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아파트 값보다 비싼 국산차가 있었을까요?
1978년에 서울의 시내버스요금은 전 구간이 45원이었고, 택시 기본요금은 200원이었습니다. 1978년 서울의 지하철(1호선) 요금은 50원(기본구간)과 55원으로 구분되었고, 대학등록금 평균이 15만원이던 시절입니다. 1978년 서울의 강남지역은 신사동, 압구정동과 반포를 제외하면 대부분 미개발 상태였지만 1970년대 초 반포주공아파트(구반포아파트)에 이어서 1976년에 압구정동에 현대아파트가 들어서면서 강남시대의 서막이 열린 상태였습니다.
1978년에 새로 분양된 대표적인 강남 아파트는 대치동 은마아파트, 역삼동 개나리아파트, 초기 신반포아파트 그리고 잠실주공 5단지 등입니다. 대치동 은마아파트의 34평형 분양가격은 2300만원이라는 높은 가격이 책정되어서 거의 미분양으로 남아있었는데, 때마침 다가온 2차 석유파동 덕분에 순식간에 분양완료되는 기적을 연출했습니다.
1978년에 한국산 고급자동차의 대명사는 새한자동차의 레코드 로얄이었는데, 바로 그해 새한자동차를 인수한 대우자동차가 로얄 시리즈로 10년간 국산 고급자동차 시장에서 선두를 질주했습니다.
아파트 한 채 값이 넘는 국산자동차의 시초는 1978년 12월에 판매가 시작된 현대자동차의 그라나다입니다. 당시 고급승용차 시장에서 맥을 못추던 현대자동차는 독일 포드의 그라나다를 조립해서 생산함으로써 국내 고급차 시장을 흔들고자 했습니다. 최고출력 102마력의 2.0리터 6기통 엔진과 더불어 당시 최신장비들을 갖춘 그라나다 기본형 모델의 출고가격은 무려 1,154만원이었습니다. 그 해에 분양된 역삼동 개나리아파트 소형평수보다 높은 가격입니다. 사람들은 기본가격 천만원이 넘는 국산차의 등장에 경악했습니다.
은마아파트가 2차 석유파동으로 기사회생한 것과 정 반대로 대형차 시장은 2차 석유파동이 일어나며 유가가 급등하고 경기가 침체에 빠지자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그라나다는 1985년까지 생산되고 단종될 때까지 국내에서 약 5천대가 팔렸습니다. 1985년 모델의 판매가격은 2천만원이었습니다.
1985년 이후 그라나다가 단종된 이유는 독일포드에서 그 차를 더이상 만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포드와 이별한 현대자동차는 일본의 미쓰비시 자동차와 손을 잡고 1986년에 새로운 최고급 승용차를 선보였습니다. 이듬해인 1987년에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수입차 개방이 예정되었기에 현대자동차는 새로운 최고급 승용차에 명운을 걸고 올인했습니다. 후륜구동 방식이었던 그라나다, 대우 로얄 시리즈와 달리 전륜구동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현대자동차는 새 차의 이름을 그렌저로 지었고, 120마력의 2.0리터 4기통 엔진을 장착한 그렌저의 1986년 판매가격은 85 그라나다보다 3백만원이 낮은 1690만원으로 책정했습니다. 현대자동차가 선보인 신형 그렌저의 최초 광고카피는 아주 황당한 문구로 시작되었습니다. 자신들이 얼마 전까지 팔던 최고급 차를 깎아내리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라나다를 훨씬 능가하는 대형 고급승용차입니다." 현대자동차가 당시에 얼마나 절실했는지를 말해주는 문구입니다.
1986년 당시 국내 최고급 승용차는 대우자동차의 로얄살롱 슈퍼였는데, 그렌저가 등장하자 로얄살롱 슈퍼 따위는 전혀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렌저는 88올림픽 때 귀빈 및 의전용 차량으로 사용되면서 최고급차의 확고한 지위를 얻었습니다.
고급차 시장에서 독보적이던 대우자동차는 1986년 그렌저의 등장으로 최고급승용차 시장의 왕좌를 빼앗긴 후 88년에 (소나타에서) 이름을 바꾼 현대 쏘나타가 대우 로얄의 시장을 잠식하자 회사의 입지가 크게 흔들렸습니다. 대우자동차는 1989년 3월에 현대 그렌저를 훨씬 능가하는 플래그쉽 후륜구동 대형 승용차를 선보임으로써 최고급승용차의 왕관 탈환을 노렸습니다. 184마력의 직렬 6기통의 3.0리터 엔진을 장착한 대우 임페리얼은 기본형의 판매가격이 라이벌인 그렌저보다 훨씬 높은 2700만원으로 책정되었습니다. 하지만 임페리얼은 철저한 실패작이 되어버렸고, 그 때부터 대우자동차의 본격적인 흑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임페리얼은 1993년에 판매부진으로 단종되었습니다. 1992년에 등장한 뉴 그렌저는 실날같이 명맥을 유지하던 임페리얼을 숨통을 끊어버렸습니다. 1992년 뉴 그렌저의 최상위 모델은 225마력의 6기통 3.5리터 엔진을 장착한 모델로 옵션제외 판매가격이 무려 4150만원이었습니다. 1992 뉴 그렌저 3500은 서울 아파트 한채갑이라고 불리던 마지막 국산차일 것입니다.
그런데 1992년에 이미 서울의 아파트값은 엄청나가 올라 있던 상태여서 평균 평당가격이 500만원에 육박했습니다. 그 해에 삼풍아파트와 아시아선수촌 아파트는 최초로 평당 1천만원을 돌파한 아파트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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