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지구에게 해롭기만 한 존재일까?
몇 시간 전에 올린 글에서 이어집니다.
https://mania.kr/g2/bbs/board.php?bo_table=freetalk&wr_id=4530706
현생인류가 등장한 것은 약 40억년이라는 지구 생명의 역사에 비하면 아주 최근이지만 지구 생명의 긴 역사 속에 인간만큼 생태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 종은 없습니다. 물론 그 영향력은 다른 생물들의 삶에 피해를 입히는 방향으로 행사되어 왔으며 이러한 희생을 발판으로 삼아 인류는 번성했습니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인류가 그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동물들에게 낙원 같았던 자연의 환경은 무너집니다. 과거에도 인류가 각 대륙으로 이동하자마자 그 지역의 동물군들은 멸종하기 시작했습니다. 북미 대륙에서는 약 1만여년 전에 인간이 도착한 후 불과 몇백년 만에 대형 포유류 45속 중 최소 30속이 사라졌습니다. 멸종 동물에는 매머드와 마스토돈을 포함한 거대 코끼리 종류들과 이들을 잡아먹었던 검치호랑이 등이 포함됩니다. 그로부터 2천년이 지나 인간이 남하를 계속하면서 남미의 대형 동물들에게는 더 큰 재앙이 닥쳤습니다. 58개 속 중에서 최소 45개 속이 몇백년 안에 멸종했습니다. 지금부터 고작 1천년 전 마오리족이 뉴질랜드에 도착했을 때 키가 2미터가 넘는 타조류인 15종의 모아(moas)들이 생태계를 지배하고 있었는데, 모든 종류의 모아들은 마오리족이 도착한 후 순식간에 멸종해버렸습니다.
이 동물들의 멸종이 기후 등 자연환경의 변화 때문이 아니라 인간에 의한 것임은 여러 증거들을 통해서 확인되었습니다. 이들의 대량멸종을 설명할 만한 기후 변화도 없었을 뿐더러, 기후가 원인이라면 작은 동물들이 더 타격을 받았을 텐데 대부분의 경우 작은 동물들은 거의 피해를 보지 않았습니다.
인간들의 행동으로 인한 생물들의 멸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매년 5만 종의 생물이 멸종된다는 보고서도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생물종의 분포와 개체의 고유한 특성이 계속 바뀌고 있습니다. 인간에 의한 글로벌화의 급진전으로 수많은 동식물이 원래 서식지에서 바다를 건너 다른 대륙에서 자라고 있는 것은 흔한 일이고, 그보다 더 심각한 일들도 있습니다. 아프리카코끼리는 인도코끼리와 달리 암수 모두 상아가 있는 게 보통입니다. 그런데 상아를 노리는 인간의 코끼리 사냥을 오래 지속되다 보니 큰 상아를 가진 코끼리는 인간에게 사냥당해서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상아가 작거나 없어서 인간의 표적이 되지 않은 코끼리들이 살아남게 되어, 현재 아프리카 코끼리 상아의 크기는 1세기 전의 절반 수준이고 암컷 코끼리의 30%가 상아 없이 태어납니다.
오늘날 육지에 사는 모든 대형 포유류의 무게 가운데 30%는 인간이, 67%는 가축이 각각 차지합니다. 동남아에서 활용하는 물소를 포함해서 가축으로 키우는 소는 지구에 약 15억 마리나 되고, 무게로 따지면 지구에 사는 인류의 70억 명의 무게에 1.5배 가량입니다. 어쩌면 지구는 사람의 행성이 아니라 소의 행성이라고 할 수도 있을 정도입니다. 반면에 전 세계의 야생 대형 포유류의 무게를 다 합쳐도 3%에 불과합니다. 6,500만년 전에 직경이 10킬로미터쯤 되는 거대한 운석이 지구에 떨어져서 거대한 공룡들을 모두 사라지게 만들었는데, 지금 지구의 거대 포유류에게 인류가 6,500만년 전 운석의 역할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인류는 수십만년 전부터 자연과 동물에 대한 우월의식을 갖고 있었고, 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환경과 자연의 원리는 물론 생명의 사슬고리까지 정복하려고 합니다. 철학과 종교는 오래 전부터 인간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주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적어도 최근까지 동물에 대한 우월감에 있어서만큼은 철학과 종교가 과학보다도 한술 더 뜨고 있었기 때문에, 인간은 통제불능일 정도로 수많은 동물들이 살아가는 환경을 악화시켜 왔습니다.
오늘날 지구에는 70억이 넘는 사람이 살고 있는데, 인간의 손에 변화되지 않은 야생의 자연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아마존의 열대우림도 더 이상 현상유지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위기에 직면했고, 지구 최대의 삼림지역인 북쪽의 타이가도 인류는 위험한 수준으로 갉아먹고 있습니다. 얼음으로 뒤덮은 극지조차도 인간으로부터 유래된 기온 변화 때문에 모습이 바뀌고 있습니다. 산업혁명 이래 인류는 대기에 2조2천억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해 지구의 기후 자체를 바꿔놓았습니다.
저는 스스로에게 가끔씩 묻습니다. 먼 훗날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 인간에게 지구가 필요한 것은 분명합니다. 지구를 떠나서 인간은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구는 과연 인간을 필요로 할까요?
