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딸과 농구공을 가지고 종합운동장에 간 이야기
3~4살의 아이의 학습능력을 보면 그저 경이롭습니다.
언어를 익히고 퍼즐을 맞추고 숫자를 세고... 뽀로로를 보면서 나오는 대사를 똑같이 따라하는 모습을 보면 요즘 유행하는 영어학습법인 섀도잉의 원형이 여기 있었구나 싶기도 합니다.
퍼즐도 놀라운게 어른들이 테두리부터 하는 것과 다르게 아이는 순간기억으로 퍼즐의 위치를 직감적으로 알아내더군요.
習(습)이라는 한자가 어린 새가 날기위해 수천번을 날갯짓을 하는 형상이라고 하는데 학습이 이렇게 역동적이고 귀여운 모습이었나 생각이 듭니다.
지난 주말에 " 이제 드디어 농구를 할 때가 되었어!" 라고 아내에게 선언하고 딸을 데리고 나갔습니다. 농구공과 킥보드를 차에 싣고 포도맛 마이쭈를 한웅큼 주머니에 챙기고 차를 타고 운동장으로 향하였습니다. . 날씨도 선선한데다 코로나의 여파인지 경기장에 사람도 한 명도 없습니다.
"억지로 시키지는 말고. 우선은 뛰어노는 것부터. 공은 조금씩 게임하듯이 만지게 하고 잘하면 칭찬해주고. 킥보드를 타는 것을 좋아하면 우선은 그것부터.. " 매니아 선배님의 조언을 가슴에 새기며 코트로 향하였습니다.
농구공을 튀기는 찰나에 아이가 텅 빈 관중석에 관심을 보입니다. 농구공과 킥보드는 잠시 농구코트 옆에다두고 관중석을 손을 잡고 올라갑니다. 총 3층으로 40~50열 가량으로 구성된 스타디움 식 관중석인데 "하나, 둘 .. " 숫자를 세며 끝까지 올라갔습니다. 대퇴사두근이 아파오기 시작해서 아이한테 힘들지 않냐고 물어보니 괜찮다면서 힘들면 자기 마이쭈를 먹으라고 합니다.
내려올 때는 한 칸씩 점프를 하면서 내려옵니다.
다 내려오니 아이가 "이번엔 빨간색 의자를 올라가 볼까? " 라고 합니다. 슬쩍 옆을 보니 초록색과 연두색도 있어서 설마하는 마음이었는데 결국 모든 색깔의 의자를 똑같이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합니다.
'언제부터 우리 딸이 초록색과 연두색을 구별할 수 있게 된 걸까?' 생각하며 맨위의 연두색의자에 앉아 힘드니까 조금 쉬었다하자고 하였습니다. 아무도 없는 텅빈 운동장에 덩그라니 놓여진 농구공이 코딱지만하게 보입니다.
조금씩 추운 바람이 불고 낙엽도 떨어지고 주머니 속의 마이쭈도 떨어진 가운데 아무도 없는 운동장의 관중석에 딸과 나란히 앉아 있으니 영화 나는 전설이다처럼 세계의 끝에서 살아남은 두 부녀같은 느낌이 듭니다.
아이에게 농구를 가르치는 매니아회원님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부모의 욕심은 그렇게 순조롭게 원하는대로 흘러가지만 않는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도 다시 한번 도전해볼 생각입니다. 다음에는 관중석이 없는 코트로 데려가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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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체력을 갖추는게, 공 만지는 것 보다, 먼저인걸 안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