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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인생에서 가장 맛있었던 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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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2 16:16:55

근무중 짬이 좀 생겨 게시판의 글들을 정주행 중에 에타님의 '인생에서 최고로 맛있었던 라면' 이라는 글을 참 재밌게 봤습니다. 재미도 재미지만 비슷한 소재인 '내 인생 최고의 맥주'를 주제로 얼마전에 친구들과 나눴던 이야기가 떠오르더군요. 각자의 경험을 이야기했지만 모두들 '그래 니가 그때 먹었던 맥주가 젤 맛있었겠다'라는 공감을 얻었었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고등학교 2학년 한 여름,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이로군요. 왜 남자들은 한번쯤 격투와 관련된 운동을 배우고싶다거나, 배워야할 필요성을 느끼는 경우가 좀 있잖아요…? 저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기에 뜻이 맞는 친한 친구들 대여섯명이서 동네에 막 개업한 '영어로 배우는 합기도'라는 합기도장에 등록해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이름만큼 특이한 점이 두가지 있었습니다.

1. 교포 출신이라는 관장님께서 직접 수업을 진행하셨는데, 정작 영어로 하시는건 '하나, 둘! 하나, 둘!' 넣는 운동 중 기합을 '원,투! 원,투!'로 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2. 관장님 말씀으로는 우리 합기도장의 도복은 유도복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유도복이 원래 타 도복에 비해 두껍고 무거운데 그렇기 떄문에 운동효과를 배로 볼수 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위에 2번 항목의 관장님 말씀이 팩트인지는 모르겠으나, 정말 무지하게 무겁고 두꺼웠던건 사실이었습니다. 덕분에 여름이라는 계절적 특성과 맞물려 훈련시간 내내 땀을 엄청나게 흘렸고 끝날 무렵엔 땀으로 목욕을 했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엄청나게 땀을 배출했으며 훈련을 한 날 밤에는 기절한듯이 곯아떨어지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던 어느날,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무지막지하게 흘러 떨어지는 땀방울들과 함께 힘차게 원,투를 외쳐가며 진행한 훈련이 끝날떄 쯤, 관장님께서 끝나고 다들 사무실로 모이라고 명하시더군요. 전례가 없던일이라 어리둥절해하며 사무실에 가보니 잡다구리한 마른안주들과 맥주가 테이블위에 놓여있었습니다. 특유의 어색한 말투로 '어른이 주는건 먹어도된다! 한잔씩 마셔라!‘ 라며 300ml들이 정도의 컵에 한가득씩 부어주시더군요.

그떄까지만 해도 맥주의 참맛을 모르고 맥주는 그저 약간 보리맛이 나는 쓰디쓴 술이라고만 알고 있던 저에게 무심코 들이킨 한모금은 신세계를 경험케 해주었습니다.

무심코 마신 한입이 선사해준 상쾌하고 청량하고 시원하고 맛도 있고… 글로 표현하기 힘든 그 맛이 저로 하여금 끝까지 마시도록 만들었고 결국은 저도 모르게 원샷을 했더군요.

나이가 먹고 술도 많이 마셔 본 지금 돌이켜보면, 

 

땀을 흘리며 격렬한 운동, 차갑고 김빠지지 않은 맥주

 

이 단순하지만 ‘맥주가 맛있기 위한 제일 중요한 두가지 요건’이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을만큼 충족된 상황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되고 집에가는길에 맥주를 한병 사들고 귀가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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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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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2 16:22:06

TPO가 중요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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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2 16:24:33

 1. 저는 예전에 집근처 호수를 두바퀴씩 뛰었습니다. 한 40분정도 빠르게 뛰면 딱이었죠. 뛰는 이유는 다 돌고 나서 맥주한캔 딱 마시는 그 맛이 너무 좋아서 그거 마실려고 뛰었었습니다.

