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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모노노케 히메가 불만족스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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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4-04 23:31:46

 한편으론 굉장히 좋아하고 소장해서 여러 번 돌려본 작품이지만, 하나의 작품으로서 정말로 만족스럽진 않았어요.

 

 하야오 감독의 애니를 가족 애니와 진지한 문제의식을 담은 애니로 분류해보면 모노노케 히메는 명백히 후자에 들어가는 작품입니다. 자연과 인간의 대립이 작품의 중심 축이고, 양쪽 어디에도 진정으로 속하지 못하는 산이라는 캐릭터가 등장하고, 중간자이자 주인공으로서 아시타카가 있고, 자연 쪽 대장인 줄 알았더니 사실은 그 대립쌍 바깥에 있는 존재였던 사슴이 있죠.

 

 제 불만은 저 대립에 대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다는 거였습니다. 감독은 둘 사이에서 중립적인 시선을 견지하는 듯하지만 결국 자연 측 대표자 - 나고/재앙신, 모로, 옷코토누시 - 는 전부 죽었습니다. 반면 인간 측 대표인 타타라 마을 에보시는 한 팔을 잃긴 했지만 목숨에 지장은 없습니다. 마을을 재건하고 나무를 베고 계속해서 철을 제련하겠죠. 다시 살아난 숲은 타타라 마을의 좋은 뗄감이 될 겁니다. 저항 세력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 만약 마지막 장면에 등장한 까딱이를 성성이, 늑대, 멧돼지도 돌아올 거라는 함축으로 읽는다면, 자연과 인간의 대립이 끝없이 이어질 거라는 뜻이 됩니다. 이게 작품의 엔딩일 것 같진 않아요.

 

 이러면 자연 측에 정말로 중립적이었는지도 의심스럽습니다. 나고 신은 미쳤고, 옷코토누시와 멧돼지 무리는 눈이 멀었고(맹목적이고), 원숭이 무리는 이기적이고 배타적이고 야만스럽습니다. 늑대들이 그나마 정상적이지만 산 엄마는 가족과 숲의 수호자로서 자기 임무에 충실할 뿐 은근히 체념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반면 타타라 마을과 그 아주머니는 적어도 인간의 시각에서 보면 흠 잡을 데가 없습니다. 장애인, 여성 할 거 없이 마을 사람들끼리 합심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죠. 중립적인 시각을 견지하려고 노력한 결과 자연 측에 좀 가혹해진 건 아닐까요? 

 

 여기까지만 종합해서 "인간은 살아가야 하고 자연을 이용하되 마고나 옷코토누시처럼 미쳐 날뛰지 않도록 조심해서 이용해야 한다" 로 마무리 됐으면 동의 여부와 무관하게 일단 완성된 작품으로 생각할 순 있습니다. 하지만 제 불만은 감독이 아시타카나 산을 통해서 뭔가 다른 얘기를 하려는 듯한 낌새를 보인다는 겁니다. 아시타카는 외부인으로서 타타라 마을에 속하지 않고 마지막에도 산과 함께 살아간다는 선택지를 택하는데, 이건 양비론 혹은 양시론이죠. 양비론이나 양시론 자체가 틀렸다는 건 아니지만, 작품 내에서 아시타카나 산이 어떻게 살아가든 타타라 마을이 계속해서 나무를 베고 철을 제련할 거라는 현실이 변하지는 않습니다.

 

 사슴 역시 비슷하게 읽힙니다. 작품 말미 땅딸보 아저씨와 그의 사주를 받은 에보시가 죽이려 들자 죽음의 신으로 변했죠. 그 상태로 숲과 타타라 마을을 모주리 쓸어버리다가 결국에는 더러운 걸 모두 날려버리고 생명을 돌려주는 것으로 작품이 마무리 됩니다. 아시타카의 언급에 따르면 사슴 신은 생명 그 자체였고, 숲과 인간이라는 대립쌍 중 한쪽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그 둘의 바탕에 자리한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의 자연은 죽일 수도 없고, 죽이려고 해봤자 결국에는 산에 가득한 생명으로 되돌아옵니다. 그렇다면 역시나 타타라 마을이 자연을 이용하며 살아가는 현실에는 영향이 없습니다. 오히려 타타라 마을의 생리를 긍정하는 근거가 됩니다. 아무리 베어도 다시 생명은 순환할 테니까요.

