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우리들을 기만하지 마세요.
제가 아래에 링크한 영상은 젊은이들보다 나이든 분들을 더욱 안타깝게 합니다. 나이드신 어머니들이 이 영상에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몇차례 경험했습니다. 물론 자연의 섭리일 뿐 도덕적으로 비난할 일은 아닙니다.
https://youtu.be/CbcJZoYwhgM
뻐꾸기는 암수 모두 단독생활을 하며 스스로 둥지를 틀지 않고 작은 새의 둥지에 알을 낳습니다. 한국의 뻐꾸기들은 뱁새라고 불리는 붉은머리 오목눈이의 둥지를 주로 이용합니다. 뻐꾸기는 오래 망을 보다가 뱁새 부부가 둥지를 비운 틈을 타 얼른 둥지 속으로 날아들어 알을 낳는데, 몸을 흔들어 알을 낳는 데는 10초도 걸리지 않습니다. 뻐꾸기가 거기에 하나의 알을 낳고, 숫자를 맞추기 위해 뱁새의 알 하나를 물고 나옵니다. 뱁새 부부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면 알을 돌보지 않거나 치워버리기에, 어미 뻐꾸기는 둥지 속 뱁새의 알들을 모두 제거하는 일을 알에서 깨어날 새끼 뻐꾸기에 맡기고 또 알을 낳기 위해 다른 뱁새의 둥지를 찾아갑니다.
신기하게도 뻐꾸기가 뒤늦게 낳은 알은 뱁새의 알들보다 일찍 깨어납니다. 알에서 깨어난 뻐꾸기 새끼는 눈도 뜨지 못한 상태이지만 헤라클레스 같은 힘을 발휘해서 마치 등짐을 지듯이 뱁새의 알을 등에 얹어 하나씩 둥지 밖으로 밀어 떨어뜨립니다. 뻐꾸기 새끼의 등 구조는 사람의 손처럼 물건을 올려놓기 알맞은 형태입니다. 둥지가 너무 깊어 알들을 밀어내지 못하는 경우에는 뱁새의 새끼들이 알에서 깨어났을 때, 시간을 두고 하나씩 둥지 밖으로 밀어 떨어뜨립니다.
뻐꾸기는 뱁새에 비해 몸집이 너무 크고 식성이 좋아서 뱁새 부부가 노예처럼 일해서 먹이를 가져다줘야 온전히 자랄 수 있습니다. 뻐꾸기 새끼는 먹이를 더 얻어먹기 위해 신경질적으로 크게 울며 어미새를 재촉합니다. 실제로 뻐꾸기 새끼 한 마리 울음의 진동은 다섯 마리 이상의 뱁새 새끼들이 함께 울 때에 나는 진동과 유사할 정도로 급하고 크게 울립니다. 어미새의 먹이를 받아먹는 순간에도 있는 힘을 다해 둥지에 있는 뱁새 새끼들을 밖으로 밀어내는데, 어미새는 뻐꾸기 새끼에게 먹이를 주기에 바빠서 자신의 새끼들이 둥지 밖으로 밀려 죽는 것에 속수무책입니다.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뱁새 부부는 사람이 도저히 이르지 못할 경지인 ‘원수를 사랑하는 일’을 해내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자발적으로 원수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속아서 그렇게 된 것이지만요.
뱁새 새끼들의 생명을 빼앗고 둥지를 점령한 뻐꾸기 새끼는 엄청난 속도로 자라 알에서 깬 뒤 보름쯤 지나면 벌써 뱁새 어미보다 3배나 커지며, 완전히 숨넘어갈 소리를 내며 먹이를 조르기 때문에 뱁새 부부는 하루에 열다섯 시간씩 먹이를 잡아다 뻐꾸기에 가져다주느라 녹초가 됩니다. 뻐꾸기 새끼는 자신들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지만 자신의 둥지에서 태어난 것은 전부 자신의 새끼로 여기도록 진화했기 때문에 아무 의심도 하지 않고 뻐꾸기에게 먹이를 물어다 줍니다. 뻐꾸기 새끼는 알에서 깨어나고 3주 동안 먹이를 어미로부터 받아먹은 후 둥지를 떠납니다. 그리고 둥지를 떠난 뒤에도 7~10일 동안은 뱁새 어미로부터 먹이를 받아먹습니다.