 

2. 친구들이 모두 군대가고 혼자 3수하던 시절, 친구 휴가 나왔을 때 마지막날 밤에 공부하던 도서관 뒤뜰에 버드와이저 한병씩 사들고 마셨었습니다. 겨울이었고 추웠는데 돈이 없어서 어디 들어가진 못하고, 가진 돈은 둘이 합쳐서 5천원쯤이라 썬칩이랑 버드2병 사서 마셨는데 그때 참 춥고 달게 마셨었습니다.

 

3. 독일 뮌헨 출장을 한 3주정도 갔던 적이 있었는데요. 맥주가 참 집집마다 맛있더군요. 심지어 캔맥주도 맛있었습니다. 와 맛있다 맛있다 하다가 한국 돌아와서 며칠뒤쯤 맥주 생각이 나서 사다가 딱 따서 한입 마시는 순간 진심 뱉을뻔 했습니다. 그제서야 아~ 독일맥주가 진짜진짜 맛있는 거였구나...했었습니다. 하하

2020-06-02 16:34:43

대학 시절 해외여행 가고 싶어 여름 방학 때 공장에서 한 달 보름 정도 일했었어요. 2교대였는데, 주간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마신 맥주가, 카스였는데도 엄청 맛있었어요.
골라 먹은 맥주는 이태원 브루독에 따라 가서 마신 IPA였는데 아직도 그 맛을 잊을 수 없어요.

2
2020-06-02 16:40:43

  

제 글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정말 맛있던 맥주가 

저는 미국 켈리포니아에 사는데 

켈리의 여름은 정말 뜨겁습니다.  

뜨~~~거워요.  한국은 습하면서 뜨겁지만 

그냥 켈리는 뜨거워요.  요즘은 많이 습해졌습니다.

예전 보다는.  어쨌든 저도 격투기 끝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캔맥주 큰걸로 4개 사서 

차 주차하고 내리면서 하나를 바로 깟습니다.

그렇게 집 계단 올라가면서 벌컥벌컥 들이켰는데...

몸은 땀에 젓었다가 식어서 끈적끈적하고 옷도 달라붙고...

날은 계속 뜨겁게 더운데...그 차갑고 차가운 맥주가 

슈우욱 들어올때 진짜~  

이...이것은 맥주천국인가???  

와~~~ 그렇게 계단 올라가다가 중간에 평평한 지점에서 

한캔을 끝냈네요.  그런데 너무 배가 부르니... 조금 

아...씨 아...이건 좀...아...트름트름..... 그렇게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빙빙 걷다가 쿠어어어어어억 용트름 하고 집에가서 차가운 물로 샤워하고~~~

그후에 마신 맥주도 엄청나게 달콤하더군요... 꿀이에요 그냥 꿀!!!!!!!!!!!!!  

1
Updated at 2020-06-02 16:47:13

에타님은 미국에 사셔서 현지에서의 맥주맛을 제대로 느끼실수 있겠군요! 

 

저는 옛날 뉴질랜드 살았을때, 럭비 경기보면서 마셨던 VB 맥주가 그리 맛있을수가 없었습니다. 

(빅토리안 비터, Victorian Bitter)

 

이 맥주는, 호주산으로 가장 많은 판매량을 기록하는 맥주인데, 바로 이웃나라인 뉴질랜드에도 엄청 수입되어 들어와 있었습니다. (아마 지금도 그렇겠죠)

뉴질랜드랑 호주에서 진행하는 럭비 리그의 공식 스폰서이기도 했었습니다.

 

그래서 나름 폼잡는답시고 그 해당 럭비 리그 경기를 보면서 이 맥주를 마셨었는데...

정말 시원하고 맛있더군요 

(안주감으로 fish and chips 는 보너스였고요 )

3
2020-06-02 16:53:16

으익 진저비어가 최고죠!

2
Updated at 2020-06-02 16:59:16

물론 진저비어도 맛있지만, 저는 내셔널 럭비 리그 (NRL) 를 즐겨보던 1인으로서, 당시 NRL 공식 스폰서 VB 비어의 맛을 잊을수가 없네요 

 

1
2020-06-02 16:56:04

오우 이거 미국에서도 구할수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마시게 돼면 후기 남길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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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2 17:04:03

아니 오리온맨님 Export Gold, Tui, Lion Red, Spieght's 무시하시나요!

