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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의에서 나오는 내용은 맞는데 완전 허구라고 보기엔 좀 무리인것이 곽충(郭沖)의 「제갈량은모오사(諸葛亮隱謀五事)」중의 제3사에 제갈량이 양평관에서 공성계를 썼다는 내용이 나오긴 합니다.
다만 삼국지에 주석을 단 배송지는 이는 명백한 허구라며 역사적 자료를 들어 반박했죠 당시 대촉 방어선의 대장은 조진, 말씀하신것처럼 사마의는 형주방면 도독으로 완성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기록에 따르면 사마의가 20만이나 되는 대군을 이끌고 갔다는데.. 설령 이 이야기가 사실이라 한들 20만 대군이 복병이 있다는 것을 감지하면 진지를 구축해 방어선을 짜고 제갈량을 기다리면 되는 일이지 왜 후퇴했겠냐며 제갈량의 양평관 공성계는 허구라고 주장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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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쓰마이 였다면 철수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