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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종교인이 '욥기'를 읽어보고 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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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24 23:45:33

최근에 읽고 상당히 인상깊은 책이 있어서 소개해드리고 싶어서 글 작성해보았습니다.

그 책은 바로 구약 성경의 '욥기'입니다.
(종교 전도성 글이 아닙니다 ㅠㅠ)

저는 종교인이 아니지만, 이 욥기는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한번쯤은 읽어볼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무신론자들의 가장 주된 근거 중 하나가 '선한 자들이 고통받는 일'이잖아요? 신이 전능하고 선하다면, 어째서 선한이가 고통받게 하냐는 것이죠.

욥기는 이 질문을 핵심주제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갑니다. 처음부터 끝가지 절대적으로 선하게 묘사되는 '욥'이 고통받고, 결국에는 모든것을 이겨내고 두배로 보상을 받게 되는 전형적인 성경식 스토리라인이죠.

다만 큰 틀에서 꽤나 흔한 플롯과는 달리, 이야기에 자세한 내용이 꽤나 인상깊습니다. 욥의 세 친구가 나와서 말다툼을 벌이죠. 이들은 '선한 이인 욥이 왜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에 대해 정말 치열하게 토론합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성경은 그 어떤 결론도 내리지 않은채, 갑작스럽게 그냥 '어찌 나를 이해하겠느냐'의 늬앙스의 어이없는 결말로 마무리됩니다.

저는 이 욥기를 읽음으로써 우리가 얻을 수 있는건 딱히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어떤것도 결론짓지 않았고, 솔직히 말하면 마무리도 비종교인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었어요.

그런데도 제가 이 책을 인상깊게 느낀 이유는, 제가 가장 오랫동안 생각할 수 있게 해줬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모든 내용들을 곱씹으면서 나의 생각을 정리하면서, 신의 존재와 선함, 악함, 시련과 은총, 이런 모든 것들에 대해서 생각했고, 솔직히 말해서 아직도 딱히 결론지어진 건 없습니다.

이 책에서 제가 느낀 큰 의의는 '생각'할 거리를 가장 많이 던져줬다는 점입니다. 책 자체보다는 책을 읽고 난 후에 하는 '생각'에 큰 가치를 두는 저로써는 상당히 인상깊은 책이었어요.

기회가 되신다면 웹툰 '당신의 과녁'도 보시면 좋을 것 걑습니다. 욥기와 굉장히 흡사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주인공 이름도 '엽'인걸로 봐서 작가가 의도한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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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21-09-25 00:10:48

저도 종교를 어느 것도 믿지 않지만 성경은 다 읽어봤는데, 그 중에 욥기를 가장 재밌게 읽었었습니다. 뭐랄까 다른 성경과 달리 말씀해주신 토론 부분이 약간 연극 느낌도 나고 특이했던 기억이 있네요

2021-09-25 00:31:14

그다지 많이 읽고 살아온 사람은 아니지만, 성경과 (특히 고전 철학) 철학의 차이는 한 끝 속에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질문(생각)을 던지는 인간과 그럼에도 알 수 없는 정답, 결국 자신이 낸 결론으로 '나'라는 사람을 투영하는 사람들.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책은 좋은 책이라고 느낍니다. 알루미늄 님께 욥기는 좋은 책이군요.
저도 책 좀 읽고 살아야 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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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25 12:41:23

관점에 있어 어느 정도 공감은 가지만 단순히 한끝 차이라고 볼 수 없는게 그 차이는 알파와 오메가 즉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요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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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25 00:51:32

다음책으로는 “인생은 마치 연기와같다” 라는 전도서를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2021-09-25 00:54:32

어디선가 '인간의 생각으로 모두 이해가 되는 신은 그 순간부터 신이 아니다'라는 말을 본적이 있어요.

살아가다보면 그 당시엔 도대체 왜?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한참 시간이 지나고 다시 돌아보면

그래서 그랬구나라는 생각이 들때도 많았던것 같습니다. 

2021-09-25 01:20:13

기독교인이 아닌 분이 성경 내용을 추천하는건 처음보네요.
개인적으로 느끼는 것은 세가지 인데요. 사건에서 인과관계가 확실하지 않은 것은 현상으로 원인을 재단 할 수 없고 별로 도움도 되지 않는다. 욥의 고난에 대해서 욥 자신과 친구들의 추측. 일어날 것은 일어나고, 비는 악인과 의인을 가리지 않는다.
배신과 신의는 예상할 수 없는 곳에서 나온다. 친구들과 엘리후의 입장. 나를 이해하는 존재는 가까운 곳에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욥의 가장 큰 은혜는 신을 만난 것이다. 고난과 은혜의 이유를 듣는 것이 무슨 소용입니까. 그저 일어난 일인 것을... 지진과 태풍이 사과할 거라 생각을 했나요?
전 그렇습니다.

