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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메멘토: 크리스토퍼 놀란의 작법(作法), 감독이 지배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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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01-16 23:34:16

메멘토 

크리스토퍼 놀란의 작법(作法): 감독이 지배하는 영화  

 

보자보자 하다가 대략 20년이 지났습니다. 처음 메멘토라는 영화가 나왔을 때, 대단한 반전(反轉)영화라고 들었기에 호기심에 언젠가 봐야지 했는데, 테넷을 본김에,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본격적 등장을 알린 메멘토를 찾아 보았습니다. 그리고 뭔가 놀란의 작법 세계의 속살을 엿본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에게 어째서 매력있는 이야기가 샘솟는가, 그 매력의 이유를 정리해보고 싶었습니다. 

 

1. 메멘토의 질문 

 

레너드 셸비(가이 피어스)는 사고로 선생성 기억상실증에 걸려, 사고 전 기억은 온전하지만 사고 후에는 곧 기억을 잃습니다. 존G를 쫓고 있는데, 단서를 구할 때마다 곧 기억을 잃을 자신을 위해 메모를 합니다. 자신의 몸에 문신을 새기거나, 폴라로이드 사진에 짧은 구절을 남기는 식입니다. 이를 통해, 자신의 주관적 흠결을 객관적 자료로 보완하여 존G를 찾고자 합니다.

영화가 처음 시작할 때, 그에게 테디가 찾아옵니다. 폴라로이드로 그의 사진을 찾은 그는 메모를 읽습니다. "그는 거짓말쟁이다. 믿지 마라." 그리고 그의 차량 번호로 본명이 존(존) 에드워드 갬(G)멀임을 다시 메모로 확인한 그는 테디를 총으로 쏩니다. 그런데.. 정말 테디가 존G였을까요? 


2. 메멘토의 구조 

 

메멘토는 관객에게 다음과 같이 서사를 보여줍니다[임재식, 이세영,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메멘토 분석, 글로컬 창의 문화연구, 6(1), 104(2017)]. 


 

메멘토에서는 이야기가 두 갈래로 진행됩니다. 

흑백 시퀀스(실제 영상이 흑백입니다)는 시간순으로 진행됩니다. 주인공이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하며 자신의 상태, 과거 등에 대해서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이 내용은 주인공의 나레이션 기능을 하는 동시에, 컬러 시퀀스에서 펼쳐지는 내용에 대해 관객에게 보충설명하는 역할을 합니다. 시간순으로 진행되니 당연하게도 이해에 무리가 없습니다. 

컬리 시퀀스(실제 영상이 컬러입니다)는 시간역순으로 진행됩니다. 먼저 "행위의 결과"를 보여주고, 그 "원인"을 탐색하는 식입니다. 영화의 시작이 주인공이 테디에게 총을 쏘는 (다소 뜬금없는) 장면인데, 이 장면이 이루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조금씩 과거를 향해 보여줍니다. 

 

시간순과 시간역순의 플롯 구조는 그 지향점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순 플롯은 관객에게 "왜"를 궁금하게 하지 않고, "어떻게"를 궁금하게 합니다. 예컨대, 사회의 부조리(왜)를 당한 주인공이 결국 부조리를 깨는 플롯을 생각해볼 때, 시간순으로 보여준다면 관객은 주인공이 이 부조리에 "왜" 항거하는지는 잘 알게 됩니다. 하나씩 쌓여가는 이유로 인해 관객은 주인공에 감정이입하고, 주인공이 부조리에 항거하는 것은 당연한 결론이니, 과연 "어떻게" 항거하는지를 궁금해합니다. 그리고 관객은 주인공이 나아가는 방법과 과정, 그리고 이어지는 결말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시간역순 플론은 관객에게 먼저 "결말"을 보여주기 때문에 "어떻게"보다는 "왜"에 초점을 둡니다. 주인공은 왜 저런 행동을 한거야?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거야? 메멘토의 첫 장면을 본 관객은 주인공을 반갑게 맞이한 테디를 향해, 도리어 주인공이 그를 향해 총을 쏘니 그 이유를 궁금해하게 됩니다. 이제 관객은 마치 탐정처럼 그 이유를 찾아가야 합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시간역순의 플롯을 채택하면서 관객에게 탐정놀이를 마음껏 시킵니다. 조금씩 단서를 던져주는데, 소도구 활용이 기막힙니다. 자동차, 사진, 옷 등을 이용해, 관객이 어느 시간대에 위치하고 있는지 짐작하게 합니다. 불친절한 척하면서 친절한 화법에 관객은 매료됩니다. 추리하는 재미가 상당하여, 어느새 영화에 푹 빠져들게 됩니다. 

 

놀란은 이야기를 풀어낼때, 단서를 선택적으로 하나씩 늘어놓습니다. 그래서 관객에게 결말에 어떤 인상을 갖게끔 유도합니다. 그리고 마무리를 할 때, 사실 그게 아니고 이거야, 짜잔- 이러면서 전체 지도(map)를 보여줍니다. 전체 플롯을 마주할 때 관객은 놀랍니다. 아, 그래서 이야기가 그렇게 된거구나. 

