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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당시 미국이 만주에 원폭을 투하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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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2 12:29:02

중공군이 참전하자 맥아더가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트루먼에게 종공군이 밀집해있던 만주에 원폭을 투하하자고 건의했지만, 결국 대선과 3차 세계대전을 우려한 트루먼이 묵살을 해버린 일화는 유명하죠.

만약 그 당시 미국이 만주에 원폭을 투하하고 미국이 우려한대로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국가들이 전쟁에 참전해 제 3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면 어떻게 흘러갔을까요? 당시 아무리 미국이라도 소련을 상대하기는 매우 위험부담이 컸던 상대였던걸로 아는데.. 소련이 참전했다면 미국과 UN연합군의 승리를 확실히 장담 할 수 없었겠죠?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는 세계대전에서 미국이 폐퇴하고 한반도가 공산화 되는 그림이었을텐데, 그렇다면 그당시 트루먼이 맥아더의 원폭투하 건의를 묵살한게 지금와서 다시 평가해본다면 과연 최선이었을까요 아니면 악수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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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20-07-12 12:33:01

그때는 핵에 대한 이해도가 낮고 국가들이 대놓고 국민들에게 핵이 안전? 심지어 건강에 좋은것으로까지 호도하던 시절이라 한반도에도 핵떨어져서 저희들이 현재 존재하지 못할지도

2020-07-12 12:33:13

만주는 한반도가 아닙니다. 말은 좀 안되지만 만주에 폭격할바에 차라리 북경이랑 모스크바에 폭격하는게 나은 선택일수도 있다고 봅니다.

2020-07-12 12:37:19

그럼 진짜 미국도 무사하지 못하죠... 투발 수단이 미사일은 없던 시대지만 소련도 목숨걸고 같이 죽자인데 어떻게든 뉴욕이나 워싱턴에 떨어뜨렸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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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7-12 12:52:01

중공군이 본격적으로 참전하기 직전까지 맥아더는 전황을 엄청나게 낙관적으로 파악했고, 중공군의 참전 가능성도 낮게 추측했습니다. 전방부대에서 중공군의 움직임이 파악됐을때도 묵살한 정황이 있구요. 설사 참전하더라도 간단히 격퇴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인천 상륙작전으로 맥아더의 주가는 올라갈대로 올라간 상황이었고 '맥아더 신화'의 정점을 찍었습니다. 누구도 맥아더 사령부의 결정에 반박하기 어려웠죠. 그래서 유엔군은 일선부대의 보고에도 불구하고 중공군의 참전에 대한 대비없이 불리한 지형으로(기갑 전력이 운용되기 힘든 지역으로) 쾌속 진격 합니다.

 

그런데 중공군이 밀고내려오자 태도가 바뀌어 핵이라는 극단적인 수단을 써서라도 전선을 유지하자고 한 것입니다.

 

제가 트루먼이라도 이런식으로 일을 진행하는 전선사령관의 말을 듣고 핵을 쓰진 않을것 같습니다. 세계대전이라는 전략적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맥아더가 만주 폭격을 건의 한 것은 마치 인천상륙작전으로 인해 올라간 자신의 입지와 성과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보이기 때문이죠. "이 자는 자신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 세계대전도 불사하겠다는 것인가?"

 

물론 맥아더는 만주 폭격을 해도 세계대전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보았겠죠. 하지만 그 시점에서 신용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중공군 침입문제에서 완전히 빗나간 예측을 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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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2 12:58:05

이 말씀이 대부분 맞습니다. 제가 훨씬 자세히 설명하고 싶은데 얼마나 많은 분들이 관심있어 하실지 몰라서 주저됩니다.

 

당시 맥아더가 마셜 국방장관과 합참에게 건의한 내용은 정확히 이렇습니다. "현재 이 병력으로는 도저히 이길 방법이 없습니다. 병력을 늘려주거나 핵무기를 사용하게 해 주십시오." 그러자 마셜 장관과 합참의장은 당황해서 맥아더에게 다시 일본으로 철수해도 좋다고 답했습니다. 병력을 빼라는 말에 맥아더는 발끈하며 항명의 기미를 보였고, 국방부와 맥아더 사이에 계속 신경전이 이어졌습니다. 동갑인 마셜과 맥아더는 서로를 꺼려하는 사이입니다. (그 이유도 아주 복잡해서 글로 요약해도 한 페이지가 나옵니다.) 

