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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주고 마시는 일본 차茶, 와타나베 미야코 《차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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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30 22:14:58

2016년 국내에 한 중국 드라마가 방영되었습니다. 드라마의 제목은 《랑야방》. 위진남북조 시대로 추정되는 가상의 나라 양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사극으로 철저한 고증과 뛰어난 영상미,

 박진감 넘치는 전개, 흥미를 자아내는 설정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습니다.


중국의 사극이기에 등장인물들이 차를 마시는 장면이 제법 나옵니다. 그 중 팬들 사이에서 '종주님'이란 호칭으로 불리는 주인공 매장소가 무이암차를 즐겨마셨기에 SNS에서는 종주님이 마시던 차를 파는 가게를 찾아가는 분들도 생겨날 정도였습니다. 저 역시 랑야방에 빠졌기에 종주님이 마시던 그 무이암차와 개암과자 맛이 궁금하긴 했습니다만 차를 마실 기회가 좀처럼 없었습니다.


재작년 겨울 다구에 흥미를 보이던 제게 친구가 다구를 선물해주었고 판데믹 시대가 도래해 실내에 자주 있게 되자 차를 우려서 마시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어떤 차를 선호하고 어떤 차를 선호하지 않는지 다양한 차를 마셔보면서 점점 취향을 알아가게 됐고 겨울이 다가오니 오래 전 겨울 초밥집에서 후식으로 준 차를 떠올리게 됐습니다.

당시 후식으로 준 차는 일본 차의 한 종류인 호지차였기에 호지차를 판매하는 곳을 찾아봤습니다.


https://www.ippodo-tea.co.jp/products/utensils902078?fbclid=IwAR0djewMnnQfJjbkUQr8PSTTuKTPFX1dbI17jm48kT0k6KwQQHhAIIA8f84


호지차를 판매하는 가게 중 잇포도라는 점포가 눈에 띈 이유는 다소 귀엽게 생긴 이 호랑이 보틀 때문입니다. 검색을 하다보니 교토에서 6대째 이어져 내러오는 유서 깊은 가게라는 정보와 잇포도 6대 점주의 반려, 즉 공동경영자가 쓴 책이 국내에 번역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와타나베 미야코가 쓴 《차의 맛》이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노포 잇포도에서 일하며 사랑하게 된 차와 차 문화, 그리고 차 가게 잇포도와 차를 마시는 일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용입니다. 


챕터 하나하나가 짧고 잔잔한 문체이기에 잠자기 전 짬짬이 읽기에도 좋습니다. 가끔 쿡하고 웃음을 자아내거나 귀엽게 느껴지는 부분들도 있습니다.


가령 


.

지금도 그렇지만 차란 국숫집이나 스시 집에서 내어주는 공짜로 계속 마실 수 있는 음료와 같지요. 쇼와 60년(1985년) 무렵 캔에 든 녹차 음료가 시중에 나오기 시작했을 때 남편은 "이제야 일본차도 돈을 주고 사 먹는 시대가 왔네."하고 반쯤 비꼬듯이 이야기했습니다


라는 잇포도 6대 점주의 이해가 가는 빈정거림이나 


뜨거운 것을 잘 만지지도 못하는 우리 '고양이 혀' 아들에게 조금 두께가 얇은 찻잔을 주게 되면 난리가 납니다. 우리 집에서는 이것을 '고양이 손'이라고 부른답니다.


라는 고양이 손으로서의 공감


6월에 접어들면 가모 강의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시기가 찾아옵니다. 교토 시내에서도 반딧불이들을 볼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가모 강 옆으로 흐르는 '미소소기' 강가의 풀숲에 가면 발견할 수 있어요. 어딜 가든 온갖 소리가 넘쳐나는 일상을 살다가 아주 잠깐 동안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가만히 빛을 내는 반딧불이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놀랄 만치 편안해집니다.

(중략)

수질을 나타내는 '경수(센물)'와 '연수(단물)'라는 단어가 있지요. 일본의 물은 대부분 연수여서, 순하고 물맛이 좋아 일본차에는 아주 제격입니다. 그러나 여름이 되면 수돗물을 염소로 소독하는 과정에서 석회 냄새가 심해지거나 합니다. 이 석회 냄새를 없앨 수 있는 방법으로 주전자에 물을 담고 뚜껑을 연 채로 5분 정도 팔팔 끓이거나 물을 하룻밤 동안 놓아두었다가 쓰는 방법을 추천합니다.

개량된 정수기도 이미 나와있지만, 차를 우리는 데에 쓰는 물에도 조금은 신경을 써서 차를 맛있게 드셔주셨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입니다. "바, 바, 반딧물이야, 이리 와, 그쪽 물은 쓰다고. 이쪽이......" 반딧불이가 좋아하는 물의 맛까지는 잘 알 수 없지만요. 


라는 반딧불이 챕터의 내용 등입니다.


오래된 가게의 공동 경영자니만큼 차에 대해 엄격하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차에 대해 손쉬운 접근을 권하는 부분이 눈에 띕니다. 상인이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반딧불이 일화에서처럼 좋아하는 차를 더 많은 사람이 즐겨주길 바라는 것이겠지요.

그래서인지 잇포도 점포에서는 방문하는 손님들에게 시음의 기회를 꽤 주는 모양입니다.


교토라는 보수적인 지역에서 이 가게에서 먼저 선보인 것들이 있다고 합니다. 책에 소개된 예로는 200g이나 400g이 아닌 100g 씩 나눠팔기, 여름용의 차가운 녹차(그래뉴당을 섞은 차)인 우지 맑은 물 개발, 호텔에서 기모노를 입은 직원이 내려줘야 맛 볼 수 있는 값비싼 서비스가 아닌 가게 안의 공간에서 손님이 직접 우려서 먹을 수 있는 공간의 개발 등입니다. 

우지 맑은 물(宇治清水)의 경우엔 20세기 초 증조부 몰래 가게의 총무가 여름이 될 때마다 떨어지는 차 가게의 매상을 올리기 위해 찬 음료를 생각하다 개발한 녹차라고 합니다. 미야코 씨가 언급햇듯 총무나 증조부에게 여러모로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고 하니 이후에도 이 우지맑은 물(宇治清水)이 폭넓게 전파된 것을 보면 시장의 논리가 전통과 고집을 이겨내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오래된 교토의 차 가게인만큼 자연스럽게 교토의 여러 거래처들이 소개된다는 점 역시 이 책의 장점입니다. 물론 이 거래처들이 취향에 맞을지는 의문이지만 이렇게 하나둘 새로운 가게들을 알게 되는 점 역시 즐거움일테지요. 잇포도의 공식 홈페이지에서도 가끔 이벤트로 거래처들과 콜라보를 하기도 하니 향후 교토를 방문할 분은 체크해보시는 것도 좋아보입니다.


차를 마실 때의 여러가지 팁이 소개되느니만큼 세세한 색인이 있었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이 글을 쓰는 현재 잇포도 글로벌 스토어에서 결제한 호지차가 현해탄을 건너고 있습니다. 6대 점주의 바람대로 차를 돈을 주고 쉽게 마시는 세상이 되어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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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30 22:36:17

호지차 라테와 호지차 하이 둘 다 좋아했는데, 한참 못마셨네요.

다음에 아마존저팬에 국제배송 시킬때 호지차 좀 시켜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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