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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불편한 아버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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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01-19 16:24:09

저는 아버지가 불편합니다.

굳이 안그래도 되는 때에도

말 한 마디가 예쁘게 안나옵니다.

 

 

아버지는 술 많이 먹는 사람입니다.

제가 꼬맹이이던 시절 우리나라에는 통금이라는 게 있었습니다.

12시 넘으면 밖에 다니지 못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일주일 중 닷새, 엿새를

그 통행금지 직전에야 만취되어 들어오던 분이었습니다.

 

엄마와 저, 여동생 셋이서 창 밖만 바라보며 아빠를 기다리다가

어느 샌가 아이 둘은 쓰러져 잠들어 버리기 일쑤였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아버지가 안방에 주무시고 계신 걸 보고서야 안심하는,

저에게 매일 밤과 매일 아침이 거의 그런 일상의 연속이었습니다.

 

여든되신 지금도 소주 2병을 앉은 자리에서 드실 수 있습니다.

저는 지금도 술을 싫어하고,

술 좋아하는 사람도 과히 좋아하지 않는 편입니다.

 

 

아버지는 하고 싶은대로 다 하고 산 사람이었습니다.

바둑, 등산, 사이클, 인라인, 스키, 포커, 주식......

 

일단 하면 적당히라는 게 없는 분이었습니다.

어릴 때는 매주말 집에서 포커판이 열렸습니다.

카지노에나 있어야 할 칩세트가 집에 여러 개 굴러다녔죠.

 

주식이야 당연히 큰 돈 날리셨는데

얼마나 큰 돈을 날렸는지조차도 가족들은 모릅니다.

그런 거 말하는 분이 아니니까요.

 

임진각 왕복코스 사이클 타고 오셔서

저녁 내내 다리 아프다고 저에게 두드려 달라 하는 분이셨고,

등산을 시작하니 그냥 산만 타는게 아니라

그때까지 없던 출신 고등학교 총동문회 산악회를 창립해

초대부터 몇 대까지 회장을 지낸 그런 분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가장 불편한 아버지는

바로 그래서 어머니를 너무 힘들게 한 아버지였습니다.

 

매주말 포커판에 모여든 친구분들 술과 담배는 누가 마련했고,

총동문회 산악회가 백두대간 일주라도 오르면 물과 간식은 누가 챙겼겠습니까.

아버지는 지금도 그런 일이 다 저절로 되는 걸로 아는 분입니다.

손 한 번 까딱해 본 적이 없으니까요.

 

80년대 초 어느 날 뜬금없이 자전거 탄다고 산 사이클이

그 당시 돈으로 150만원 정도였다고 들었습니다.

포커를 끊은 건 80년대초 어느 날 단 하룻밤에

당시 돈으로 백만원 넘게 잃으시고

본인도 그건 어이쿠 싶어서 그 때 끊으셨다고 하시더군요.

 

본인이 버신 돈 본인이 쓴다고 생각하셨을지 모르겠는데,

그나마 그건 돈 잘 버실 때 얘기였고

나중에는 생활비도 잘 못 가져오게 되셨습니다.

 

 

사업하는 집이란 게 웃깁니다.

돈이 벌릴 때는 정말 떼돈이 밀려들어온다는 말이 실감나게 들어오지만,

없기 시작하면 말이 좋아 사장님이지

매일 하루 넘기기 위해 돈 빌리러 다니는 게 주된 일입니다.

그건 또 그런 돈 구경도 못해본 어머니 몫이죠.

그 와중에 애들 먹이고 입히고 병원 데려갈 돈 구하는 것도 어머니 몫이 됩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용돈, 세뱃돈을 꼬박꼬박 모아

10~30만원 통장을 여러 번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저금한 돈을 써 본 기억이 한 번이나 있나 그렇습니다.

당장 오늘 회사 부도나거나, 내일 제사상 차릴 돈도 없으니

아이 통장에서도 돈 뽑아쓰는 겁니다.

 

물론 처음에는 갚아주시지만 급한 상황이 정신없이 연속되다 보면

그 돈은 이미 녹아서 없어져 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빈 저금통이나 0원이 되어 있는 통장을 마주친 건

어린 마음에 꽤 큰 상처였어요.

AIWA 워크맨 사려고 한참 동안 모았던 돈이 사라져 버렸을 때는

지금 생각해도 많이 슬펐습니다.

