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기] 놓치기 아쉬운 앨범들
01. Butcher Brown - #KingButch (Funk, Jazz)
버지니아 재즈 신의 터줏대감인 부처 브라운은 카마시 워싱턴, 크리스천 스콧 등과 함께 모던 재즈의 현재라고 호명되는 밴드다. 밴드에는 버디 리치의 현란하고 압도적인 연주를 좋아하는 드러머가 있고, 자유분방한 박자에 래핑을 즐기는 MC가 있고, 허비 행콕이 자신의 슈퍼맨이라는 키보디스트가 있으며, 이들 모두는 이 시대의 웨더 리포트가 되고 싶어 음악을 한다. (초현실적인 앨범 커버 자체가 <Heavy Weather>의 아트워크를 맡았던 Lou Beach의 작품이다) 이들의 신보 <#KingButch>는 시대를 역행한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아날로그 방식에 의해서 녹음됐다. 이것은 디 안젤로와 뱅가드의 강박증이라기보다 아트 블레키와 재즈 메신저스의 팀워크에 가깝고, 이 잡종의 재즈 펑크 패키지는 설산 위에 핀 복수초처럼 자생력을 잃어버린 재즈에 한 가닥 새싹을 틔운다.
02. Fleet Foxes - Shore (Indie Folk)
플릿 폭시스의 앨범 커버는 언제나 콘셉트의 청사진이었다. 잔잔하게 조수가 밀려오는 갯벌 위로 한 줄기 햇살이 드리운다. 감미롭고 부드러운 음악 또한 취향을 불문하고 누구나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취향을 커버하는 음악의 성질과는 상반되게도 가사는 그 어느 때보다 밴드 리더인 로빈 펙놀드의 개인사로 채워져 있다. 가장 개인적인 영감을 통해 불특정 다수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 로빈은 이것이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자신들의 작법이라고 설명한다. 특히 리처드 스위프트, 존 프라인, 빌 위더스 등 자신에게 중대한 영향을 끼친 아티스트들을 죽 나열하며 그들을 추억하는 Sunblind는 그 자체로 잔잔한 조수처럼 우리 마음속으로 밀려든다. 바야흐로 플릿 폭시스의 계절이다.
03. Idris Ackamoor & The Pyramids - Shaman! (Jazz, Funk, Afrobeat)
캘리포니아 출신의 색소포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이드리스 아카무어가 고희를 맞이했다. 이 스피리추얼 재즈의 거두는 이제는 역사가 된 자신의 밴드를 소집해 다시금 우리의 영성을 고양시킨다. 이드리스와 피라미드의 새 앨범 <Shaman!>은 영화 같은 러닝타임을 갖고 있고, 전자음향은 최대한 배제됐으며, 모든 레코딩이 최소한의 오버더빙으로 진행됐다. 이처럼 우람한 규모는 흡사 카마시 워싱턴의 대작들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최소 100명 단위의 참여진을 자랑하는 워싱턴의 크레디트와 <Shaman!>의 단출한 캐스트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다. 그럼에도 이 왜소함이 오히려 이들의 내공을 증명해줄는지 모른다. 반세기의 세월이 흘렀건만 이 위대한 밴드는 여전히 우리의 깊은 내면이 맞닥뜨린 문제들을 근면하게 조명한다.
04. Lianne La Havas - Lianne La Havas (R&B)
05. Liv.E - Couldn't Wait to Tell You... (Neo Soul)
06. Sufjan Stevens - The Ascension (Indietronica, Art Pop)
07. Sweeping Promises - Hunger for a Way Out (New Wave)
보스턴의 포스트 펑크 듀오인 스위핑 프로미스의 데뷔 앨범 <Hunger for a Way Out>은 콘크리트 벽돌로 둘러싸인 스튜디오에서 1대의 마이크를 통해 녹음됐다. 콘크리트 스튜디오에서 이들은 머리를 맞댄 채 모든 곡을 작곡하고 편곡하고 마스터링하고, 서프 록, 드림팝, 로파이 디깅은 끊임없이 계속됐다. 이 독특한 제작 환경은 자연스럽게 앨범에 빈티지한 느낌을 이식하고, 데이비드 번이 자신들의 앨범을 위해 구현하려 했던 질감을 너무나 수월하게 획득한다. 6가닥의 현으로 이루어진 효율적인 베이스 기타, 기타 디스토션, 아기자기하고 코믹한 추임새, 그리고 발랄하면서 미묘한 리라 몬달의 보컬까지, 이것은 꺾일 줄 모르는 대나무 장대처럼 100% 순도의 토킹 헤즈 뉴 웨이브다.
