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HL] 알바로 한 경기 뛰고 레전드 등극한 선수가 나왔습니다
트레이드 데드라인을 앞두고 평화롭던 하키판에 어제 또 한번 역대급 에피소드가 나와 소개를 드립니다
(그리고 글에 앞서 이 경기로 엄청난 심적 고통을 받은 LEOZRA님께 위로를... 하지만 그냥 넘기기엔 너무 재밌는 이슈 잖아요 )
동부 컨퍼런스의 플레이오프 막차를 두고 승점이 간절하던 두 팀이 맞붙었습니다. 홈 팀인 토론토 메이플리프스와(이하 맆스) 원정 팀 캐롤라이나 허리케인스입니다 (이하 케인스)
토론토는 성공적인 스토브리그를 보내 전력을 착실히 강화하여 올해는 대권을 노릴 수 있을 것이라고 점쳐졌으나 시즌 내내 부진으로 현재 플옵 막자리를 겨우 사수하고 있구요. 캐롤라이나는 플옵 진출에 2장이 주어지는 와일드카드를 따내기위해 피터지는 격전을 치루는 중입니다. 이러한 두 팀이 맞붙었으니 '이 경기는 분명 개싸움이다'라고 집중이 되었죠.
경기가 이상하게 꼬여간건 1피리어드 초반입니다. 선발 출장했던 케인스의 골텐더(축구로 치면 골키퍼)인 라이머가 1개의 슛을 막아낸 후 부상으로 퇴장을 당합니다.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백업 골텐더인 므라젝이 급히 경기에 투입이 되지요. 하지만 설상가상으로 2피리어드 중반에 므라젝마저 토론토의 필드 플레이어와의 충돌로 부상을 당합니다 ㅜㅜ
케인스는 더 이상 투입할 골리가 없는 상황... 위기의 캐롤라이나 허리케인스를 구할 백기사는 누구였을까요?
오늘의 주인공인 토론토 메이플리프스 잠보니 드라이버 데이빗 에어스였습니다.
김연아 경기를 보셨을 때, 선수들의 프로그램이 끝날 때 마다 중간중간에 아래의 그림과 같은 차량으로 빙질을 관리하는 걸 보신 적이 있으시죠?
위 기계가 잠보니입니다. 데이빗 에어스는 말하자면 토론토 메이플리프스 구장인 스코시아 뱅크 아레나에 소속된 빙질관리자 중 한 명이었던거죠.
그럼 왜 리프스 소속인 에어스가 원정팀인 케인스를 돕게 된 걸까요?
그건 그에게 "비상용 골텐더"라는 숨은 직책이 주어졌었기 때문입니다
비상용 골텐더는 많은 하키 팬들도 잘 모르고 있던 제도입니다. 케인스와 맆스의 경기 처럼 한 경기에 선발 골텐더와 백업 골텐더가 동시에 부상으로 경기를 뛰지 못할 때 [홈 구장에 비상용 골텐더를 대기시켜 홈/원정 가릴 것 없이 즉각 경기에 투입이 된다] 라는 제도이지요.
하지만 축구도 그렇겠지만 골텐더라는 포지션이 필드 플레이어들보다 부상 확률이 적어, 실제로 이 비상용 골텐더가 시행이 된건 제가 찾아본 바로는 딱 한번 밖에 없습니다. 스캇 포스터란 분이 오늘의 주인공인 데이빗 에어스처럼 비상용 골텐더로 출전해 경기를 뛰었으나 경기는 패배하였지만 본인은 NHL 플레이어로써 꿈을 이루었다는 미담을 남긴적이 있죠.
여하튼 에어스는 1피리어드와 2피리어드 사이에 잠보니로 열심히 빙질 관리하다가 뜬금없이 원정 팀 골텐더가 되라는 막중한 임무를 받아 출격하게 됩니다.
이 쯤에서 에어스의 히스토리를 보겠습니다.
42살에 신장 수술 경력까지 있던(ㄷㄷㄷ) 에어스는 실제로 하키 선수 출신입니다. 하지만 현역 시절에 너무나도 평범하다못해 뒤쳐지는 실력으로 선수로써 빛을 본 적은 한번도 없었으며, NHL은 커녕 하부리그인 AHL(느바로 따지자면 G리그)에서도 선발이 아닌 '백업 골텐더의 백업'이라는 경력이 다였으니 냉정히 비루한 실력이라고 밖에 표현을 못하겠군요.
점점 나이가 차고 실질적으로 은퇴하다시피 한 에어스였지만 자신이 사랑하던 빙판을 떠나지는 못하고 마지막 선수 생활을 했던 토론토 (정확히는 메이플리프스가 아닌 하부리그 토론토 말리스)의 경기장에 잠보니 기사로 취직을 하여 맆스의 홈구장인 스코시아 뱅크 아레나의 직원으로 있던 것이죠.