 

그러면서도 항상 어머니에게는 시댁에 희생하길 바라셨고,

친정에 가끔 가시는 것조차 싫어할만큼 집에 매어두려 하셨죠.

어머니가 외갓집 가셔서 집에 돌아오는 게 조금만 늦어져도

제가 화난 아버지 눈치를 보고 앉아있고 그랬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대체 왜 그러신건지 모르겠습니다.

 

 

머리가 굵어지며 저는 아버지와 맞서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를 닮은 성질머리 때문에 서로 불같이 맞선 것도 있지만,

많은 경우 저는 말도 못하고 속끓이는 어머니를 대신해

일부러 싸우러 나섰습니다.

 

저는 말을 따박따박 논리적으로 하려고 꽤 노력합니다.

 

어디서 어른을 가르치려고 들어?”

 

, 나이어린 사람 말이 옳다는

나이 많은 분의 인정이죠.

폭력이 오간 적은 없지만 고성에 극한 대립은 적잖았습니다.

 

어머니와 관련된 일이 아니면 굳이 아버지와 뭘 공유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일상적인 대화, 인사조차도 가끔 전 받지 않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냥 우리 둘은 서로 멀리하고 대화하지 않는 게 그나마 나을 거라고

전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좀 느지막히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를 낳게 되었습니다.

아이를 낳으면 부모의 마음을 알게 된다고 하죠?

 

아니요, 저는 더 모르겠더군요.

우리 아버지는 이렇게 예쁜 아이가 있는데도

어떻게 그렇게 자기 멋대로 일생을 살 수 있었던거지?

저는 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다만, 저도 나이가 먹어가니

좀 더 제 성미를 가라앉히고 아버지를 대할 수는 있었습니다.

그러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족모임이 끝나고 집에 돌아온 날,

와이프가 말했습니다.

 

오빠, 아버님이 항상 오빠를 보고 있는거 알아요?”

무슨 소리야?”

 

와이프는 아버지의 시선은 항상 저를 향해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몰랐습니다.

제 시선은 불편한 아버지를 외면한지 너무 오래되었으니까요.

그리고 아들이 생긴 후 제 시선은 항상 아들을 향해 있었으니

아버지 쪽을 바라볼 여유는 전혀 없었습니다.

아마 아버지는 항상 저를, 저는 항상 제 아들을 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전 글에 잠시 쓴 적 있는데 제게는 좀 특이하고 힘든 병이 있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잘 유지하고 있기는 한데,

지속적으로 병원에 가서 여러 검사와 진료를 받아야 합니다.

 

수면 내시경은 보호자가 반드시 있어야 가능한데,

아이가 생기고는 와이프는 아이를 봐야했고

보통 어머니가 오셨습니다.

그런데, 그 날은 어머니가 일이 있으셨어요.

그래서 제게는 불편한 아버지가 오셨습니다.

 

내시경 후 진료까지 봐야 하므로 기다리는 시간이 꽤 깁니다.

전보다는 그나마 표면적으로 누그러진 부자는

이렇든 저렇든 뭐라도 대화하면서 시간을 보내야했습니다.

 

 

그리고, 그 날 처음 내 아버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전에 어머니께 들은 적 있는 이야기도 꽤 섞여있었지만

아버지의 삶의 굴곡 부분에 대해 들어본 건 처음이었습니다.

 

일찍 돌아가신 할아버지에게 혁대로 맞기도 했을 정도로 엄하게 자란 이야기,

그럼에도 공부를 잘해서 명문고에 진학한 이야기,

약대에 진학했으나 학비가 모자라 중퇴하고 나중에 경제학과를 졸업한 이야기,

그런데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몸이 약했던 큰 고모를 편애해서

큰 고모를 약대를 졸업해 약사가 되고 본인은 중퇴했던 것이 마음에 박힌 이야기,

잘 나가던 중견그룹 최연소 부장 때려치우고,

갑자기 빈 손 창업해 CEO친구 사무실 옆 방에 책상 하나 간신히 얻어

전화기 한 대 달랑 놓고 사업 시작한 이야기 등

 

저는 아버지는 정말 제멋대로만 살고

자기 뜻대로 다 하면서 살아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한 번만 생각해봐도 세상에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었을건데

아버지에 대해 쌓인 제 감정이 꽤 높은 편견을 쌓았었나 봅니다.

