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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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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12-01 04:17:05

 예전에 어떤 분이 올리신,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던 때가 언제였냐" 는 설문에 답글로 지금이라고 답햇던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게 항상 지금이었던 것 같다구요. 지금까지 나름대로 항상 잘해오긴 했는데, 실제로야 어떻건 간에 제가 느끼기에는, 항상 지금 단계에서 더 잘해서 다음 단계로 성공적으로 나아가지 못하면 지금까지 해놓은건 다 별 소용이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가장 중요한건 항상 지금이었다는 생각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지만 그래도 가장 우울했던, 힘들었던 시기는 몇개 콕 찝을 수 있는데요. 어렸을 때 크게 아팠었기 때문에 그 때가 한번이 될거고, 박사 졸업 준비하다가 엎어지던 2018년 말 - 2019년 초가 또 한번이 될겁니다. 사실 그전에는 그냥 되는대로 막 살아도 다 그럭저럭 살아졌거든요. 근데 저 때는.. 에.. 그냥 하는말로 죽고싶다가 아니라, 정말로 집 베란다를 보면 저기서 뛰어내리면 그냥 죽고 끝날텐데 왜 이러고 있나 라는 생각을 몇번을 했는지 모릅니다. 저기서 뛰어내려서 죽으면 다 끝난다는 생각이 든 순간 어떤 안도감같은걸 느꼈었다고 할까요. 아마 결혼안했으면 진짜 그냥 죽었을거에요. 저는 지독하게 현실적인 사람이라서, 내가 죽으면 적어도 나는 아예 끝나는데 다른게 뭐가 어떻게 되던 뭔상관이냐는 생각을 하거든요. 내가 없어지니까요. 와이프를 제 자아만큼 생각해서, 내가 지금 죽으면 와이프가 너무 힘들테니까 안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더라면 진짜 아마 한번쯤 뭘 해도 했을거에요. 

 

 도대체 뭐때문에 그렇게 힘들었느냐.. 이건 지금와서 생각해보니까 이유가 더 명확해졌는데, 그냥 내가 나에게 만족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 잘난 맛에 사는 사람이에요. 나는 모든게 완벽해야한다 이런건 아니지만, 여튼 내가 스스로 정한 어떤 바운더리 안에서는 무조건 내가 보기에 아주 뛰어나야 하고 그런것만 보여줘야 합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모자라면 일단 공개를 안하고 머리싸매고 해서 퀄리티는 높이건 깔끔하게 없는셈 치건 해야해요. 이건 일할 때는 물론이고, 하다못해 매니아에 글을 하나 쓸 때도 그렇습니다. 질문글이 아닌 이상 누가봐도 뛰어나다고 할만한 글이어야 하고, 심지어 질문글을 쓸 때도 최소한 내가 이만큼 알아봤다 생각해봤다 는 티는 나야 합니다. 사실 이 글도 그래요. 별것 없는 넋두리인데, 이 넋두리마저도 누가 봐도 글 잘 썼다 는 생각이 들게 쓸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쓰는겁니다. 실제로 어떻건 간에 제가 보기에는요. 

 

 성격이 이렇고, 나름대로 능력도 어느정도 있다보니 지금까지는 일적인 측면에서 나름대로 뛰어난 결과물을 내고 남들에게도 스스로에게도 인정받으면서 살아왔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점점 다음 단계로 나갈수록, 나 혼자 머리싸매고 해서는 잘 안되는 일들이 생겨납니다. 말그대로 일의 난이도가 너무 높아서던, 운이 안좋아서던, 하는 일이 너무 많아져서 실수가 잦아지는 것이건 간에, 여튼 혼자 백날 해봐야 스스로 만족할만큼의 결과물이 안나오는 경우가 생겨요. 매니아에 글쓰는게 이렇게 되면 그냥 안쓰면 그만인데, 일은 그렇다고 안할수는 없으니 혼자 끙끙대는거죠. 