 

결국 마셜 국방장관의 건의로 트루먼이 맥아더를 해임하고 그 후임으로 리지웨이 장군을 발령합니다.

 

장님버드나무님이 글에서 말한 맥아더는 전황을 엄청나게 낙관적으로 파악했던 이유는 잘못된 보고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최초로 중공군이 진격했을 때 맥아더의 정보 참모인 윌러위 장군은 중공군 규모가 20만~30만 명임에도 적당히 줄여서 3만 명 정도 된다고 보고했습니다. 완전히 오도된 정보를 가지고 판단을 하게 된 맥아더는 그해 추수 감사절이 11월 23일 이었는데 "추수 감사절 전에 전쟁이 끝나고 크리스마스 만찬은 포트 베닝에서 한다."고 말했고, 장병들은 맥아더가 그렇게 말하니까 틀림없다고 모두 마음을 놓고 압록강으로 먼저 가는 경주를 했던 것입니다.

 

맥아더의 가장 큰 단점은 자아도취가 심하고 독선적이어서 그 밑에 우수한 참모들은 건의 해보다가 전혀 먹혀들지 않으니까 모두 떠나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전쟁 당시 맥아더 주변의 참모들은 미군의 기준으로 볼 때 계급에 비해 수준이 떨어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2020-07-12 13:25:54

맥아더 장군은 유독 인천상륙작전의 영향 때문인지 한국에서 거의 신격화되었죠. 외국에서는 미치광이로 취급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특히 사회주의자들이 맥아더 장군을 엄청 비판하더군요.(예전 책에서 본 내용인데 왜 그런지는 그 책이 지금 저에게 없어서 기억나질 않네요.) 그래서 예전에 어떤 행위 예술가는 설탕으로 맥아더 장군 동상을 만들고 개미들이 먹게끔 전시해놓았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있습니다.

2020-07-12 14:25:01

맥아더 신격화는 필리핀이 한 수 위인 것 같습니다. 터미네이터 이전 원조 I'll be back이라 그럴만도 하죠.

2020-07-12 12:51:11

베트남전 같은거 생각하면 핵쏜다고 중국애들이 포기하진 않았을겁니다. 그렇다고 북경에 마오쩌둥 머리위에 쐈으면 중국이 엘리전 들어갔을거구요. 그렇게 치열하게 싸운 일본도 황궁쪽은 잘 안건드렸죠. 6.25 종전 관련해서 안타까운건 물량으로 버티면서 종전협상을 좀 끌어서 휴전선, 특히 서부쪽 휴전선을 개성까지만 올려놨어도 남한이 전략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었을거라는 점이라고 봅니다. 휴전협상 자체가 좀 급하게 처리된 감이 있죠. 그리고 그 당시에는 생각보다 중공에 대한 이미지는 서양세계에서 나쁘지 않았습니다. 소련은 스탈린 때문에 독재국가 이미지가 있었지만 중공은 그때까지는 패권국가라는 느낌자체가 덜했고 좌파지식인 사이에서는 이미지가 나쁘지 않았죠. 오늘날 미중관계를 생각한다면 그 당시에 미국이 무조건 압록강까지 밀고 올라갔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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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2 12:51:32

본문의 뉘앙스가 좀 이상한데... 맥아더가 말도 안되는 무리한 요구를 한거고 트루먼이 상식적으로 거부한겁니다.

군인의 역할은 전투에서 이기는 겁니다. 전쟁을 어디까지 확장할지 어느나라에 선전포고를 할지는 정치인의 몫이죠. 당시 유엔군과 미군이 중국 본토를 침공할 명분이 없었습니다. 중국 본토에 폭격들어갈까봐 압록강근처는 폭격도 자제하던 때에요. 그런데 갑자기 중국본토에 원폭? 그리고 그걸 현지 군인이 선택? 있을수 없는 이야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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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7-12 12:57:11

그리고 원폭 투하후 일본의 빠른 항복때문에 원폭에 대한 환상이 좀 심한데요. 멀쩡한 중국도시 위에 원폭을 떨어뜨리면 원폭맞은 중국이 항복할까요? 아니면 멀쩡한 민간인들 머리 위에 원폭날린 미국이 전세계의 악역이 될까요? 참고로 중국본토는 전쟁지역이 아니고 중국은 북한에 지원군을 보냈을 뿐입니다.

