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출신 뉴요커 친구에게 들은 뉴욕살이의 현실
대학졸업 후 학과교수님의 부탁으로
대학 어학당 외국어교육원에서
한국어강사로 잠시 일한 적이 있습니다. 전공이 국어교육이었거든요.
그때 여러나라에서 온 유학생들을 가르쳤는데 그 중에 저보다 나이가 조금 많은 뉴욕출신 남학생이 한 명 있었습니다.
한국에 대해서 관심도 많고 귀찮을 정도로 물어보는 것도 많아서 금방 친해졌고 나중에는 같이 밥도 먹고 여기저기 맛집 투어도 시켜주고 그랬고요.
술 한 잔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뉴욕에서 살았다는 것에 호기심이 있어서 궁금한 것들을 물어봤죠.
원래 뉴욕 태생은 아니고 뉴욕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모델을 지망했는데, 실제로 중견패션기업 모델로 활동했고 뉴욕컬렉션 쇼에 섰던 경험도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어쩐지 처음 봤을때부터 배우같은 얼굴에 키도 거의 190에 가까워서 심상찮다고 생각은 했습니다. 옷걸이는 쩔었지만 의외로 패션은 평범해서 모델출신인지는 몰랐고요. 캡모자쓰고 청바지에 남방. 걍 너무 평범한 미국인 패션이었네요.)
그래서 못믿겠다고 장난치니까 자기 포트폴리오랑 잡지, 광고판에 걸렸던 사진들을 보여줬는데, 정말 프로였구나 싶었습니다. 이름만 대면 다 알만한 명품 브랜드 언더웨어 광고도 찍었던데, 그동안 봤던 평범한 옷차림안에 어마어마한 근육질 몸이 숨어있더라고요. 갑자기 딴 세상 사람으로 보였던...(나랑 시장뒷골목에 만두먹으러 다녔던 사람이 맞나?)
암튼 각설하고 그럼 이렇게 사진도 잘나오고 멋진데 지금은 왜 모델 안하냐고 물어보니
일단 뉴욕살이에 넘 치쳤다. 일부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에 다니긴 했지만 비싼 등록금과, 미친 렌트비, 교통비, 높은 물가까지. 용을 쓰고 살아도 낡고 좁은 집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답니다.
가정형편이 넉넉지 않아서 경제적 지원 없이 혼자 해결하는 생활이 몇 년 되다보니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상황까지 갔다고 하더라고요. 뉴욕은 물가가 높은만큼 임금도 센 편이지만 경쟁이 너무 치열하고 전속계약모델이나 네임드 모델이 아니면 보수가 짜고 헝그리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모델하면서 비시즌에는 레스토랑 서빙 등 각종 파트타임잡을 많이 했는데, 쉽게 잡히지 않는 꿈만 쫓으며 사는것에 지쳐버리고 만거죠.
의사.변호사.회계사 등 전문직종이나 여타 고소득자가 아니면 중간정도 생활수준으로 살기도 빡빡한 곳이라고 하더군요.
둘째는 업계에서 버틸 자신이 없었다. 아까 말했듯이 진짜 다 알만한 유명한 명품브랜드 언더웨어 화보모델을 한 적이 있는데 전속이 아니고 몇 개월 단위의 임시계약이었답니다. 그래서 반응이 좋으면 정식계약하고 아니면 걍 팽되는. 그것도 전세계의 잘생기고 몸좋고 섹시한 남자들 다 모인것 같은 오디션에서 미친 경쟁을 뚫고 10명 안에 들어 선발 됐고
성공하겠다는 꿈에 부풀어서 열심히 몸만들고 촬영하고 준비했는데 어느날 브랜드의 높은 직위의 있는 프로듀서가 따로 불러서 마음에 든다고 자기 애인이 될 생각이 있냐고 물어보더랍니다. 50살 넘는 게이 아재였다고.. 거절하면 뻔히 잘릴거 알면서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서 거절했고 얼마뒤에 브랜드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바로 잘렸답니다. 그리고 다른 회사에서 오디션 볼때도 여자 간부들이 x파하겠냐고 제의한 적이 있고, 업계관행상 더 높은 곳까지 가려면 사교계에서 정치질도 잘해야하고 여러 더러운 절차들을 견디고 통과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동료 모델간의 견제도 극심하고요. 모델들을 쓰고 버리는 물건 취급하고 변태도, 성도착자도 많은 곳이 뉴욕패션계라고.. 물론 안 그런 좋은회사들도 있겠지만요. 요즘은 회사내 성추행 그런거 걸리면 미국도 큰일나서 많이 나아졌지 않냐고 물었더니, 유명해진 사람들이나 미투하고 고발하고 하지 아직도 힘없는 사람들은 기회를 얻기위해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기때문에 버티거나 포기하거나 한다고 하더라고요. 암튼 요점은 정말 운이 좋거나 인맥이 없다면 뉴욕에서 성공하거나 자리잡기가 쉽지가 않다는 것.
셋째. 미드의 영향으로 전세계 여행자들이 동경하는 곳이지만, 대도시의 삶은 어디나 다 비슷하고 실제 뉴욕시민들은 부자가 아니라면 삶에 치여서 명소들을 다니고 즐기기가 쉽지 않다는 것.
뭐 아름다운 공원도 많고 좋은 음식점, 재즈바도 많지만 막상 뉴욕커들의 삶은 대체로 각박하고 버티며 산다는 것이 그의 말이었어요. 참고로 그 친구도 nba팬인데 MSG나 바클레이 입장료가 만만찮아서 여친이랑 데이트 할 때 큰맘먹고 딱 한 번 보러갔다고 해요.
뉴욕에서 살면서 좋은 기억,친구도 많고 정도 많이 들었지만 뉴요커라는 이름표를 달고 살아가기에는 치러야할 대가가 너무 커서 정리하고 나왔답니다.
(자기가 약간 컨트리보이 스타일이라 대도시생활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점도 있다고 했어요)
그럼 왜 한국에 왔냐고 물어보니
한국영화에 관심이 많고, 한국은 독특한 문화와 에너지를 가진 나라라서 흥미롭다. 나중에 한국콘텐츠나 음식과 관련된 비즈니스를 미국에서 하고싶어서 공부중이라고 했어요.
돈이 쪼들리는 뉴욕생활에 익어서 그런지 한국에서도 엄청 계획적이고 알뜰하게 살더군요. 한국은 지하철요금이 싸서 너무 좋다고 하고
또 재밌는 게 한국 도시는 바로 곁에 산들이 많아서 좋다고 같이 산에 가자고 졸라서 등산도 엄청 데리고 다녔었네요^^;
(뉴욕에서는 상처를 많이 받고 삶에 지쳐서 그런지 음울한 성격이었는데 한국에 와서 많이 밝아졌다고 하더라고요. 수업에서는 진지하다가도 밖에서는 덩치에 안맞게 잔망미 폭발하는 친구입니다)
어느 나라 어느 대도시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뉴욕에서 자리잡고, 살아가는 분들은 정말 대단하시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p.s.
이 친구에게 들은 뉴욕패션계 뒷이야기나 한국에서 데리고 놀러 다니면서 생긴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은데 여유있을때 조금씩 풀어볼게요
주말 잘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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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 분 사진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