2021-09-25 01:32:23

욥기는 정말 어려운 성경이죠 목사님들도 설교하기 참 힘들어하십니다 하지만 그만큼 생각할거리를 줘서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하는 성경입니다

2021-09-25 06:05:27

성경에서 가장 오랜된 책으로 알려진만큼 문학형태도 시적이고 이해하기 쉽지않은 책이죠. 가장 오래된 책이 가장 흔한 종교적 메세지인 착한 일은 하면 복을 받고 나쁜 일을 하면 벌은 받는다는 네레이티브가 아닐수 있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는게 굉장히 흥미롭죠. 저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욥 본인이 주장입니다. 말그대로 나는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운 한점이 없다고 신이 나에게 왜 이런 고통을 줬는지 따질수 있는 인간이 실존할 수 있나 싶네요. 인간은 보통 그런 시련을 겪는다면 어느정도은 본인에게서 책임소재가 있나 찾을텐데 말이죠.

Updated at 2021-09-25 08:41:19

욥기는 어릴적에 가장 분노하면서 읽었던 챕터이지만

지금은 기독교인의 기본적 상벌, 행 불행에 대한 개념을 가장 잘 나타낸 챕터라고 생각합니다.

2021-09-25 12:11:46

저는 천주교 신자인데요,
한창 인생이 되는게 없고 힘들 때 신부님께 답을 구하려했더니,

"욥기를 세번 읽어보라"

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그 때 처음 읽어봤었는데 이게 대체 무슨 내용인가싶더라구요.

처음 읽고 어이가 없어서 신부님 말대로 세번까지 겨우 읽었는데, 그래도 답이 나오지 않아 읽고 또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렇게 읽고나서 든 생각은....

그 "결론지을 수 없음"이 답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시련이라는 건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오는 것이며, 욥에 비하면 나는 덜 억울한 사람이다. 오히려 비교적 행복한 사람이다. 라고 느꼈고, 그럼에도 어떤 시련이 와도 믿음을 잃지 않는다면, 결국은 보상 받는다는 걸 느꼈네요.

그리고 아무리 시련이 온다고 해도 결국 우리가 그 큰 창조자의 뜻을 다 알 수는 없다.

정도가 결론이 아닐지....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덕분에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2021-09-25 12:36:42

욥기는 성경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준다고 생각합니다. 본문에 언급하신 내용이 바로 그 메시지죠. 인간이 생각하는 선과악, 인과관계가 하나님 앞에서는 무의미해지는거죠. 그렇지만 인간의 몸으로 오신 하나님이 십자가로 우리를 구원하심으로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그 범접할 수 없었던 하나님께 가까이가서 직접 기도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인생의 반을 무종교로 살았고 또 나머지 반은 기독교로 살고 있기에 글쓴분의 심정이 잘 이해가 됩니다.

2021-09-25 15:40:58

기독교인으로써 신앙생활을 오래하다보면 욥기의 고민을 반드시 크게 하게됩니다. 왜냐면 당장 내가 다니는 교회만 봐도 정말 착하고 선하고 열심과 헌신과 희생으로 교회와 신과 의와 진리를 위해 사는 사람들 정말 많이 보는데, 그들이 하나같이 불행하게 인생이 흘러가는것을 봅니다. 때론 내인생도 그렇고요. 그럼 신은 있는가? 선이 밥먹여주나? 어찌 신이 나에게 이럴수 있나? 등등 형평성과 공정함에 심한 의문이 생기죠. 신앙인이면 백프로 이 지점에 도달합니다. 신앙이고 뭐고 금수저로 태어나는게 장땡이네?하게 됩니다. 저놈은 왜 나보다 더 복을 받지? 이 컴플렉스에 몸서리치는게 갈등하는게 신앙의 현실입니다.

