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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문학 작품 몇 가지 짧은 감상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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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04-23 20:52:22

몇년 전 짧게 써두었던 독서 감상평입니다.

누군가에게 책을 소개하고자 쓴 글이 아니라서 굉장히 추상적이고 비논리적입니다.

아마 이 글을 보셔도 해당 책이 어떤 내용인지 추론하기 어려우실 겁니다. 

그래도 혹시 괜찮겠다 하는 책이 있다면 골라 읽으시라고 올립니다.

지금 글을 올리며 추가로 해당작가의 다른 추천작 몇 가지를 덧붙였습니다.

한국 문학에 관심 있는 분들의 경우 대부분 익숙한 이름들일 것입니다.

 


 

1.『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 / 임솔아 - 시집

임솔아의 문장은 너무 아파서 아름답다. 혹은 너무 아름다워서 아프다. 가령,


"그림자는 목숨보다 목숨 같다. 나는 아무것에나 그림자를 나눠준다./ 아무와 나는 겹쳐 살고 아무도 나를 만진 적은 없다."


이런 문장들이 그렇다. 

임솔아는 사물과 인간이 품고 있는 슬픔을 포착하지 않는다. 임솔아의 경우, 그 슬픔이 그녀를 포착한다. 

 

 

2.『수학자의 아침』 / 김소연 - 시집

가장 정확한 자리로 빗나가는 화살 같다. 김소연은 그런 시를 쓴다.

 

 

3.『내가 사랑하는 나의 새인간』/ 김복희 - 시집

시간을 조금만 더 들였더라면 어땠을까 싶은 아쉬움이 남는다. 동어반복의 느낌이 강했기 때문이다.

 


4.『제8회 김유정상작품 문학상 수상작품집』 / 이장욱 외 - 단편수상집

수상작은 이장욱 단편 <우리 모두의 정귀보>. 능청스러운 상상력의 숲을 통과하고 나면 어느새 주변에 내려앉은 스산한 풍경.

 

+덧붙임: 이장욱의 다른 소설로는 장편 <칼로의 유쾌한 악마들> 추천드립니다.

이장욱은 사실 시를 정말 잘쓰는 사람입니다. 

이장욱의 모든 시집이 다 좋지만 현대문학 핀 시리즈 중 <동물입니다, 무엇일까요>를 특별히 추천드립니다. 



5.『제8회 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 / 백수린 외 - 단편수상집

수상작은 백수린의 <여름의 빌라>. 상처에 관한 여러 양태들. 현실이 가리고 있는 실재의 사막. 그런데 의도대로라면 아팠어야할 반전이 그다지 아프지 않았다. 수상후보작 중 임솔아의 단편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6.『상속』(제 63회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 / 김성중 외 - 단편수상집

김성중의 <상속>. 번뜩이는 문장들이 있었지만 기억에 오래 남지는 않는다. 수상후보작 중 이미 한 차례 읽어보았던 <세실,주희>. 여전히 오롯이 빛나는 존재감.


 

7.『몰락의 에티카』 / 신형철 - 비평집

펼칠 때마다 새로운 놀라움을 주고 다음 번 재독이 또 기다려지는 책. '낯설게 쓰기'가 시인들이 가장 선망하고 필요로 하는 재능이라면, '낯설게 보기'는 평론가들이 가장 희구하는 재능일 것이다. 그리고 신형철은 후자를 가장 탁월한 방식으로 발휘하고 있다.



8.『여장남자시코쿠』 / 황병승 - 시집

오랜만에 재독했다. 황병승이라는 개인에 대한 호불호를 던져두고 보면, 그는 확실히 전복적이고 충격적인 시인이다. 한 문장 한 문장 새롭게 눈을 뜨는 기분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아쉬운 분.


 

9.『세상의 모든 최대화』/ 황유원 - 시집

내 타입은 아니다.



10.『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 신형철 - 에세이

신형철은 '낯설게 보기'에 대해서만 탁월한 것이 아니라 '낯설게 쓰기'에 대해서도 그렇다.


+덧붙임: 신형철의 <느낌의 공동체>도 추천드립니다.