 

생각해 보면 그렇게 할아버지에게 맞고도 저를 한 대도 안때리고 키우신 아버지셨고,

어찌 보면 굉장히 버르장머리 없는 아들을 심하게 타박하지 않으셨습니다.

창업의 순간, 회사가 위기의 순간 그 힘듦을 가족에게 단 한 번도 직접 전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도 어떤 때는 괴로웠고, 외로웠고, 약하기도 했을 겁니다.

그런 한 인간인 아버지에 대해서는 제가 잘 모르고 있었더군요.


언젠가 다른 친척분과 대화하시면서 아버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 녀석은 지 애비가 지 엄마 힘들게 하면서

 자기 하고 싶은대로만 다 하고 살았다고 생각해요. 하하하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버지에 대한 제 감정은

그렇게 쉽게 모두 지워질만한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어색하고 불편하고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두 가지는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생각하던 모습이 아닌,

한 사람으로서의 아버지의 다른 모습과 인생이 있었다는 점,

그리고 어쩌면 내가 아버지에 대해 아는 것보다

나에 대해 아시는 것이 훨씬 더 클 것 같다는 점입니다.

 

 

아버지는 얼마 전에는 어머니께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내가 참 여러모로 말년 복이 많은 사람인 것 같아.

 내가 신경 못쓴 것에 비해서 자식들도 잘 자랐고.

 그래도...... 내가 좀 더 신경 썼으면 아이들이 좀 더 잘 됐겠지?”

 

아마도 남은 시간,

여전히 아버지는 저를 바라보고, 저는 제 아들을 바라보게 될 겁니다.

그게 자연스러운 일이겠죠.

 

그래도 이제는 누군가 나를 계속 바라보고 있다는 걸 압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굉장히 큰 버팀돌이 된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뭔가 달라지신 아버지와 달리

아직 달라지지 못한 아들은

아버지에게 이 마음을 끝내 전하지 못할 것 같은 걱정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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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2021-01-19 15:56:00

참 지금 제 상황이랑은 다른듯 비슷한듯 하네요.
술을 참 좋아하시는 아버지...
갈등 대립...
풀어보려고 노력했고 이제는 풀리지도 않는 갈등이 된거 같습니다.
결혼은 아직 안했지만 적지 않은 나이이고 이해하려고 꽤 노력했다고 생각하는데 지금 상황은 더 답답하네요.
자식이 되서 그냥 저러고 사시느니 빨랑 돌아가시는게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드는 정도니까요..

갈등이 다 풀어지시진 않았지만 그래도 저처럼 파국은 아닌거 같아서 다행이네요.

WR
1
2021-01-19 16:08:09

사실 사람 자체가 달라지진 않는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때는 우리 아버지가 이렇게 달라졌네 싶다가도

어떤 때는 또 어이쿠 한 번씩 합니다.

다만, 적절한 거리와 새로운 관계성을 만들어 조금 더 나은 모습을 만들어 보려 노력 중입니다.

노력하면 조금 더 익숙해지겠지 하구요.

 

요즘은 오히려 제 익숙해짐이 너무 느려서

나중에 제 스스로 너무 후회하게 되지 않을까

그게 고민입니다.

 iversonn님도 조금 더 마음이 가벼워질 수 있는 관계를 이루실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1
2021-01-19 16:11:58

가벼워졌다 무거워졌다 하는거 같습니다.
이보다는 더 최악이겠어 하지만 그보다 더 안좋은 때도 있고요.

아버지의 사랑 이런 글 보고 그러면 참 짠해지기는 하더군요.
외동아들이고 절 사랑하셨을텐데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된게 참....
아니 사실 잘 모르겠어요
어머니나 절 사랑은 하시는지 무슨 생각이신지..

3
2021-01-19 15:56:01

만감이 교차하네요....

WR
2
Updated at 2021-01-19 16:10:05

좀 웃기는 이야기입니다만,

스스로 글을 쓰는데 저도 만감이 교차하네요.

그리고, 아버지 이야기를 썼는데 글을 써놓고 보니 정작 제 부족함이 더 많이 드러난 것 같습니다.

