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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신영복 선생님 책을 조금씩 읽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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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4 21:14:22

  

  지금 느끼는 감상이 처음 신영복 선생님 글을 읽었을 때 느꼈던 감정들과는 퍽 다르다고 생각을 합니다. 학창 시절 때 (아버지가 당신이 읽으려고 구매하셨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을 책장에서 발견하고서는 쭉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요. 그때 제가 책을 읽으면서 어떤 생각들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글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참 좋다고 하면서 짧은 기간동안 다 읽었던 건 어렴풋이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그 책을 잡고 읽으면 읽을수록 책 내용을 모두 이해해가면서 2,3일 내에 빠르게 정독할 류의 내용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신영복 선생님 특유의 글솜씨로 대단히 명확하게 자신의 생각을 글로 풀어내셨지만, 다루고 있는 주제들을 저 스스로도 한번씩 되뇌면서 읽어가다보니 제가 학창시절 때 그랬던 것처럼 한번 빠르게 읽고 끝낼 성격의 책이 아니라는 게 분명해진 겁니다.


가령 저는 아래의 대단히 유명한 구절을 다시 읽으면서 새삼 여러 가지를 느꼈습니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사람을 단지 37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미움받는다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더욱이  미움의 원인이 자신의 고의적인 소행에서 연유된 것이 아니고 자신의 존재  자체 때문이라는 사실은  불행을 매우 절망적인 것으로 만듭니다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을 불행하게 하는 것은 우리가 미워하는 대상이 이성적으로 옳게 파악되지 못하고 말초감각에 의하여 그릇되게 파악되고 있다는 그리고 그것을 알면서도 증오의 감정과 대상을 바로잡지 못하고 있다는 자기혐오 있습니다. 

전문 : http://www.shinyoungbok.pe.kr/letter/2072 

 

이 구절에서 제가 인상깊게 바라본 부분은 바로 '자기혐오'의 발견입니다. 무더운 여름 감옥에서 옆사람의 존재를 불쾌하게 여기는 솔직한 감정을 끌어내는 건 물론이고, 이러한 감정이 실은 이성적이지 못한 '부당한 증오'라고 판단하며 스스로에게 일종의 도덕적 선고를 내리고 있는 사고 과정이 참 놀랍다고 생각했습니다. 저같은 평범한 사람이라면 설사 같은 경험을 하더라도 그냥 옆사람에 대해서 불편한 불쾌감을 느끼고 끝났을 일을 이렇게 명확하게 본인의 감정을 수면위로 끌어내고, 스스로의 감정과 마주하여 이것에 대해 도덕적 판단을 하는 모습이 인상깊었던 겁니다.


  뒤 구절에서는 이러한 사고 과정을 감옥 안에서의 일을 넘어서서 감옥 밖에서의 일 /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로 확장을 시도하기도 하는데요. 

 

자기의 가장 가까운 사람을 향하여 키우는 '부당한 증오' 비단 여름 잠자리에만 고유한 것이 아니라 없이 사는 사람들의 생활 도처에서 발견됩니다이를 두고 성급한 사람들은 없는 사람들의 도덕성의 문제로 받아들여  인성(人性) 탓하려 들지도 모릅니다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오늘 내일 온다 온다 하던  한줄금 내리고 나면 노염(老炎) 더는 버티지 못할  알고 있으며머지않아 조석의 추량(秋敭) 우리들끼리 서로 키워왔던 불행한 증오를 서서히 거두어가고 상처의 자리에서 이웃들의 '따뜻한 가슴' 깨닫게 해줄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그리고 추수(秋水)처럼 정갈하고 냉철한 인식을 일깨워줄 것임을 또한 알고 있습니다.

 

 

위의 에피소드 이외 내용중에서는 어떤 사고 과정이 현실 세계속에서 실천됨으로써 진정 의미를 갖는다는 통찰도 대단히 인상 깊게 다가왔습니다.


우리가 훌륭한 사상을 갖기가 어렵다고 하는 까닭은  사상 자체가 무슨 난해한 내용이나 복잡한 체계를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사상이란 그것의 내용이 우리의 생활 속에서 실천됨으로써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라는 사실 때문입니다생활 속에 실현된 것만큼의 사상만이 자기 것이며  나머지는 아무리 강론하고 공감하더라도 결코 자기 것이 아닙니다자기 것이 아닌 것을 자기 것으로 하는 경우 이를 도둑이라 부르고 있거니와훌륭한 사상을 말하되 그에 못미치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경우 우리는 이를 무어라 이름해야 하는지……. 

전문 : http://www.shinyoungbok.pe.kr/letter/2055

 

사상과 실천의 관계를 다루는데 있어 훌륭한 사상을 어떻게 삶과 일치시킬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접근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신영복 선생은 앞부분에서 '실천 -> 인식 -> 재실천 -> 재인식'의 과정이 반복되면서 실천의 발전과 더불어 이성적 인식의 발전 또한 이루어진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이런 실천이 없다면 이는 곧 '인식의 좌절'과 '사고의 정지' 국면으로 나아간다는 겁니다.