만약에 맥아더의 독단이 먹혀서 그 주장이 이루어 졌다면 미국은 전쟁의 명분도 잃고 유엔군을 투입한 국제연합도 권위가 땅으로 추락하겠죠.

당시 국제연합이 유엔군을 투입한 명분은 유엔 감시하 선거로 구성된 대한민국(남한)정부를 수호하는 것이지 북한을 멸망시키고 통일을 이루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2020-07-12 17:34:22

당시 일본은 도쿄대공습으로 상징되는 일방적인 공습을 전국적으로 두들겨 맞아서 이미 비참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냥 일본 군부-정부가 미치광이 상태에서 국가 전체 동반자살 모드로 가자고 버티고 있었죠. 전국민 옥쇄같은 소리나 하고 있었으니....

막타를 원폭이 날린 것 뿐이지, 공습으로 이미 체력게이지는 바닥 상태였습니다.

도쿄대공습 단 이틀간의 사망자가 추정 최대 4백만까지 잡고 있습니다. 그밖에도 오사카, 코베 등 대도시들도 초토화된 상태였죠.

 

중국이 이정도는 아니더라도 상당히 뭉개진 상황이면 몰라도, 원폭 한방 정도로는 절대 물러서지 않았을 것은 자명하죠. 오히려 중고세탁기 님이 쓰신대로 명분만 잃었을겁니다.

일본은 워낙 수뇌부과 정신을 잃어서 전국민을 죽이려고 들었으니, 그 광기를 멈추기 위해서라는 변명이라도 갖춰져 있었죠. 다운폴 작전을 진짜로 실행해서 추가로 수백만 단위의 희생자를 내지 않을수 있었다! 이런식의... 이마저도 후대에 꼭 그래야 했냐는 비판들을 받았는데 중국쪽에 떨궜으면 베트남전쟁 이전에 이미 더럽혀지고 시궁창에 빠지는 전쟁을 경험했을 겁니다.

2020-07-12 13:10:38

개전 초중반에ㅡ미군 폭격기가ㅡ압록강 넘어 만주에 폭격을 자주 가했고,
그 이유는 중공군의 참전을 유도하여,
원폭 사용에 대한 명분을 쌓고 승리하여,
전쟁을 맥아더의 대선 야망의 원동력이 되고자 했던 것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실제로 평양과 압록강 국경 지대에는 엄청난 폭격이ㅡ이루어졌습니다.

2020-07-12 13:19:44

압록강 넘어 만주를 자주 폭격했다는 출처를 좀 알수 있을까요? 제가 아는 것과는 정반대여서요.

2020-07-12 15:07:37

죄송합니다

정정할게요

압록강 국경지대 폭격이 많이 이루졌다는 말을 제가 만주로 외곡했습니다.

제가 강조하고픈 말은 북한 전역이 융단 폭격 당했는데,

굳이 압록강 지역(다시 말하면 중국과 국경 지역)까지 초토화 시크는 폭격을 가한 이유는,

맥아더가 중국 국경지대 폭격을 가해 중국을 자극시켜,

중국의 참전을 유도했다는 말입니다.

2020-07-12 16:27:10

북한 잔류 세력이 압록강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폭격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2020-07-12 16:39:10

미국은 혹시 중국 본토에 폭격하게 될까봐 엄청 조심했습니다. 북한에 보낸 지원군과 싸우는 것과 중국과 전면전을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니까요.

중국본토에 폭격도 못하는 상황에서 원폭투하 이야기는 그냥 말도 안되죠. 원폭이 문제가 아니라 중국본토가 훨씬 중요합니다.

2020-07-12 14:08:09

스타로 치면 태란으로 하다 불리하다고 핵 쏘더라도 전황을 바꾸지 못하는 상황?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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