2
2021-01-19 15:57:31

어른의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이제 30 중 후반을 향해 가는데 케이치님 글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네요. 미우나 고우나 아버님이니 돌아가시기 전 까지 따뜻한 눈길이라도 한번 더 주시고 지금 처럼 사랑하는 아들 아끼시면서 아내분 하고 행복한 가정 꾸리시길 기원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걸 희생하고 견디고 참아오신 어머님께 큰 존경의 마음을 표합니다. 감사합니다 어머님

1
2021-01-19 16:00:30

저도 최근 결혼을 하고, 부모님에 대해 여러가지 시각으로 보고 , 몰랐던것들에 대해 느끼고 있다 생각하는 중에 글을 읽게되었네요. 만감이 교차하는군요. 

1
2021-01-19 16:06:20

저랑 많이 비슷하시네요
가정 속 응어리진 증오의 연쇄를 이렇게 끊어가는 가정도, 깊어가는 가정도 있겠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가족이기에 인생 속에 담겨 있는 아픔을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다면 그 가정은 분명히 회복할 수 있는 것 같아요.

1
2021-01-19 16:09:25

요즘 마음이 싱숭생숭한데 아빠 보고싶은 글이 많이 올라오네요....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WR
1
2021-01-19 16:14:00

이전에 아버님 글 올리셨던 것 지금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인상에 깊게 남았어서요.

편히 쉬시면서 Istanbul님을 조금 멀리서 바라보고 계실 겁니다.

1
2021-01-19 16:09:54

항상 좋은 글 감사합니다. 케이치님은 좋은 아들이자 아버지인 것 같습니다.
+ 케이치님 글은 긴데도 몰입해서 읽게 되네요~ 앞으로도 자주 써주세요

WR
2021-01-19 16:12:52

항상 짧게 쓰려고 생각하고 시작하는데, 이게 참 잘 안되네요. 

제 글쓰기는 기본적으로 이렇게 생겨먹은 것 같습니다. 

2
2021-01-19 16:19:44

저랑 많이 비슷하시네요. 술 많이 드시고 사업하시느라 버신 돈 다 잃으시고, 그거 만회하려고 발버둥 치시다가 더 큰 빚을 지게 되는 바람에 저하고 많이 다투시고 감정의 골이 깊어진 아버지 셨어요.
정말 원망많이 했는데요, 작년에 갑자기 사고로 의식불명이 되시면서 결국 돌아가시게 되니까. 따뜻한 말한마디, 사랑한다는 말한마디 제대로 못한거 같아서 많이 한이 맺히더라구요.
이제라도 아버지에게 따뜻한 말한마디 건네시면 좋을거 같아요. 아무리 미워도 돌아가시면 어릴때의 그 좋았던 기억만 남게되는거 같아요.

WR
2021-01-19 16:31:11

제가 국민학생 때부터 아버지가 노래 부르시는 소원이 저랑 술 맞대작 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제 좁은 속은 아직 그 술자리 한 번을 못하겠네요.

이러다가 나중에 크게 후회하지 알면서도 그거 하나 실천을 못하고 있으니......

1
2021-01-19 16:40:45

술 한잔은 꼭 하셔요.
저는 많이 했고 그래도 아직 갈등의 골이 깊지만 두분이서 같이 드시면 그 전보단 다른 이야기를 많이 하실꺼에요..

1
2021-01-19 16:31:23

 좋은 글 감사합니다. 글쓴 분의 마음이 잘 드러나서 저도 찡하네요.

2
Updated at 2021-01-19 17:15:17

와.. 제가 쓴 글인줄 알만큼 비슷하시네요 많이 공감하면서 읽었습니다
연배도 비슷할 것 같네요
두가지만 딱 다른데 저희 아버지는 어렸을때 가족들 모두에게 손찌검도 많이 하셨어요 그냥 특별한 이유도 없이요
말대꾸하는 순간 싸대기 날라오는 그런

성인이 되고 두번 결혼을 생각했던 사람이 있었는데 결혼에 대한 저의 막연한 두려움, 크면서 내가 그렇게 싫어했던 아버지의 모습이 가끔 나에게서 튀어나올 때 드는 불안감, 내 자신이 좋은 아버지가 될 자신이 없다는 마음이 커지면서 관계를 접었고 이후에는 거의 결혼 자체를 생각하고 있지 않거나 하더라도 딩크를 꿈꾸고 있습니다

케이치님은 그래도 잘 극복하신 것 같네요
저는 아버지와의 큰 사건이 있었고 그후 아버지가 처음 미안하단 얘기를 하셨고 저도 정신과 치료도 받았지만 모르겠습니다
워낙 오랜 기간 쌓이고 곪아서 딱딱해져서 그런지 제 닫힌 마음이 평생 열리지 않을 것 같단 생각을 해요
한편으로는 케이치님처럼 돌아가신 후에 후회하지 않을까 걱정도 되지만 쉽지않더라구요
좋은 글, 많은 생각을 하면서 잘 봤습니다

1
2021-01-19 17:14:36

어릴때 아버지는 자식교육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그게 불만이였고요...