08. TENET (Soundtrack)
크리스토퍼 놀런은 넷플릭스 시대에 제일 강경한 영화관의 숭배자 중 한 명이다. 놀란은 유례없는 전염병이 창궐한 가운데서도 극장 개봉을 고수했다. (개봉일마저 지키려고 했다) 덕분에 테넷은 영화 속 등장인물들만큼이나 세계ㅡ영화관 프랜차이즈ㅡ의 명운을 짊어지게 됐다. 재밌게도 이 용감한 결단의 가장 큰 수혜는 감독과 주연배우 대신 음악감독인 루드비히 고란손에게 돌아갔다. 이 영화를 다룬 수천 개의 리뷰에서는 "이 영화는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지만, 무엇무엇은 정말 훌륭했다."라는 문장이 빈번하게 등장하는데, 그 '무엇무엇'은 대체로 음악이었다. 테넷은 연주를 준비 중인 오케스트라가 악기를 조율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조율이 끝난 뒤에 들려오는 것은 오케스트라의 합주가 아니라 고란손의 베이스지만 이 진동은 십중팔구 당신의 안락한 자세를 바꿔놓을 것이다.
09. Yves Jarvis - Sundry Rock Song Stock (Indie Pop, Experimental)
캐나다 인디 팝 뮤지션 이브 자비스는 격리 기간의 대부분을 새 앨범 커버 아트를 그리면서 지냈다고 한다. 잔뜩 일그러진 성인 남성의 놀란 얼굴이 녹색 톤으로 채색돼 있다. 앨범의 전체 분위기는 목가적이고 가사 또한 자급자족 경제에 바탕을 두고 있다. 실제로 자비스는 온타리오 나무 박물관에서 앨범을 녹음했고 대부분의 생활을 실내가 아닌 실외에서 영위했다. 앨범 전반부의 In Every Mountain이나 For Props처럼 어쿠스틱 기타 연주에 덤덤한 보컬이 얹힌 곡들은 자연주의를 내세우는 앨범의 콘셉트를 잘 나타낸다. 분명히 이런 점들은 본 이베어의 저스틴 버논을 떠오르게 한다. 둘의 유일한 차이점은 하나의 작품을 가치 있게 만드는 깜냥인데, 자비스의 현재를 보고 있노라면 크게 걱정할 거리는 아닌 듯하다.
10. GRiZ - Chasing The Golden Hour, Pt. 3 (Electro Soul)
창작자의 제작 의도를 전하며 나의 간소한 추천사를 대신한다. "완벽한 여름밤, 모든 것이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금빛 틴트일 때 당신이 느끼는 근심 없는 분위기를 재현하고 싶었다. 골든아워가 쫓는 것은 마법 같은 순간, 등에 부는 시원한 바람, 음악적인 형태로 달콤한 여름의 허우적거림이다." 이보다 긍정적인 출사표는 본 적이 없다. 느긋한 기타 리프와 그루브 넘치는 색소폰의 하모니를 듣고 있노라면 여름밤의 해변과 시원한 라거 한 잔이 저절로 떠오른다. 가능하다면 마스크를 벗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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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태로 인해 음악적으로 가장 아쉬운 시기가 있다면
바로 올 3분기가 아닐까 합니다.
이 전염병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올여름
프랭크 오션, 켄드릭 라마, 라나 델 레이,
그리고 큐 팁? 의 앨범을 들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아쉬움이 더욱더 짙어지는군요.
시간의 흐름에 무덤한 편이었는데
이런 악재와 1년을 같이 하니
3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조금 야속하기도 합니다.
헛헛한 마음들 좋은 음악으로 달래시길!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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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지난번에 2분기 추천해주신 Medhane 너무 잘 듣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