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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미국의 이름으로 저질러졌던 자유말살과 인종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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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01-14 12:26:39

에도 막부가 미국의 압력에 굴복해서 문호를 개방한 이후부터 노동인력 수급을 목적으로 한 일본인의 미국 이민이 이어졌습니다. 20세기가 시작될 무렵 이미 정착된 이민 1세대의 후손이 꾸준히 늘어나서 1920년대에 10만명이 넘는 일본계 미국인들이 미국 본토에 거주했으며 1940년에는 캘리포니아 주에만 일본계 미국인의 숫자가 10만명에 가까웠습니다.


1941년 12월 7일, 일본이 하와이의 태평양 함대를 공격하자 2차 대전은 태평양 전선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일부 미국인들은 일본 해군이 이어서 본토까지 공격할 것이라고 겁을 먹었습니다. 이러한 우려는 미국 정부가 엄연한 자국 시민인 일본계 미국인들의 개인적 자유를 박탈하는 정책으로 이어졌습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1942년 2월 행정명령을 내려 태평양 연안에 거주하는 일본계 미국인들은 물론이고 미국 태생의 모든 일본계 미국인들에게 2월 19일부터 야간 통행금지 명령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유럽계 미국인들은 더 강한 조치를 정부에게 요구했습니다. 그들은 일본계 미국인들이 조상국인 일본에 협조하며 스파이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선전했습니다.


이에 따라 루즈벨트 대통령은 1942년 5월에 약 12만명에 달하는 일본계 미국시민들과 영주권자들을 거주지로부터 강제 퇴거시킨  후 네바다 사막 등에 급조한 집단 거주지역에 강제로 이주시키는 결정을 단행했습니다. 12만명의 일본계 강제 수용자들 중에 65%가 미국 시민권자였습니다. 아래 사진은 황량한 네바다 사막에 급조한 Manzanar 일본계 미국인 수용소입니다.

 

 

미국정부는 2차대전의 적국이었던 독일과 이탈리아로부터 미국에 이민와 살던 사람들에게는 집단이주는 물론이고 통행금지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프레드 코레마츠(Fred Korematsu)는 1919년 1월 30일에 캘리포니아 주 오클랜드에서 태어난 일본계 미국인입니다. 그는 자신을 일본인이 아니라 미국인으로 여겼고 애국심이 남달랐습니다. 코레마츠는 1940년 2차 대전 참전을 위해 미국 해군에 지원했지만 위궤양으로 인해 징병 신체검사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았습니다. 이후 그는 미국 국방에 도움이 되고자 용접공이 됐습니다. 하지만 루즈벨트의 조치 이후 코레마츠도 강제로 집단수용소에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코레마츠는 미국이 자신과 가족들에게 요구하 행위를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정해진 날짜에 집합 장소에 출두하기를 거부하고 잠적했지만 몇 달 후 체포되어 캘리포니아 지방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습니다.


미국시민자유연합(ACLU)의 지원에 힘입은 코레마츠는 즉각 항소했으나 항소법원 역시 하급법원의 판결을 지지했습니다. ACLU는 코레마츠 뿐 아니라 모든 일본계 미국인인이 공정한 법정 다툼 없이 강제수용한 것은 법에 위배된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당시 수많은 미국인들뿐 아니라 일본인 단체들도 코레마츠를 비난했습니다. 그들은 강제수용에 협조하는 것이 미국에 대한 충성심을 증명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ACLU과 코레마츠는 여기에 굴하지 않고 그 사건을 연방대법원까지 가져갔습니다. 연방대법원은 코레마츠 사건에 앞서 히라바야시 대 미국(Hirabayashi v. United States) 판결에서 이미 일본계 미국인들에게 내려진 야간 통행금지 명령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습니다. 하지만 ACLU과 코레마츠는 자국민을 삶의 터전에서 몰아내 생소한 곳으로 강제이주 시키는 것은 통행금치와 차원이 다른 문제라고 주장했습니다.

 


코레마츠 사건에 대한 연방대법원의 판결은 전쟁이 일본의 패배로 기울어지던 1944년 12월에 내려졌습니다. Korematsu v. United States 이라는 사건의 판결에서 연방대법원은 6:3으로 강제이주를 명령한 정부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이후 유타주 수용소로 보내진 코레마츠는 동료 일본계 미국인들 사이에서 '쓸데없이 문제를 일으킨 사람' 취급을 받아 왕따를 당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수용소에서 나온 코레마츠는 전과로 인해 직장에서 자신이 임금을 동료의 절반밖에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고용주에게 항의했으나 돌아오는 것은 경찰을 불러 체포시키겠다는 협박뿐이었습니다. 절망한 코레마츠는 이후 30년간 조용히 지냈습니다.