집안 살림에도 관심 없어서

무언가 고장나면 고치는 것도 어머니 몫이였습니다.

더군다나 술도 자주 드시고 인사불성이 되어 들어오는게 잦다 보니

퇴근 무렵 회사에 전화해서 오늘은 술안먹고 들어오냐고 묻는게 일상이었습니다.

그러고 술 먹고 늦게 들어오시시고 하고....

한 겨울에 집근처에서 집 못찾고 주저 앉아 계시는거 모셔오고...

 

그래서 아버지를 닮지않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더 가정에 충실하려하고, 무언가 고쳐야되면 인터넷 찾아서라도 직접 고치고...

술은 가끔 먹고, 먹고 싶으면 집에서만 반주하고...

 

약 12년 전 처음 처갓집 인사드리고,

아직 미래가 불투명한 저를 보고 장인어른 제외한 할머니와 장모님은 반대하였습니다.

그런 상황을 알게 되신 아버지께서 전화하셔서

 

"집은 해 줄 수 있으니 걱정말고 잘 말씀드려라...

설령 자리 못잡아도 너 결혼하고 나서 뒷바라지 못해주겠냐..."

 

전화 끊고 펑펑 울었습니다.

퇴직하신 아버지께서 그런 말 하실 수 밖에 없는 제 상황에 너무 처량했고...

아버지께도 죄송했고...

결혼해서 자식 낳고 보니 아버지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마음이 너무 이해되서

지금도 이 글 적으면서 그때 감정이 살아나네요.

 

아버지 칠순때 한마디 하라고 해서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은 모성애라고 하지만,

부양의 의무를 지고 있는 부성애도 큰 사랑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회사로 출근할 수 밖에 없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되었고

그게 결코 쉬운게 아니었습니다.

주말에 못 놀아주고 내내 주무시는 아버지의 피곤함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라고 이야기 드렸더니, 기분 좋게 술을 계속 드시더군요.

나중에 어머니께 우리 아들 말 잘한다고 좋아하셨다고 하더라구요.

 

그럼에도 대화없이 서먹하게 지낸게 오래여서

지금도 부모님댁에 가도 대화는 잘 안하게 됩니다만

가끔 술한잔하게 되면 참 좋아하시더군요.

 

케이치님 글 보고 묘하게 센치해져서 글을 적게 되네요. 

아버님께서 마음 전할 수 있기 바랍니다.

WR
2021-01-19 18:08:22

저도 아버지 닮지 않아 보이려고 그렇게 노력했는데,

다들 아버지와 제가 많이 닮았다고 합니다.

외양만이 아니라 말하는 투도 정말 똑같대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서 항상 뭔소리냐고 했는데,

어느날 녹음된 제 목소리를 들어보니 정말 똑같더라구요.

 

싸이의 아버지 노랫 가사 중 위에 말씀처럼 힘들어도 출근하는 아버지에 대한 부분이 있죠.

그 가사에 절절히 공감하면서도 정작 전해야할 분에게는 그 맘을 못 전하고 있네요. 

저도 맥도웰님처럼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직은 조금 더 필요하세요.

1
2021-01-19 17:25:11

술을 한잔도 못하시는대신 헤비스모커셨던것만
바꾸면 저의 아버지 이야기라해도 될 정도네요.
다른 매니아님들 답글에도 있지만 그래도 앞으로
는 조금씩 아버님과 대화하시기를 바랄게요.

저역시 머리가 커가면서 케이치님과 비슷하게
대립하던 시기가 있었고 그러던중 외가 친지분의
도움으로 해외로 나갈 기회가 생겼었죠.
공항터미널에서 느긋하게 시간 맞춰서 버스타고
가려는걸 굳이굳이 데려가주겠다고 기다리라하시다 러시아워 걸려서 시간에 쫓겨 겨우겨우 공항에 도착하면서 또한번 다툼이 있었고 출국장앞에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며 아버지께 쏘아붙이듯
한마디 건넸습니다. 제발 몸관리 잘하시라고.무슨일 나서 중간에 나 돌아오게 만들지 말라고.

