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p
자동
Free-Talk

너! 나랑 싸워보자 + 쌀국수 김부선 외전

 
12
  891
Updated at 2020-07-08 17:55:05

"! 나랑 싸워보자

 

 

저는 방위로 군복무를 마쳤습니다.

, 오래 전 이야기죠.

 

군입대 자원이 많았던 시절이라

2대독자라는 이유만으로도 방위가 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방위 중에도 예비군 조교 방위였고,

조교 중에서도 각개전투 조교였습니다.

 

조교의 상징인 빨간 각진 레인저 모자를 쓰기는 했으나,

모양은 나지 않았습니다.

 

, 선배님~ 저거 통나무 한번만 건너가 주세요. ?“

 

우리 모두 아다시피 예비군은 참 오지게 말을 안듣죠.

 

 

방위는 시간이 흐르면 제대가 아니라 소집해제가 됩니다.

제대를 하든 소집해제를 하든 말년은 오고,

말년이 오면 여러모로 여유가 생기는 것은 똑같습니다.

 

저는 이 여유 넘치지만 무덥기 그지없던 7~8월 무렵,

팔굽혀펴기에 심취해 있었습니다.

심취 두 달 정도인가 지났을 때

하루 루틴은 다리를 소파 위에 올리고

60개씩 7세트였습니다.

 

타고나기를 하체운동 능력 최하였고,

상체는 운동하면 근육이 빨리 펌핑되는 체질에

정상과 과체중의 경계에 서있는 몸무게였습니다.

 

이런 몸에 팔굽혀펴기 심취는 저에게 거유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저의 가슴만 볼록한 몸매가 심히 보기 힘들었는지

후임 하나가 저에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이병 태권브이!

 케이치 상병님, 요즘 퇴근하고 팔굽혀펴기 하십니까?“

 

그걸 어떻게 알았냐?“

 

태권도 선수생활을 하다 온 친구라 운동하는 법을 아는 친구였죠.

제가 뭔가 비정상적으로 팽창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것이었습니다.

 

 

그날부터 태권브이는 제게 부내 체력단력실에 있는 기구쓰는 방법을

하나씩 가르쳐줬습니다.

 

그러기를 세달 정도 지나게 되니

운동을 왜 돈주고 배워야 한다는건지 알겠더군요.

무식하게 팔굽혀펴기만 하던 것과는

다른 기운이 전신에 느껴졌습니다.

 

오오, 나는 초사이어인이 되어가고 있는가

 

운동을 어설프게 처음 배우기 시작하면서 따라오는

자아도취가 저를 휘감기 시작했습니다.

 

 

~ 케이치 상병님 몸 좋으시지 말입니다.“

 

후임 간신배들의 입에 발린 아첨은 운동 욕구를 지속적으로 자극했고,

저는 삐댈 수 있는 모든 시간은 체력단련장에서

폐관수련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간부들도 말년 방위가 사고만 안치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는지

체력단련실에 기거하는 제게 뭐라 하지 않았습니다.

 

 

그 즈음 부대에는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중대장 하나가 새로 왔는데

최전방에서 철책 들어가던 예비군 동원부대에 어울리지 않는 자라는 것이었습니다.

 

ㅋ 근데 어쩌라구요

 

소집해제까지 두 달도 안남았고,

우리 대대 중대장도 아닌데

저에게는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새로운 중대장을 체력단련장에서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과연 명불허전이라고 소문대로 살벌한 인상을 지닌 자였습니다.

 

충성!!“

 

말년방위임에도 저의 경례는 각이 흐트러질 수 없었습니다.

째보려는 듯한 날카로운 인광이 위아래로 흝어보며

저를 비추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거기까지.

중대장도 아무 말 없었고, 자기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경례하고, 째려보고,

서로 아무 말도 없고,

남자 둘이 웃통 벗고 땀을 뻘뻘 흘리며 쇠질하는

여름날의 점심시간 한 시간이 매일 이어졌습니다.

 

 

그러기를 딱 일주일이 되던 날,

이제는 긴장도 좀 풀렸습니다.