30년이 넘게 지나서 1976년 제럴드 포드 대통령은 집단 수용을 당했던 일본인들에게 사과했습니다. 레이건 대통령 시절인 1983년 코레마츠는 정부로부터 공식적으로 사면을 받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미국 정부에 대한 사면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가 정부를 일본계 미국인들에게 저지를 행위로부터 사면한다고 소감을 말했습니다. 1988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인종편견, 전쟁공포, 정치 리더십 부재가 일본계 미국인을 억류했던 것을 시인하며 새롭게 제정된 시민 자유법에 서명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수용소 생활을 했던 일본인들에게 각자 2만 달러씩 보상이 이뤄졌습니다.


1996년 코레마츠는 빌 클린턴에게 대통령 자유훈장(Presidential Medal of Freedom)을 받았습니다. 이는 미국에 거주하는 민간인이 받는 최고의 영예로 간주됩니다. 코레마츠가 미국 정부의 불법적 행위에 대해 비판하고 끝까지 싸운 점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2005년에 86세의 나이로 사망한 코레마츠의 묘비명은 "오클랜드에서 태어난 프레드는 다른 미국인들과 똑같이 대우받기를 원했을 뿐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2001년 9/11 테러 공격으로 미국이 혼란스러울 때, 미국내 중동 지역 출신이나 무슬림 이민자들에게 별도의 관리가 필요하지 않는냐는 의견이 정부 일각에서 나왔다가 흐지부지 사라졌는데, 이는 일시적인 분위기에 휩쓸린 선택이 공동체에 오래도록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일깨운 코레마츠 사건 덕분으로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은 특정 인종이 아니라 사회의 모든 분야에 대한 사법집행기관의 감시권한을 대폭 강화한 일명 애국자법(USA Patriot Act)를 제정했으나 독소조항에 대한 논란으로 2015년 6월 폐지되고 미국 자유법(The USA Freedome Act)으로 대체됐습니다.

 

 

코레마츠는 세상을 떠났지만 하와이, 버지니아, 플로리다에서는 매년 1월 30일을 프레드 코레마츠 데이로 정해 기념하고 있습니다. 2017년 1월 30일 구글의 메인 로고에는 훈장을 걸고 있는 노년의 코레마츠 모습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벚꽃, 미국 국기, 여러 채의 수용소 건물들과 그곳에 있던 많은 사람도 그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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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21-01-14 11:24:58

항상 좋은 글 감사합니다.

 

베일리님 글 올라 올 때마다 감사한 마음으로 항상 정독합니다.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항상 건강하세요. ^^

WR
2021-01-14 11:26:21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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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01-14 11:45:47

오늘도 새로운 내용 배워갑니다. 항상 써주시는 유익한 글 감사한 마음으로 읽고 있습니다.

작년이었나요. NL계열 단체에서 해리스 주한대사가 일본계 미국인이라는 이유로 모욕적인 언사를 하며 콧수염을 뽑는 시늉을 하는 인종차별적 시위를 한게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일본계 미국인들이 자국에서 얼마나 고생하고 편견의 극복과 평화를 위해서 노력했는지 안다면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행동이었는데, 그들의 무지와 비틀린 신념에 기겁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WR
2021-01-14 11:38:29

미국이 문제삼지 않은 게 다행일 뿐입니다.

2021-01-14 11:43:40

오늘도 정독하며 잘 읽었습니다...

양질의 글.. 항상 감사합니다

WR
1
2021-01-14 12:09:06

고맙습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2021-01-14 11:45:26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역시 베일리님 글로 더 자세히 알게 되어 좋네요. 잘 읽었습니다.

WR
2021-01-14 12:09:14

감사합니다

1
2021-01-14 11:54:44

미국이라는 나라는 참 신기한 것 같습니다. 건국과 발전의 과정에서 그 어떤 나라보다도 지금의 기준에서 이해하기 어렵고 추악한 모습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것들을 사회가 조금씩 인지하게 되고 반성하고 변화하는 과정이 명확히 보이는데 그게 미국이라는 나라의 힘이 아닐까 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WR
4
2021-01-14 12:08:28