협심증 수술까지 하시고도 여전히 담배를
태우시던 아버지께 걱정반 반항반 건넨 그 싹퉁머리없던 인사가 결국 온전한 정신의 아버지와
나눈 마지막 대화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미 돌아가신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도 그날 말한마디 없이 공항까지 오던 차안에서의 시간과 마지막 대화는 후회가 많이 되더라고요.
어색하고 힘드시겠지만 조금씩 아버님께 다가가시길 바래봅니다.

1
2021-01-19 17:28:15

제가 서른 중반 넘어서까지 같은 이유로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즐겨 마시지 않지만, 내가 생각하는 종교에서 말하는 사랑이 도대체 뭐길래 이 아버지 하나 안아주지 못하나. 어느 날 이 생각에 맥주 한 잔을 마셨네요. 그 이후로 아버지와 술 이야기 할 때 가장 행봅합니다. 눈시울 붉히고 갑니다. 

WR
2021-01-19 18:05:29

저도 정신 좀 차려야할건데, 참 어려운 일도 아닌데 어렵게 잡고 있네요.

1
2021-01-19 18:31:39

글을 다 읽는 순간 눈시울이 살짝 뜨거워지네요

힘든 얘기를 덤덤하게 하시는 필력도 부럽습니다.

나이가 들어 어느정도 아버지를 이해하시려고 하는 것이 보여서 좋네요

2
2021-01-19 19:12:46

글을 참 잘 쓰십니다. 담담하면서도 울림이 깊은 글이네요. 덕분에 저도 집에 전화드렸습니다.

1
2021-01-19 19:28:04

 위에 Dub 님이 써주신 것처럼 담담하면서도 울림이 깊은 글이네요. 좋은 글 너무 잘 읽었습니다. 100퍼센트는 아니어도 이 정도까지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는 남자로 성장하신 케이치님 멋집니다.

1
2021-01-19 19:29:03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1
2021-01-19 21:30:26

예전부터 느꼈지만 역시 글을 잘 쓰시네요. 그리고 솔직함이 돋보입니다.

 

매니아의 많은 20-30대 분들이 정도는 달라도 비슷한 유형의 아버지를 겪으셨을 거라 생각해요. 저도 마찬가지구요. 유교적 문화나 먹고 살아야 하는 부양의 책임, 그리고 한국 사회가 전통적으로 요구하는 아버지의 역할이나 모습 때문에 그렇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아버지들을 옹호하는게 아니지만 본문에 나오셨다시피 그 아버지의 성장 과정이 아버지를 만드는데 가장 큰 기여를 했을테고 또 우리 아버지 세대에는 그게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졌을테니까요. 응어리가 쉽게 풀리지는 않지만, 저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아버지의 모습을 조금씩 이해를 하게 됩니다. 아버지도 아버지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었을 것이고, 바꾸고 싶지만 누가 가르쳐준 적도 없고 쉽게 바뀌지도 않게 되구요. 말씀하신대로 어떻게 아버지가 돼서 그랬냐고 원망을 하셨지만 위에서부터 내려온 것을 바꾸는게 쉽지 않습니다.

 

케이치님 분명히 어렵겠지만 조금씩 아버님에게 마음의 문을 여시고 대화를 하시기를 바랍니다. 서로에 대한 오해와 느낌을 조금씩 나누게 될거에요. 제가 개인적으로 케이치님 아버님과 어머님께 고마운 것은 그래도 가정을 지키셨고 (이제는 이 단어도 예전과 느낌이 다르지만요) 케이치님을 손댄적이 없다는 점입니다. 그게 뭐라할까 표현을 쉽사리 하지 못하는 우리 아버지 세대가 할 수 있었던 아이들에 대한 최대한의 사랑과 존중의 표현이 아닐까 합니다. 얼마전에 Warm님이 써주셨던 것처럼 이제 우리가 우리 아이들을 키워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완벽한 정답은 없지만, 우리가 겪었던 것을 조금 더 고민해보고 생각해보는 시간이 우리 부모님 세대보다는 많잖아요. 저는 지금 아버지와 떨어져 살아서 기회가 많이 없는게 안타깝지만, 꼭 아버님과 맛있는 식사도 많이 하시고 반주도 하시는 때가 속히 오기를 바랍니다. ^^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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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19 22:10:19