그럴때마다 결론은 님이 어이없어 하듯 신 마음입니다. 그 큰 뜻과 계획과 쓰임이 신의 절대적 주권이죠. 이슬람 사람들이 밥먹듯이 말하듯 알라의 뜻입니다. 근데 좋든 싫든 거기에 만족하고 내 몫으로 받아드리고 순종하고 그길이 끝날때까지 믿음으로 믿고 기다리며 순종함혀 가는게 또 신앙입니다. 마치 신이 나에게 해준게 없을지라도 신으로 섬길수 있냐는 신의 큰 물음이기도 하죠. 누구나 복주면 신을 믿고 따르고 영광돌리는건 쉽게 합니다. 이걸 기복신앙이라고 하죠. 초급신자를 넘어서면 거치는 단계가 바로 이 지점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지점을 쉽게 넘기지 못합니다.

2021-09-26 14:59:40

저는 비록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일개 종교인으로서 욥기는 매우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제가 욥기를 읽고 느낀 바를 몇 자 적어보겠습니다.


"신은 전지전능하며 절대선하다"는 명제에서 출발하여 우리는 신에게 이런 저런 속성들을 부여합니다. 그 결과 신은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선한 이에게는 복을, 악한 이에게는 벌을 내리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그런데 인간의 행위에 따라 기계적으로 상벌을 내리는 신을 과연 초월적인 절대자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이러한 신은 다분히 인간중심적인 사고에서 파생된 산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니체는 이 같은 종교 관념을 노예의 도덕이라며 신랄하게 비판한 바 있습니다. 욥의 친구들이 말하는 신은 안타깝게도 권선징악의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들은 욥에게 너가 죄를 지었으니까 벌을 받은 것이고, 회개하라며 욥을 다그칩니다.

 

그런데 욥기의 야훼는 비도덕적인 존재입니다. 그는 사탄을 부추김으로써 욥의 죄 없는 가족 및 하인들이 몰살당하는 직간접적인 원인을 제공하며, 욥의 눈 앞에 모습을 드러낼 때는 욥의 수난을 정당화하거나 자신의 비도덕적인 행위를 변론하기보다는 되려 욥에게 호통을 칩니다: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냐..." 신을 단지 권선징악적인 존재로 간주하는 사람들의 관점에서는 참으로 아연실색할 수 밖에 없는 대목입니다. 이는 신을 어디까지나 인간중심적인 사고에서 보고 이해하려 하기 때문에 생기는 괴리감입니다. 신은 반-이성적이지는 않지만 비이성적이며, 반-도덕적이지는 않지만 비도덕적입니다. 신은 성스러운 절대자이기 때문입니다.


종교학자 엘리아데는 성스러움(the Sacred)은 속되지(the Profane) 않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언뜻 보기에 이는 존재는 비존재가 아닌 것이라는 식의 의미 없는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심오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즉, 성스러운 것과 속된 것은 질적으로 다르다는 뜻입니다. 신학자 루돌프 오토는 성스러움(das Heilige)을 "두렵고 매혹적인 신비(Mysterium Tremendum et Fascinas)"라고 말했습니다. 신비(Mystery)는 본래 '입을 다물다(Muo)'라는 그리스어에서 파생된 단어로 비밀을 엄수하다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오묘하다는 뜻을 모두 내포하고 있습니다.


다시 욥기로 돌아가자면, 욥기의 야훼는 성스러움의 현현이자 '두렵고 매혹적인 신비' 그 자체입니다. 성스러운 야훼는 속된 인간과는 질적으로 다른 존재이며, 야훼에게 있어서 인간은 인간에게 있어서 먼지만도 못한 존재입니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글자 그대로의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신의 현현(theophany)을 목도한 욥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미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라이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 여담입니다만, 지진, 해일, 화산 폭발 등의 자연 재해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어도 우리는 선악을 논하거나 시비를 가리지 않습니다. 우주적인 차원으로 논의를 확대하자면, 지금 이 순간에도 무수히 많은 항성이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지만, 우리는 이에 대해서도 선악을 논하거나 시비를 가리지 않습니다. 선과 악, 옳고 그름을 논할 성질의 문제가 아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만군의 주이자 우주의 창조자인 신에 대해서 감히 무엇을 논할 수 있을까요? 이를 깨달은 욥은 야훼의 호통에 이렇게 대답합니다: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우는 자가 누구나이까.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결국 (제가 생각하는) 욥기의 교훈은 절대적인 순종과 겸손입니다. 성스러움의 의미가 퇴색되고 이성(reason)이 최고의 가치로 자리잡은 지금 시대에 이성을 내려놓고 신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라는 가르침은 쉽게 와닿지 않을 겁니다. 결국 성스러움의 체험(종교 경험)이 동반되지 못한다면, 욥기의 가르침은 공허한 메아리로 남을 수 밖에 없습니다. 체험의 중요성을 피력하는 욥의 증언으로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24-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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