 

 그리고 어느 임계점을 넘어가면 악순환에 빠집니다. 사실 처음에 나온 결과물도 그닥 나쁘진 않아서, 이 시간에 이만큼 했다고 하면 충분히 괜찮은 수준이었거든요. 근데 그냥 내가 스스로 만족스럽지가 않아서 그만큼의 시간을 더 쓰는데 결과물은 그만큼 더 나아지지가 않는거에요. 시간대비 절반.. 아니 어떤 때는 진척이 있기라도 하면 다행입니다. 그러면 제가 보기에 첫 결과물보다 못한 결과물이 되요. 남한테 지금 이거 보여주면 "이 시간이 지났는데 이것밖에 못했어?" 할 것 같습니다. 그럼 시간을 더 쓰고.. 시간대비 진척은 더 없고... 결국 뭐가 터져도 터지는거죠. 제 멘탈이 터지던, 보스가 터지던. 

 

 저한테 2020년은, 제가 이런 사람이고 이게 아주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는걸 깨닳은 해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깨닳은건 대충 프랑스에서 코로나 터지고 갇혀있던 올 봄.. 정도였어요. 제가 봐도 일이 미친듯이 진척이 안됐거든요. 보스도 눈치를 챘는지 여러가지로 신경도 써주고, 미팅도 일주일에 한번씩 zoom 통해서 하기로 했어요. 결과물이 좀 정리가 안됐더라도 slack 에 계속 올려달라고 얘기하기도 했구요. 좋은 사람이죠. 그리고 한국에서 여름 보내고 다시 9월에 프랑스 복귀했을 때, 정말 바뀌어야겠다 생각하면서 일부러 좀 멍청해보일 것 같아도 질문도 많이 하고, 상관없는 주제 연구하는 친구한테도 연구얘기 하고 그랬어요. 결과 공유도 더 많이 했구요. 그러니까 스스로 이 성격도 좀 내려놓게 되기도 하고 실제로 진척도 훨씬 잘 되더라구요. 그래 이렇게 잘 해봐야겠다 싶었죠. 

 

 근데 11월 초에 프랑스에 코로나바이러스 2차 웨이브가 오면서 출근을 못하게 되어서 다시 한국에 왔어요. 사실 제가 생각해도 냉정하게 보면 핑계같지만, 옆 오피스에 있는 보스한테 랩탑 들고가서 얘기하는거랑 zoom 으로 얘기하는거랑은 또 느낌이 다르더라구요. 아니 어쩌면 그냥 또 나이브하게 생각해버린 것 같기도 해요. 여튼 다시 롤백이 됐고, 제 멘탈은 한 1,2주 전쯤 터졌고, 제 멘탈이 터질 때 쯤 되니 보스도 터졌습니다. 터졌다는게 뭐 저한테 화를 내고 그런건 아니긴 한데, 여튼 인내심이 바닥나서 대놓고 말을 한거죠. 제발 니가 보기에 완벽하지 않아도, 뭐라도 공유를 해달라. 일 진척이 너무 느리다. 이대로면 저번처럼 또 쉽게 고칠 수 있었던 실수 때문에 일이 늦어진다. 

 

 나름 personal 한, 장문의 이메일이었고 그래서 저도 다 내려놓고 이야기했습니다. 먼저 이야기를 꺼내줘서 고맙고 미안하다. 내가 보기에도 나한텐 이런이런 문제가 있고, 내가 보기에 완벽하지 않은걸 share 했다가 그걸 베이스로 내가 평가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다. 그리고 이게 일을 더 안좋게 만든다는걸 알고 있는데도, 여전히 고치기가 힘들다. 사실 상담사를 찾아볼 생각이다. 니 말대로 최대한 내가 보기에 완벽하지 않더라도 자주자주 결과물을 공유하려고 노력하겠다. 미팅도 스케쥴이 허락한다면 지금보다 더 늘려보자. 