마음이 따뜻해지는 글 잘 읽었습니다.. 제가 글쓴이님의 마음을 일일이 다 헤아리지는 못하겠지만.. 저도 나이가 들수록 제 아버지가 과거부터 지금까지 경험해오신 삶의 무게들을 조금씩 느끼고 공감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살아오신 그 삶에 대해.. 이 세상에서 가장 잘 이해할수 있는 사람이 바로 그 아들.. 제가 아닐까 확신하며.. 조금씩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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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01-20 11:32:11

어머니 생각나네요.
유산 집안돈 자식들 돈까지 속여서 끌어다 다쓰신 분이라 얼굴만 봐도 싫은데 또 어릴적 나약하기만 했던 저 키워주신 생각도 들고 그래도 부모님이니 안챙길 수는 없고.
인생 살면 살수록 부모님 마음 이해할 줄 알았는데 전 결혼하고 자식낳고 오히려 부모님과 멀어진 부분이 있어서 인생 참 내 생각하고는 다르구나 많은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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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01-20 11:02:23

본가에 가지 않은지 몇년 되었습니다. 지난 추석때 큰 맘 먹고 갔다가 손주들 앞에서 쌍소리 하시는거에 눈이 돌아서 소리 지르고 나와버렸습니다. 어릴때 그렇게나 듣고 자란 쌍소리인데 커서 무뎌질 줄 알았건만 곱게 사랑으로 키우려는 내 자식들 앞에서 사소한 일로 욕설 쓰시는 걸 너무 참기 힘들더라구요.

저희 아버지도 케이치님 아버지와 비슷한 구석이 많으셨습니다. 사람 좋아하지 않아서 퇴근하면 집에 들어와서 식구들 들볶는 걸로 대신하신 것만 다르신거 같네요. 과도하게 일을 벌려서 뒤치닥꺼리 하다 지친 어머니가 부엌에 앉아 우시는걸 본 기억이 선명합니다. 총명하고 대기업에서 승승장구하다 나와서 사업 차렸고 잘 나갈때 펑펑 쓰다 다 말아먹고..어릴때 할아버지에게 지독히 혼나면서 자랐다 들었고, 원래 불같은 성미와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인생이 더해져 식구들 일거수일투족 꼬투리 잡으며 숨막히게 컨트롤 하셨습니다. 

물 한모금 젓가락질 말한마디 한번 편하게 해본 적이 없고 골프채며 회초리 주먹으로 맞아가며 눌려 자랐죠. 어찌할수 없는 공포에 숨이 쉬어지지 않아 꺽꺽 거렸던 느낌이 아직도 기억나요. 그래도 키워주셨는데, 대학보내주시고 결혼시켜주시고..자식의 도리라고 생각하고 나이들어서 아이들 앞에서 화목한 모습 보여주고 싶어 꾹 참고 일년에 몇번이라도 뵈었었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연세탓인지 점점 손주들 앞에서도 컨트롤이 안되시는게 이상하게 더 제 트라우마를 자극하더라구요. 

이렇게 지내다 돌아가시면 후회할지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지난 추석때 느낀 것은 모른체하고 몇십년을 꾹꾹 눌러왔던 제 상처가 의외로 생생하게 딱지도 제대로 안 붙고 벌어져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에게 솔직히 말하고 관계를 회복할 생각도 별로 들지 않습니다. 그냥 ..아버지를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불편하고 숨이 막혀요. 


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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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20 11:12:42

참 쉽지 않으셨겠습니다.

감히 짧은 글로 에드리드님과 에드리니님 아버님에 대한 말씀을 드릴 수는 없지만,

글로만 에드리드님 잠시 뵌 건데도 정말 쉽지 않으셨겠다.. 그런 느낌만 듭니다.

 

저도 아직도 아버지가 참 불편합니다만,

그나마 달라지신 모습 쪽을 많이 보려고 노력합니다.

그래도 지나간 제 상처가 지워지거나 흐려지지는 않아서 지금도 가끔 지난 기억 속의 아버지에게 불끈하기도 합니다만,

가급적 그래보려고 노력합니다.