미국의 강점은 인종분쟁이 일어나거나 트럼프 같은 극단적인 인물이 나타나더라도 미국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치열하게 열린 논쟁을 벌인다는 것입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식 자본주의의 한계와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표출되면서 그 대안으로 중국 모델인 베이징 컨센서스가 각광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중국의 정치가 한심하게 후퇴한 오늘날 베이징 컨센서스라는 단어 자체가 사라졌습니다. 중국이 세계의 패권자가 되려면 미국의 동맹국들이 등을 돌릴 준비를 해야 합니다. Alliance Transition 이라고 불리지요. 그런데 갈수록 비민주적이고 자유주의 질서를 따르지 않는 중국의 소프트파워가 미국의 동맹국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일까요? 중국의 국력신장과 상관없이 그럴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고, 지금 같은 독재와 억압적 상황이 지속되면 더욱 그럴 겁니다. 근래에 트럼프가 엉뚱하게도 동맹국들을 뒤흔들면서 해당 국가들이 미국을 비판하고 있지만 중국과 동맹을 맺겠다고 암중모색하는 나라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2021-01-14 12:20:59

중국이 과학기술 지배 야욕을 드러내며 엄청나게 성과를 쌓아올리고 있는데 향후 어떻게 될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본문의 사례에 비추어보면 트럼프는 정말 미국 대통령으로 어울리지 않습니다.

1
2021-01-14 15:50:04

트럼프라는 실수가 있었어도 결국 그것애 대한 자정작용이 이루어지는 것 또한 미국의 장점인거 같네요

1
2021-01-17 01:16:03

중국이 최초로 달뒷면에 달탐사선을 보내는 등 중국의 과학굴기는 상당한 성과를 일궈내고 있죠.  그에 뒤질세라 미국이 과거 아폴로 유인달탐사 이후로 다시 달탐사를 비롯하여 스페이스X사의 화성탐사 및 블루오리진의 우주탐사같은 민간기업까지 우주 프로젝트에 속도를 내고 있는데요. 중국이 제 아무리 과학굴기에 야욕을 드러낸다 하더라도 미국이 전면적으로 나선다면 스케일면에서 뒤처질거라 보입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이 지속되는한 과학기술 또한 자존심을 건 총성없는 전쟁은 계속되겠죠.

2021-01-14 15:23:00

기억하실지는 모르겠지만 데이먼님의 글에 중국은 미국을 절대 대체할 수 없을거라고 몇 번 댓글 달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확신의 근거는 소프트파워의 차이라고 생각하고요. 국제 질서, 또는 더 추상적으로는 국제사회의 시스템이나 체계의 근거가 될만한 중국만의 notion은 전무하다고 생각합니다.

2021-01-17 01:31:57

미국이 소프트파워를 내세워서 미국말 잘듣는 국가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중국은 주변에 적들로 둘러싸여질수밖에 없는것 같습니다. 거기에 역사적으로 적대적인 국가들인 대만이나 인도도 있구요. 중국이 궁지에 몰리면 몰릴수록 하드파워밖에 키울수밖에 없는 구조죠. 유일하게 친한 국가인 러시아같은 나라는 국제적인 역학관계에 따라 중국과 협력관계를 눈치봐가면서 하는 정도구요.

2021-01-14 16:51:48

저도 2016년 트럼프 당선 충격 이후 한국도 동맹관계에 약간의 재조정이 필요한게 아닌가 생각까지 잠깐 들었었는데 결국 아무리 미국이 삽질해도 자유주의, 다원주의 기반 사회와 중국과는 근본적으로 넘을수 없는 갭이 있는것 같더라고요.

WR
2021-01-15 11:56:33

트럼프가 지난 4년 동안 미국의 전통적 동맹외교 체제를 파괴했고,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는 일방적이고 무모한 그의 정책들은 미국의 국제적 명성의 추락과 국내의 정치적 혼란을 가져왔습니다. 지난 해 코로나바이러스의 대유행에 잘못 대응하며, 세계보건기구(WHO)에서 탈퇴하는 등 글로벌 리더로서의 역할을 포기한 것이 중국의 국제사회 지위상승의 중요한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퇴행적인 시진핑 정권을 든든하게 떠받들고 있던 것이 바로 트럼프였습니다.

1
2021-01-14 11:56:34

코레마츠가 없었다면 베일리님 글 제목이
21세기...로 시작할뻔 했네요

WR
2021-01-14 12:08:41

무슨 뜻인지 모르겠네요^^

2021-01-14 12:33:36

'중동 지역 출신이나 무슬림 이민자들에게 별도의 관리가 필요하지 않는냐는 의견이 정부 일각에서 나왔다가 흐지부지 사라졌는데, 이는 일시적인 분위기에 휩쓸린 선택이 공동체에 오래도록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일깨운 코레마츠 사건 덕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을 읽고 드립 친거에요

WR
2021-01-14 12:36:28

이제 이해했습니다. 고맙습니다.

