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것이 너무 힘이듭니다
엄청 긴 글이 될 것 같습니다.
재미도 없을거고 그저 넋두리일 뿐입니다.
다만 가족에게도, 가장 친한 친구들에게도 단 한번도 하지 못했던
제 얘기를, 힘들다는 말 한마디 할 곳이 필요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그냥 생각나는대로 글을 적어볼까 합니다...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 30살이 될때까지 줄곧 가난하게 살아왔습니다.
단 한번도 남들만큼 평범한 정도의 가정 환경도 가져보지 못했습니다.
가난의 기준도 척도도 없다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유치원에 갈 형편이 되지 않았고, 초등학교 때 부터 고등학교 때 까지
급식비를 제때 내본적이 거의 없어서 칠판 한 구석에는 늘 미납자로서 제 이름이 적혀있어야 했습니다.
부모님이 초등학교 4학년 때 이혼하신 뒤로 어머니와 형, 누나와 함께 원룸 단칸방에서 몇년간 생활했습니다.
초등학교 때 부터 대학교 입학 그리고 군 제대하고 나서까지도 단칸방 생활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친구들끼리 서로 집에 놀러가고 하는 즐거움도 가져볼수 없었습니다. 집에 놀러오고 싶다는 친구 한놈을
매일같이 끈질기게 따돌리고 나서야 집에 들어올 수 있었을 만큼 그때는 지독하게도 가난이 창피했습니다.
이혼 후 어머니의 건강이 좋지 않아서 일은 전혀 하실수가 없었고 아버지가 매달 보내주시는 생활비로 생활을 이어나갔습니다. 택시 일을 하셨고 수입이 많지 않은데다 생활비까지 보내주시다 보니 아버지 역시도 늘 부족한 생활을 하셔야 했습니다.
중3때 삼촌이 하시는 학원에서 잡일을 하며 일당 2만원과 무료로 수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또래 친구들은 수업들으러 오는데 또래처럼 보이는 놈 하나가 화장실 쓰레기통 비우고 있고 복도, 교실을
청소하는 모습을 신기하게 쳐다보더군요. 학원 내에서도 삼촌 조카 라는 관계는 비밀이었습니다.
온갖 스트레스 참아가면서 열심히 일 했고 공부했습니다. 하지만 후에 스트레스가 너무 극도로 심해졌고
허리 통증이 심해서 고2 여름방학 때 일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주말마다 받았던 2만원을 꼬박꼬박
모아서 교복도 제 돈으로 살수 있었고 학교 교재도 제 돈으로 구매할수 있었습니다.
학창시절 학원, 과외는 물론 인터넷 강의 역시 돈주고 받아본적 없었습니다.
참 나쁜 일이지만 웹 하드 사이트에서 1년 2년 지난 강의들을 다운받아 보면서 공부했고
무료인 EBS로 수능을 준비했습니다.
하늘이 도운걸까요,, 주말에는 개방하지 않던 학교가 제가 고3이 됐을 때 부터 주말이나 공휴일에도
공부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집이 단칸방이고 4명이 사는 공간이다 보니 집은 공부할 환경이 되지 못했습니다.
비싼 독서실에 가지 않아도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다니 스스로 운이 좋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1년동안 공부한 덕에 좋은 대학교에 입학할수 있었습니다.
기초 생활 지원금 대상자라 국가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서 다행이었지만
부족했던 생활비를 위해 매 학기 학자금 대출을 받아야 했습니다.
휴학을 내고 일을 해야하는 상황이 많이 생기면서 학교 수업을 따라가기는 버거워졌고
끝내 학교를 다니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이런 사소한 얘기들까지 하려니 너무 글이 길어질것 같네요.
조금 간략히 지금까지의 상황을 정리하자면
대학교는 그만두었고,
대출금은 지금까지 학자금 대출 포함 사금융 대출 포함 2000~2500만원 사이정도 받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누적으로)
취업 후 상환 하는 학자금 대출 600만원을 제외 하고는 얼마전에 드디어 다 갚았습니다.
그 동안 제 생활비 + 대출 원금/이자 + 집에 보내는 생활비를 마련해야 하다 보니 첫 사금융 대출을 받았던 2015년때를 기준으로 6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지금, 저는 해외에 나와 있습니다.
열심히 돈을 모아서 한국에 돌아갔을 때 작더라도 저만의 가게를 갖고 싶었습니다.
목표로 정한 금액을 모으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여 운동하고 씻고 밥먹으면 하루가 끝이납니다. 투잡을 뛰다보니 버는 금액은 꽤나 많은데 갚아야 했던 대출금과 코로나로 인해 힘든 상황으로
부모님께 생활비를 매달 보내야 했습니다. 어머니 건강도 좋지 않다보니 병원비, 약값으로도 돈이 많이 나가서
매달 100만원은 보내고 있습니다. 이러다보니 돈을 모을래도 모을수가 없더군요.
어느새 시간은 꽤 흘렀고 여기 머무를 수 있는 시간도 그리 길지 않은데
목표로 한 금액은 하늘보다 더 높아보이고 영어 소통 문제로 좋은 일자리 구하는데 있어서 어려움 겪을 때마다
자존감은 바닥을 칩니다.
가난해서, 맛있는 음식이 있어도 늘 부모님은 저희에게 양보하시느라 배불리 드시지 못하셨고
아프셔도 제대로 된 치료 받는게 힘들었습니다. 절실하게도 가난을 벗어나고 싶은 이유가
이런 부분이었습니다.
분명 늘 열심히 일 해왔고
돈 아끼기 위해 항상 저렴하게 끼니를 떼울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고
연애는 평생 꿈도 꿀수 없으며
많은 것을 포기하고 절제하며 꽃다운 20대를 날려버렸지만
무엇하나 나아진 부분도 없이 30살이 되었습니다.
언젠가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차도 사야할테고 결혼, 그리고 집도 사야할텐데
그 과정에 들어가는 비용들은 오로지 저의 부담이라 과연 가능할까 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듭니다.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못찾겠습니다.
부모님 연세와 건강을 생각하면 늘 걱정인데 내 앞가림도 힘든 상황에 그 부분들까지 감당하려니
삶의 무게가 너무나 무겁게 느껴집니다.
잘 지내냐는 부모님의 안부 연락에 늘 잘 있다고 거짓말 하지만
사실 너무 너무 힘이 들고 외롭습니다.
못난 제 자신이 밉고 세상이 원망스럽습니다.
알게모르게 늙어가고 있던 제 얼굴을 거울속에서 마주할 때 비참함이 느껴집니다.
제가 너무 부정적인 얘기들만 늘어놓았네요.
아무리 힘들어도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라는 마인드로 줄곧 살아왔습니다.
이렇게 넋두리 하는것도 글을 쓰면서 머리 속을 정리하고 비워내고 싶은 맘에 그랬나 봅니다.
다시 한번 뛰어보겠습니다.
지금 포기한다면 지금까지 버텨온 제 인생이 너무 안쓰럽게 느껴질것 같아서요.
긴 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글쓰기 |
제가 근본적인 위로나 조언을 드릴 능력은 없고,
부모님 건강 관련해서, 우리나라에 나름 생활이 어려운 분들을 위한 복지제도가 다양합니다.
의료비 본인부담 상한제, 장기요양등급, 사회보장급여 신청 등.... 저도 각 제도의 구체적인 조건은 잘 모르지만 어려운 분들일수록 이런 혜택을 못 받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부모님이나 글쓰신 분께서, 부모님 주소지 소재 주민센터 복지과에 가셔서 놓치고 있는 혜택은 없는지 종합적인 상담을 한번 받아보시면 어떨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