https://youtu.be/GKH-cL2wXdI
한국의 뱁새들이 모두 바보처럼 뻐꾸기에게 당하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약 70~80%의 경우는 뱁새들이 크기와 모양이 다른 뻐꾸기 알을 자기 알에서 구별해내어 쪼아서 깨버립니다. 하지만 20~30% 정도는 구별에 실패해서 자신의 새끼들의 살해자를 자기 새끼로 알고 계속 정성으로 보살핍니다. 만일 뱁새들이 알을 100% 가려내 제거해 버린다면 뻐꾸기는 다른 새를 찾아내 알을 낳을 것입니다. 언제부터 뻐꾸기 등의 새들이 그런 행동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학자들에 따르면 이 새들의 산란시기에 숲에 큰 산불 등이 일어나서 둥지가 타거나 훼손되어서 부득이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기 시작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어미 뻐꾸기의 전격 알 낳기 작전과 아기 뻐꾸기의 밀어내기 전략은 진화가 낳은 치밀한 역사적 프로그램인 것입니다.
사람들도 은유적으로 말하면 각자 자신의 알을 품고 살아갑니다. 그 알들을 계속 품고 있으면 언젠가는 깨고 나와 나에게 기쁨을 주거나 이득을 제공하리라 기대합니다. 어떤 때는 끼니를 건너뛰고 밤을 새우면서 돈과 시간과 노력을 투자합니다. 하지만 막상 알을 깨고 나온 것을 보니 지금까지 품었던 알이 내 알이 아니라 원수의 알이었다면 얼마나 허망한 일일까요? 그나마 늦게라도 알게 되면 다행이지만 끝까지 그 사실을 모르고 계속 먹이를 물어다 준다면 이만한 비극도 없을 것입니다.
인간사회에서는 교묘하게 위장된 뻐꾸기 알을 자기 알처럼 품고 사는 사람들이 더욱 많습니다. 그만큼 자신에게 필요한 것들을 타인들이 채워주도록 조작하며, 타인들이 그 길을 가는 것이 스스로에게 이득인 것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재주를 가진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사이비 종교의 교주처럼 교묘하게 신도들의 둥지에 자신의 알을 낳아놓고, 그 알을 열심히 품고 있으면 세상의 종말이 왔을 때 구원을 받는다고 속임으로써 그들의 삶을 파괴하고 자신의 배를 불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감탄고토(甘呑苦吐)라는 사자성어가 있는데, 흔히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고 해석되는 이 문장에는 ‘인간은 누구나 자기 입맛에 맞는 견해를 받아들이고 싶어한다’는 전제가 깔려있습니다. 바야흐로 지금은 소식 전달의 측면에서 뉴스의 생산보다는 유통이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시대로 변했습니다. 과거에는 뉴스의 생산자가 누구인지가 중요했고, 이들 생산자가 뉴스의 진실성과 신뢰성에 대한 책임을 졌습니다. 그런데 현대의 뉴스 소비는 개개인이 자신들이 원하는 정보를 원하는 플랫폼을 통해서 소비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생산자가 누구인지가 크게 중요하지 않고, 누구인지를 알기도 쉽지 않습니다. 이런 시대에 각종 뉴스에 노출된 일부 또는 다수의 수용자는 ‘선택적 반응’을 함으로써 자신의 의견과 다른 내용은 배척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뻐꾸기가 그들의 둥지에 알을 쉽게 낳기 위한 조건을 만들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뻐꾸기 알처럼 수용자들을 서서히 망가뜨리는 사이비뉴스들은 진실에 대한 전달이 아니라 왜곡과 과장을 통해 특정의 인물이나 조직의 가치를 훼손하려는 고의적인 목적이나 금전적인 목적으로 제작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뱁새가 뻐꾸기 알을 판별하는 것이 어려운 것처럼 사이비뉴스는 정상적인 기사의 모양을 취함으로써 형식적 측면에서 진실을 전달하는 뉴스와 매우 유사하여 이미 편견에 사로잡힌 소비자가 그곳에서 헤어날 수 없게 만들고 있습니다.
뱁새들이 둥지에 있는 자신의 알의 개수에 민감하고, 70~80%의 경우 크기와 모양이 다른 뻐꾸기 알을 구분해 내듯이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거짓과 진실을 판단할 수 있는 깨어있는 시민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각종 의심과 회의를 품습니다. “혹시 나는 지금 뻐꾸기 알을 품고 있지는 않은가? 내 삶의 둥지에 나 몰래 누군가가 자기 알을 갖다 놓지는 않았는가?” 우리가 뻐꾸기 알을 열심히 품어줄수록 알에서 태어난 뻐꾸기는 은혜를 원수로 갚기 때문에, 뻐꾸기 알이 발견된다면 우리는 가차 없이 둥지 밖으로 밀쳐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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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다 보니 저도 뻐꾸기의 알을 품고 있진 않은지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