2021-01-17 01:50:54

결국은 어떤 진보와 변화는 투쟁이라는 토대가 뒷받침 되었기에 가능했던것으로 보입니다. 흑인이나 여성의 인권향상도 마찬가지였듯이, 부당한일에 누군가가 맞서야만 그것으로 변화를 이끌어 낼수있는것 같습니다. 그 변화를 통해 미국이 다양성을 수용하고 자유와 평등이 더욱 완고한 국가로 거듭났겠죠.

2021-01-14 12:08:53

얼추 미국의 입장도 이해가 가기는 합니다.
독일과 이탈리아는 미국땅에 대한 공격은 없었던 걸로 알거든요. 그리고 진주만에 대한 공격은 선전포고전에 시작했으니까요.

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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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14 12:10:52

당시 일본보다 독일이 미국에게 훨씬 더 위험한 상대였습니다. 당시 미국이 무리할 정도로 엄청난 돈과 인력을 들여 핵무기 개발에 나선 것도 일본이 아니라 독일의 위협 때문이었습니다.

2021-01-14 12:18:06

동양인에 대한 차별도 있었겠지만 이분법으로 생각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안 좋게 생각해서 다른 이유를 적어봤습니다.
그리고 써주시는 글, 정말 재미있고 유익하게 보고 있습니다.

WR
2021-01-14 12:19:38

고맙습니다.

2021-01-14 13:10:29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21-01-14 13:18:08

와. 얼마나 외로운 싸움이었을지 가슴이 먹먹합니다. 생전에 복권되신것도 정말 다행이네요.

2021-01-14 15:25:28

사실 그당시 미국의 입장도 이해가 가고 현재를 기준으로 당시 일을 판단하는건 100% 맞는가 합니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은 선전포고 없이 민간인들도 거주중인 섬을 폭격할 정도의 비상식적인 나라 였으니깐요

그리고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민족주의, 파시즘이 극에 다른 시기였고 일본의 슬로건 자체도 귀축영미란 슬로건으로 미국과 영국을 적대 했으니깐요

미국계 시민권자이든 민족적으론 일본인이였고 일본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면 미국 내부에서 테러등울 걱정해야하니깐요

전쟁 후반에는 자살특공이라는 정말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고 전쟁중에도 연합군 포로를 식인한 부대도 있으니깐요

당시 양방향 전쟁으로 미국도 총력전인 상황에서 나온 고육지책이 아닌가 합니다

1
2021-01-14 17:02:31

9/11 얼마후 부시가 연설했죠.

 Like the good folks standing with me, the American people were appalled and outraged at last Tuesday’s attacks.  And so were Muslims all across the world.  Both Americans and Muslim friends and citizens, tax-paying citizens, and Muslims in nations were just appalled and could not believe what we saw on our TV screens.

These acts of violence against innocents violate the fundamental tenets of the Islamic faith.  And it’s important for my fellow Americans to understand that. --> 대충 무슬림들이 나쁜 사람 아니라는 얘기

사실 인종차별은 본능 같은 부분이고 사회가 성숙하면서 의식적으로 물리치려 꾸준히 노력해왔던것 같습니다. 원주민 말살로 세워진 미국이 누구보다 여기에 죄가 많은 나라라고 할수도 있지만 또 누구보다 과거의 과오를 씻고 다원주의 사회로 발전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죠.

한편 누구는 선거운동 시작부터 멕시칸은 강간마다 소리나 하고 있으니...

WR
2021-01-14 17:11:54

2019년에 트럼프가 4명의 유색인종 여성 연방하원의원들을 가리켜 쓴 글입니다.

Updated at 2021-01-14 18:08:17

트럼프를 어느정도 이해했다 싶으면서도, 저런 트윗을 보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상상초월 인간이라는 생각에 새삼 뜨악하게됩니다.
아들 부시는 흔한 말로 아빠 빽 믿던 망나니(?)로 정계에서 매우 유명했다던데, 부시가 양반이네요.

2021-01-17 02:14:10

대단합니다. 아무리 부당하고, 차별적이지만 조용히 지나갈수 있는 일을 끝까지 맞서서 결실을 맺었다는것은 쉽지 않은일이었겠죠. 저런 코마레츠 사례처럼 역사속에는 조용히 힘겨운 싸움을 통해 오늘날 인권과 자유,평등을 일궈낸 수많은 사례가 많겠죠. 그렇지 않으면 현재의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는거니까요.

2021-01-17 22:25:33

교수님의 글은 제 폰 속 도서관입니다
항상 시간날때마다 책 꺼내서 독서하는 마음으로 베일리님의 글을 하나씩 꺼내서 보거든요

항상 감사드리며 올 한해도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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