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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산 코로나 백신의 이름과 미국의 수학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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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02-12 07:48:24

 러시아산 코로나 백신의 이름은 스푸트니크(sputnik)입니다. 러시아는 이 백신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했는지 공식 홈페이지까지 개설했습니다. 물론 자랑스러워할만한 일입니다.

https://sputnikvaccine.com/

 

 이미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겠지만 이 백신의 이름은 소련이 발사한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호와 같습니다. 소련의 자랑이었던 스푸트니크 위성이 러시아의 자랑인 스푸트니크 백신으로 다시 돌아온 것입니다.

 

 

스푸트니크 1호 위성

 

 1957년 10월 4일, 미국은 소련이 최초의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하자 충격에 빠집니다. 이때 미국이 받은 충격이 어찌나 컸던지 이를 가리키는 용어가 생겼는데 스푸트니크 쇼크(Sputnik shock)입니다. 스푸트니크 쇼크는 미국 사회를 단순히 충격에 빠뜨린 것을 넘어서 사회 전반에 큰 변화의 바람을 몰고왔습니다.

 

 스푸트니크 쇼크 후 미국은 기존 미국항공자문위원회(NACA)를 개편하여 미항공우주국(NASA)을 출범시킵니다. 그리고 미항공우주국의 마셜 우주 비행 센터의 책임자로 로켓의 아버지라 불리는 베르너 폰 브라운을 임명합니다. 

 

 

나치에 협력하던 시절의 베르너 폰 브라운

 

 미국은 베르너 폰 브라운을 필두로 소련보다 늦은 1958년 1월 31일 익스플로러 1호의 발사에 성공하며 겨우 체면치레를 하는 것으로 충격을 잠시 일단락합니다.

 

 

익스플로러 1호의 모형을 들고 있는 폰 브라운(맨 우측)

 

 그런데 변화는 단순히 우주 경쟁(space race)의 서막을 알리는 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나사의 출범과 익스플로러 1호의 발사로 시작한 변화의 바람은 단순히 미국의 과학/기술의 현실에 경종을 울리는 것을 넘어서 미국의 과학/기술/수학의 교육까지 변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졌습니다. 

 

존 듀이

 

 이 시기 미국의 교육은 존 듀이(John Dewey)를 필두로 한 진보주의(실용주의) 교육이 주류를 이루던 시절이었습니다. 존 듀이가 대표하는 진보주의 교육은 학습자 중심의 교육, 학습자의 환경적, 상황적 맥락을 고려한 교육이라고 요약할 수 있으며 '실행하면서 배운다(learning by doing)', '학습자 스스로 경험을 재구성하여 배우고 성장한다'와 같은 행동목표를 가지고 있는 교육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지금 우리가 보기에 당연할 뿐더러 현대적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교육이죠. 그런데 스푸트니크 쇼크 이후 미국은 학습자 중심의 교육이라는 철학을 버리고 우수한 인재를 선발하기 위한 교육, 학문 중심 교육으로 방향을 전환합니다. 실력을 길러야 소련보다 뒤쳐지지 않는다는 생각에 학교교육을 학문교육을 위한 예비교육 현장으로 바꿔버린 것이죠.

 

 특히 이 시기에 수학교육은 큰 변화를 겪게 되는데 이 시기에 수학교육의 변화를 일컫는 용어로 '수학교육 현대화운동(또는 새수학 운동 1957 - 1970년대)'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말 그대로 수학교육은 (당시 기준) 현대화 되기 시작합니다. 20세기 초반 수학은 집합론의 등장과 논리학의 발달로 인해 기초부터 응용까지 엄청난 변화를 겪었습니다. 집합론의 발달은 수학의 기초를 처음부터 다시 세웠으며 '무한'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결국 수학 안으로 포섭시키면서 엄청나게 추상화되었고 논리학의 발달은 수학의 한계에 대해 깨닫게 해주었으며 컴퓨터의 등장이라는 신세계를 열었습니다. 수학교육 현대화 운동은 '엄청나게 많이 발전한 현대 수학을 학교 교육이 전혀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생각해 '조기에 논리적으로 엄밀하고 추상적인 개념을 도입하자'라는 목표 하에 집합론, 논리학 그리고 대수적인 추상화를 학교교육의 현장에 적극 도입합니다. 