 

11.『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 이성복 - 시집

이성복의 이 시집은 몇 번을 읽어도 매번 심장을 찌른다. 가장 사랑하는 시집 중 하나.


 

12.『너의 아름다움이 온통 글이 될까봐』 - 시집

세대를 아우르는 50명의 시인들. 1인 1편의 시와 1편의 산문을 실었다. 산문은 대체로 재미없고 무성의하다.



13.『훔쳐가는 노래』 / 진은영 - 시집

이미 진은영이라는 이름은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



14.『가능세계』 /  백은선 - 시집

기표가 하나의 기의와 고정된 대응-결합관계에 머무르지 않고 쉴새없이 몸을 바꾸며 유희할 때, 의미(기의)는 기약없이 유보된다. 시인은 다분히 의도적으로 자신의 문장들을 어떤 고정된 의미맥락 속에 포섭시키기를 거부하는 듯 보인다.


그녀의 시 속에서 경주마처럼 질주하는 수많은 이미지들은 의미화 직전에 고삐를 멈추고 또다른 종착지를 향하여 달려간다. '인식하는 순간 이미 다른 곳으로 이동해버리는 이미지들의 집합'이라고 말한다면 백은선의 시를 설명하기에 적당한 표현일지 모르겠다.


백은선의 언어는 영원히 미끄러지는 언어다. 텅 빈 기표와 텅 빈 기표 사이를 무한히 경유하는 문장이다. 여기에 기의의 폭압적인 권좌가 놓일 자리는 없다. 그녀의 시는 발아하여 뻗어나가기 직전의 씨앗, 무수한 방향성을 품은 가능태로서의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다.


백은선의 시적 언술들은 아무것도 상징하지 않으며 아무것도 지시하지 않는다. 따라서 무엇이든 상징할 수 있고 무엇이든 지시할 수 있다. 씨앗으로서의, 가능태로서의 문장이 가져오는 이 기묘한 아이러니가 백은선의 시에 독특한 긴장감과 생명력을 부여한다.


다만 이 '모범'에 가까운 '포스트모던함'이 오히려 시를 전형적으로 읽히게 할 수 있다는 점은 시인 스스로 고민해봐야할 지점이다.


 

15.『지정석』(제 64회 현대문학상 수상시집) / 안미옥 - 시집

아주 가끔 영혼을 송두리째 흔들어놓는 것 같은 시를 만날 때가 있다. 이번에는 숫제 영혼이 뽑혀나갈 뻔 했다.



16.『밤이 지나간다』/ 편혜영 - 소설집

편혜영은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 중 한 명이다. 그런데 이 단편집은 읽는 재미가 조금 덜 했다. 이런 류의 이야기는 전작들에서 충분히 본 것 같다. 전작들을 안 봤다면 좀 더 재밌게 읽었을 것이다.

 

+덧붙임: 편혜영의 <사육장 쪽으로>와 <저녁의 구애>도 추천드립니다.


17.『파씨의 입문』 / 황정은 - 소설집

수록된 첫 번째 단편을 펼치는 순간 예전에 이미 읽은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나 덮지는 않았다. 덮을 수 없었다는 말이 좀 더 정확하겠다.

 

+덧붙임:황정은의 <양의 미래>와 <백의 그림자>도 추천드립니다.

 

 

 

<나를> / 임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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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2021-01-20 19:21:08

좋은글 감사합니다.

WR
2021-01-20 21:41:40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1
2021-01-20 21:19:34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는 처음에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다가 몇번 반복해서 읽으니...

그래도 하나도 모르겠는데 지금 너무 좋아하는 시집이네요

WR
Updated at 2021-01-20 21:44:46

특별히 아끼는 시나 오래 품고 있는 문장이 있으신가요?

1
2021-01-20 22:54:39

위 시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 하나만 꼽자면 '너는 네가 무엇을 흔드는지 모르고' 겠네요. 유명한 '그날' 도 좋아하는데 은근히 여기저기서 마음에 안들게 인용되서 살짝 좋아한다고 말하기 반감이 생겨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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