 

 지금 계약은 내년 9월까지입니다. 아니 정확히는 3월까진데, 이건 funding source 가 바뀌어야 해서 계약을 쪼개놓은 것 뿐이라서요. 여튼, 연말 휴가 빼도 9개월의 시간이 남았지만.. 아마 극적인 반전같은건 기대하기 어려울겁니다. 일적으로 보면 지금 하는 프로젝트를 어쨋든 마무리 하는 것, 개인적으로 보면 이런 내 단점을 알았으니 내려놓기를 체득하는 것.. 정도가 아마 남은 기간에 기대할 수 있는 최대한의 목표일거에요. 나름대로 정신들고 나서 지금까지, 평생을 살면서 교수가 되는걸 목표로 해왔던 일이지만 아마 내년 9월을 마지막으로 그 꿈은 접게 될 것 같구요. 완전히 다른 분야에서 다른 일을 하게 될텐데 올해에 얻은 깨닳음들이 저를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었기를 바라야 겠습니다. 사실 이 꿈을 접게 되었다는 점만 빼면 꽤 얻은게 많은 해였기도 하구요. 나름 프랑스에서 살아보고,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그 사람들과 함께 하는 좋은 취미들도 많이 생겼습니다. 생각도 더 많이 하게 됐구요.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많은 분들이 힘드실거고, 사실 냉정하게 보면 이런 제 상황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게 힘드신 분들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제 서서히 끝이 보이니까요. 다들 힘내시고, 이렇게 힘든 와중에도 무엇이 됐던, 건질 것이 있는 한해로 마무리하시길 바라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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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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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12-01 04:39:03

글쓴분이 완벽주의 성향을 갖고 있어 그렇다기 보다는 타인에게 보여지는 자기의 모습을 너무나도 크게 신경쓰고 있는게 아닐까요?
자존감을 높여주는게 우선이 아닐지요. 잘난맛에 사는 성향과 글쓴분의 성향은 전혀 일치하지 않는것 같네요.

WR
2020-12-01 04:37:34

 네 맞아요. 완벽주의랑은 거리가 좀 있습니다. 제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바는.. 내 성과로 내 모든게 평가되고 내 가치가 결정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평소에 저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그 자존감은 전부 제 성과에 기대고 있는 것들이었던거죠. 

1
Updated at 2020-12-01 05:20:38

이게 지금 농구에 빗대자면 나는 내가 분명 올스타급 주전멤버라고 생각하지만 팀에선 나를 벤치플레이어로 판단 할것 같으니 나는 내 실력을 최대한 공개하지 않겠다와 비슷한 느낌아닌지요. 그래도 꾸준히 슈팅던지는 모습과 개선되는 모습을 보여줘야지 슛 최대한 아끼고 야투율 100% 찍어서 인정 받겠다는건 너무 본인과 팀을 지치게 하는 일 아닐까 싶어요. nba에서도 첫해부터 올스타 넘나드는 선수들이 흔한건 아니듯이요. 루키에게 베테랑급의 BQ를 기대하는 관리자는 없어요. 루키는 좌충우돌 하며 습득하고 차근히 올라서는 위치죠. 충분히 여유를 가지셔도돼요. 루키니까요.

WR
2020-12-01 04:53:37

 맞는 비유 같아요. 사실 그냥 뛰면 주전은 될텐데 내 욕심은 올스타고, 혹시 보여줬다가 안들어가면 후보가 될까봐 안던지고 있는거죠.. 그게 계속되다보니 올스타나 주전은 커녕 후보도 못되는거구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팀도 저도 지쳐서 뻗기 직전인데 그래도 이제부터라도 던져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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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01 06:20:04