 

  위에서 하야오의 작품을 가족 애니와 진지한 애니 둘로 분류했는데요. 저는 위에서 이야기한 불만들 때문에 모노노케 히메로 대표될 진지한 애니들보다는 토토로 등의 가족 애니를 더 좋아하는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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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20-04-04 23:54:44

 저도 봤던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들 중엔 이게 제일 별로였습니다. 이제 본지가 좀 돼서 가물가물하긴 한데.. 자연과 인간의 중간에 있는 인물이 나와서 마치 중간에서 각자의 입장을 대변하며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려는 듯 하지만 결국에 가서는 자연을 착취당하는 약자, 인간을 착취하는 강자로 묘사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거기다 말씀하신대로 주요한 갈등요소가 해결되지 않았다고 생각하구요. 개인적으로는 좋은 면도 물론 많았지만 보고 나서 응..? 이게뭐야.. 싶은 느낌이 들었던 작품이었습니다. 뭔가 제가 모르는, 당시의 감독 자신이나 일본 사회의 상황등을 좀 알아야 이게 이해가 되려나 싶었네요. 

 

 저는 토토로는 안봤고 이 작품이랑 라퓨타, 센과 치히로를 최근에 다시 봤는데 역시나 하야오의 작품은 메세지는 좀 진부하거나 유치할지 몰라도 그 메세지를 전달해내기 위해 이 사람이 만들어낸 이야기를 보는 재미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면에서도 모노노케 히메 쪽이 가장 제 취향에는 안맞았던 작품이었습니다. 

WR
2020-04-05 00:05:17

센과 치히로는 좋았습니다. 본문에서 이야기한 가족 애니와 진지한 애니라는 면모가 가장 잘 조화된 작품이 아닌가 싶어요.

2020-04-05 00:16:32

저도 센과 치히로 좋았습니다. 이 할아버지가 얼마나 사려깊고 섬세한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었네요. "욕심부리지 말자" 는 이야기 하나 하자고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내다니.. 

WR
2020-04-05 00:34:11

그 외에도 작은 주제들이 빼곡하게 들어갔는데 굉장히 부드러운 작품이 되었지요.

센과 치히로 이후로는 이야기의 개연성이라는 걸 지나치게 무시하더군요. 포뇨 이후로는 보지 않았고 하울, 포뇨는 안 본 셈 치고 있기 때문에 제겐 센과 치히로가 그의 마지막 작품입니다.

2020-04-05 00:15:05

좋은 글 잘 봤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작품이 굉장히 현실적이라는 점이네요. 인간을 자연을 이용할 것이고 과용은 재앙을 가져올 것이라는 것 하지만 그 재앙은 자연의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일 뿐이라는 것. 그리고 계속 반복해 나가겠죠. 어떤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위의 패턴을 제시하는 것 자체가 생각해 볼만한 메시지를 주지 않나 싶긴 합니다. 

WR
2020-04-05 00:22:00

생각해볼 여지는 분명히 있습니다. 제 불만은 아시타카가 뚜렷한 답도 없으면서 자꾸 답을 주는 척한다는 거였는데, 어쩌면 하야오가 의도한 바가 아니었을 수도 있습니다. 기회 되면 한 번 더 봐야겠네요.

2020-04-05 00:22:46

그동안의 느낌과는 다른 게 있긴하죠

자연을 너무 악처럼 표현한 느낌도 있구요...

 

2020-04-05 00:29:55

아무래도 작품 외적? 인 측면에서 보자명 미야자키 하야오는 자신의 곤조가 굉장히 강한 사람인데 문제는 그게 말씀하신 것처럼 다소 두리뭉실하거나 추상적이고 디테일적인 측면에서 좀 약한 면이 있습니다. 특히 가족적인 그런 느낌에서도요. 근데 이게 사실 지브리의 다른 축이었던 타카하타 이사오와 사이가 틀어져서 이사오가 관여하지 않기 시작한 시점부터 본격화됩니다. 그게 모모노케 히메 때부터죠. 타카하타 이사오는 디테일에 강하고 스토리라인도 섬세하게 뽑는 편이라 둘의 합작이 볼만 했던건데 결국 타카하타 이사오의 작품들이 실패를 하고(저는 개인적으로 좋아하지만..) 하야오가 독주를 하면서 지브리 자체의 색깔이 하야오로 굳어버리게 된게 좀 아쉽습니다.

WR
Updated at 2020-04-05 00:38:33

가족 이야기는 좀 두루뭉술해도 상관없지 않나요? 토토로만 해도 애들이 동네 요정?과 친구가 되는 이야기인데 여기 딱히 치밀함이 필요하지 않잖아요.

2020-04-05 00:39:25

아 말을 잘못했네요. 가족 에니메이션 같은 느낌을 말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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