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학벌: 미국생활 14년차 대학생의 소고
많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미국은 학벌사회가 아니다, 학벌주의가 덜하다는 말을 합니다. 제가 봤을때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 입니다.
미국사회에서 살아가는 97% 사람들에게 학벌은 중요치 않습니다. 일반적인 대기업에 취직한다거나, 대학원을 간다거나, 또는 사회생활을 할때 등등 학벌은 크게 와닿지 않습니다. 물론 더 좋은 학교를 가면 더 많은 기회를 얻을수 있고 더 능력있는 친구를 얻을 수 있겠지만 명문이 아닌 일반 대학에서도 조금만 더 노력하면 따라잡을 수 있을 격차입니다.
하지만 나머지 3%에게 학벌은 무엇이든 막을수 있는 방패가 될수도 있고 무엇이든 뚫을수 있는 창이 될수도 있습니다. 엄청난 집안 출신이라거나, 금융, 정치, 법, 경영, 의학 등등 특수한 직업군에 종사하는 자들의 경우 학벌은 알파이자 오메가이고 하늘이요 땅입니다.
오히려 좋은 최상위권 대학들 사이에서의 벽은 그 아래 대학들과의 벽들보다 더 견고하고 높습니다. 특정 대학 출신이 아니면 원서를 받지 않는 로펌과 컨설팅 펌들, 특정학교 동문의 추천서가 없다면 면접기회조차 안주어지는 기업들이 이 벽을 쌓아올립니다.
사람들이 학업으로 공정하게 경쟁한다 생각하는 의과대학원들 조차 상위 25개 의대의 정원중 70% 가까이가 최상위 15~17개 학부출신으로 채워집니다. 의대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은 이를 ‘inbreeding’ 이라고 비꼬곤 하죠. 엘리트 의대에 가고싶은 다른 4000개 대학출신들은 나머지 30%를 두고 경쟁해야 합니다.
저도 나름 ‘xx의 하버드’ 소리를 듣는 20위권 사립대를 다니고 있지만 제 친구들조차 학벌의 벽앞에서 좌절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스턴 컨설팅 휴스턴 지부에서 우수한 인턴성적을 내고 다음해 동북부 지사에서 인턴기회를 얻은 친구는 하버드, 프린스턴 출신들이 즐비한 곳에서 자리를 잡는데 꽤나 애먹었다고 합니다.
UC버클리 화학과를 졸업하고 제작년 의과대학원 입시를 치룬 고등학교 선배는 펜실베이니아 의대 인터뷰에 도착하고서야 자신이 얼마나 불리한 상황에서 경쟁중이었는지 알았다고 합니다. 그날 인터뷰에서 만난 다른학생 20명 중 아이비리그 출신이 11명, 비아이비 상위권 사립이 6명, 본인을 포함 단 3명만이 주립대 출신이었습니다.
제가 친하게 지내는 법과대학 교수님은 어려서 가난한 남부의 농촌에서 자라 공부를 잘했음에도 동네의 공립대학에 진학했습니다. Magna cum laude(차석)으로 졸업한 교수님은 노트르담 법대에 진학하였고 역시 우수한 성적으로 법학박사 학위와 화학박사 학위를 수여받았습니다. 그후 교수님은 미국 최고의 법대중 하나인 노스웨스턴 법과대학원의 교수가 되셨습니다. 나름 역경을 해치고 자리에 올랐으니 꽃길이 펼쳐질까 기대했으나 돌아온건 하버드/예일/스탠포드 학부/T-14법대 로 이루어진 교수진들의 견고한 카르텔과 그들의 은근한 무시였습니다. 먼저 말걸지 않는이상 절대 대화를 시작하거나 식사에 초대하지 않고, 출신대학을 말할때 대학이름보다는 기숙사나 단과대 건물이름을 대는 (그들입장에서 상대방은 당연히 아이비리그 출신일 테니까) 그들에게 교수님의 법대 졸업장은 별로 가치있는것이 아니었고 이름없는 주립대 출신이라는 것은 오점일 뿐이었습니다. 그 텃세를 견디다 못한 교수님은 결국 고향으로 돌아와 저희학교 법대에서 자리를 잡으셨습니다.
미국은 상위권으로 올라갈수록 그 사이의 간극은 더운도 커집니다. 아이를 성공시키고 싶은 부모들, 자신이 속한 카르텔에 자식도 들이고 싶은 부모들은 한국과 다를바 없이 좋은 학군으로 이사가고, 특수고등학교와 사립고등학교를 보내려 기를쓰고 사교육을 시키며 연간 수천만원을 학비로 지출합니다. 이에 떠밀려진 학생들도 탑10, 탑20 대학들을 외치며 엘리트 의식이 머리속에 자리잡기 시작하고, 성공적으로 명문대학에 입학할때즘 이미 그들은 자신이 속한 ‘인그룹’ 과 나머지 ‘아웃그룹’ 으로 세상을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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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일련 사태들에 대한 관계나 사회문제를 떼고 보면 그래도 굳이 3%에 들어가지 않아도 충분히 다른 곳에서 기회가 많고 돈을 벌어먹을데가 많다는게 미국의 장점이고 기회의 땅이라고 불리는거겠죠. 그 법과대학 교수님은 아이비 출신의 동부 엘리트들의 모습에 기가찼겠지만 그 교수님의 모습을 보고 대단하다는 사람이 훨씬 많겠죠. 그리고 의대도 시험을 보고 들어가는 학교인데 최상위권 학교 학부를 나온 학생들이 더 많이 들어간다는건 솔직하게 그렇게 이상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어쨋든 미국 밖에서 특히 우리나라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미국은 학벌이 덜해보이는게 맞습니다. 정말 최상위권에 위치한 그들만으 세상은 세계 어느 나라에나 있다고 보고요. 한국은 그렇게 SKY에 목메지만 미국은 아이비 말고도 좋은 학교들이 널렸으니까요. 지금 다니시는데도 마찬가지일 거구요. 아 물론 제가 미국에 학벌이 없다고 말하는건 아닙니다. 당연히 좋은학교 나오면 인정해주고 열심히 한것까지 다 인정하는 사회죠. 단지 그게 한국보다 훨씬 범위가 크다는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