개인적으로 매니징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 가장 답답한 부분 중에 하나가 업데이트가 없는 부분입니다. 말씀하신대로 더 좋은 결과로 발표하시려고 하는 마음은 이해는 되나 이게 굉장히 위험성이 큽니다. 만약 몇 주의 시간을 벌어서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오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경우에 관리자로서 지금까지 뭐했나 하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거든요. 그리고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파악하기 위해 세부적인 것을 물어보며 파악해 가는데 그 과정에서 방향을 아예 잘못 잡고 있거나 본문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쉽게 고칠 수 있는 부분인데 공유가 되지 않아 피드백 없이 시간을 끈 경우면 더더욱 답답하게 느껴지게 되죠. 아마 매 주간 줌 미팅을 진행하고 진행 상황에 대해서 슬랙으로 자주 업데이트 해달라고 하는 것도 이런 것과 관련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실패한 경험을 공유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매니저 입장에서도 일을 진행할때 수 많은 변수들이 있는데 이 중에서 어떤 것들은 잘 되고 어떤 것들은 잘 안되는지 이런 실패한 경험에 의해서 파악이 되니까요. 일을 할때 지속적으로 놀라운 좋은 결과들을 가져오는 직원이 가장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주기적으로 계속 업데이트해주면서 상황 설명을 해주는 직원이 대부분 평균 이상은 간다고 생각합니다. 피드백을 줘도 반영을 못하는 경우가 가장 일하기 힘들구요. 세상 일이라는게 항상 우리의 뜻대로 풀리지 않는게 부지기수니 마음의 짐을 약간 내려놓으시고 일을 진행하시면 레드님 본인에게도 같이 일하는 팀에게도 더 긍정적인 방향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WR
2020-12-01 06:26:58

 하시는 말씀 구구절절이 공감합니다. 사실 저도 누군가에게는 매니져일 때가 있는데, 다른것보다 가장 답답한게 아무 말이 없다가 나중에 와서 얼척이 없는걸로 혼자 끙끙대고 있을 때거든요. 그걸 잘 아는데도 제가 스스로 행동으로 옮기기는 참 어렵네요. 이제 그래도 알기는 했으니 어떻게든 해보려고 더 노력해야죠. 

2
2020-12-01 06:24:45

저는 업계가 업계다보니 주고객들이 유럽사람들이고 미국에 있으니 미국의 백인들이랑 일을 많이 하게 되는데 이 사람들이랑 우리랑은 정말 문화랑 생각하는 방법이 다른 것 같습니다. ROOKIE_RED님의 결과물이나 능력에 대해서는 제가 당연히 평가 할 수가 없는데, 보스가 말한 것과 제 경험을 같이 유추해서 감히 한 말씀 드려보겠습니다. 이게 동서양의 장단점을 평가하고 뭐가 낫다고 이야기 하려는게 아닙니다. 단지 차이에서 오는 갈등이나 오해를 없애고 궁극적으로 ROOKIE_RED 님께서 일하는데 스트레스를 좀 줄일 수 있을까해서요.

 

어쨋든 동양에 있는 나라들의 문화에서는 - 특히 한국과 일본 - 겸손이 미덕인게 많고 굳이 남에게 티를 내거나 말을 하지 않아도 어쨋든 결과물을 내고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만사가 괜찮다는 생각들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주입식 교육도 많고 아무래도 토론문화가 잘 발달되어있지 않죠. 서양은 좀 다르죠. 물론 이 사람들 자기가 약한 모습 보여주기 싫어하고 말로만 하는 경우도 많긴 하지만 투명하게 하고 필요 할때는 말을 하는것을 조아합니다. 보스가 뛰어나건 어쩌건 간에 어쨋든 같이 일하는 사람이고 나보다 위에 있는 사람이니 과정을 투명하게 공유하고 무엇보다 질문도 많이하고 조언도 얻고 하는게 중요합니다. 보스가 말한대로 일이 잘 될때는 별로 문제가 없으나 일이 잘 안 될 때는 필요 이상으로 늦어지거나 문제가 커지기도 하죠. 더 일찍 발견 할수도 있던 것을요. 아마 그런걸 지적한게 아닐까 합니다.  저도 최근에 업계 탑이자 전세계에서 가장 핫한 기업 중 하나와 면접을 봤는데, 그 중에 한명이 엔지니어이면서 기술쪽에서 경험이 굉장히 많은 사람이라 저는 긴장했었습니다. 당연히 기술적인거 많이 물어볼 줄 알구요. 하지만 그런 질문은 거의 하지 않았고 저에게도 똑똑한 것도 중요하지만 커뮤니케이션을 더 잘하는 것을 자기는 중요시 한다고 하더라구요. 모르면 물어보고, 문제가 있으면 혼자가 아니라 주위의 팀원들과 같이 이야기 하며 해결책을 끌어내야 한다 하더라구요.

