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치킨에게 미안하고 고마워해야 합니다
인간의 동물 길들이기는 오랫동안 지속된 인간과 야생동물 사이의 긴밀한 접촉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사냥과 짐승의 떼를 쫓다가 그들을 사로잡아서 지키고 길들이고 사육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분명한 순서가 오랜 기간에 걸쳐서 이어졌습니다. 이런 식으로 우리 조상들은 소, 염소, 양, 돼지, 닭 그리고 나중에 말을 길들였습니다.
야생 동물을 가축으로 길들이면 유용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이들은 인간이 소화할 수 없는 식물을 고기로 변환시키는데, 고기는 어떤 식물보다도 더욱 다양하고 풍부한 단백질을 함유합니다. 게다가 살아 있는 동물은 썩지 않습니다. 가축들은 구석기에서 신석기 시대가 진행됨에 따라 더욱 많은 부산물을 생산해냈습니다. 인간에게 고기를 제공함은 물론이고 닭은 계란을, 소, 양, 염소, 말은 젖을 생산했습니다. 치즈, 버터, 발효음료 등의 보존 가능한 유제품들은 세계 각지의 유목민이 생존할 수 있게 해줬습니다.
하지만 동물의 가축화로부터 생긴 부작용들도 있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전염병입니다. 인간에게 치명적인 전염병들은 대부분 소나 돼지 등의 가축에서 서식하던 병균들의 돌연변이 종에 의해 생겨났습니다. 홍역, 결핵, 천연두 등은 소에서 유래했고, 백일해나 인플루엔자는 돼지가 그 기원입니다. 흑사병은 들쥐에게서 옮았고, AIDS 또한 아프리카의 야생원숭이가 가진 바이러스의 변종입니다. 이 동물들이 가축이 되거나 인간과의 접촉이 늘어나면서 인간 신체에 적응하는 병균들의 진화가 이루어집니다. 인수공통전염병이 사람에게만 전파되는 전염병보다 더 무서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인류는 천연두나 소아마비같이 인간만을 숙주로 한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는 승리를 거뒀지만 광우병, 사스, 에볼라, 메르스, 독감과 같은 동물 유래 바이러스와는 여전히 전쟁중입니다.
우리에게 닭은 특별한 동물입니다. 한국인들은 돼지고기, 닭고기, 쇠고기 순으로 많이 먹는데, 이중에서도 닭고기 소비량과 소비율 모두 1970년도부터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우리 식탁에 자주 올라오는 닭은 육계입니다. 가장 많이 유통되고 있는 육계는 일명 브로일러(broiler)라고 불리는 종으로 자라는 곳은 한국이지만 품종은 수입종입니다. 몸집이 통통하고 다리가 짧은 브로일러는 2차대전 이후에 미국 농무성이 Chicken of Tomorrow Program을 통해 닭의 품종개량 및 몸집 불리기로 만들어진 결과물입니다. 현재 세계 전역에서 사육되고 있는 닭의 수는 약 240억마리로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야생종 조류 수의 3배가 넘습니다.
동물권리 운동가들에 따르면 닭 사육을 포함한 현대 기업농은 동물실험과 함께 역사에서 인류가 저지른 가장 큰 범죄행위입니다. 인공부화기를 통해 수정 3주 후에 태어난 병아리들은 산란계와 육계로 구분되어 다른 운명을 맞이합니다. 산란계는 A4 용지 크기보다도 작은 공간에서 평균 1년 동안 300여 개의 알을 낳은 후 도살됩니다. 육계의 경우는 적은 사료로 짧은 시간에 더 살을 찌우기 위해 밀집형 계사에 가둬 키우고 약 5주 후에 도축됩니다. 비위생적 환경에서 비정상적인 발육을 한 병아리들이 닭이라고 불리며 인간의 식탁에 올라오는 것입니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매년 발생하는 AI로 농장 전체 닭이 산 채로 매장되는 일이 연례행사처럼 벌어지고 있습니다. (참고로 말하면 도살되지 않은 닭의 수명은 평균 10년입니다.)
사람이 닭에게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지만, 현재 인간에게 닭은 대체불가능한 필수품이 되어 버렸습니다. 연간 전 세계에서 닭고기가 1억톤씩 소비되고 달걀도 약 1조 개가 팔립니다. 닭고기는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인간에게 단백질을 공급하기 때문에 닭이 없으면 저개발 국가 사람들은 당장 건강에 문제가 생깁니다. 닭고기와 달걀에는 라이신과 트레오닌 등 인체가 합성하지 못하는 필수 아미노산이 들어 있습니다.
달걀은 인플루엔자(독감) 백신을 만드는데 필수적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달걀에 들어간 독감 바이러스가 성장하면 이를 추출한 다음 죽여서 단백질 성분을 정제해 백신으로 씁니다. (아래 기사 참조)
https://news.joins.com/article/23457700
세계적인 과학저널 사이언스(Science)는 2020년 6월 24일 닭인 언제 어느곳에서부터 가축화가 되었는가에 대한 Article을 실었습니다. 이는 같은 날짜 ‘셀 리서치’에 발표된 중국과학자들의 연구결과입니다.
그 연구에 따르면 약 9500년 전 동남아시아 북부와 중국 남부에 살던 인류 조상은 주거지 인근에 살고 있던 붉은멧닭(red jungle fowl)들과 거래를 했습니다. ‘우리가 너희들을 지켜주고 먹여줄 테니까, 너희들도 우리가 필요한 것을 달라’는 식의 협력 사업입니다. 그런데 우리 조상이 필요한 것은 닭의 목숨이었습니다.
연구진은 지난 20년 동안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다양한 토종닭과 야생닭 863마리를 수집했고 최근 이들의 유전자를 완전히 해독했습니다. 사상 최대 규모 닭 게놈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된 것입니다.
이전까지의 연구결과에서는 붉은멧닭이 처음 가축화 된 것이 8000년 전의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추정했습니다. 지금의 베트남, 미얀마, 태국, 필립핀, 인도네시아 등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그런데 훨씬 더 디테일이 강조된 이번 연구에 따르면 9500년 전 동남아시아 북부와 중국 남부가 닭의 가축화의 기원입니다. 가축이 되기 전 닭의 조상은 수풀 속에서 자유롭게 살고 있었던 붉은멧닭입니다. 이들은 사람과의 동거를 시작하면서 그 수가 급격히 늘어났으나, 9500년 이후 후손들은 선조 닭의 수명의 50분의 1도 살지 못하는 비운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인간은 닭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느껴야 할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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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병아리들을 컨베이어벨트에 올려놓고 암수구별 후 바로 분쇄기에 넣어버리는 영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너무 충격적이기도 했고 그 일을 하시는 분들은 얼마나 트라우마가 심할까 생각도 했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