여기서 잠시 쉬어가면서 소크(Salk) 박사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미국의 의학자인 조너스 소크(Jonas Salk, 1914~1995)는 최초로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한 분입니다. 백신을 성공적으로 개발한 후 TV 인터뷰에서 백신의 특허권을 누가 갖게 되었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소크 박사가 대답한 “특허는 없습니다. 태양에도 특허를 낼 건가요? (There is no patent. Could you patent the sun?)”라는 말은 현재까지도 유명하게 전해집니다.
조너스 소크 박사는 1960년에 UC 샌디에고가 위치한 라호야(La Jolla)에 소크 생물학 연구소(Salk Institute for Biological Studies, 이하 소크 연구소)를 설립했고, 그곳은 현재까지 12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등 의료과학 연구의 중심지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소크 연구소는 성지로 꼽힐 만큼 특이한 모양을 한 건축물로 더욱 유명합니다. 20세기 최고의 건축가 중 한명으로 꼽히는 루이스 칸(Louis Kahn)의 설계로 만들어진 연구소 건축물은 한마디로 감동스럽고 초월적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 보시는 분들은 사진으로 소크 연구소를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갑자기 소크 박사를 언급한 것은 그분이 남긴 의미심장한 말 때문입니다. 소크 박사는 자연과 인류에 대해 이런 말을 남기셨습니다.
“If all the insects were to disappear from the earth, within 50 years all life on earth would end.
If all human beings disappeared from the earth, within 50 years all forms of life would flourish.”
만일 모든 곤충들이 지구에서 사라진다면 50년 안에 모든 지구의 생명체의 종말이 올 것이다.
만일 모든 인간들이 지구에서 사라진다면 50년 안에 지구의 모든 종류의 생물들이 번성할 것이다.
2천년이 넘게 지속된 마야 문명이 몰락한 이후 유타칸 반도의 원시림이 빠른 속도로 사원 건물들을 뒤덮어 몇백년 후 거의 흔적을 찾을 수 없도록 건물을 파괴시킨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시골에서 사람이 살지 않은 집이 얼마나 빨리 폐허로 변하는지는 우리 부모님 세대만해도 너무 잘 알고 계십니다. 인류가 지구에서 사라진다면 사막 지대를 빼놓고 세계 전체가 빠르게 숲으로 뒤덮일 것입니다.
소크 박사의 말씀대로 지구에서 인류가 사라진다면 50년 안에 모든 종류의 생물들이 번성할 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지구의 겉모습은 지금과는 전혀 다르게 변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구는 인류가 사라진 것을 반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지구는 어떤 평가도 안합니다.
제가 싫어하는 것 중에는 "아픈 지구를 살리자."라는 환경 켐페인이 포함됩니다. 큰아이가 초등학생일 때 학교에서 환경보호 캠페인을 벌이면서 “아픈 지구를 우리가 살리자.”라는 슬로건을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가져온 책의 제목도 “지구야 아프지 마.” “누가 지구를 아프게 하는가?” 등이었습니다. 저는 그 책의 제목 자체가 불편했습니다.
사실대로 말하면 지구는 전혀 아프지 않습니다. 오래 전에 지구는 불덩이 인 적도 있었고, 불과 몇만 년 전에는 얼음덩어리인 적도 있었습니다. 운석이 날아와서 거대 공룡들을 멸종시켰을 때도 지구는 아프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공룡들이 아파하며 죽어갔겠지요. 당연히 지금도 지구는 전혀 아프지 않습니다. 지구의 환경이 우리가 살기에 안좋게 변해서 우리가 아픈 겁니다. 우리가 우리를 아프지 않게 하기 위해서 지구 환경을 지키자고 하는 게 맞습니다. 환경보호 운동은 선심을 써서 아픈 지구를 도와주는 게 아닙니다. 우리를 위해서 하는 겁니다.
김춘수 시인은 제가 전혀 존경하지 않았던 분입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무의미했던 대상이 이름을 불러주는 행위를 통해 의미 있는 존재가 되어 가는 광경을 보여주는 그분의 시 '꽃'이 점점 더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자연과학자들도 인문학자 못지않게 감상에 빠질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에는 감상에 빠지는 행위조차 진지해집니다. 간단한 예를 들자면, 왜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1억 5천만km 떨어져 있을까 하는 질문에 이른바 '인류원리(anthropic principle)'를 가져와서 답하는 사람들이 (일부) 물리학자입니다. 지구가 그 보다 더 멀리 있거나 더 가까이 있다면 지구상에 생명체가 태어나 인간 같은 고등지식을 가진 생명으로 진화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게 인류원리적인 설명입니다. 지구의 조건이 우주와 달리 기적처럼 인간에게 호의적이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물리학자들로부터 인류원리가 등장했습니다.
굳이 인류원리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제가 인류의 일원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인류가 사라진 지구는 그 의미도 함께 사라질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이 사라진다면 누가 지구에게 그 이름을 불러줄까요? 누가 지구의 아름다움을 찬양하고, 누가 지구의 환경변화를 걱정해 줄까요? 그 이전에 지구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누가 알아나 줄까요? 아무도 알아주고 기억해주지 않는 지구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이런 식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인간이 사라진 지구는 얼마나 허망할지 상상이 가실 겁니다. 적어도 우리는 지구가 소중한 존재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여기서 마치고 다음 글에서 이어가겠습니다. 다음 글은 인간이 어떻게 고작 1만 2천년 전부터 지구를 완전히 새로운 시대로 만들기 시작했는가에 대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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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감사합니다. 제가 항상 머리속으로 생각은 했는데, 어떻게 꺼내야할지 몰랐던 주제를 써주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