 

제가 도움이 될만한 댓글을 달았는지 모르겠네요. 사실 성향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여유를 가지시고 도움도 구하고 무엇보다 혼자보다는 여럿이 일하는 것에서 즐거움과 장점도 찾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화이팅!

WR
2020-12-01 06:31:38

 본문에도 상담 받아보려고 한다고 썼지만 사실 이렇게 글 쓰고 댓글 받고 대댓글 달고 하는것도 다 일종의 상담이라고 생각하면서 하고 있습니다. 다 도움이 됩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저도 유럽가서 가장 크게 느낀 점 중 하나가 그런 점이에요. 말씀대로 우리나라 문화가 그런 면도 있는데다가 제 성격도 이러니.. 그런게 차이가 정말 크게 느껴지더라구요. 특히 한국 학계는 정말정말x1000 폐쇄적이고 경직되어있거든요. 어떤 면에서는 저렇게 다 까놓고 이야기하는게 거리낌 없다는 저게 그냥 프랑스 애들이 팽팽 노는 것 같아도 우리나라보다 학계에서 성과가 더 잘 나오는 이유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아마 그만두게 될 것 같기는 한데, 여튼 이런걸 배운 것만으로도 프랑스 가서 한 2년 굴러본게 가치는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2020-12-01 07:21:05

문장이 무척 정갈합니다. 아마 성격도 그러신 분이실테죠.

제가 보기엔 벽을 만나신 것 같습니다.

외적으로 보이는 건 허상이고, 실은 내적인 문제가 아닐지... 생각이 듭니다.

 

요는 지금의 내가 마음에 안 들고,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은데 그것이 잘 안 되어 안달하고 초조하신 상태신 것 같습니다.

 

선생님 업계는 제가 감히 잘 모릅니다만, 일적인 벽에 부딪혀서 괴로워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럴 땐 업계에서 이름 있는 사람이나 다섯손가락 안에 들 만한 실력자에게 조언을 구하거나, 계속 매일 하던 노력을 지속하면 됩니다. 

 

 기본적인 것이 더 좋습니다. 계속 일어나던 시간에 일어나거나, 출근하기 전에 아내 이마에 입을 맞추거나, 평소 루틴을 지키는 것이 소중합니다.

 

너무 애쓰지 마세요.

그것이 되겠냐만은... 그래도 자신을 못살게 굴지는 마시고, 아끼는 선수를 케어해주는 감독처럼 자신을 관리해주세요. 자신을 왜 괴롭힙니까? 보니까 애썼고 노력했고 잘하시는 것 같은데. 남이 볼 때는.  

WR
2020-12-01 15:30:41

 말씀 감사합니다. 제가 좀 되는대로 사는 편인데.. 루틴을 만들고 그걸 지키는 것 자체에 가치를 두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지 싶습니다. 성과야 어떻게 나오던 간에 거기에 가치를 두고 쭉 하다보면 결과적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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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01 09:14:43

글을 보면서 이렇게 공감이 간 적은 처음인 것 같네요. 저 역시 정확히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완벽주의성향이라기 보다는 타인의 평가 혹은 평판에 지나치게 민감한게 스스로도 참 싫어지더라구요. 물론 이러한 성격이 제 자신을 채찍질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음은 부인할 수 없으나, 거대한 벽을 만나면 지레 겁먹고(이 벽을 넘어서지 못했을때 능력없는 사람으로 보일까봐) 먼저 멘붕에 빠져버리기도 합니다.
저도 이 성격을 극복하고자 노력 중인데, 비슷한 동지분 만났다는 생각에 반가워서 댓글 남기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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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01 09:50:27

글쓴분이나 노내님이나 지적이나 인격적으로도 훌륭한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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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01 10:03:26

말씀 감사합니다! 어빙님도 정말 멋진 분이세요

WR
1
2020-12-01 15:37:55

 반갑습니다^^ Enneagram 이라는 성격검사를 해보면 저는 type3 (Achiever) 로 나오더라구요. 아마 노내님도 비슷하실 것 같은데.. 리포트에 보면 사람은 HumanBEING 이지 HumanDOING 이 아니니 니가 하는 일이 아니라 너 자체에 가치를 두라고 합니다. 