우리의 루틴은 정해졌으니까요.

 

언제나처럼 제가 먼저 운동하고 있었고

중대장이 왔고,

저는 경례했습니다.

 

충성!“

 

! 나랑 싸워보자

 

제 생전에 들어본 말 중 가장 뜬금없는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건 그 중대장이 제게 처음으로 한 말이었습니다.

생전 첫 마디가 앞도 뒤도 없이 싸우자니?

 

, 아닙니다.“

 

 

다행히 중대장은 저를 다시 한번 위아래로 흝어보며 째려보긴 했지만

다시 평소처럼 운동을 시작했고 별일은 없었습니다.

저의 거유가 불필요하게 맹수를 자극했던 걸까요?

뜬금포의 정확한 이유는 지금도 의문이긴 합니다.

 

그 이후로도 저와 맹수는 나란히 계속 운동을 했고,

그러기를 한달여쯤 지나서 저는 소집해제 되었기에

다시 맹수를 볼 일은 없었습니다.

 

 

드라마에서처럼

 

, 나랑 계급장 떼고 한 번 붙어보자

 

라는 말이 직장에서 오가는 일은 실제론 거의 있을 수 없습니다.

그 정도면 이미 파탄 지경인거고

제대로 된 직장에서는 벌어질 수 없는 그림이죠.

 

그렇지만 대놓고 저렇게 말을 안해도

후임자에게 저런 뉘앙스의 말을 던지는 상사들은 간혹 있습니다.

 

니가 어디 나한테 직위 떠나 실력으로 맞짱 뜬다고 될 것 같냐는 식의 말

 

 

저는 이런 류의 언행이 꽤나 비겁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실력에 그런 차이가 있을 수도 있고,

속으로 그런 생각을 가지는 건 개인 자유고,

어찌보면 직장인이 그 정도 자기 실력에 대한 프라이드는 있어야 한다고도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걸 하급자에게 입으로 꺼내는 건 좀 다른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직장은 조직이고, 사회는 네트워크입니다.

서로 처한 입장을 순수하게 떠난 맞대결은 애초에 성립이 불가하거든요.

그리고 우리 모두는 그 사실을 뇌보다 피부로 잘 알고 느낍니다.

 

그걸 잘 알면서 계급장 떼고 맞짱을 떠보자고?

무형의 성벽 뒤에 숨어서 떠는 허세와 같은 느낌이랄까

저는 그렇게 느껴지더군요.

 

최근 최숙현 선수의 일을 보면서

정말 계급장, 배경, 인맥 다 떼고 한 판 붙을 수 있었다면,

과연 저 파렴치한 인간들은 저런 행동을 할 수나 있었을까?

그저 감독이라는 위치, 협회라는 안일한 조직 뒤에 숨어서

비겁한 힘을 보인 비루한 자들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숙현 선수의 명복을 빌고

모쪼록 모든 진실이 밝혀지고 그에 합당한 처분이 따르길 바랍니다.

 

 

 

<양철판 쌀국수가게 외전>

 

제가 근무하는 부대에는 세 가지 특식을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1. 닭대가리 햄버거

2. 쌀국수

3. 우동

 

물론 다 예비군들의 식사를 위한 겁니다만,

짬밥이 차면 우리들도 이용할 수 있었죠.

 

 

우리 대대 중대장은 말년이 된 저에게 특명을 내렸습니다.

후임들과 섞어서 작업을 보내면 제대로 할 리 없으니

오로지 저 혼자 할 일을 주기적으로 부여한 것이죠.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똥통에 물붓기였습니다.

훈련장에는 예비군용 화장실 중 재래식 화장실들이 다수가 있었는데

당연히 주기적으로 분뇨차가 퍼가야 했습니다.

 

문제는 똥이 너무 되지면 분뇨차가 못 퍼간답니다.

그래서 적정량의 물을 붓고 작대기들 들고 저어서

농도를 맞춰줘야 한답니다.

 

이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중대장이 이걸 사실로 생각하고 제게 시킨 건 사실입니다.