...저도 VB는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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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6-02 17:07:18

무시할리가 있나요? 

저도 VB 외에 말씀해주신 맥주들 다 즐겨마셨습니다. 

 

한가지 언급 안해주신 맥주들 중에, 스타인라거 (Steinlager) 도 절대로 빼놓을수 없었죠 

1
2020-06-02 17:08:29

앗 그러게요 스타인라거!

역시 훌륭한 맥덕이십니다 

1
2020-06-02 17:12:35

당시 맥주랑 피쉬앤칩스, 혹은 프라이드치킨과 함께 먹는 그맛은 정말 최고입니다 

1
2020-06-02 17:29:21

Fush and chups! 당분간 맥주 끊으려 했는데 덕분에 엄청 땡기네요

저는 오클랜드에서 먹던 케밥이나 도미노피자에 맥주마시는 것도 좋아했습니다무튼 빨리 퇴근하고 맥주를......

2020-06-02 17:43:56

말씀해주신 도미노 피자는, 한국에서 파는 것과 메뉴도 그렇고 상당히 다르더군요.

저는 개인적으로 뉴질랜드에서 파는 도미노피자가 더 맛있었습니다. 

1
2020-06-02 17:56:32

일명 호주 대표 노동자 맥주
제가 호주 외노자시절 인생의 거칠고 쓴 맛을 맥주에 담았다고 할 만큼 쌉쏘름 한 남자의 맥주죠

2020-06-02 18:05:41

맞습니다, 말씀 그대로 입에 들어오는 순간 bitterness의 맛이 확 느껴지는 

2020-06-02 16:47:50

저는 신혼여행때 파리에서 먹었던 

레페 생맥주~

아직도 그 맛/ 풍경이 잊혀지질 않아요~

1
2020-06-02 16:59:58

대학교 때 OB맥주 공장 견학가서 바로 마셔본 맥주가 정말 맛있었습니다. 이건 시중에서 파는 매주 맛이랑 달라도 너무 달라서 깜짝 놀랐는데, 깨어보니 돌아오는 버스 안이더군요.

일반적으로 사 먹은 맥주 중엔 룡성이라는 북한 맥주가 제일 맛있었습니다.
제 입에는 해외 맥주고 뭐고 비할 바가 아니더군요.

Updated at 2020-06-02 17:01:59

태풍을 뜷고 가서 마신 에비스 박물관의 에비스 맥주 셋트

친구들끼리 펜션 놀러가서 고기 구워먹으면서 먹던 살얼음 낀 맥주

맥주공장서 먹은 신선도 100프로 갓 수확한 맥주

이 3가지가 제 인생 맥주입니다.

1
2020-06-02 17:33:44

2020-06-02 17:37:09

정말 맛있었습니다. 

하필 그날 일본에 태풍이 와서 일본 태풍 직접 경험도 했었죠.........

하지만 고생 끝 맥주는 그야말로 

2020-06-02 17:39:03

도쿄 3년 살 때 한국 친구들 오면 무조건 관광 투어 장소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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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6-02 17:15:18

산토리 더 프리미엄 몰츠 제 가장 최애 맥주입니다. 싱가폴 마리나 베이 샌즈 야경 보면서 마신 프리미엄 몰츠 생맥 그립네요

2020-06-02 17:13:56

술이 포스가 상당하네요

2020-06-02 17:42:35

잔만 봐도 맛있어 보이네요.

 

Updated at 2020-06-02 18:41:58

나름 맥주 애호가 입니다만 인생맥주 중 하나는 진짜 한 여름 대구에 있는 장례식장 가서 앉자마자 종이컵에 따라서 마신 카스 병맥주가 진짜 그렇게 시원하고 맛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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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2 19:22:42

게토레이 이벤트 당첨되서 거의 공짜로 LA 여행가고 류현진 추신수 경기보면서 마셨던 맥주요

그리고 여행간 첫날 같이 간 사람끼리 온갖 맥주 사서 다 같이 마셨던 것도 7년전인데도 기억이 생생하네요,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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