 

 모든 성격에는 나름의 장점과 단점이 있을텐데, 성격 자체를 바꾸려고 하기보다는 이러이러한 단점이 있다는걸 깨닫고 그걸 커버하려는 노력을 통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노내님도 저도 단점을 극복하고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020-12-01 16:16:41

좋은말씀 감사합니다. 제가 되려 힘을 얻고 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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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01 10:10:43

여러 업종에서 일하면서, 여러 상사를 겪으면서 공통적으로 느낀 점은.

학문(연구)이 아닌 현업에서 가장 필요시 되는 점은 '정확하고 빠르게'라는 것이고, 차선책은 아이러니 하게도 '조금 덜 정확해도 빠르게' 라는 점이었습니다.

 

그리고 최선, 차선을 가능케 하는 점은 속된 말로는 '눈치가 빠른' 것이고..보다 정확히 말하면 상대방 입장에서 고민하여 나온 결과물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죠. 

 

매니징 레벨이 되면서 위와 같은 점들은 더 크리티컬하게 다가오더라구요.

A를 요청하면 빠르게 A+a를 가져오는 아주 훌륭한 직원도 있지만,

A를 요청했을 때 시기를 놓치고 나서야 겨우 A에 근접한 답을 가져오는 직원보다는,

A를 요청했을 때 얼마 지나지 않아 A'를 가져오면서 맞냐고 확인하는 과정을 반복적으로 거치는 직원에 대한 신뢰도가 높았습니다.

 

냉정하게 A를 요청했을 때 한참이 지난 시간대에 B를 가져오는 직원이 오히려 고맙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습니다. 대체재를 찾을 수 있는 기회를 빠르게 제공한다는 점에서요..

 

아무쪼록 ROOKIE_RED님께서도 본인의 평판을 너무 두려워 하시 마시고 조금은 더 오픈 마인드로 동료와 보스를 대하면 시너지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화이팅하십시오!

 

WR
2020-12-01 15:44:05

 말씀 감사합니다. 당장 없애기는 힘들겠지만 이제 저도 그렇고 보스도 그렇고 이런 부분을 명확히 인지했으니 점점 나아지겠죠.  결국 내려놓는건데, (잘못된 제 방식으로) 잘보이려는 욕심을 버려야 오히려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걸 적어도 머리로는 알았으니 습관화시켜야 할 것 같습니다. 나름대로 정해져있던 삶의 방식을 바꾼다는게 쉽지는 않겠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을 보면 막상 바꾸면 또 그렇게 어렵게 되지는 않기도 하더라구요.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2020-12-01 11:02:54

저도 비슷했던 것 같아요.
인지하진 못했지만 남들보다 못해선 안되고, 잘하는것만 하려하고, 잘났다고 인정받고싶어 날 괴롭히며 살아왔어요.
그러다 제 마음이 벼랑 끝까지 몰리고나서야 그런 모습이 있단걸 자각하고 절 많이 놓아준 것 같습니다. 이제는 마음이 훨씬 더 편안하네요. 전엔 어떻게 견딘건가싶기도해요.
인지하고 변화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신만큼 앞으로 더 많이 나아가실 계기가 될 것이라 생각해요. 화이팅입니다.

