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삼촌은 돌아오지 못하셨다
제 삼촌은 걸걸하지만 세심한 분이었습니다. 술도 좋아하셨고 술이면 종류를 가리지 않을 정도로 좋아하셨습니다.
100m 밖에서도 목소리가 들릴 정도고 가까이 있으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목소리도 크셨습니다.
예전부터 집은 가깝지만 왕래가 잦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렸을 때 삼촌네 집에 가면 작은 장 속에서 자동차 장난감을 꺼내 놀았는데 장난감 되게 비싼 거라고 하시면서도 결국 한 두개씩 내어주는 그런 분이셨습니다.
3~4년 전에 사촌 누나가 결혼을 했습니다. 아직도 그 결혼식이 기억에 남는 이유가 아무 연고 없는 주례자가 없었고 양가 부모님께서 새출발하는 새 가정에 편지를 낭독하시며 결혼식이 진행되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많은 결혼식을 다녀본 것은 아니지만 제 마음 속에 가장 이상적인 결혼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리고 작년, 손주를 보셨습니다. 사촌 누나와 멀리 떨어져 살아 자주 보긴 어려웠지만 손주를 만날 때 삼촌 동생인 제 어머니도 이질감을 느낄 정도로 손주를 좋아하셨습니다. 삼촌이 저럴 줄은 몰랐다고 하시면서요.
저는 올해 4월에 우연히 삼촌을 지하철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한 칸씩 떨어져 있는 승강장 의자였지만 어떤 분이 테니스 장비와 함께 제 옆에 앉아서 계속 시선이 갔습니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 저도 삼촌도 서로를 알아보지 못했고 한 정거장을 지나 삼촌은 내리셨고 그 때의 모습을 보고 삼촌이구나 했습니다. 그렇게 우연히 마주친 모습이 삼촌의 마지막 모습일 줄은 몰랐습니다.
삼촌은 택시 기사 일을 하셨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옛날부터 택시 기사를 해오셨으니 운전 경력이 꽤 오래되셨을 겁니다.
삼촌이 평소에 하시던 말씀이 있었는데 자기는 요즘 젊은 취객들 말썽 피우면 본인은 직접 상대 안하고 그냥 파출소에 내려놓는다고 하셨습니다. 자기가 젊은 사람들을 어떻게 상대하냐며 그냥 피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평소와 다름 없이 운동을 하고 와서 집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는데 깨고 보니 어머니로부터 카톡이 와 있었습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437&aid=0000266399
https://youtu.be/a7pPfNaKXzM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기사와 뉴스를 보면서 정상적으로 사고할 수 없었습니다. 같은 기사를 계속 읽었지만 스스로 인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평소에 뉴스 기사를 통해 이런 흉악범죄들을 접하지만 직접 경험하기 전까지 그 비극의 정도를 헤아리기가 어렵습니다. 이전까지 저는 그런 범죄들은 내가 아닌 정말 모르는 남들이 당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아마 이 글을 보시는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하실 겁니다.
앞으로 행복만이 남은 제 삼촌의 인생을 누군가 송두리째 강탈해간 기분입니다.
제가 가족의 이별을 많이 겪진 않았지만 노환으로 돌아가신 분들의 장례와는 너무나 다른 분위기였습니다. 영정 사진을 똑바로 보기 힘들 정도로 비통함이 오래 지속됐습니다.
동료 택시 기사분들이 굉장히 많이 오셨습니다. 그 분들이 술도 많이 드시고 큰 소리로 이야기를 많이 하셨지만 실질적으로 가장 비통함을 느끼신 분들은 그 분들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찾아 오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뉴스를 보고서 오신 시민 분도 계셨습니다. 부조금까지 내고 가셔서 정말 감사했네요.
동료 기사분들이 운구해주신 오늘 3일장이 끝났습니다. 3일 동안 온 가족이 모여 있어 슬픔이 덜했지만 앞으로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이 다시 일상을 살아야 하는 것이 너무나 슬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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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