 

 

한여름의 뙤약볕 아래 말년방위는

웃통 벗고 땀을 쫄쫄 흘리면서

물통에 물을 받아 들고

언덕 위 사격장 아래 똥통으로 물통을 운반한 후

푸세식 화장실 아래로 물을 붓고 작대기로 젓는 고독한 작업을

일주일 동안 홀로 하고 있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겨울에는 똥이 쌓여 올라 얼어붙으면서 뾰족해지면

삽으로 똥의 사탑을 때려부숴 엉덩이를 찌르지 않게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삽자루에 의해 날리는 똥의 사탑의 파편이 얼굴에 닿으면

그 따뜻한 체온으로 인해 녹아내리더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건 제가 직접 경험해보진 못했네요.

 

 

저는 쌀국수집 옆에 있는 수돗가에서 물을 퍼 날랐습니다.

쌀국수집은 30대 중후반 정도 되어 보이시는 아주머니 한 분이 하셨는데,

군부대 소문이란게 모든 아주머니는 과부라고 소문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은 모르지만 쌀국수집 사장님도 소문에는 그랬습니다.

 

여름 공반기라 예비군 훈련도 없었고,

저는 홀로 일주일 내내 쌀국수집에서 물 푸고

쌀국수집에서 점심을 먹는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부대원들이 꽤 되는지라 예비군 훈련이 없어도

햄버거가게, 우동가게, 쌀국수가게는

모두 닫는 날보다는 여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그렇게 일주일 내내 둘이서만 얼굴을 보고 있으니

사장님과도 꽤 친해졌습니다.

 

 

그리고, 그 날도 양철판으로 된 쌀국수집은 무더웠고

매미울음 소리는 시끄러웠습니다.

 

좁은 양철통 안에는 웃통 벗은 방위 한 명과 사장님이 있었고,

이런저런 사담을 해가며 사장님이 말아주신 쌀국수를 먹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장님이 긴 치마를 허벅지까지 스~~윽 끌어올리시는 겁니다!

그리고는 허벅지 안쪽을 보여주시면서

 

이것 좀 봐, 벌에 쏘여서 이렇게 됐지 뭐야~” 하시더군요.

 

뭔가 말죽거리 잔혹사의 현수 학생같은 느낌이었는데,

그냥 혈기왕성한 말년군인의 착각이었을지도.

 

하여간 벌에 쏘인 자리를 꽤 오래 보여주셨는데

전 아무리봐도 벌에 쏘여서 부은 자리는 안보이는 것 같았고,

꼭 치료법을 듣고 싶으셨는지 한동안 치마를 들고 계시던 사장님은

제가 어리버리한 눈빛으로 쌀국수를 퍼먹고 있으니

다시 국수를 찬물에 씻기 시작하셨습니다.

 

 

소집해제하고 복학해서 3, 4학년은 학교에서 예비군을 받고,

직장에 다니면서 제가 예비군들 훈련시키던 그 훈련장에

제가 예비군으로 가게 됐습니다.

 

노부부가 하시던 닭대가리 햄버거집은 없어졌지만

쌀국수집은 아직 있고 사장님도 그대로 계시더군요.

 

저도 여기서 군생활해서 사장님 쌀국수 그때 많이 먹었어요

 

말은 걸어봤는데 절 기억은 못하시더라구요.

 

또 여름이 오니 그 때는 그렇게도 지겹던 군발이일 때,

90년대 그 시절이 그립읍니다.

2
Comments
1
2020-07-09 01:46:42

근데 저도 01년에 전방 푸세식화장실에서 똥 농도마춘다고 똥물튀어가며 물부었던기억이 납니다 2001년 28사단 81연대 전투지원중대 2소대 있었습니다

WR
2020-07-09 07:20:46

ㅎㅎ 이거 전우여 해야 하는건가요.
하면서도 긴가민가 했는데 다른 부대에서도 했던 걸 보면 이유가 없진 않았나 보네요.
고생하셨습니다.

24-04-19
22
3844
글쓰기
검색 대상
띄어쓰기 시 조건








SERVER HEALTH CHECK: 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