 

수학교육 현대화운동의 실패

 

 결국 이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이 시기의 수학교육을 비판하는 모리스 클라인의 책('왜 쟈니는 덧셈을 못하는가?')이 있는데 이 책에서 이 시기의 교육에 대해 다음과 같은 예를 들어 비판하고 있습니다. 

 

(예 1)

교사 : 왜 2 + 3 = 3 + 2 인가?

학생 : 양변이 모두 5와 같기 때문입니다.

교사 : 틀렸다. 정답은 덧셈에 대한 교환법칙이 성립하기 때문이다.

 

(예2)

교사 : 왜 9 + 2 = 11 인가?

학생 : 9와 1을 더하면 10이고 거기에 1을 더하면 11이 되기 때문입니다.

교사 : 틀렸다. 2의 정의에 의해 9 + 2 = 9 + (1 + 1)이고, 덧셈에 대한 결합법칙이 성립하므로 9 + (1 + 1)  = (9 + 1) + 1과 같다. 10의 정의에 의해 9 + 1은 10이고 다시 11의 정의에 의해 10 + 1은 11이다.

 

 수학교육 현대화 운동은 엄청난 돈과 시간을 투자하고도 수학교육을 개선하지도, 학생들의 실력을 향상시키지도 못했다는 비판을 받으며 교육 현장에서 사라졌습니다. 수학교육 현대화 운동 이후 학생들은 새로운 추상적 개념에 대해 잘 이해하지도 못했고 불필요한 대수적 설명 덕분에 계산 능력마저 떨어졌습니다. 이후 이 상황을 개선하고자 1970년대 '기본으로 돌아가기(back to basic)' 운동이 펼쳐졌고 기능적인 계산이나 행동적인 목표를 강조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시도는 우수한 학생들의 학력이 저하되고 응용력과 문제해결력이 감소하는 문제를 유발합니다. 

 

 수학교육의 기조가 이렇게 급격히 바뀌어 왔지만 이후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는 수학교육의 큰 맥락에서 '문제 해결'과 '구성주의'라는 키워드가 중심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문제 해결'은 말 그대로 수학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 (실생활의 문제든 수학 내적인 문제든)을 의미하고 '구성주의'는 지식이란 객관적인 것이 아니고 학습자가 능동적으로 구성한 구성의 산물로 보는 관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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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
2021-02-11 23:34:43

전 러시아+수학 하면 항상 '그레고리 페렐만'이 생각납니다.

푸앙카레 추측 증명해놓고 칩거한 기인...

뭐하고 있을까요?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을 연구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던데 이건 만약에 풀리면

그야말로 과학, 공학 전분야에서 대격변이 일어날 거라...

WR
1
Updated at 2021-02-12 00:33:28

뭘 하고 있는지와 별개로 언론에서 불필요하게 취재려고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1
Updated at 2021-02-12 00:24:56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마지막 문단에서 설명하신 '구성주의'는 학습자가 필요한 지식을 '능동적'으로 배우기 전까지 지식은 아직 그 학습자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보면 될까요? 아니면 세상은 각자가 배우고 받아들이는 대로 각자 다르게 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인가요?

WR
2
2021-02-12 00:32:46

말씀하신 것에서 후자입니다. 구성주의는 지식의 객관성을 공격하는데 사회적 구성주의의 경우 객관적 지식이란 사회적 합의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보고 급진적 구성주의의 경우는 아예 지식이란 것 자체가 객관적일 수 없다고 말합니다.

1
Updated at 2021-02-12 00:54:48

와! 의견이 다양해서 재미있네요, 좀 더 찾아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WR
2
2021-02-12 07:41:14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2021-02-12 01:58:02

 좋은 교육과 좋은 학문은 다르다는걸 보여주는 예네요. 저런 시도가 있었다는 것이 매우 놀랍습니다. 특히 러시아도 아니고 미국에서 저런 시도를 했다니.. 

WR
Updated at 2021-02-12 07:50:38

확실히 중등교육 수준의 수학은 고등교육 수준의 수학과 달라야 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대신 수학에 흥미가 있는 학생들을 위한 과정에 많이 만들어지면 좋겠습니다. 미국은 '저게 지금 내가 알고 있는 미국이 맞나'하는 일을 저지른 적이 가끔 있는데 그 사실을 깔끔하게 인정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세계 최강의 국가로 남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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