경기에 마지막으로 뛴 건 5년도 넘어갔다고 합니다.
근데 하필이면 경쟁팀의 골텐더라는 중책을 맡아 자신의 회사를 막아야하는 아이러니한 포지션을 맡게되었습니다
케인스는 내키진 않지만 눈물을 머금고 일당 500달러 (네. 에어스는 상대 팀 알바를 뛰었습니다)와 NHL 일일계약서를 작성하고, 케인스의 경기 물품도 없어 캐롤라이나 유니폼 상의만 얻어입고 자신의 뛰던 토론토 말리스의 하키 골텐더 마스크와 토론토 말리스 유니폼 하의를 걸쳐입고 경기에 투입됩니다
에어스와 함께 경기장에 있던 에어스의 부인도 이 믿기지 않는 상황에 짧은 소감을 SNS에 남기게 되죠 (F*** ME!!!!)
(데이빗 에어스와 그의 골텐더 마스크. 원정팀 케인스의 유니폼을 입고 있지만 마스크는 본인 소유의 토론토 하키 마스크를 그대로 하고 나왔습니다ㅋㅋㅋㅋ)
에어스가 경기에 투입되자 홈 팀 관중들인 토론토 팬들의 열화와 같은 환호를 보내주었지만 비상용 골텐더를 써야하는 캐롤라이나 감독은 절망적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하지만 얼떨결에 팀 동료가 된 케인스의 선수들은 에어스에게 다가와 긴장을 풀어줍니다 "몇 골 먹히든 상관없으니 재밌게 놀다가시죠 (ㄷㄷㄷ)"
하지만 (직장 동료인) 토론토 공격진은 리그 내에서도 걸출한 수퍼스타들을 보유하고 있는 막강한 공격진. 에어스는 투입 되자마자 첫 두개의 슛을 막지 못해 2실점을 하고 순식간에 2피리어드가 끝이 납니다.
그렇게 맞이한 마지막 피리어드. 케인스의 수비진과 공격진들은 올 시즌 내 최고의 디펜스를 펼치면서 에어스의 부담을 덜어주었고, 에어스마저 긴장이 풀렸는지 신들린 선방을 하며 8개의 선방을 기록, 최종적으로 10개 중 8개의 슛을 막아내는 80%의 선방율로 캐롤라이나의 승리를 이끌어냅니다
꼭 이겨야만 하는 경기에서 승리를 가져다준 에어스에게 게임이 끝나자마자 케인스 선수들은 전원 에어스에게 달려가 축하를 해주었으며 (우승 한 줄 알았습니다) 심지어는 구단 측의 배려로 에어스는 경기 종료 직후에 비어있는 빙판을 돌며 토론토 관중들의 환호를 받는 이벤트까지 갖게 됩니다
그럼 강적 토론토에게 패배를 안기며 캐롤라이나의 영웅으로 등극한 에어스는 미래는 어떨까요?
좋은 활약을 펼치긴 했지만 캐롤라이나가 42세의 신장 질환 병력이 있는 선수에게 정식 계약을 제안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NHL레벨의 골텐더가 2명이나 비었지만 아마 자체 하부리그에서 콜업을 하거나 며칠 남지 않은 트레이드 데드라인안에 골텐더를 보강할 거 같아요.
하지만 에어스의 이 매력적인 스토리는 모든 하키 팬을 매료시켰으며 캐롤라이나는 NHL의 전 구단들 중에서도 이러한 소소한 이벤트를 잘 활용하는 구단으로 유명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March Madness 패러디 하는 캐롤라이나 허리케인스)
혹시라도 진짜 이 경기에 힘입어 케인스가 플레이오프에 진출한다면 캐롤라이나는 에어스를 위한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할 것이 분명합니다. (이미 에어스의 유니폼은 성황리에 판매 중)
더불어 데이빗 에어스는 캐롤라이나를 위해 한 경기만을 "알바로"뛰며 구단 레전드에 등극하였으며, 캐롤라이나 시는 에어스에게 명예 시민권을 수여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ㅎㅎ
캐롤라이나의 희소식은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작년 진출했던 플옵에서 돌풍을 일으켰지만 올 시즌에 그 동력을 잃은 감이 없지 않은데, 에어스의 투입된 이후의 디펜스를 보면 이 팀이 한 몸 처럼 똘똘뭉쳤구나 라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팀워크를 새롭게 다질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니 앞으로의 플레이오프 진출에 대해 좀 더 엑셀을 밟을 수 있을 것 같네요
뭐 에어스의 미래는 정확히는 누구도 알 수 없지만 단기간의 미래는 확실합니다.
그는 내일도 토론토의 홈구장인 스코시아 뱅크 아레나에 출근 할 거란 것
회사 동료들 얼굴 보기 꽤나 뻘쭘하지 않을까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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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재밌게 읽었습니다^^
하키에 별 관심 없는데 이런 소식은 매우 흥미롭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