WR
2020-12-01 15:44:44

 감사합니다. 저도 이제 막 벼랑 끝까지 몰린 상황인 것 같으니, 뛰어내리지만 않으면 더 나아질 일만 남았다고 생각해야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Updated at 2020-12-01 11:42:37

 1. 학교가 별건가요. 저도 학위 졸업하면서 여기저기 학교 오퍼도 받고 가끔 학교 안간게 후회되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필드로 나오면서 전에 못 보던 것들을 많이 보고 배웠습니다. 문제는 이 깨달음을 나의 공부와 연구로 승화시킬 힘이 있느냐인데... 저는 사실 지금 시점에서는 지쳐서 없는것 같아요. 그래서 다음 직장을 알아보면서 주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시간에 대한 self-management를 어느정도 허용하는지인것 같습니다.

 

2. 완벽주의도 좋고 남한테 보이는 것에 신경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졸업을 하면 제가 A+++급 쩌는 연구자가 되지 않는한 (그리고 그런 연구자들 조차도) 혼자서 연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결국 연구를 혼자 할 수 없다면 불가피한 공동연구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연구참여자들 각자가 원할때 원하는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느냐인것 같아요. 저도 학교에 있을때는 천천~히 피드백을 익혀서 드리는 편이었는데, 졸업 후에는 완전히 스타일이 바뀌었습니다. 일단 데드라인이나 expected return을 정확히 물어보고, 그 안에 최대한의 아웃라인을 먼저 그려서 던져주려고 합니다. 뭐, 그걸 보고 피드백이 좋다 나쁘다 어딜 살려라 그냥 냅둬라 등등의 반응이 나올테니까요.

WR
2020-12-01 15:47:20

감사합니다. 

 

 expected return 을 먼저 물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네요. 데드라인을 정해주니 효율이 좀 더 올라가는 효과도 있을 것 같구요. 저도 이제부터라도 스타일을 완전히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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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01 18:59:52

안녕하세요 평소 루키레드님 글을 읽으면 얼마나 치열하게 살고 계신지 알겠으며, 경제적인 이유로 공부를 못했는데 프랑스에서 대단한 공부를 하신다는게 부러웠습니다

 

세설신어에서는 3대 불행 중 첫번째로 소년등과(출세)를 꼽고 있습니다 교만해져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기도 하지만, 실패를 모르고 올라가다 보면 하나의 실패에 좌절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생에서 포기하지 않는 한 확실한 실패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인생사 새옹지마 이기도 하구요 

 

저도 어릴적 나름 실패를 했습니다. 안되면 인생이 끝날거라 생각했습니다. 정말 죽고싶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제 인생은 끝났다고 생각 했습니다. 그런데 인생이 끝나지도 않았고, 그 일 말고 인생에서 참 중요한 것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에 대한 평가는 수시로 변한다는 것과 많은 사람들이 특별히 나에 대한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략 20년 전입니다. 돌아보건대 데미안에서의 껍질을 깬 순간이었다 합니다.

 

저는 그 실패 후에도 치열하게 살았고, 지금도 그러합니다. 물론 일들의 성공을 원합니다. 다만 실패 그 자체를 두려워 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의 평판 중 '나의 인성에 대한 부분'이 아닌 '나의 능력, 조건'에 대한 부분은 신경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건 너무 쉽게 변하거든요.

 

앞으로도 지금처럼 치열하게 사시되, 지금의 나를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바꿀려고 하지 마시고 지금의 나와 내 인생을 사랑하시면서 살아가시길 바라겠습니다. 이미 충분히 좋은 사람이니 더 좋은 사람이 될려고 너무 안간힘을 쓰지 마세요. 그리고 내가 생각한 대로 뜻한 대로 가지 못하더라도 슬퍼 하되 좌절은 하지 마세요 분명 또다른 길에서 또다른 꿈을 꾸고 행복한 날을 맞이할 겁니다. 제가 실패 후에 지금까지 느낀 바입니다.

 

화이팅 입니다. 덧붙이자면 삶의 발란스가 너무 안맞으면 몸이 힘들어지니 그것도 늘 조심하세요. 이것도 제 경험당입니다.

