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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의 '아버지'에 대한 인터뷰를 들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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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3 15:00:45

 1. 펀게시판에서 나왔던 수능 난이도 이야기를 보니 제가 수능을 치렀을 때가 생각나는군요. 참고로 전 96년 수능과 98년 수능을 치렀던 사람입니다. 고등학생들을 가르치는 학원 강사인 집사람의 이야기로는 97년을 비롯한 그때당시의 수능이 가장 어렵던 시절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부분에서는 많은 분들이 공감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2. 어느날 퇴근길에 차에서 EBS라디오를 듣는데, 학력고사에서 수능으로 전환되었을 때 처음으로 수능을 기획했던 교수님이 인터뷰를 하시더라고요. 80년대말~90년대 초반에 4~50대의 장년이셨고 지금은 목소리만 들어도 70대가 넘어선 노인이시라는 게 인터뷰에서도 느껴지더군요. 굉장히 까랑까랑한 목소리 거침없이 수능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당연히 인터뷰의 내용도 굉장히 강한 비판의 말씀이었고요. 개인적인 의견임을 누차 강조하시긴 했지만, 그분 말씀의 요지는 "처음 내가 수능을 만든 것은 맞지만, 지금의 수능은 자신은 수능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고 하시더라고요. 

 

3. 우선 그분은 수능이라는 시험을 통해 대학이라는 학문의 전당에서 더 넓은 지식을 탐구할 수 있는 자세를 길러주는, 혹은 지식을 탐구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선발하는 시험을 만들고 싶었다고 하시더라고요. 학문이라는 길은 자신의 한계를 끝까지 밀어부쳐야 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그 나이의 학생들이 끊임없이 탐구하고 노력해야만 어느 정도 길이 보이는 방식의 시험을 원했다고 하더라고요. 만점자가 수두룩하게 나오는 시험을 원하지는 않으셨던 건 분명합니다.

 

4. 그분이 생각하셨던 난이도는 사법고시처럼 가장 우수한 수험생이 기록할 수 있는 점수가 100점 만점에 80점가량이길 원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우수한 학생의 성적이 5~60점정도 기록하고 그 이후로 정규분포처럼 이뤄지는 식의 난이도를 예상하셨다고 합니다. 그러고보면 96~97년도 수능의 난이도가 출제자의 기본 원칙과 어느 정도 부합하지 않나 싶네요.

 

5. 물론 그 이후에 수능의 역사에 대해서는 여러분들이 잘 아실 겁니다. 인터뷰하셨던 교수님의 생각과는 다르게 난이도는 여론에 따라 좌지우지되고, 수없이 많은 논란과 구설수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수능 난이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인터뷰에서조차 '학문의 길'을 주장하셨던 분에게 '물수능'은 신념이 꺾이는 느낌이었을 겁니다. 학자적 자부심과 책임감으로 "제대로 고등학교 과정을 배웠다면 이정도 문제는 풀어야 한다"라는 식으로 문제를 구상하면, 교육과 전혀 상관없는 관료가 '여론에서 수능이 너무 어렵답니다~~~~'하면서 압박을 주었던 사람도 꽤 있었던 모양입니다. 게다가 점점 수학같이 학문의 중심이 되는 과목들의 난이도가 점점 쉬워지고 몇몇 과목은 빠져버리는 모습들을 보면서 씁쓸했다는 말도 남기셨습니다.

 

6. 물론 전 이 글에서 '물수능'이 옳으냐, '불수능'이 옳으냐라는 문제의 대답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도 98년 수능때는 그나마 물수능의 혜택을 본 사람이니까요. 어찌되었든 그분의 인터뷰를 들으면서 평생 학문을 하면서 세운 자존심과 꼬장꼬장한 장인의 마인드가 보이는 듯 했어요. 대학수학능력시험(大學修學能力試驗)을 통해 말 그대로 대학에서 학습을 할 만큼의 능력을 점검하겠다는 기본 신념을 25년이 지난 지금까지 마음 속에 담고 있었다는 점은 꽤 놀라웠어요. 

 

7. 저도 40대가 넘어가니 젊은 친구들의 반짝거리는 재기보단 오랫동안 한 길을 걸어온 사람의 우직함에 더 마음이 갈 때가 많습니다. 마치 루카 돈치치의 영민함보다 던컨의 우직함에 더 마음이 간다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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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19-11-13 15:47:05

제 생각으로 수능의 난이도가 쉬워진건 여론도 있지만 형평성의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분 말씀처럼의 난이도의 시험을 내면 결국 누가 잘 찍냐에 따라 점수가 많이 좌지우지 될 것입니다. 찍는 문제의 수가 많아짐에 따라서 현재보다 찍기에 의한 운의 요소가 커지게 되겠죠. 만약 모든 문제가 주관식이면 관계가 없겠다만 수능은 수학에서 9문제를 제외하곤 모두 객관식이죠.(그 당시는 어땠는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현재를 기준으로요) 

WR
2019-11-13 16:04:20

수능시험은 형평성과 충실성이라는 두 명제 사이에서 시계추처럼 왔다갔다 할 겁니다. 전 이 글의 교수님에게 심정적으로 기울긴 하지만, 형평성의 문제는 무시할 만한 것은 아니죠. 

2019-11-13 15:47:40

저도 96, 97년 수능을 봤는데 참 어려웠죠. 96년엔 본고사도...

저도 저 분 인터뷰 본 기억이 나는데,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일입니다. 거의 불가능한 일이죠. 우리나라에서 건드리면 난리가 나는 몇 가지 중 하나가 대학입시니까요.

그나저나 저도 아이가 있는데 아직 어려서 대학 입시는 먼 일이긴 하지만, 나중엔 또 어떻게 될까 생각하면 벌써부터 답답해지네요~

WR
2019-11-13 16:12:25

커리큘럼이 점점 다양화되어가고 있긴 합니다만... 그게 학생들의 미래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딴 이야기이지만 예전에 회사에서 엔지니어로 일하고 계시는 친척 형님이 사람을 뽑을때 이력서는 화려한데 실력이 없는 지원자들이 너무 많아서, 면접온 사람들한테 공학수학문제를 풀게 시켰다고 하더군요. 화려한 지면보다 '실력'이 더 드러난다고 하더라고요. 

 

글의 교수님도 그런 생각때문에 그런 인터뷰를 하셨을 겁니다.

Updated at 2019-11-13 17:31:29

한국사 영역 만큼은 글에 내용처럼 누군가들(?)의 입김이 들어갔다고 느껴지네요
물론 필수가 된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만, 문항들이 너~무 쉬워져서 문제죠
역사과목은 아예 수능 출제방향부터가 대놓고 현재 역사과에서 강조하는 역량과 연결된게 거의 없습니다
출제방향에 달랑 '한국사에 대한 소양을 갖추었지 평가'랑 '시대별로 고르게 낸다'라고만 되어있는데
억지로 역사가 중요하다니까 필수과목으로 넣은것 같은 느낌....
하기야 투표용지로 장사하는 사람들은 그런데 관심 없겠지요
수능제작자분 씁쓸하셨다는게 이해되네요

WR
2019-11-13 17:49:41

가끔씩 미국의 대학교 중에서도 정말 학사관리를 철저하게 하는 학교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교육의 방향도 양극화가 될 것같은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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