위 구절에서도 어떤 사상에 대해서 생각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이를 '자기 것'이라고 부를수 없다는 비판을 하였는데, 하물며 그런 옳은 사상이 가리키는 방향이 아닌 그 반대 방향으로 행동하는 위선이 그르다는 판단 또한 당연히 깔려있을 거라고 추측합니다. 


흥미로운 건 이 대목에서 '실천이 없는 훌륭한 사상'과 대조를 이루는 대상으로서 '삶과 합치되는 사상이되 결코 옳지 않는 사상, 그리고 이 사상을 실천하는 행위' 또한 다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신영복 선생은 어떤 이들이 그들의 삶을 살아가면서 설사 사회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생각'을 형성하게 되고, 이를 실천하더라도 이런 실천과 생각의 순환 과정을 일단은 존중해야 한다는 뜻을 피력하고 있는데요.


그 예로 나오는 것이 바로 '도둑질해서라도 먹고 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다시 체포되어 감옥에 들어오는 이들입니다. 물론 이런 생각이 도덕적으로도 법적으로도 잘못된 사고 방식은 맞지만, 이런 그릇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에 대해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서도 "그 사람의 삶의 조건은 그대로 두 채 그 사람의 생각만을 다른 것으로 대치하려고 하는 여하한 시도" 또한 본질적으로 폭력적이라 평을 하고 있습니다. 즉 특정한 삶에서 형성된 생각을 바탕으로 실천되는 행위들은 설사 삐뚤다하여 무조건적으로 지탄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겁니다. 신영복 선생께서는 당신이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지셨기에 도둑질을 하다가 또 다시 잡혀들어오는 이들을 나무라거나 속으로 경멸하지 않고, 출소하는 이들에게도 "이젠 범죄하지 말고 참되게 살아라" 같은 흔한 인사말 한마디도 입에 올린 적이 없다고 합니다.


  신영복 선생이 강조하는 부분은 다음 문장에서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즉 "우리가 맨 먼저 해야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생각과 삶의 상응관계를 묻는 일" 이라는겁니다. 생각과 실천 그리고 삶에 대한 질문을 했을 때 나오는 상황에 대한 답변으로서 2가지 판단을 제시하고 있는데요. 첫 번째는 설사 바르고 똑바른 생각을 하더라도 실천이 없다면 진정 훌륭한 생각이라 말할 수 없다는 판단입니다. 두 번째는 고되고 거친 삶의 경험에서 만들어진 인생관이 옳지 못하며 그런 삐뚠 생각들에서 나온 행동들이 설사 잘못되었다고 하더라도, 잘못된 생각이 열악한 삶과 상응된다면 이를 무조건적으로 바꾸려는 시도 또한 잘못된 처사라는 판단입니다. 이런 의견을 집약적으로 표현한 부분이 바로 아래 구절입니다.

 

삶과 사상의 어느 쪽을 어떻게 변화시켜  것인가라는 방법상의 문제는 전혀  사람의 처지에 따라  사람의  나름이겠지만 삶을 내용으로 하고 사상을 형식으로 하는 상호작용 법칙성을 고려한다면 우리는 삶의 조건에 먼저 시각을 돌려야 하리라 믿습니다그렇기 때문에 열악하되 삶과 상응된 사상을 문제삼기보다는먼저 실천과 삶의 안받침이 없는 고매한(?) 사상을 문제삼아야 하리라 생각됩니다. 

  사실 저는 위에서 신영복 선생이 제기하신 '상응관계' 혹은 '상호작용'이라는 개념을 대단히 인상깊게 여기고 있지만, 한편으론 이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판단들과 위에서 다룬 내용들에 대해서 모두 동의하는 입장은 아닙니다. 이 주제에 대해서 아직 저만의 의견이라는 것이 확실하게 정립된 것 같지도 않고요. 그렇지만 이 대목을 계속해서 읽으면서 고민을 해볼 가치가 충분한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이외에도 신영복 선생의 또 다른 저서 <강의> 또한 보고 있는데요. 서로 연결되는 내용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고해서 이것도 찬찬히 읽어나가고 있습니다. <강의>에서 제4장 춘추전국시대를 다루고 있는 부분에서는 위 주제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현장성'이라는 개념이 나오기도 합니다. 경험과 실천의 가장 결정적인 특징이라 정의된 이 개념이 가지고 있는 주관주의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경험적 사실을 바탕으로 형성된 공고한 신념을 부러워하고 있는 대목인데요. 이를 '이론과 실천의 통일'에 대해서 공자가 다룬 내용과 접목하고 있기도 한데, <강의>와 더불어 <담론>도 읽어보고 기회되면 이 책들에 대한 감상평도 간략하게나마 남겨보도록 하겠습니다. 두서없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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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20-07-15 09:22:05

한 구절 한 구절이 어릴때 읽었을때와 확실히 다르게 느껴지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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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5 10:59:15

저도 최근에 다시 읽어보니깐 예전에 읽었을 때랑 느낌이 사뭇 다르더라고요.

다른 책들도 다 좋지만, 개인적으로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생각해볼만한 주제를 많이 던져줘서 애착이 더 갑니다. 

다른 어느 책에서였나 편지 검열 때문에 뜻한 바를 다 풀어쓰시지는 못했다고 본 거 같은데, 그럼에도 울림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 많아서 참 좋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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