 

WR
2020-12-02 03:08:00

 말씀 감사드립니다. 저도 즐거운인생님처럼 이번 일을 발판삼아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막 30대 초반을 지나고 있는 나이인데, 사실 조금만 떨어져서 생각해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건데 말이죠. 이제부터가 시작이니 지금까지 배운걸 어떻게 써먹느냐가 중요한거니까요. 

 

 신체적인 건강 부분을 많이 신경쓰지 않는 편인데, 다른 분께서 해주신 조언도 그렇고 몸에도 신경을 많이 써야 겠습니다. 다시 한번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는데... 생면부지의 사람인데도 저를 좋게 봐주시고, 지켜봐주시는 분들이 계시다는게 참 놀랍고.. 위로가 많이 되고 용기가 생깁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2020-12-02 17:24:42

잘 아시겠지만 지금 느끼시는 감정의 근본적인 원인은 본인의 "욕망"이 충족되지 않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ROOKIE_RED님의 욕망이 어떤 것인지 제가 글로 정확하게 표현할 능력은 없습니다만, 두루뭉술하게 말하자면 타인과의 관계 관련된 욕망이 아닐까요? 스스로 만족할만한 결과물도 그것을 보고 평가해 줄 타인이 없다면 그 의미가 퇴색될테니까요.

  

세부적인 내용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결국 내가 원하는 관계를(군림하는 왕이든, 봉사하는 성자든, 존경받는 학자든) 타인과 만들고 싶다라는 욕망은 인간의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내려 놓기"란 식욕이나 성욕같은 본능을 억누르는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너무나 힘든 일이죠. 

 

관계에 대한 "욕망" 자체는 가치 중립적입니다. 맛있는 음식을 보면 먹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 자체가 나쁜건 아니 잖아요? ROOKIE_RED님이 본인의 욕망을 폄하하고 자책하거나 스스로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욕망을 내려 놓으려는 시도도 고결하지만, 저는 먼저 그 욕망도 나의 일부라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려고 노력한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WR
2020-12-04 01:06:09

 말씀 감사합니다. 사실 본문의 내용은.. 말씀하신대로 제가 이렇다는걸 받아들이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 스스로가 잘못된 사람이라거나 하는 식으로 생각하지는 않지만.. 워낙 제가 여기에만 충실하게 살아왔어서, 이대로라면 결국 시간문제일뿐 어떤 일을 하던 결국에 가서는 같은 문제를 맞닥들이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금만 더 떨어져서 다른 기준으로도 제 인생을 평가해보면 제 스스로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지금보다는 좀 더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2020-12-04 12:39:22

어줍은 글 읽어 주시고 답변도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따뜻한 공감보다는 다소 딱딱한 의견 제시만 있는 글이라 좀 걱정도 했었는데, ROOKIE_RED님은 굉장히 이성적이고 논리정연하신 분이신 것 같습니다.


저도 ROOKIE_RED님 나이때에 비슷한 어려움으로 심리상담을 여러번 받았었는데 저에게 도움이 되었던 조언은 "책을 읽어 보세요" 였습니다. 책 속에 신박한 silver bullet이 있어서라기 보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했던 여러 시대의 사람들과 대화하며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서요. 그리고 현실에 함몰되어 있는 생각의 지평을 "행복" "선과 악" "삶과 죽음" 등의 보편적이지만 결코 얕지 않은 주제로 넓히면서 "조금만 더 떨어져서 다른 기준으로" 인생을 바라보는데도 도움이 되고요.


부디 2021년에는 적어도 2020년보다 조금 더 행복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WR
2020-12-04 21:34:03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ㅜ 저는 전공 공부하는데 필요한 책들 말고는 책을 거의 안읽던 사람이었는데, 어쩌다보니 최근에 영화나 문학에 관심있는 친구들을 사귈 기회가 생겼어서 보게 되었습니다. 영화는 그래도 길어야 세시간이면 다 보니까 여러편 보았는데, 문학은 아직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과 <페스트> 밖에 못 읽었네요ㅜ 그래도 말씀대로 작가가 이런 문제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엿볼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goodggame님도 올해보다 더 나은 2021년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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