 

차마 뭐라 조언드리거나 쉽게 말을 꺼낼 수 있는 영역은 아닌 것 같고,

정말 수고하셨고 지금까지 잘 하셨다는 말씀만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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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20 11:46:23

케이치님 쉽지 않았겠다는 말씀 한마디에 울컥 했습니다. 네..쉽지 않았습니다.:)

 

구김살없이 밝고 명랑한 제 아이들을 보면 뿌듯하고..행복하게 자라진 않았지만 지금은 이정도면 행복한 가정이고 스스로 잘 하고 있다고 쓰다듬어 줍니다. 그게 조금씩이라도 치유가 되는 것 같아요.

 

언제나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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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01-20 12:34:34

글 잘 읽었습니다. 저보다 연배는 높으시지만 저도 아버지와 관계가 참으로 복잡하다보니 동감이 많이 갑니다.

 

저 또한 아버지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여전히 있습니다.

어릴적 아버지의 외도와 어머니에 대한 폭력 그리고 이혼, 

성인이 된후 아버지의 재혼, 또 다시 외도, 낭비벽으로 인한 갈등

키워준 외가와 형식상 가족인 본가 사이에서 줄타기 해야하는 저의 입장..

 

외도나 이혼 같은 문제는 외가, 본가에 걸쳐 기본값이라고 할 만큼

많이 목도했었기에 그 자체가 저에게 크리티컬한 문제는 아니었으나

성인이 되고나서 정말 아버지가 싫었던 이유는 타고난 이기적 본성으로

가장으로서 책임을 방기했다는 점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본디 가족을 먼저 챙기기보다 자기의 즐거움과 멋을 신경쓰는 사람이기에

가족을 위해 희생한 모습을 보여준 적도 없고, 돈을 벌어도 자기 먹고 입는것에 먼저 쓰는 사람입니다.

여전히 친엄마와의 이혼 사유는 상호 책임이라고 생각하고 홀로 힘들게 저를 키워낸 엄마에게 미안하다 고맙다 진심으로 말한 적도 없죠. 

재혼했다고 저를 아들로 불러들였던 당시에도, 제가 어디서 자는지, 생활비는 있는지, 힘든것은 없는지

단 한번도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본인 돈이 필요하다고 제 명의 신용카드로 카드론을 받으려고 하셨죠.

 

나이가 들면서 문득 두려운 것은, 그런 아버지임에도 불구하고 이따금씩 연민의 감정이 든다는 것입니다.

저 남자도 털어놓지 못한 자기의 고뇌가 있겠지, 나름대로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겠지,

그러다 언젠가 아버지를 그냥 용서해버리는건 아닐까, 그게 두렵습니다.

 

아버지처럼 살지 말아야지, 나는 결코 저 사람 같은 남편, 아버지는 되지 않을테다.

저에게 아버지는 여전히 반면교사의 대상일 뿐인데,

케이치님의 글을 읽고나니 괜히 또 미묘한 감정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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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20 17:19:29

갑자기 울컥해서 글을 남기네요.

 

재작년에 돌아가신 저희 아버지는 케이치님의 아버님보다는 많이 편했습니다. 그래도 화를 술로 푸시다가 그걸로 식구들이 많이 힘들어했죠. 저도 그런 연유로 아버지를 닮고싶어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정년퇴직하시고, 집에 오래 계시면서 술도 줄여가시면서, 간혹 주말에 같이 있으면 고기나 사다가 같이 먹자고 하시고 그랬었죠. 그때야 시큰둥했었지만 필리핀에 3년동안 근무를 하고 복귀하면서 아버지와 좀 더 친해졌습니다.

 

하지만 복귀한지 3개월만에 암이 발견되고, 수술 전에 심전도에서 이상이 발견되어 관상동맥을 체크한 후 부작용으로 뇌병변이 오셔서 4년 동안 고생하다가 재작년 말에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그 기간동안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그리고 여러가지 상황으로 참 힘들었지만, 그래도 그 병간호 기간동안 아버지와 더 가까워지고, 대화도 하고, 목욕도 시켜드리면서 그래도 아버지가 가시기 전까지 많은 시간을 보냈스니다.

 

아버지가 걸어온 길을 100프로 모릅니다. 하지만, 자신이 50살이건, 100살이건 부모에게는 자식입니다. 홀로 되신 어머니는 아직도 막내아들을 걱정하고 계십니다. 

 

아버지를 100프로 이해못합니다. 다만 얼마남지않은 기간 그 관계를 다시 가져가보는 것은 어떨까요? 전 그래도 고마운게 아버지가 아프실 때 그 관계를 가져서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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