 일본의 주력이 보병이였기에 임진왜란은 일본이 이길수가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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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13 19:33:27

선조의 의주런과 맞물려 완벽에 가까운 청야작전이 실행되버렸죠.

2022-02-13 19:42:41

섬나라와 전쟁에서 바다를 장악한건데 의미가 없다는 사람이 있군요

Updated at 2022-02-13 21:08:26

 섬나라와 반도 사이의 해도를 끊은게 아니니까요. 하카타에서 부산으로의 전력수송과 보급은 7년 내내 계속 이루어 졌습니다. 육로를 통해 북쪽으로 이동한 병사들에 대한 (부산에서 출발하는)보급이 서해안을 통해 이루어야 하는데 그게 막혔다는 이야기죠. 즉 섬나라와의 전쟁이라는 점과는 완전히 무관합니다. 

 

 섬나라와의 전쟁에서 바다를 장악했다는 말이 나오려면 섬과 반도 사이의 해상 루트에 뭔가 스크래치를 가했어야죠. 그런데 이쪽은 정말 7년간 한번도 못 건드립니다. 아마 조선수군의 병력규모로 여기까지 들어가기는 무리였었던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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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13 19:48:35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 중 하나가 임진왜란 당시 일본은 갑자기 뜬금없이 전쟁을 일으킨 게 아닙니다. 

사전에 간첩까지 보내 염탐도 많이 해서 빠르게 한양에 도달해 왕 사로 잡고 엔딩 보려고 했습니다. 

괜히 명나라가 이 정도 속도면 조선이 일본과 내통한 걸로 봐야 한다 라고 의심한 게 아닙니다.

 

충분히 파악한 정보를 바탕으로 빠르게 수도를 함락시킨다. 

일본의 이 기본 전략은 아이러니하게도 초반에 너무 성공적이어서 전략을 바꿀 생각을 할 수 없었고

당시 그들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 왕이 수도를 내팽개치고 런 사태의 충격과 

결정적으로 이순신이 재해권을 장악해 군사, 식량, 무기의 보급을 원천 차단했기 때문에 

신나게 평양까지 달려나간 군대가 어 정신차리고 보니 고립될 수 밖에 없어 점차 패배할 수 밖에 없는 싸움으로 전개된 것입니다. 

2022-02-13 20:02:21

일본 사신들을 한양까지 데려오던 루트 그대로 쳐들어오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져서 전후 교류할때 조선 통신사는 에도(도쿄)까지 갔지만 일본 사신은 부산에서 받았었죠...

2022-02-13 19:50:54

식량, 무기 등의 물자가 조달이 안 되면 아무리 강한 군대도 제대로 싸울 수 없죠
군대에서도 휴일에 다른 병사들은 다 쉬어도 급양병은 밥 해야하잖아요?(네 그 밥 제가 만들었습니다)

죽고 살고의 문제인데 직접 적을 죽이나 보급로 차단으로 상대를 싸울 수 없게 만드나, 전부 중요한거라서
뭐가 더 중요하다를 나누는게 의미가 있을까 싶습니다

2022-02-13 19:54:42

https://youtu.be/3-hxfndigls
펜더님의 워키피디아 1편에서 이걸 다루었지요...
조선의 수송로와 보급의 중요성에 대해서...
유튜브로는 6년전인데... 팟케스트에서는 이보다 몇년 더 전이라...

2022-02-13 19:56:50

바다가 막히면 육로로 보급해야하는데 조선같이 산많은 나라에서 루트도 제한적이라 공략당하기 쉬웠죠
육로보급 툭하면 끊어먹었던 의병들의 활약도 좋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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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13 20:44:19

여기서 혼조 스즈의 작품을 보게 되는군요 

2022-02-13 20:47:27

임진왜란은 따지고보면 좀 이상한 전쟁이죠. 일본도 대외원정은 아예 경험이 없는데 히데요시가 그냥 출정해 버린거고 조선도 그 정도 대규모 해상을 통한 침략은 경험해본적이 없어서 속수무책으로 털렸죠. 유럽은 전쟁자체가 많아서 시간이 지나면 교리가 합리적으로 완성되는데 임진왜란은 합리성으로 설명하다보면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많죠. 명량해전도 여러가지 설명이 많은데 이순신이 진짜 열받아서 한명이라도 더 죽일 생각으로 끝까지 붙었고 그와중에 전사했을 가능성도 적진 않다고 봅니다.

2022-02-13 20:55:23

 명량해전이 아니라 노량해전 말씀인거 같네요. 저도 비슷하게 생각합니다. 이순신의 수군은 7년간 철저하게 근접을 차단하면서 전투를 했습니다. 백병전 들어가면 질거 뻔히 보이니까요. 그런데 노량해전은 마지막인지라 한명이라도 더 죽일 생각으로 평상시보다 더 가깝게 가다 전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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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2-02-14 11:21:37

위에 중고세탁기님의 말씀도 맞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실 이순신에 묻혀 있지만

왜군을 육지에서 막은 권율을 이치전투나 김시민의 진주성전투도

이순신의 전공에 버금가는 큰 공입니다

또 실질적으로 왜군의 주력을 패퇴시킨 명군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물론 이상하게 권율이나 김시민보다 더 유명한 의병, 승병들의 활약도 의미있었구여

 

이순신장군이 아무리 바다를 막아도 경상도 서부-전라도가 함락되면 

일본의 보급문제가 크게 개선되어서 전쟁이 더 장기화되었겠죠

또 이순신장군의 육상기지 자체가 점령당하면

제 아무리 이순신 장군이어도 한강 이북으로 함대를 물렸어야했고

그러면 충청, 전라, 경상도는 완전히 일본 수중에 떨어졌을 수도 있습니다

 

즉 이순신 장군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수준의 승전을 한 게 맞는데

그것만으로는 육군의 연이은 참패를 다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육지에서 싸운 다른 장군들과 명군, 의병 들의 활약이 다 더해져 결국 이겨냈다고 보는게 맞을 것 같습니다

 

다들 큰 공을 세웠고 하나라도 빠졌으면 조선의 승리가 힘들었거나 오래 걸렸다는 말이지

절대 이순신 장군의 공을 깎는게 아닙니다

24-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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