 

놀란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갑니다. 그저 추리를 하는데 그치지 않고, 관객에게 더 깊은 사고(어쩌면 철학)를 하게 만들고자 합니다. 메멘토에서 주인공은 자신이 남긴 메모를 "객관적"이라 생각하고 "절대적"으로 믿으며 다음 행동의 근거로 삼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 메모가 객관적인 것일까요? 홧김에, 감정에 휘둘려, 주인공이 자의적으로 남긴 메모는 아니었을까요? "인식론적 오류"에 대한 무거운 질문까지 던지며, 놀란은 이제 관객의 지적 호기심까지 자극하고 영화를 마무리합니다. 

 

3. 테넷을 보고 나서: "아귀가 맞다"

 

https://www.youtube.com/watch?v=AnJ-WRoLmVA

 

최근 놀란의 테넷 영화를 봤습니다. 영화에서 테넷을 설명하면서, 양 손깍지를 끼는 제스쳐가 나옵니다. 이 제스쳐가 테넷의 의미를 나타내주는 동시에, 놀란의 작법을 나타내준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객에게 처음에는 한쪽 손을 보여주고, 다음에는 다른쪽 손을 보여준 다음에, 결말에는 양 손깍지를 끼어, 각 내용을 치밀하고 정교하게 "아귀를 맞추는 것". 이것이야말로 놀란의 플롯 설정을 알려주는 제스쳐가 아닐까 합니다. 

 

만약 메멘토를 시간순으로 정렬했다면 무미건조한 이야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사고를 당한 주인공이 여러 메모를 작성하고 이를 토대로 존G를 찾는다..? 관객이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을이야기를, 놀란은 플롯 재배치를 통해, 시간을 뒤틀면서 흥미를 북돋았습니다. 

 

거꾸로 말하면, 이야기 자체가 주는 재미가 없어도, 이야기를 하는 방식에 의하여 재미를 부여한다는 뜻이 됩니다. 즉, 이야기 자체의 매력도 매력이지만, 놀란의 영화에는 화법 또는 작법이 미치는 영향이 제법 크다는 뜻이 됩니다. 

 

이런 식으로 놀란의 영화는 전반적으로 플롯이 주는 재미가 전면에 나서다보니, 관객들은 이야기보다, 캐릭터보다 감독에 더 주목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보통의 영화라면 관객들은 부조리를 당한 등장인물에 감정이입하고 등장인물을 응원하며 스토리에 몰입하게 되는데, 놀란의 영화는 이야기보다, 캐릭터보다 감독의 화법이나 작법에 관심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놀란의 영화에 "캐릭터가 약하다."는 비판이 생기는 것은 불가피합니다. 다크나이트의 배트맨이야 워낙 거대한 캐릭터니, 놀란의 플롯에 묻히지 않았지만, 메멘토나 테넷과 같이 시간축을 흔드는 이야기는 아무래도 관객이 주인공보다는 그 이야기를 풀어내는 화자, 즉 감독에 몰입하고 매료되기 십상입니다. 심지어 테넷에서 주인공은 이름조차 등장하지 않습니다. 놀란의 영화 작법이 주는 의미와 한계를 상징적으로 나타내주는 것이 아닐까요 

 

4. 결론: 감독이 지배하는 영화 

 

놀란의 영화는 매력적이고 탁월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어떤 에너지가 응축되고 폭발되는 그런 통쾌함 같은 감정선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를 쓰게 하고 지적 호기심을 채우는 이성적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교하고 세밀한 플롯을 조율하는 감독의 역량은 대신 캐릭터와 감정이입 측면에서는 조금 약할 수는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놀란의 작품 중 다크나이트, 인터스텔라, 인셉션, 다크나이트 라이즈, 테넷, 메멘토를 보았는데, 최고는 다크나이트였고, 인셉션이 가장 완성도가 높았다 여기고 있었습니다. 테넷과 메멘토를 이어 보니, 20년 전의 감독의 작법이 20년 후에도 쓰이는 것을 보고, 대강 감독이 생각하고 지향하는 바가 무엇이구나 가늠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이야기꾼임을 자각하고 관객을 흥미롭게 하기 위해서 여러 작법을 사용합니다. 시간축을 뒤틀거나 이야기 순서를 바꾸거나 하는 식입니다. 전개도 무척 빠르게 해서 최대한 집중하게 합니다. 

그러면서 관객에게 최대한 깔끔하게 영상으로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합니다. 따라올 수 있도록, 설명하지 않고 보여주는 방식으로. 메멘토에서는 시간대를 자막으로 표현하지 않고, 앞서 말씀드렸듯 소도구를 이용해 시간순서를 관객으로 하여금 가늠하게 했습니다. 

다만 이러다보니 놀란의 영화는 주인공보다, 영화 스토리보다 이를 풀어내는 이야기꾼인 감독을 주목하게 됩니다. 그의 영화는 결국 감독이 지배하는 영화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최근 바빠서 좀 지쳤는데, 회복 중입니다. 영화도 보고 TV도 보고 스포츠도 보며 회복 중입니다. 

nba에는 요즘 뉴스가 많아 흥미롭고, kbl은 국내선수들이 잘해서 좋네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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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21-01-16 23:30:02

영화만큼 재밌는글 잘봤습니다 놀란은 사랑입니다

2021-01-16 23:36:19

테넷을 아직도 못 봤네요

극장갈 상황은 아니지만....

2021-01-16 23:43:46

확실히 이야기를 조립하는데 능한 감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덩케르크의 조립이 인상적이었네요. 시간을 연결하고 짜맞추는데 강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2021-01-17 04:37:47

덩케르크를 보시면 놀란의 또다른 시간미학을 만끽하실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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